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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가벼운 한 끼 식사로 라면을 먹지만 1963년 삼양라면이 처음 선을 보일 때만 해도 국내는 아직까지 배고픔에 허덕이는 사람이 많을 때였습니다.
삼양라면의 생산은 어느 날 전중윤 회장이 남대문 시장을 지나가던 중 사람들이 꿀꿀이죽을 사먹으려고 줄서있는 것을 보고 국내의 식량 자급문제 해결이 시급하다고 판단, 평소 일본을 드나들며 자주 보았던 편리하고 쉽게 먹을 수 이서는 라면의 국내생산을 꿈꾸게 되면서부터 입니다.



곡식위주의 생활을 하던 우리 나라 사람들은 들어보지도 못했던 라면이란 제품이 나오자 라면의 ‘면’을 무슨 섬유나 실의 명칭으로 오인하여 구입하려 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광고를 하여도 판매가 되지 않자 삼양식품은 캠페인 성격의 직접시식을 실시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생소하여 꺼려하던 사람들도 직접 맛을 보고는 라면이라는 새로운 맛의 매력에 빠져 라면 맛의 메아리는 국민의 입과 귀를 통하여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1966년 11월에는 240만 봉지, 1969년에는 1천 5백만 봉지로 급격한 신장을 보이고 초창기의 매출액 대비 무려 300배에 달하는 경이적인 성장을 하게 됩니다.

 
초기의 라면 맛은 일본 명성식품으로부터 기계를 도입하여 그대로 제조하였기 때문에 맛이 한국인의 입맛과는 달랐습니다.
이유는 면발의 끈기정도와 스프가 풍겨내는 기호의 차이가 현저하게 다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삼양식품은 면의 끈기와 스프의 개선이 우선 이라고 판단하고 1966연초 면과 스프 실험실을 발족시켰습니다. 이 실험실은 연구실로 확장되면서 삼양식품은 라면의 품질개선에도 연구를 진행시킴으로써 품질을 높이고 다양화하기에 이릅니다. 1965년 후속타자로 첫선을 보인『곡면』을 비롯하여 1967년『미니라면』에 이어 1969년부터는 본격적인 제품다양화 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1969년 7월 한국인의 식생활 습관에 맞는 담백한『칼국수』는 단일 품목으로 그 해 매출의 1%를 차지할 만큼대 히트를 치며 70년 삼양식품은 종합식품업체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70년 3월에는『삼양짜장면』, 5월에는『삼양냉면』, 10월에는『삼양쇠고기면』을 개발한데 이어『삼양울면』등 연속적인 신제품을 개발하여 내놓았습니다. 특히 그 해 11월에는 알뜰한 가정주부들에게 인기 있었던 5개들이 삼양쇠고기면 덕용을 내놓고, 그 밖에도『카레라면』,『특제라면』,『어린이라면』등 수많은 신제품을 내놓고 명실공히 종합식품업체로서의 발판을 굳히게 됩니다.

 
 
한편 마케팅 전략에서 가장 큰 특징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이 라면의 염가정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63년 라면을 처음으로 생산 · 출하하면서 그 판매가의 책정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그에 대한 많은 연구와 논의가 있었습니다.
신속한 보급을 위해서는 저가여야 하고 창업기의 과다한 부담을 막기 위해서는 적당한 가격정책을 써야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노심초사 끝에 삼양식품은 라면 1식당 100g에 10원의 가격으로 책정했습니다.
당시 커피 한 잔 값이 35원이었던 것에 비하면 매우 저렴한 가격이나 시장에서 팔던 꿀꿀이죽 가격이 5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서민층에게는 적당한 10원이란 가격을 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가격은 이후 6~7년 동안 지속되었고 이후 장수상품이 대개 그렇듯 꾸준히 소비자 지향적인 가격정책을 유지하여 왔습니다. 그러다 지난 1989년 우지파동으로 잠시 판매가 중단되었다가 지난 1994년 100g에 300원의 새로운 모습으로 출시 그리운 옛 삼양라면의 맛을 재현시키며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삼양라면 역시 장수상품이 대개 그렇듯 패키지는 기존의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조금씩 변하여 왔습니다. 물론 맨 처음 출시되었던 패키지는 삼양식품 독자의 포장기술이 없었고, 삼양라면에 기술 이전을 해 준 일본의 명성식품의 패키지 120만포를 수입하여 제품명만 삼양라면으로 바꿔 판매한 것이었기 때문에 디자인이 거의 같았습니다. 그래서 삼양식품은 포장의 독자 생산을 위하여 별도로 삼양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고 공장의 가동과 함께 스프 및 포장용 대의 자급을 기하게 되었습니다. 초기의 포장은 독자개발이긴 하지만 기존의 명성식품의 포장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여서 같은 질감의 포장재에 닭 대신 옛 삼양식품의 마크인 주황색 원을 넣고 가운데에 삼양라면이라는 제품명을 넣었습니다. 후속 제품으로 나왔던 미니라면이나 칼국수 등도 같은 패턴으로 하고 제품명만 표기하여 주었습니다.

현재와 같은 패턴의 포장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초반입니다. 이때의 포장은 현재와 거의 흡사, 전체 바탕은 주황색에 원의 색을 빨강으로 하였습니다.
삼양라면이라는 로고타입도 한결 다듬어진 서체를 사용하였습니다.

그 후 1976년, 78년, 83년 등 여러 번에 걸쳐 바뀌었으나 제조 기술 발전에 따른 맛의 변화를 표기하는 정도로만 바뀌었습니다. 1989년 우지 파동 후 1994년 맛을 강화해 새로 재 출시되면서 세로 포장이던 것을 가로 형태로 바꾸고, 원안에는 요리되어있는 라면 사진을 넣고, 로고 타입은 굴림을 준 부드러운 서체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테두리에 금테를 둘러 품질과 가격에 맞는 고급스러움을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