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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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공화국
인도네시아어: Republik Indonesia
Flag of Indonesia.svg National emblem of Indonesia Garuda Pancasila.svg
국기 국장
표어 Bhinneka Tunggal Ika
(다양성 속의 통일)
국가 위대한 인도네시아
Indonesia on the globe (Southeast Asia centered).svg
수도 자카르타 남위 6° 10′ 30″ 동경 106° 49′ 42″ / 남위 6.175° 동경 106.828333° / -6.175; 106.828333
정치
공용어 인도네시아어
정부 형태 단일 국가 대통령제 공화정
대통령
부통령
조코 위도도
유수프 칼라
역사
독립  
 • 독립 네덜란드로부터 독립
1949년 12월 27일
지리
면적 1,904,569km² (16 위)
내수면 비율 4.85%
시간대 (UTC+7~+9)
DST 없음
인구
2015년 어림 255,461,700명 (4위)
인구 밀도 117명/km² (84위)
경제
GDP(PPP) 2012년 어림값
 • 전체 $1조 2,373억 (15위)
 • 일인당 $4,977 (125위)
HDI 0.629 (121위, 2012년 조사)
통화 루피아 (IDR)
기타
ISO 3166-1 360, ID, IDN
도메인 .id
국제 전화 +62

인도네시아의 일부 지역에는 술탄이 존재한다.

인도네시아 지도

인도네시아 공화국(인도네시아어: Republik Indonesia 레푸블릭 인도네시아[*]), 약칭 인도네시아(인도네시아어: Indonesia)는 동남아시아오세아니아에 걸쳐 있는 섬나라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18,108개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 및 중국에서는 한자 가차 인도니서아(印度尼西亞)의 줄임말인 인니(印尼)로도 불린다.

인도네시아는 말레이 제도에 속한다. 인구는 약 2억 5천만으로, 이슬람교 국가 중에서 무슬림이 전체 인구의 약 88%를 차지하는 국가이며 중화인민공화국, 인도,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다.

역사[편집]

고대 왕조(국가가 성립된 것은 358년, 한국은 삼국 시대였을 때였다.)로 마자파힛스리비자야가 있었던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로부터 1602년부터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지배 (국기는 네덜란드의 국기를, 국가는 네덜란드의 국가를, 공용어는 네덜란드어, 자와어, 인도네시아어를 사용)받았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 다시 네덜란드의 점령 시도가 있었으나, 유엔의 중재로 1949년 12월 27일 네덜란드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였다. 인도네시아는 1945년을 독립한 해로 여기고 독립 기념일을 8월 17일 (국정 공휴일)로 지정했지만 네덜란드에서는 1949년을 독립한 해로 여긴다. 그리고 수카르노가 초대 대통령을 지냈다. 1962년에는 자국의 수도 자카르타에서 아시안 게임이 개최되었다.

독립 전후 인도네시아는 공산주의자들의 반란이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이민자였던 중국인들은 종종 공산주의자로 간주되곤 했다. 1965년 수하르토 장군은 공산주의자들의 쿠데타를 무력으로 진압했는데, 이 과정에서 공산주의자와 무관한 중국인들이 희생되었다. 이후 수하르토는 수카르노로부터 권력을 이양받았으며, 새로운 대통령이 되었다. 수하르토는 재직 중 중국인들을 인도네시아 원주민에 동화시킨다는 정책을 펼쳐, 중국어 사용을 금지하고 중국식 이름을 인도네시아식으로 개명하게 하는 등 중국인들에 대한 탄압이 잇따랐다. 1975년 포르투갈에서 독립한 동티모르를 강제로 점령, 합병하였다. 1998년 혁명으로 수하르토는 하야했고, 이어 부통령이었던 바하루딘 유숩 하비비가 새 대통령으로 취임했으며 이듬해 압둘 라흐만 와히드가 새 대통령으로 취임해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2003년까지는 간접 선거가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헌법 개정으로 2004년 첫 직접 선거가 실시되었으며, 당시 대통령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수실로 밤방 유도요노가 대결하여 유도요노의 승리로 끝났다. 2007년에는 자국을 비롯한 말레이시아-타이-베트남에서 아시안컵이 개최되었다. 2012년에는 미국에서 제작된 반이슬람영화로 인해 인도네시아에서도 시위가 일어났으며, 반이슬람영화로 촉발된 시위를 놓고 온건파와 강경파가 대립하였다.[1]

자연 환경[편집]

지리[편집]

인도네시아는 17,509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6,000개의 섬에 사람이 살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사는 섬은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제일 높고 인도네시아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는 자바 섬과, 수마트라 섬, 칼리만탄 섬, 파푸아 섬, 술라웨시 섬이다.

