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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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
영어: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1
Flag of the United Kingdom.svg Royal Coat of Arms of the United Kingdom.svg
국기 국장
국가 하느님, 여왕 폐하를 지켜 주소서3
United Kingdom in the world (European dependecies special) (Europe centered).svg
수도 런던 북위 51° 30′ 26″ 서경 0° 07′ 39″ / 북위 51.507222° 서경 0.1275° / 51.507222; -0.1275
정치
공용어 영어4
정부 형태 의원내각제 입헌군주국
단일 국가, 양원제
여왕 엘리자베스 2세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
역사
설립  
 • 1707년 연합법 1707년 5월 1일
 • 아일랜드 왕국 합병 1801년 1월 1일5
 • 아일랜드 자유국 독립 1922년 12월 5일
지리
면적 243,610km² (80 위)
내수면 비율 1.34%
시간대 GMT (UTC+0)
DST (UTC+1)
인구
2015년 어림 64,800,000명 (22위)
인구 밀도 255.6명/km² (51위)
경제
GDP(PPP) 2014년 어림값
 • 전체 $2조 4,349억 (8위)
 • 일인당 $37,744 (21위)
HDI 0.875 (26위, 2013년 조사)
통화 파운드 (£) (GBP)
기타
ISO 3166-1 826, GB, GBR
도메인 .uk6
국제 전화 +44

1일부 지방에서 쓰이는 언어로는 다음과 같다:

  • 스코트어: Unitit Kinrick o Great Breetain an Northren Ireland
  • 웨일스어: Teyrnas Unedig Prydain Fawr a Gogledd Iwerddon
  • 스코틀랜드 게일어: An Rìoghachd Aonaichte na Breatainn Mhòr agus Eirinn a Tuath
  • 아일랜드어: Ríocht Aontaithe na Breataine Móire agus Tuaisceart na hÉireann
  • 콘월어: An Rywvaneth Unys a Vreten Veur hag Iwerdhon Glédh

2 스코틀랜드에서는 스코틀랜드의 문장을, 웨일스에서는 웨일스의 문장을 사용한다.
3 공식적인 국가는 아니다.
4 2005년웨일스에서는 웨일스어, 스코틀랜드에서는 스코틀랜드 게일어가 공용어로 지정되었다.
5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이라는 이름이 정해졌다. 이 이름은 1927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6 ISO 3166-1 alpha-2 약자는 'GB'이지만 특별한 목적에서만 사용된다.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영어: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유나이티드 킹덤 오브 그레이트 브리튼 앤 노던 아일랜드[*], 문화어: 대브리텐 및 북아일랜드 련합왕국), 약칭 브리튼(Britain) 또는 연합왕국(聯合王國, United Kingdom) 혹은 영국(英國, 잉글랜드에서 유래)은 유럽 북서부 해안의 브리튼 제도에 위치한 주권국이자 섬나라로, 북해, 영국 해협, 아일랜드 해대서양에 접하여 있으며 그레이트브리튼 섬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아일랜드 섬 북부의 북아일랜드로 네 개의 홈 네이션스로 이루어져 있는 연합국가이다. 수도는 런던이고 연합국의 구성을 이루는 각 나라들은 자치권을 보장받고 있다.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의 수도는 각각 에든버러, 카디프, 벨파스트이다.

아일랜드 섬의 영국령인 북아일랜드아일랜드 공화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해외 영토까지 포함 시 스페인(영국령 지브롤터), 키프로스(아크로티리 데켈리아)와 국경을 공유하고 있다. 해외 본토의 일부는 아니나 영국의 군주의 지배 하에 있으며, 케이맨 제도, 버뮤다와 같이 유명한 조세 회피지들을 포함하고 있다. 해외 영토 거주민들과 영국 본토를 비롯한 유럽 연합의 국민들은 서로의 지역에 거주할 권리가 없으며 상호간의 이민도 사실상 불가능하다.[1]

영국은 근대적 의회제도와 의원내각제를 전 세계로 전파시킨 정치선진국이며 산업혁명의 발원지로 제일 먼저 산업화가 된 나라이자 19세기와 20세기 초반 세계 인구와 영토의 1/4을 차지한 유일의 초강대국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쇠퇴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세계에 경제, 문화, 군사, 과학, 정치적인 영향을 끼치는 강대국 중 하나로 남아 있으며 특히 음악은 비틀즈롤링 스톤즈를 시작으로 을 포함해, 현재까지 세계에 막대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핵무기 보유국이고 2010년 현재 군사비 지출은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크다. 2011년 명목 국내총생산은 세계 7위였으며, 시가총액 기준 세계 50대 기업 중 로열 더치 쉘, BHP 빌리튼, 보다폰, HSBC, BP, 글락소스미스클라인, 유니레버가 영국 기업이었다. 대졸자 초봉은 2010년 현재 약 25000파운드이다.[2]

국명[편집]

정식명칭은 그레이트 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며, 약칭으로 브리튼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영국(英國)이라 부르는 것은 연합왕국의 구성국인 잉글랜드한자 표기에서 나온 것으로 다른 한자 문화권에서도 수용된다. 영(英){중국어발음은 잉(병음: Yīng)}은 잉글랜드(England)의 잉(Eng-)을 음역(音譯)한 것이고, 국(國)은 랜드(-land)를 의역한 것이다. 한자 문화권에서 이 이름은 연합왕국 전체를 통칭하는 경우가 많지만 문맥에 따라서 여전히 잉글랜드만을 뜻하기도 하여 중의적 의미가 있다. 일본에서는 잉글랜드를 뜻하는 포르투갈어 잉글레스/잉글레시(포르투갈어: inglês)의 음역인 이기리스(일본어: イギリス 또는 英吉利)로도 쓰인다.

