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자스’라는 프랑스 북동부의 한 지역명을 웬만한 사람들은 다 기억한다. ‘알자스로렌문제’, ‘보불전쟁’ 같은, 독일과 프랑스끼리의 영토분쟁과 전쟁사 마저도 많은 사람들은 알고 있다. 다들 세계사에 능통해서가 아니라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단편소설 덕분이다.
물론 이 소설의 주제가 알자스로렌문제, 보불전쟁 같은 지리·역사적 사실 자체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나라를 빼앗긴 국민의 설움, 프랑스인들의 애국심과 모국어에 대한 긍지와 사랑을 그린 이야기의 지역적, 시대적 배경일 뿐이다. 그런데도 전 세계 사람들이 프랑스와 독일 사이의 작은 지역과 그 역사적 문제를 알고 있는 건 ‘마지막 수업’의 감동 때문이다.
보불전쟁에서 독일이 이겨 프랑스령이던 알자스와 로렌 지방을 할양받아 현지 학교들로 하여금 프랑스어 교육을 못하게 한다. 이 상황에서 아멜 선생님이 평소와 달리 정장차림으로 프랑스어 마지막 수업을 하는 광경을 처연하게 그린 게 이 소설이다. 학자들에 의해 당시 알자스 지방의 주민 대다수가 독일계였고, 그보다 앞서 이곳이 독일령일 때 프랑스가 침공하여 프랑스어를 강제로 교육했다는 역사적 배경이 밝혀지면서 다수 국가의 문학교과서에서 사라지는 추세이긴 하지만 소설의 브랜드가치는 여전히 세다.
‘마지막 수업’의 지역홍보 힘
이처럼 유명 문학작품 덕분에 역사적 사실이 널리 알려지거나, 지역브랜드를 끌어올린 경우는 우리나라에도 수없이 많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은 평창군을 모르는 이도 강원도의 ‘봉평장’은 널리 알도록 만들었다. 민족 대서사시로 불리는 ‘토지’로 인해 하동이 얻은 ‘지역상표’ 가치는 돈으로 따질 수 없을 게다. 진주성 전투에 얽힌 의기 논개와 ‘남강’이라는 진주의 브랜드도 정규 역사교과서를 통해서라기보다는 신문학 초기 변영로 시인의 ‘논개’라는 유명한 시 한편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지역의 역사를 브랜드화하기 위해 지자체들이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아이디어 중에는 지역의 역사나 기존에 형성된 지역 이미지를 배경으로 하는 문예작품 창작을 조장하는 일이 주목을 끈다. 가야제국을 지역상표로 만들기 위해 해당 지역이 국내 톱클래스 작가의 가야사 배경 소설 창작을 도운 것으로 들었다. 하동에서는 토지문학상을 제정하여 ‘토지브랜드’ 유지 및 활성화에 노력하고 있다. 경북 포항시도 포항과 관련된 창작품을 공모 중이다.
‘진주대첩제(晋州大捷祭)’를 만들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진주대첩’의 역사를 지역브랜드 제고에 활용하자는 뜻이다. 지난 4일 한 지역 간담회에서 한 인사가 내년 10월 10일 ‘진주대첩일’을 기념해 20억 원 정도의 사업비로 개천예술제, 유등축제 같은 기존의 축제를 아우르는 ‘진주대첩제’를 제정하자고 제안했다. 아마 그 축제명은 ‘한산대첩제’를 본뜬 것일 게다. 취지는 관광객을 많이 끌어 지역의 활력을 북돋우자는 것이리라. 그 생각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거액을 들인 대규모 축제판을 거창하게 벌인다고 해서 관광객이 무턱대고 구름처럼 모이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진주대첩제’의 관광객 유인 요소로는 무엇보다 ‘진주대첩’이 무엇이며 무엇 때문에 가치가 있는가를 널리 알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 ‘진주대첩’은 임란3대첩의 하나다. 그러나 행주대첩과 한산대첩은 그 지휘관들, 도원수 권율 장군 및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숱한 문학작품과 야화(野話)들 덕분에 이미 널리 알려졌다. 그에 비하면 진주대첩의 지명도는 상대적으로 크게 낮다. ‘논개’의 지명도를 과신하는 진주 사람들로서는 펄쩍 뛸 소린지는 몰라도 전국적 지명도를 객관적으로 볼 때 그렇다고 생각한다. ‘진주대첩 지명도’는 왜 낮을까.
역사책에 나오고 백과사전에도 상당히 길게 기술되는 ‘진주대첩’이지만 과문 탓인지, 이를 주요 배경으로 하는 유명 서사문학을 별로 알지 못한다. 최근 진주 출신의 한 신예 작가가 장편소설 ‘논개’를 발표했다고 들었지만, 독서시장을 크게 달구었다는 소린 못 들었다.
‘진주 임진란’ 작품 공모 어떨까
이런 점에서 한 가지 이벤트를 제안하고 싶다. 거액의 고료를 내걸고 ‘진주대첩’을 배경으로 하는 문예작품 공모를 하거나, 그야말로 깜짝 놀랄 만한 규모의 창작지원금을 조건으로 초일류 작가와 협정하여 진주의 임란시절을 형상화 해보는 건 어떨까? 최근 한 인기작가의 ‘남한산성’이란 작품으로 국민들은 ‘병자호란’의 역사를 국사책이나 교실에서 보다 더 밀도 있게 배웠고 남한산성이란 역사현장의 브랜드 가치도 훨씬 높였다. ‘진주대첩’을 다룬 인기 소설이 나온다면 역사책 갈피에만 덮여 있는 ‘진주대첩’도 전국적 ‘인기브랜드’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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