기후[편집]

인도네시아의 섬들이 적도를 중심으로 북위 5°에서 남위 10° 사이에 위치하므로 완전한 열대성 기후를 나타내며 동남아시아 계절풍대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연중 높은 기온을 나타내 거의 전지역이 평균기온 25∼27℃를 기록하며 적도변의 중앙지대에서는 월별 변화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강수량은 몬순의 영향을 크게 받아 중심부에 해당되는 적도 부근의 연중 강우지역을 제외하면 대체로 건기(乾期)와 우기(雨期)의 구별이 뚜렷하다. 주요지역의 연평균 강수량은 폰티아나크(보르네오 섬) 3,175mm, 파당(수마트라 섬) 4,172mm, 자카르타(자바 섬) 1,755mm이며, 소순다열도의 동쪽은 훨씬 더 건조하다. 더운 날씨 때문에 12월, 1월에도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자카르타 (남위 6도)의 기후는 열대성 기후로서, 높은 기온과 많은 강우량이 특징적이며, 이에 따라 습도도 연평균 75∼85%로 상당히 높다. 연평균 기온은 26.9℃로 연교차가 1℃에 불과하지만 1월과 2월에는 20℃이하가 되는 날도 있다.

정치[편집]

대통령제 공화정을 채택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도 공정거래위원회(Indonesia's Business Competition Supervisory Commission)가 있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며, 한 차례에 한해 연임할 수 있다. 대통령 후보는 총선 득표율 25% 이상 또는 의석점유율 20% 이상인 정당 또는 연합만 선출 가능하다.

대통령은 직선제로 선출된다. 1999년까지는 국민협의회(MPR)에서 간선제로 선출했으나, 현재는 그 직을 상실했다.

행정 구역[편집]

인도네시아의 행정 구역은 33개 주(provinsi), 2개 특별주(daerah istimewa), 1개 수도권(daerah khusus ibu kota)의 34개로 나뉜다. 수도자카르타이다. 제2의 도시는 수라바야이다.

대외 관계[편집]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는 1973년 협정을 기본으로 2005년까지 바탐 섬 북부 지역에 관한 분쟁을 완결하기로 합의한 상태이다.[2] 1950년 인도네시아의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는 인도네시아와 인도 양국 국민들에게, 식민지배 세력에 의하여 붕괴된 양국간의 1천년이 넘게 존재해온 우호 협력을 강화하자고 촉구하였다.[3] 그로부터 15년 후, 자카르타에서는 정부가 선동한 구호가 들렸다. "제국주의의 종, 인도를 타도하자. 처부수자, 우리의 적".[4] 그러나 1966년 봄, 양국의 외무장관은 우호관계의 시대에 대하여 다시 거론하기 시작하였다. 양국은 각각의 수도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5][6] 터키와의 관계는 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자와 섬포르투갈이 식민지화를 시도하자 자와의 이슬람교 술탄은 이에 저항하며, 오스만 제국에 도움을 청하였다. 오스만 제국은 이에 대해 거대한 배와 병력을 파견하였고 이들은 이슬람 형제의 나라를 돕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로 인해 오늘날에도 양국은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각각의 수도에 각각 대사관을 두고 있다.[7][8] 인도네시아는 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동시에 수교 했다. 인도네시아와 대한민국은 경제, 군사적 협력에서 다방면으로 폭넓은 교류중에 있다. 대한민국 국적자로써는 권준, 유재훈 등의 많은 한국선수들이 인도네시아 프로리그에서 선수로 뛰고 있으나, 인도네시아 현지인 (現地人)들 중에는 아직 K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없다. 한국으로의 직항편은 대한항공, 아시아나 그리고 가루다 인도네시아 세 개 항공사가 자카르타발리에만 취항하나, 대한항공은 현지의 다른 도시에도 취항할 예정이다.