역사[편집]

잉글랜드 왕국스코틀랜드 왕국은 따로 나뉜 주권자와 독립한 나라로서 그들 자신의 군주와 정치적인 구조를 가지며 9세기부터 존재해 왔다. 일단 웨일스 공국1284년러들랜 법(Statute of Rhuddlan)에 따라 잉글랜드 왕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603년부터 왕국연합(Union of the Crowns)이라는 동군연합 상태였던 잉글랜드(웨일스를 포함한)는 1707년 연합법(Acts of Union 1707)에서 스코틀랜드와 합병하였다. 이로써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형태로 정치적 연합이 이루어졌다.[3][4]

1800년 연합법(Act of Union 1800)은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에 아일랜드 왕국을 병합시켰다. 당시 아일랜드는 리머릭 조약(Treaty of Limerick)에 따라 1541년부터 1691년까지 점차 잉글랜드의 지배를 받아 가던 상태였다.[5] 그에 따라 1801년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이 성립하였다.[6] 1922년 아일랜드 공화국 독립은 2년 전에 아일랜드 섬의 분할에 따른 결과이며, 얼스터 지방(province)의 9개 (county) 가운데 6개 주가, 1927년에 현재 이름으로 바뀐 영국령으로 남겨졌다.[7][8]

영국은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정보 및 유력한 문학연극의 전통을 가진 계몽시대의 중요한 국가였다. 그 다음 세기 내내 영국은 문학, 예술과학에 획기적으로 공헌한 의회 민주주의와 같은 서양 사상의 발전에서 주역이 되었다.[9] 초기 대영 제국의 부는 다른 강국처럼 역시 1750년 이후에 있었던 노예무역의 산업화를 포함한 식민 착취에 의해 그 일부는 생성되었다. 18세기 영국의 노예 매매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했던 영국 함대가 아프리카 노예를 아메리카 대륙으로 보내는 악명 높은 삼각무역의 일부였다. 그러나 19세기 초에 영국은 노예무역법을 만들어, 영원히 노예 무역을 금지하는 첫 번째 국가가 되었다. 영국은 미국시카고, 클리블랜드, 디트로이트, 피츠버그, 필라델피아, 뉴욕, 볼티모어, 보스턴, 워싱턴 D.C., 애틀랜타 등을 차지했다가 18세기 말에 독립시켰다.

산업혁명나폴레옹 전쟁에서 나폴레옹을 격파한 뒤에, 19세기 영국은 세계의 주요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대영 제국이 전성기일 때 영국의 영토는 지구의 약 4분의 1(1/4)까지 커졌었고, 인구도 세계 인구의 약 4분의 1(1/4)이었다. 이는 역사에서 가장 큰 인구와 영토였다. 당시 대영 제국은 그 영토가 지구 널리 퍼져있어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일컬어졌다. 1910년대 후반에는 이라크까지 점령하였다.

19세기 내내 영국은 다당제의 출현과 투표권의 확장을 통해 부분적으로 의회 민주주의의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과학예술의 발달은 18세기에 이루어진 아이작 뉴턴 등의 업적을 계승하거나 부분적으로 더 오래된 문학의 전통에 영향을 받았다.

영국은 탁월한 강대국으로 남았고, 1921년에는 제1차 세계 대전 뒤에 국제 연맹 위임 통치령이 되었던 독일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식민지를 획득하여 최대로 넓어졌다.

전쟁에서 벗어난 뒤에 세계 최초로 거대한 국제 방송망인 BBC가 생겨났다. 영국의 노동 운동은 19세기 후반부터 확장해 왔고, 1924년제1차 노동당 내각이 집권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영국은, 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공화국, 인도를 포함한 영국 연방과 연합하여, 그리고 나중에는 연합국과 연합하여 나치 독일과 싸웠다. 전시 지도자 윈스턴 처칠과 그의 후임 클레먼트 애틀리(Clement Attlee)는 3대 강국의 한 축으로 전후 세계를 계획한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영국에 재정적인 타격을 주었다. 경제적으로 비싼 전시 대부금, 미국과 캐나다에서 1945년에 빌려준 대부금이 전후에 미국의 마셜 플랜 원조와 합쳐져서 영국은 복구되기 시작하였다.

유명한 영국 공군스핏파이어. 영국 공군은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이겼고,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서유럽에서의 독일의 우세를 종료시켰다.

1945년에 영국은 세계 최초이면서 가장 광범위한 의료 제도를 포함한 복지 국가의 출현을 알렸고, 정부 정책의 변화는 영국 연방 도처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민족 국가로서의 영국을 만들 수 있게 하였다. 전후 영국의 정치적 역할의 한계가 1956년 수에즈 사태에서 보여졌지만, 영어의 국제적 통용과 1960년대 영국 대중 문화의 해외 전파는 영문학이나 영국 문화가 지속적인 영향을 주고 있음을 의미했다. 1970년대의 국제 경제의 하향세와 산업 쟁의의 시대에 뒤이어 1980년대는 북해 유전의 수익과 경제발전이 있었다. 마거릿 대처 수상의 지도력은 전후 정치적, 경제적 합의의 전환을 이끌었다.[10] 이러한 경향이 1997년 부터 토니 블레어수상의 지도 아래 계속되었다.

영국은 1973년 이후로 유럽 경제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었고, 1992년에는 마스트리흐트 조약에 서명하여 12개국으로 이루어진 유럽 연합의 창립 멤버가 되었다. 오늘날 보수당 내각의 태도는 EU에서의 몇몇권리와 자격반환으로,[11] 노동당EU와의 통합으로[12] 그리고 자유민주당은 현재 정책의 지지쪽으로 기우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지리[편집]

영국의 지형도

북대서양북해 사이에 위치하며, 브리튼 제도아일랜드 섬의 북동부에 자리잡은 북아일랜드로 이뤄진 섬나라이다. 서쪽으로 대서양이, 동쪽으로는 북해가 자리 잡고 있으며 남쪽의 도버 해협을 사이에 두고 프랑스와 인접해 있다. 남북으로는 북위 49도에서 52도(세틀랜드 섬은 62도)에 이르며 동서로는 동경 2도에서 서경 8도사이에 놓여 있다. 국토그레이트 브리튼 섬아일랜드 섬의 1/6을 차지하는 북아일랜드 및 그 주위에 분포되어 있는 몇 개의 속도군(屬島群)과 해외령을 포함한다. 맨섬채널 제도는 왕실속령으로서 영국 정부의 국방 및 외교 관할을 받는다. 잉글랜드는 브리튼 섬의 남부 저지대로 면적은 섬 전체의 약 56.7%인 130,410㎢이다. 스코틀랜드는 북부 고지대로 78,789㎢이며, 서부 고지대인 웨일스는 20,758㎢, 북아일랜드는 14,160㎢이다.