대(對)베트남 관계[편집]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은 둘다 아세안 회원국이다. 인도네시아의 대통령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는 2003년 6월에 베트남을 방문하였다. 이 때, 양국은 "21세기를 향한 우호 및 실용 협력을 위한 기본 협약"에 서명하였다. 2005년 5월, 인도네시아의 대통령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가 베트남을 방문하였다. 같은 해 12월에는 양국의 수교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양국의 수도에서 펼쳐졌다.[9]

대(對)캄보디아 관계[편집]

8세기, 캄보디아는 자바의 사일렌드라 왕국의 침략을 받아 그들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대(對)말레이시아 관계[편집]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문화적, 민족적으로도 공통점이 많은 나라다. 두 나라 다 말레이인, 또는 말레이 계열의 민족들이 대부분이며 언어도 말레이어를 사용하지만, 서구 열강들의 분단으로 인해 서로 다른 생각과 특징들을 많이 갖고 있다. 말라야가 1957년 독립한 이후 수하르토는 위대한 인도네시아(Indonesia Raja; 말레이시아에서는 '위대한 말라야'라는 뜻으로 'Melayu Raya'라고 했다)를 주장하며 말라야와 함께 대(大)말레이 국가의 건설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파열음이 생겼고, 말라야가 싱가포르, 사라왁, 사바를 합병한 뒤 '말레이시아'를 건국하려 하자 관계가 틀어져, 결국 위대한 인도네시아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후에 인도네시아는 사바를 무력으로 합병하였고, 이에 말레이시아가 군을 보내 사바를 되찾았다. 1960년대 양국간의 관계는 그리 좋지 않았으며, 1965년 1월 1일 인도네시아가 말레이시아가 안전보장이사회 회원국으로 선임된데 대하여 항의의 표시로 유엔을 탈퇴한 일도 있었다.[10] 그 후 영토분쟁 등 모든 것이 그나마 해결됐지만, 현재도 양국간의 분쟁은 이어지고 있다.

그 외의 나라와의 관계[편집]

미국 및 각 서방 국가와도 협조적이며, 러시아유럽 연합 에서도 경제적 원조를 받고 있는 상태이다.

대한민국 해외조림지[편집]

2010년 1월 산림청은 탄소배출권 확보용 최초의 해외조림지로 인도네시아 서부 누사틍가라 주에 위치한 롬복 섬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양국 정부는 롬복 섬 조림지를 국제기후변화협약(UNFCCC)상의 "신규 조림 및 재조림 청정개발 사업"(AR CDM 사업)으로 인정받아 이산화탄소 배출권을 확보할 예정이다. 2005년 발효된 교토의정서에 따라 일정한 기준에 맞는 조림사업을 한 나라는 인센티브로 이산화탄소 배출 허용량을 더 확보하거나 이산화탄소를 더 배출할 권한을 다른 나라나 기업에 팔 수 있다.[11]

경제[편집]

산업[편집]

농업[편집]

인도네시아는 농업국이다. 취업인구로 보나 국민소득으로 보나 농업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12] 인도네시아의 국토 면적중 농지면적은 33만 ㎢로 전 국토의 약 19%를 차지하고 있다. 전체 농지 중 관개수리 면적은 14% 수준으로 농업하부구조가 낙후되어 있는 실정이다. 또한 농가의 영농규모가 평균적으로 영세하여 1ha 미만의 영농규모를 유지하는 농가가 전체 농가의 75%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13] 농림업에서는 카카오, 카사바, 양배추, 코코넛, , 커피, 고구마, , 담배, , 천연 고무, 옥수수, 파인애플, 바나나, 땅콩의 생산량이 많다. 이 나라의 농업은 대규모의 플랜테이션(plan­tation) 농업과 소규모의 농업으로 나뉜다. 전자는 전에 네덜란드인이 소유·경영했던 것이나, 현재는 모두 네덜란드의 기업국유화법(企業國有化法)으로 인도네시아의 소유가 되어 있다. 플랜테이션에서는 수출용의 고무·커피·사탕수수·코프라·담배·코코아 등이 재배되고 있다. 한편, 소규모의 농업의 주요산물은 국내소비용의 ·옥수수·타피오카 등이다. 식량은 아직 자급자족할 만큼은 못되어 매년 다량의 쌀이 수입된다.[14] 인도네시아 국토의 73%는 산림지역으로 세계적인 열대 산림자원보유국으로 총 수출액의 15%가 목재류인 최대 목재산업국이다.[13] 이 나라는 풍부한 광산자원이 중요 수출품이 돼있다. 주석(朱錫)은 방카섬, 빌리톤섬, 싱케프섬에서, 철반석(bauxite)은 빈탄섬에서 채굴된다. 한 때 보르네오와 수마트라에서 생산되는 많은 석유를 바탕으로 OPEC에 가입했었으나, 석유의 국내 사용량이 증가하면서 석유 수출국이 아닌 석유 수입국으로 전락하면서 OPEC에서 탈퇴하게 되었다.