지형[편집]

지형적으로는 동남부의 저지와 북서부의 고지로 크게 나뉜다. 이 둘의 경계는 동부 해안 중앙부의 티스 강 하구와 남부 해안의 라임만을 연결하는 선이다. 고지라고 해도 대부분은 고도 1,000m 이하의 낮은 산맥 및 구릉으로서 영국의 최고봉 벤네비스 산도 1,343m에 지나지 않는다. 고지는 지형과 지질이 다른 다음과 같은 지괴(地塊)로 나뉜다. 스코틀랜드 고지와 북아일랜드는 주로 캄브리아계의 가장 오랜 변성암으로 되어 있으며, 스코틀랜드 남부 산지, 캄브리아 산지(호수 지방) 및 웨일스는 주로 고생대 실루리아계의 변성암으로 되어 있다. 페나인 산맥과 스코틀랜드 중앙 지구대는 고생대의 석탄계중생대 삼첩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기에 석탄층이 있어 영국의 탄전(炭田)을 형성한다. 웨일스 남부와 데번 코른월 지괴는 고생대 데본계로 되어 있다.한편 저지는 잉글랜드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해발 300m 이하의 낮은 구릉과 평야로 되어 있다. 구릉은 백악계와 제3계의 느리게 주름잡힌 새 지층으로 이뤄져 각지에 케스타 지형이 보인다. 영국은 제4기 홍적세에 유럽 대륙에서 뻗친 대륙 빙하에 덮여 있었으므로 산지에는 빙식(氷蝕) 지형이 많으며, 황토에 뒤덮인 황무지와 습지가 많다. 더구나 북쪽의 스코틀랜드 제도에는 피오르드 해안이 발달해 있다.템스 강(전체길이 350㎞)을 비롯하여 이 나라의 하천은 모두 짧으며 또 산지도 낮으므로 하천의 충적(沖積)작용은 크지 않다. 그래서 템스 강 하구부, 브리스틀 해협, 포스만 등처럼 묻혀 버린 삼각강이 많으며, 해안선은 굴곡이 많고 하천의 경사가 완만하므로 향항과 가항하천(可航河川)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기후[편집]

중위도 대륙 서해안의 해양성 기후로서 멕시코 만류(灣流)와 편서풍 때문에 위도에 비해서는 따뜻하다(1월의 기온 6∼3 °C). 그러나 겨울에는 간혹 섭씨 영하 10도까지 기온이 떨어지기도 하며 여름에는 섭씨 35도까지 오르기도 한다. 비는 서해안에는 많으나 동해안에는 적다. 또 습기가 많기 때문에 안개가 많으며 런던에서는 스모그가 1년에 90일간 생겨서 ‘안개의 도시’라고도 불린다. 연평균 강수량은 서부와 북부의 산간 지방에서는 1600㎜ 이상이지만 중부와 동부 지역에서는 800㎜ 미만이다. 비는 연중 고루 내리는 편이지만 평균적으로 3월부터 6월까지가 비가 가장 적고 9월부터 1월까지가 가장 많은 시기이다.

행정 구역[편집]

영국의 행정 구역은 꽤 복잡하다. 우선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의 구성 국가들로 나뉜다. 각 구성 국가마다 자체적인 행정 구역 체제가 나뉜다.

그 밖에 해외 영토(overseas territory)들과 왕실령(crown dependency)들이 존재하나, 이 지역들은 형식적으로는 영국 영토로 간주되지 않는다.

정치[편집]

근대 의회민주주의의 발상지이며 오래간 모범적인 양당 정치를 구현해온 나라로서 오늘날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정치체제인 의원내각제를 발전시킨 나라이다. 정치체제는 입헌군주제로, ‘군주는 군림하여도 통치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의해, 군주의 권한 행사는 내각의 조언에 의하여 행해지고 있다. 성문(成文)화된 헌법은 없으며, 정치의 기본은 전통·관례·약간의 기본법(대헌장, 인권선언, 의회법 등)에 의하여 운영되고 있다. 지방자치는 19세기 후반에 확립되었으나 북아일랜드는 독자적인 의회와 행정부를 가지고 있으며 스코틀랜드 성(省)의 관할 밑에 놓여 있다. 의회는 상원(The House of Lords)과 하원(The House of Commons)의 양원제로 되어 있고 선거에 의해 선출되며, 상원은 약 1,190명의 의원으로, 하원은 651명의 의원으로 각각 구성되어 있다. 상원은 최근까지 '귀족들을 위한 의회'였으나 1997년 토니 블레어 총리 집권 이후 이탈리아와 같이 직능 대표 단체로 만들기 위해 법적, 제도적 장치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특징으로선 3대 정당제를 들 수 있다. 과거에는 보수당자유당이 양당 체제를 이루었으나, 1900년에 노동당이 등장하였고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자유당의 세력이 줄어들면서 대신 노동당이 크게 성장하여 3당체제가 성립되었다. 현대에는 극우 정당인 영국 국민당, 우익 정당인 영국 독립당 등이 등장했으나 기본적인 3당체제의 틀은 아직 유지 되고 있다. 2010년2015년 현재 국가원수는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이고, 총리는 데이비드 캐머런이다.

영국은 군주제와 민주주의가 한번에 같이 존재한다.

주요 정당[편집]

2015년 5월의 영국 국회의원(하원) 총선거에서 10석 이상 확보한 정당을 순서대로 정렬했다.

기타 정당으로, 2015년 5월 스코틀랜드 지방(의회)선거에서 여당(56석/59석)이 된 스코틀랜드 국민당(8.6%, 56석. 중도좌파) 등이 있다.

영국은 의원 내각제, 즉 의회가 곧 내각이 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선거제도는 소선거구제만 채택하여 각 선거구마다 1명만을 뽑는 'First-past-the-post'방식으로 모든 의원을 선출한다. 법상 최장 5년마다 열리는 선거에서 의석수의 과반 이상을 확보한 당이 집권당이 되며, 이들이 내각(Cabinet)을 구성한다. 야당은 예비 내각(Shadow Cabinet)을 구성하여 집권시 어떤 정책을 실시할 것인가를 국민이 미리 알 수 있어 정치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보장하고 있다. 데이비드 캐머런은 이 총선 승리 이후 총리로 재임명되었다.

군주제[편집]

군주제의 시작[편집]

영국의 군주제(君主制)는 적어도 1,100년 전에 시작되었다. 현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829년 잉글랜드를 통일한 에그버트 왕의 직계 후손이다. 군주제의 역할은 수세기를 내려오면서 변화되었다. 초기 군주들은 절대 권력을 행사했지만 이는 의회와 사법부의 발달로 축소되었다. 왕과 의회의 권력 투쟁으로 1689년 제한된 입헌 군주제가 확립되었다. 현대 민주주의 정치 제도의 확립과 함께 19세기 말에는 정치면에서 군주의 능동적 역할이 최소화되었다. 오늘날의 군주로서 현재 왕은 국가의 중립적 원수의 역할을 한다.

법적 위치[편집]

법적으로 왕은 행정부와 사법부의 수반, 전군 최고 사령관, 영국 성공회(말 그대로 Church of England 곧 영국 성공회임. 그 외 지역 성공회 교회들은 자치적이고 독립적인 교회임)의 수장(명예상의 수장으로 의회에서 제출한 성직자 후보명단에 근거하여 성직자 임명권한이 있음.)이다. 그러나 정치적 결정은 각료들이 내린다. 영국은 왕의 이름하에 왕국 정부가 통치하는 국가이다. 왕은 상징적 중요성을 지닌 정부의 몇가지 역할을 아직 수행하고 있다. 왕은 의회를 소집, 해산하며 법안을 재가한다. 또 총리와 각료들을 포함한 주요 관리들을 공식적으로 임명한다.

섭정규정[편집]

왕의 임무 수행 불가능시를 대비하여 섭정을 임명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섭정은 왕의 영국의 왕세자 격인 프린스 오브 웨일스(prince of wales)가 되며 그 다음 순위는 왕위 계승 서열에 따르지만 18세 이상이어야 한다. 왕이 부분적으로 임무 수행이 불가능해지거나 해외 여행으로 부재 중인 경우에는 왕의 어떤 임무를 임시 섭정들(국왕의 배우자-현재는 여왕의 남편인 에딘버러 공-, 그 다음 왕위 계승 서열이 되는 4명의 성인(成人)들, 국왕의 모후)에게 위임할 수 있다. 그러나 임시 섭정들은 의회를 해산시키거나 작위를 수여할 수 없다.

공식과 비공식의 결합[편집]

군주제의 한가지 특징은 공식적인 면과 비공식적인 면이 결합된다는 점이다. 전통적 의식은 아직도 중요한 일부이다. 왕실의 결혼식과 장례식은 국가 행사이다. 6월에 공식적으로 열리는 여왕 탄신 기념식 때 여왕 근위병의 열병식인 군기 분열식이 행해진다. 외국의 국왕이나 국가 원수가 영국을 방문하면 공식 연회가 베풀어지며 작위훈장 수여식은 버킹엄 궁전과 스코틀랜드 홀리루드 궁전에서 열린다. 군주제는 TV를 통해 또는 국민들과의 직접 접촉을 통해 더 친근해졌으며 왕족들이 일반인들을 만나기 위해 거리를 걷는 것도 왕실의 중요한 특징이다.

방문[편집]

매년 왕과 왕가의 구성원들은 영국 곳곳을 방문한다. 그들은 또한 많은 자선 단체들의 사업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예를 들면 프린스 오브 웨일스는 중소기업과 도시 빈민가의 자영업을 장려하기 위해 설립된 프린시스 트러스트(Prince's Trust)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왕은 에딘버러 공과 함께 외국 정부를 공식 방문하며 영연방 국가들을 순시하기도 한다. 왕가의 다른 구성원들도 외국을 방문하며 이때 왕을 대신하여 방문하는 경우도 있다.

영연방[편집]

54개 영연방 회원국 모두는 영국 여왕을 영연방의 수반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그 회원국들 중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뉴질랜드, 자메이카, 바하마, 바베이도스 등 다수 국가들의 여왕이기도 하다. 여왕은 2년마다 열리는 영연방 정부 수반 회의에 참석하며 각국의 국가 수반으로 총리와 사적인 대화를 갖는다.

영연방군[편집]

224,000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차 420대, 전술기 1,663대, 군함 99척 등을 보유하여 세계 5위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 핵 보유 국가이기도 하다. 영국은 세계 3위의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다. 또한 항공모함 1척, 이지스함 3척 등을 보유하여 강력한 해군을 보유하고 있다. 잠수함들도 있다. 그리고 유럽에서 네덜란드와 함께 유일하게 토마호크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영국은 육군 전력이 많이 약한 상태이다. 또한 해군 전력도 추가로 항공모함을 건조 중이다. 이 항공모함은 반드시 취역시키겠다는 의지이다.

국방[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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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 의하여 1960년부터 모병제를 실시하였다. 2차 대전 후부터 1960년까지 평시 징병제가 시행된 적이 있었는데, 영국인들은 이를 'National Service'로 부르고 있다. 영국은 예로부터 해군이 강한 국가로 알려져 있다. 공군인 Royal Air Force와 해군인 Royal Navy가 잘 알려져 있다.