상공업[편집]

현재 각종 상공업의 발달로 국민들이 어느 정도 건강한 삶을 살고 있으나 빈부의 격차가 심한 편이다. 이 나라의 공업은 350년간 네덜란드 식민지로 있으면서 네덜란드 공업제품의 시장이 되어 있던 관계로 극히 후진적인 상태에 있다. 정부는 경제계획으로 공업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으나 불안정한 정치정세와 자금의 부족 및 숙련공(熟練工)의 부족 등, 악조건이 중첩되어 계획은 어려운 상태에 있다.[15] 이전에는 상업이 네덜란드인과 화교에 의하여 독점되고 있었으나 1958년 이후는 네덜란드인을 무역계에서 완전히 추방하고 화교의 상업활동도 대폭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정부는 인도네시아 상인의 육성을 도모하고 있으나, 과도기에 처한 상업활동은 여러 가지의 장애에 봉착하고 있다.[16] 무역은 전형적인 식민지형 무역구조로, 원료를 수출하고 공업제품을 수입하고 있다. 무역에서는 네덜란드의 독점적 지위는 이미 없어져 싱가포르, 미국, 일본, 독일, 타이, 필리핀 등이 주요 대상국이 되고 있다.[17] 담배 생산을 많이 하는 나라로, 자럼은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교통[편집]

많은 섬으로 된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는 해운(海運)이 극히 중요하다. 전전(戰前)에는 네덜란드의 업체가 연안항로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었으나, 1957년에 이러한 권익은 모두 인도네시아에 의해 국유화되었다. 육상교통을 보면 자바에는 포장도로망이 발달해 있으나 그 밖의 섬에서는 도로가 미개발상태에 있다. 인도네시아의 육로교통수단은 크게 버스(bis), 앙꽅(Angkot: Angkutan Kota의 준말), 오젝(Ojek:오토바이), 택시(taksi) 이렇게 4개로 구분된다. 버스는 탑승객이 현금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운행되고 있고, 가장 대중적으로 많이 이용하고 있는 대중교통수단은 앙꽅이라고 불리는 소형버스이다. 이 소형버스는 구간에 관계없이 요금이 동일하며, 따로 정류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노선 중간 어디에서든지 탑승자가 원하는 지점에서 승·하차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앙꽅에서는 조수(남자)가 동승하며 요금은 조수에게 지불한다.[18] 또한 인도네시아에는 한국의 <내집마련>과 동일하게 <내 오토바이 마련>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오토바이들의 수가 정말 많다. 그리하여 오토바이로 승객을 원하는 지점에 데려다주고 거리에 따라서 요금을 받는 오젝이라는 교통수단이 생겨났다. 마지막으로 택시는 흰색, 주황색, 검은색, 파란색 등 많은 색깔들이 있는데 가장 대중적이고 안전한 택시는 Bluebird(일반승용차)이고, 같은 계열사로 모범택시 격인 SilverBird(고급승용차)나 GoldBird(리무진)가 있다.철도는 자바와 수마트라의 일부 지방에 부설되어 있다. (인도네시아는 고속철도 계획을 세웠다.) 여러 가지 궤간(軌間)의 철도가 있는데, 3/4은 수도 자카르타가 있는 자바섬에 부설되어 있다.[19] 항공은 국영기업인 가루다 인도네시아가 주요 국내선과 국제선을 운영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만다린,라이온,스리위자야 등 주요 항공사가 있으며 소규모의 항공사들이 다소 난립된 국내선 운영을 하고 있다.[20] 차량 통행방향은 일본이나 영국과 같은 좌측 통행으로,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다.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이 기사(인도네시아어:Sopir, 소삐르)를 1~2명씩 부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회[편집]