근대국가의 출현과 동시에 징병제를 도입한 유럽 대륙과 다르게 영국은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나서야 징병제를 도입하였다. 트라팔가 해전 당시 영국 해군은 모집군이었지만 프랑스군은 징집병으로 구성되었었다. 이와 같은 경험 때문에 영국의 부속령 국가 및 옛 식민지 상당수는 징병제를 실시한 적이 없거나 그 경험이 상대적으로 일천한 편이다. 최근 '범죄자를 이라크로 보내자(send criminals to Iraq)' 등 일부에서 징병제 부활을 논의하고는 있지만(가끔은 유희적으로) 범죄자 등에 대한 훈육차원에서 논의될 뿐이며, 이 징병제 관련 논의가 진지하게 정치적으로 문제제기된 바는 없다.

세계 4위의 군사력이며 전략 원자력 잠수함들을 보유하고 있다. 핵 전력을 강화시키고 있다. 스키점프대 형태의 HMS 일러스트리어스 한척을 운용중이다. 함재기로 수직이착륙 기능의 시 해리어를 운용했으나 지금은 모두 퇴역시키고 각종 헬기위주의 항공단이 구성됐다. 또 차기 항공모함 2척을 건조 중이다.

무인항공기 항공모함 UXV가 2020년에 실전배치된다.

영국군은 국방개혁, SDSR (전략적 국방안보 검토서)에 의해, 조직개편을 하고 있다. 영국 신속대응군의 핵심전력인 영국 해병대는 현 영국 국방개혁을 통해 조직편성과 역할이 강화되고 있다. 소폭으로 병력이 증가했으며, 장비와 편성이 개편되고 있다.

  • 참고 : 영국의 국방개혁, SDSR (전략적 국방안보 검토서, Strategic Defence and Security Review)

냉전체계 이후 안보환경 변화와 국가 재정 위기에 직면한 영국은 국방비 삭감을 결정한다. 이를 위해 현 국방력과 미래 안보환경 등을 전면 재검토하여 삭감, 퇴역 장비, 도입 장비 등을 새로 결정하게 된다. 이에 총리실 주재하, 5개월간의 검토기간으로 2010월 10월, SDSR(전략적 국방 안보 검토서 : Strategic Defence Security Review)이 발표된다. SDSR은 신안보 위협을 등급별로 분류하고, 사이버전, 테러 등과 같은 우선순위 위협에 대한 자원을 더 배분하는 대신 대규모 재래전에 소요되는 장비(기갑, 전투기, 함정, 대형장비 등) 등을 퇴역시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SDSR을 바탕으로하는 현 영국군 국방개혁은 영국군 장군들의 반발과 국민 찬반 논란 속에 진행되고 있다.

현재 영국은 부분 징병제 국가이다. 버뮤다 지역 시민을 징집하며, 영국 왕실과 이에 속한 귀족들인 왕실의 친.외가 친인척들의 남.여들은 영국군 장교로 복무하도록 영국 병역법에 규정되어 있다.

외교[편집]

영국은 UN 안보리의 상임 이사국이며, G8나토, EU의 회원국이다.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다른 유럽 나라들과 우호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영국은 1973년 유럽 경제 공동체 회원국이 되었다. 영국과 미국은 특별한 관계(Special Relationship)에 있다. 미국유럽 외 영국은 영국 연방, 아일랜드 그 밖에 영어 사용 국가들과 친밀한 관계에 있다. 영국의 세계적인 존재와 영향력은 무역관계와 군사력 때문에 더 증폭되는데, 전 세계에 80여개의 군사 기지와 기타 파견군을 유지하고 있다.

중세 이후로, 프랑스와 영국은 유럽대륙의 주도권 및 식민지 쟁탈을 놓고 서로 적대국인 경우가 많았으나 때로는 동맹을 맺기도 하였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프랑스가 앙탕트 코르디알(프랑스어: entente cordiale) 정책을 펴면서, 러일 전쟁 이후 프랑스 및 러시아와 동맹(삼국 협상)을 맺게 된다.

영미 관계[편집]

영국과 미국의 관계는 대략 400년 정도 소급된다. 1607년 영국은 "제임스타운"이라고 명명된 북미 대륙 최초의 상주 식민지를 세우기 시작하였고, 오늘날 영국과 미국은 가까운 군사적 동맹체이다. 양국은 문화적으로 유사할 뿐만 아니라 군사적 연구와 정보 기구를 공유한다. 영국은 미국으로부터 토마호크 미사일이나 트라이던트 미사일과 같은 무기를 구입했고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해리어(Harrier)와 같은 장비를 구매했다. 또한 영국에 대규모 군대를 주둔하고 있다. 최근 영국의 총리와 미국의 대통령은 매우 친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가령 토니 블레어빌 클린턴 및 이후 조지 W. 부시 대통령 간의 관계, 1980년대 마거릿 대처로널드 레이건 등의 관계가 그러하다. 현재 영국의 정책은 미국과의 관계는 영국의 "가장 중요한 2자간 관계"임을 표명한다.[13]

한영 관계[편집]

영국은 1883년 처음으로 한국과 통상조약을 맺었다. 그 후, 한국 전쟁에 임하여 참전 16개국 중의 하나로서 군사·경제지원 등을 통해서 한국에 대한 공헌이 지대했을 뿐 아니라, 유엔을 비롯한 기타 많은 국제기구에서의 활동을 통해서 한국의 지위향상·보전 및 우호증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계속한 나라이다. 한국에 있어서 영국은 프랑스와 더불어 한국의 대서구제국 관계사에서 중추적인 존재이며, 적어도 전통적으로 대서구 외교전개의 2대 거점국이자 우방국이다. 1883년 우호통상조약이 조인되고 영국과 조선에 각각 영사 또는 공사를 파견하였다가, 일본에 의하여 외교 관계가 단절되었다가 1949년에 양국은 재수교하였다. 한편 영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도 외교관계가 있다. 1999년 4월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한영 수교 116년 만에 국가 원수로써 최초로 방한하였으며, 2004년 12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영국을 최초로 국빈 방문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영국에서 선수로 뛰는 축구 선수들이 많은데,박지성을 시작으로 이청용, 기성용, 윤석영, 김보경 등의 축구 선수들이 영국의 프로 축구 팀에서 뛰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아시아나항공대한항공이 매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영국 런던으로 가는 논스톱 직항편을 운항하고 있으며, 2012년부터 영국항공인천국제공항런던 히드로 공항을 연결하는 직항편을 운항하고 있다. 2011년부터는 영국의 일부 학교에서는 한국어 수업이 개설되었다.

영중 관계[편집]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중화민국연합국측에서 같이 싸웠으며, 국교가 수립되었으나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자 1950년 중화민국과 단교,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였다.

대 타이 관계[편집]

타이는 1826년 영국과 맺은 친선·통상 조약(Treaty of Amity and Commerce)으로 최초로 동남아시아 지역 서양 열강의 등장을 인정했다. 라마 5세 출라롱콘대왕(재위: 1868년~1910년)은 쇄국제도를 풀고 개국하여 1855년 영국과 통상우호조약을 맺었다. 타이는 영국에게는 말레이 인종이 거주하는 말레이 반도의 크다(Kedah), 프를리스(Perlis), 트렝가누(Terengganu), 클란탄(Kelantan)[14] 을 할양하여야 했다. 1909년의 영국-시암 조약은 시암과 영국령 말라야 사이의 국경을 정했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국경이 되었다. 이때 말라야의 토후국 파타니와 크다의 일부였던 파타니(Pattani) 주와 얄라(Yala) 주, 나라티왓(Narathiwat) 주, 사뚠(Satun) 주가 타이령이 되었다.

대 프랑스 관계[편집]

프랑스와 스코틀랜드는 오울드 얼라이언스(Auld Alliance)를 통해 중세 말에 군사적 동맹을 맺고 있었다. 중세 이후로, 프랑스와 잉글랜드는 유럽대륙의 주도권 및 식민지 쟁탈을 놓고 서로 적대국인 경우가 많았으나 때로는 동맹을 맺기도 하였다. 17세기말, 영국과 프랑스는 모두 5대 강국에 속했고 이들 5대 강국이 유지하고 있었던 세력균형원칙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크게 위협받게 되었다. 나폴레옹이 유럽 전체를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유럽에 팽배하게 되었다.[15] 그러다가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앙탕트 코르디알(entente cordiale) 정책을 펴면서, 러일 전쟁 이후 프랑스는 영국 및 러시아와 동맹(삼국 협상)을 맺게 된다. 1940년 프랑스 공방전에서 영국이 프랑스를 버렸다는 인식도 있으나, 양국은 현재까지 대체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제1차,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국제관계에서는 보조를 함께 하기 시작했다.

유럽 연합의 미래에 대한 것은 양국간의 해묵은 논쟁 거리이다. 샤를 드 골 대통령 치세의 프랑스는 영국이 유럽 경제 공동체에 가입하는 것을 여러 번 반대하였다. 드 골은 영국이 유럽 이외의 지역 특히 미국과 지나친 동맹 관계라는 점을 내세웠다. 영국이 유럽 경제 공동체에 가입한 후, 영국의 마거릿 대처 수상은 유럽 경제 공동체의 분담금을 줄이는 데 노력하고 이를 얻어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프랑스의 경제 정책에 대하여 회의적인 시각을 나타낸 바 있다. 그러나,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과 동맹 관계를 구축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모두 식스 네이션스에 참가하고 있다.

대 우크라이나 관계[편집]

크림 반도에서 일어난 크림 전쟁때에는 오스만 제국의 편을 들어주었지만, 현재에는 조금씩 양호적으로 풀리고 있으며, 수교는 1992년경에 실시하였다.

민족[편집]

흔히 이베리아 인으로 지칭되는 대서양 연안 구석기 인들이 최초로 영국에 정착한 제민족인 것으로 추측된다. 그 이후 대륙으로부터 선진 기술을 지닌 켈트족이 정착하며 선주민과의 혼혈이 이뤄졌고 브리튼 섬의 켈트화가 진행되었다. 로마제국의 브리튼 정복 이후 소수의 로마인들이 건너왔다.

로마의 행정과 군사 체계가 붕괴되기 시작한 5~6세기 경부터 라인 강 하류, 플랑드르, 유틀란드 반도에서 게르만 민족의 일파(一派)인 앵글족, 색슨족, 유트족 등이 브리튼 섬을 침략했다. 초기 이들 민족은 선주민과의 혼혈을 엄격히 금지했던 것 같으나 결과적으로 혼혈이 진행되어 오늘날 영국인이 형성되었다. 유트족이 선주민을 거의 대체했다는 주장이 오랫 동안 믿어져 왔지만 근래 분자생물학적, 유전학적 연구에 따르면, 유트 이주민의 숫자가 선주민을 대체할 정도로 많지 않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근래에는 구 영국 식민지였던 남아시아 (인도, 파키스탄)와 카리브 해, 아프리카 (특히 가나, 나이지리아 등 서부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이 영국 사회의 새로운 구성원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등 동유럽에서 온 주민도 소수로 존재한다.

언어[편집]

영어가 쓰이고 있다. 그 외에 웨일스어, 스코틀랜드어, 스코틀랜드 게일어가 소수에 의해 쓰이고 있다.

종교[편집]

종교를 가진 국민의 대다수가 기독교도이고, 국교는 잉글랜드 성공회이다.종교별 분포도는 다음과 같다.

관련문서[편집]

방송과 언론[편집]

텔레비전 방송[편집]

1936년 11월 2일 BBC 텔레비전 서비스 (現 BBC One)이 개국하고, 이후 1955년에 ITV가 개국함으로써 경쟁 체제로 돌입했고, 이후 BBC Two에서 1967년 유럽최초의 컬러 방송 실시를 거쳐서 현재 영국 방송은 공영 방송인 BBCITV, 채널 4, 채널 5 등의 지상파 방송국, BskyB위성 방송으로 구성되어 있다. BBC는 국민으로부터 시청료를 받는 대신 광고를 보내지 않고 있다. 그 외 방송국에서는 광고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문화[편집]

스포츠[편집]

영국인들에게 인기있는 스포츠는 축구, 럭비, 크리켓, 골프, 테니스 등이다.