언어[편집]

공용어는 말레이어의 방언인 인도네시아어로 인도네시아의 국어이다. 인도네시아어는 말레이어가 달리 표준화된 형태로서 1928년 청년단체가 말레이어를 약간 개정하여 인도네시아어로 재정한 것이다. 말레이반도에서 사용되는 말레이시아어와는 거의 흡사하나 발음, 철자, 단어의 의미, 문법 규칙 등이 약간씩 다르다. 어족으로는 오스트로네시아어족 중 서부오스트로네시아어족의 말레이어군에 속하며, 유형학적으로는 교착어에 속한다.[21] 말레이어가 국어이기는 하나 일상에서 사용하는 사람은 약 3,000만 명 정도로 전국의 인구에 비해 의외로 적다. 이유는 말레이어는 과거 말라카와 말루쿠를 잇는 해상무역의 과정에서 골고루 사용된 것을 바탕으로 전 국민이 제2언어로서 사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 인구수는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인의 제1언어는 실질적으로 자와어이다. 회화체 언어로는 어휘, 문법 규칙 등이 서로 다른 583개 이상의 방언이 인도네시아어와 함께 병존하며 각 지역의 일상 생활에 사용되고 있다.

수도 자카르타에 돈벌이하러 나오는 사람도 꽤 많기 때문에 지방 사람이라도 말레이어는 필수이며, 사용할 수 없으면 돈벌이에도 영향이 미친다.[출처 필요] 인도네시아어 외에 인도네시아의 각 지역에서 사용되는 지방어는 현재 742개로 추산되며,[22] 자와어, 순다어, 발리어, 마두라어, 람풍어, 바탁어, 아체어, 이반어, 다약어, 마카사르어, 부기스어, 마나도어, 말루쿠어 등이 있다. 정부 차원에서 많은 지방어가 관리되지 않아 특색있는 지방어가 줄어드는 실정이다.

인도네시아의 문자해득률은 2003년 기준 88.5%이다.[출처 필요] 식민지 시절에는 네덜란드어가 공용어였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본에 의해 네덜란드어 사용이 금지되고 일본어말레이어가 공용어 기능을 하였다.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와는 달리 인도네시아의 화교는 중국어를 사용하지 않고 말레이어만을 사용한다. 본래 대다수 화교가 중국어를 사용하였으나,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은 이들의 영향력을 제한하려는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고, 이후 대통령직을 승계한 수하르토에 의해 본격화되었다. 각 민족의 문화를 이해하고 허용하는 말레이시아와는 달리 인도네시아에서는 모든 국민을 "똑같은 인도네시아인"으로 동화시키려는 정책을 펼쳐, 중국식 이름을 인도네시아식으로 개명하게 하였고(예: Kang → Kangean, Pang → Pangestu), 학교 또는 일상생활에서 중국어의 사용을 엄금했다. 이는 수하르토 집권기 31년간 행해져왔으며, 그 결과 중국인들은 중국어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수하르토의 하야 이후 하비비/와히드 정권을 거치면서 중국인 탄압정책이 폐지되었으나, 수하르토 정권의 영향력으로 오늘날 중국인들은 중국어를 잘 하지 못하며, 말레이어만을 구사한다. 최근들어 중국, 홍콩, 대만, 말레이시아 등으로 유학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들의 중국어 구사율은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 이들의 자연스러운 말레이어 사용은 말레이어의 사용을 꺼려하고 말레이 문화를 거부하는 말레이시아 중국인들이 본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말레이시아 내에서 나오고 있다.