축구[편집]

영국은 "축구 종가"라는 별칭 그대로 축구의 발상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영국은 월드컵 예선이나 본선, 국가대표 경기, 청소년대표 경기 때에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로 나눠 출전한다.

현재 영국은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를 포함해 2부 리그인 잉글랜드 챔피언쉽 리그 등 7부의 실업 축구 승강제를 택하고 있으며 구단을 제외하지 않은 아마추어 축구회까지 도합 24부의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농구[편집]

영국에서 농구는 인기있는 스포츠는 아니지만 12개의 프로 팀이 영국 프로 농구인 BBL에 참가하고 있다.

주요 행사[편집]

법정 휴일
일자 이름
1월 1일 설날
1월 2일 설날 (스코틀랜드에 한함)
3월 17일 St Patrick's Day (북아일랜드에 한함)
부활절 직전 금요일 성 금요일
부활절 다음날(월요일) 부활절 연휴 (스코틀랜드 제외)
5월 첫째 월요일 May Day
5월 마지막 주 월요일 Spring Bank Holiday
7월 12일 Battle of the Boyne - Orangemen's Day (북아일랜드에 한함)
8월 첫째 월요일 Summer Bank Holiday (스코틀랜드에 한함)
8월 마지막 주 월요일 Summer Bank Holiday (스코틀랜드 제외)
11월 30일 St Andrew's Day (스코틀랜드에 한함)
12월 25일 크리스마스
12월 26일 박싱 데이 (크리스마스 연휴)

교육[편집]

중세시대부터 전통을 가진 옥스퍼드 대학교케임브리지 대학교 등이 대표적이다.[16] 의무교육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11년이며(1972년 이후)[16] 한국의 고등학교 과정에 해당하는 12, 13학년의 경우는 의무는 아니지만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매주 국가로부터 지원금을 받게 된다.

대학 교육은 스코틀랜드는 전액 무상이나 잉글랜드를 포함한 나머지 국가들은 연간 9000파운드에 달한다. 다만 무이자 대출을 받을 수 있으며 연봉이 21000파운드 이하일 경우 갚게 될 의무가 없고, 이상일 경우 소득의 9%를 매년 납부하게 된다. 대학과정은 대부분 3년 과정이며 대학원 석사 과정은 2종류로 학습 과정과 연구 과정으로 각 1년씩이다. 박사과정은 대체로 3년 과정이나 실제 박사취득은 4년-5년이 걸린다. 일부 대학은 경영학 석사 과정과 같은 특성화 과정을 2년제로 운영하기도 한다. 대학의 학기는 우리나라의 연간 2학기제와 달리 연간 3학기제로 운영된다.

옥스퍼드 대학교케임브리지 대학교와 같은 대학교는 대체적으로 대학 즉 단과대학의 연합체이다. 대학교를 대표하는 총장이 있으나 실제 대학교의 운영은 단과대학이 자체적으로 결정한다. 단과대학들은 각자 독자적인 학생 모집과 학과목을 운영하며, 같은 학과가 여러 단과대학에 있기도 하다. 단과대학의 연합으로 운영해야 하는 과정에 대해서만 공동과정을 진행한다. 일례로 옥스퍼드 대학교는 "경영대학원"이 있으나 이는 공동 과정으로 대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은 단과대학에서 일종의 파견으로 와서 서로 다른 단과대학 소속이다.

경제[편집]

이 나라는 다른 여러 나라에 앞서서 산업혁명을 성취하여 오랫동안 세계 경제에 군림해 왔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유럽 대륙과 북아메리카의 공업이 급속도로 발달하여 1차대전 이후 세계 경제에 있어서의 지위는 차차 저하했다. 해외 투자로부터의 수입으로 경제의 안정을 꾀했으나 2차대전에 의해 큰 타격을 받고 재편성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기간산업의 국유화를 비롯한 계획경제의 도입으로 국제수지를 개선하고 사회보장제도를 확충하여 복지 국가의 실현을 꾀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하는 경제 체제이다. 그러나 높은 고용수준을 유지하면서도 대외적으로는 국제 수지의 악화, 대내적으로는 코스트 인플레이션에 의한 괴로움을 당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영국은 1961년부터 유럽경제공동체(EEC) 가입을 신청했으나 프랑스의 거부로 실현을 보지 못하다가 1971년 6월 마침내 수출입정책 및 파운드화(貨) 문제에 매듭을 짓고 영·불 양국간에 최종 합의에 도달함으로써 1973년 1월부터 정식 가입(경과기간 5년을 계산하면 실질적인 가입은 1978년부터가 됨)하게 되었다.

농·수산업[편집]

19세기 중반까지는 농산물의 자급자족을 했으나 신대륙에서 수입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축산과 원예 작물에 중점을 두게 되어 식량의 절반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수확량(收穫量)으로서는 감자·사탕무·귀리 등이 많으나 금액으로는 축산물이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 경지 비율이 높은 지방은 동부의 앵글리아·켄트·링컨셔 등으로서, 잉글랜드 중앙부와 북부, 웨일스, 스코틀랜드에서는 목초지의 비율이 크다.수산업은 북해와 아이리시해(海)를 중심으로 한 근해 어업과 아일랜드, 그린란드, 노르웨이 북해안 등지의 원양어업으로 나뉜다. 1995년의 어획고는 242만 2,000 t에 달하고 있으며, 스코틀랜드에서는 주요 산업의 하나로 되어 어업 종사자는 2만 2,000명이며, 이 밖에 계절적으로 약 6,000명이 종사하고 있다.