민족[편집]

인도네시아인은 85% 정도이고 그 외 민족이 15%를 차지한다. 중국계는 약 3%. 한국인은 35,000여명 가량 거주하며, 자카르타 및 인근지역 28,000명, 수라바야 1,800명, 반둥 900명, 발리 600명 등에 분포한다.[23]

문화[편집]

이 나라는 섬이 약 1만 8천개이며, 동서로 멀리 뻗어 있는 국토로 인해 각 섬마다 독특한 고유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스포츠[편집]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배드민턴축구이다. 특히, 인도네시아가 딴 6개의 올림픽 금메달은 모두 배드민턴에서 획득한 것으로써, 인도네시아의 국기(國技)로 지정되어 있다. 프로 스포츠로써 축구농구 리그가 있으며, 리가 슈퍼 인도네시아라고 불리는 축구리그는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그밖에 수마트라 지방에서 예로부터 널리 행해진 전통종목 세팍타크로도 저변이 넓으며, 아시안 게임동남아시아 경기 대회의 정식 종목으로 지정되어 있다.

종교[편집]

인도네시아는 헌법 29조에서 6개종교(이슬람, 개신교, 로마 가톨릭, 힌두교, 불교, 유교)의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며, 종교가 없는 사람은 공산주의자로 간주[24]되기 때문에 신분증에 반드시 종교가 명시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이슬람교를 믿지만 (인도네시아의 대통령 6명이 모두 이슬람교를 믿었다.) 발리 섬에서는 힌두교가, 술라웨시 섬 북부에서는 로마 가톨릭이 우위이다. 인도네시아 기독교는 1960년대에 크게 성장하는데, 그 이유는 인도네시아 공산당의 당원들을 교우로 받아들여서 정부와 극우파들의 박해와 학살로부터 보호했기 때문이다.

2010년 인도네시아 정부의 통계에 의하면, 이슬람교 87%, 크리스트교 9.87%, 힌두교 1.69%, 불교 0.72%, 유교및기타 0.56%이다. 이슬람교도의 인구는 약 2억 명 가량으로 세계 최대의 이슬람교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이슬람교가 다수일 뿐 세속 국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통상 아랍국가들처럼 전형적인 이슬람 국가는 아니다. 이슬람 사립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은 교칙에 따라 다리를 드러내지 않는 긴 치마를 교복으로 입고 머리에 히잡를 두른다.

인도네시아는 이슬람을 강요하는 나라는 아니지만, 타 이슬람 국가들처럼 무슬림들에게는 이슬람법이 적용된다. 특히 아체 지역에서는 이슬람이 누구에게나 국법으로 강하게 적용된다. 무슬림과 비무슬림간의 혼인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으며, 무슬림들이 하람(haram) 행위를 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 법적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타 종교로의 개종이 매우 어려울 수 있다.

각주[편집]

  1. 印尼 이슬람계, 반미시위 '과격-온건' 대립
  2. 문정인 외,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연세대학교출판부(2006) 505쪽
  3. Foreign Policy of India: Text of Documents 1947-59 (p.54)
  4. I New York Times Sept.10 1965
  5. http://www.embassyofindiajakarta.org/
  6. http://www.indonesianembassy.org.in/
  7. “Embassy of Indonesia in Turkey”. Indonesia.visahq.com. 2010년 9월 28일에 확인함. 
  8. “Embassy of Turkey in Indonesia”. Cakarta.be.mfa.gov.tr. 2010년 9월 28일에 확인함. 
  9. Vietnam Indonesia aim for all round cooperation, development
  10. “印尼, 유엔서 脫退 創設以來 처음”. 동아일보. 1965년 1월 4일. 1쪽. 
  11. 동아일보 2010-01-12
  12.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인도네시아의 산업·무역
  13. “인도네시아, 농업생산과 농업구조 개황”. 한국농촌경제연구원. 2010년 5월 5일에 확인함. 
  14.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농업
  15.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공업
  16.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상업
  17.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무역
  18. “인도네시아 : 교통정보”. 《펄스투어》. (주)플레져온. 2010년 4월 7일에 확인함. 
  19.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아시아의 교통
  20.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인도네시아의 교통·도시
  21. 어근에 접사가 붙어 다양한 품사로 파생되는 언어
  22. 2005년 SIL 조사
  23. [1], 주 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관 - 생활정보
  24. 《미션저널》2000년 겨울호,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측 총회세계선교회(GMS)

바깥 고리[편집]

인도네시아[편집]

대한민국[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