공업[편집]

2차대전 후 기계공업과 화학공업이 발전하여 전통을 지닌 목면공업이 저하했다. 1955년에 철광생산은 449만 t, 선철 1,213만 t, 조강 2,150만 t 등이다. 대표적인 공업지역인 런던의 남동부지역은 기계(機械)·금속·보석·고무공업이 발달되어 있다. 랭커셔 지역은 면업 대신에 기계공업이 발달하였고, 요크셔 지역은 현재도 양모공업의 중심지이다. 남웨일스, 잉글랜드 북동, 스코틀랜드 중앙 지역은 철강·금속·조선 등이 발달했다. 석탄업이나 전력사업, 가스사업 등 에너지관리는 국유화되어 있다. 석유는 1990년 정제량이 6억7,900만 배럴이었다. 1967년 발견된 북해유전은 1975년부터 본격적인 생산을 개시하였는데, 매장량은 약 30억t 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천연가스의 매장량도 무시할 수 없어 자원이 부족한 영국의 에너지정책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무역[편집]

국내 자원은 결핍되었으나 생활수준이 높으므로 무역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종래 영연방 국가와의 교역이 많았으나, 1973년 EC 가입 후 유럽 국가와의 무역 비중이 높아졌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영국은 미국 다음 가는 수출국이었으나 전쟁 후 서독 등의 부상으로 영국이 세계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줄어들어 EU 국가 내에서도 독일·프랑스·네덜란드·이탈리아에 이어 5위에 머무르게 되었다. 2009년에는 수출액이 세계 9위로까지 추락하였고, 계속해서 영국의 수출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지위는 저하되고 있다. 주요 수출품목은 기계·자동차·항공기이다. 수입액은 수출액을 훨씬 초과하여 무역적자가 계속되고 있으며, 금액에서 식료와 원료가 70%를 차지하고 밀·설탕·옥수수·육류·석유·알루미늄·목재·양모·면화 등이 중요한 수입품목이다.

파운드화[편집]

파운드화는 미국 달러유로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외환 보유액을 자랑한다. 1파운드는 100펜스이다.

세금[편집]

영국의 고소득자 소득세율은 약 50%다. 한국 돈으로 연간 2억원 이상인 소득자부터 적용된다.

교통[편집]

해운국으로서의 지위는 대전 전에 비하면 크게 후퇴했으나 보유 선박은 3,292만 t(1976)으로서 세계 제3위를 차지하며 세계 해운 시장의 일대 중심지로 되어 있다. 런던을 비롯하여 사우댐프턴·리버풀·맨체스터·글래스고 등이 대표적인 항구이며, 템스강 하구, 클라이드 강구, 맨체스터 운하에는 10만 t급 탱커를 넣는 터미널이 완성되어 있다. 철도의 총연장은 약 2만㎞로서 세계 제2의 밀도(密度)이다. 1947년 이후 국유화했으나, 철도 발상지인 만큼 낡은 시설이 많은 데다가 자동차의 보급으로 큰 결손이 누적되고 있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합리화 계획을 실시하였으나 해결되지 않거나 오히려 더욱 큰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이다. 도로 연장은 약 36만 6,000㎞로서 거의 포장이 되어 있다. 간선도로는 운수성(運輸省) 직할로 운영되며, 그 밖의 것은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고 있다. 항공은 원월드의 주축 항공사 영국항공과, 저비용 항공사의 대표주자인 이지젯 등이 있으며, 이외에도 버진 아틀란틱 항공 등 유수의 항공사가 존재한다. 런던 히드로 공항은 세계 3위이자 유럽에서 가장 붐비는 공항이기도 하다. 우편물의 항공수송 서비스도 발달되어 있다. 한편 다년간 국내외의 주목을 받아왔던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유러터널(영국해협터널)은 1994년 5월 개통되었다.

국가[편집]

영국의 국가는 《하느님 여왕을 지켜주소서》이다. 이외에 비 공식 국가로 《룰 브리타니아》 등이 있다.

식민지 목록[편집]

참고[편집]

  1. EU Relations with Bermuda, European Commission
  2. http://www.guardian.co.uk/uk/2012/jan/26/graduate-starting-salaries-rise
  3. “The Treaty (or Act) of Union, 1707”. 2006년 5월 15일에 확인함. 
  4. 합병령(합동법)과 달리 연방법(Act of Union, 1840년)은 캐나다의 어퍼 캐나다(서부)와 로어 캐나다(동부)를 통합하는 법률이다.
  5. 리머릭 조약은 1691년에 체결된 것이 아니라, 1691년에 끝났다.
  6. “The Act of Union”. 2006년 5월 15일에 확인함. 
  7. “The Anglo-Irish Treaty, 1921년 12월 6일”. 2006년 5월 15일에 확인함. 
  8. 이 시기에 대브리튼 또는 브리튼은 영국을 구성하는 국가(구성 국가) 4개 가운데 3개, 즉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및 웨일스를 공동으로 언급한다. 그러나 이 시기에 연합왕국 또는 영국은 네 번째 국가인 북아일랜드를 포함한다.
  9. Ferguson, Niall (2003). 《Empire: The Rise and Demise of the British World Order》. Basic Books. ISBN 0-465-02328-2.  필요 이상의 변수가 사용됨: |저자=|성= (도움말)
  10. 지지자는 그녀가 경제 부흥을 이루었다고 하고, 비판자는 그녀 때문에 사회불균형이 더 커졌다고 말한다.
  11. “Modest progress but always on back foot”. 2005년 12월 21일. 2006년 5월 16일에 확인함. 
  12. “European Constitution: bad for Britain, bad for Europe”. 2006년 5월 23일에 확인함. 
  13. “UK - Ties that bind: Bush, Brown and a different relationship”. Financial times. 2007년 7월 27일. 2009년 7월 11일에 확인함. 
  14. 이 곳은 나중에 말레이시아 북부의 주가 된다.
  15. 김용구. 《세계외교사》 1995(上•下 合本)판. 서울대학교 출판부. 2쪽. ISBN 89-7096-413-4. 17세기말경부터는 세력균형원칙을 움직이는 5대강국이 이미 결정되었는데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그리고 러시아가 그들이었다. 그런데 유럽정치질서의 명분으로서의 세력균형원칙이 나폴레옹전쟁으로 크게 위협받게 되었다. 나폴레옹이 유럽 전체를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유럽에 팽배하게 되었다. 
  16. “영국의 교육제도”. 《두산백과》. 2015년 5월 9일에 확인함. 

참고 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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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고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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