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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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
金賢植
기본 정보
출생 1958년 1월 7일(1958-01-07)
대한민국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인현동
사망 1990년 11월 1일 (32세)
대한민국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동부이촌동[1]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직업 싱어송라이터
장르 록 음악, 팝 음악, 블루스 록
악기 기타, 하모니카
활동 시기 1980년 ~ 1990년
배우자 김경자
가족 류진희(어머니)
김혜령(누나)
김완제(아들)

김현식(金賢植, 1958년 1월 7일 ~ 1990년 11월 1일)은 대한민국가수이자 싱어송라이터이다. 대표곡으로 〈사랑했어요〉,〈비처럼 음악처럼〉, 〈내 사랑 내 곁에〉 등이 있다.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의 대표적인 가수이다. 1990년 11월 1일 간경화로 사망하였다. 향년 33세.

생애[편집]

학력[편집]

유년기[편집]

서울특별시 중구 인현동 출신으로, 어린 시절을 충청북도 옥천에 있는 외가에서 보냈다. 1964년에 서울 혜화초등학교에 입학하였으며, 2학년 때 충청북도 옥천에 있는 죽향초등학교에 전학하였고, 3학년 때는 서울에 있는 삼청초등학교로 전학하였다. 당시 전인권이 그 학교 6학년에 재학 중이었으나 서로 누군지 모른 채 지냈다. 그러다가 학군제의 시행으로 5학년 때 수유초등학교로 전학을 하였다. 초등학교 재학 시절 좋은 성적을 유지했으며 1970년에 전교 4등으로 보성중학교에 입학했다. 중학교 재학 시절에 기타를 처음으로 접했으며, 아이스하키부에서도 활동하여 중학교 초반에 상위권을 유지했던 그의 성적이 하락했다. 그러다가 간장공장을 운영하던 부친의 사업 실패로 집안이 어려워져서 방황하다가 중학교 3학년 때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책을 다시 잡았다. 당시 명문학교였던 경기고등학교에 지원했으나 낙방하고 1973년명지고등학교에 입학하여 밴드부에 들어갔으나 선배의 악기를 만진 이유로 혼내는 선배들과 주먹다짐을 벌인 후 밴드부에서 탈퇴당해 1학년을 마치기 전이었던 1974년 가족들 몰래 자퇴서를 냈다.

가수 데뷔 전[편집]

자퇴 후 종로의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해 다녔고 1975년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그 후로는 공부에 흥미를 잃었으며, 방황을 하다가 기타를 메고 종로에 있는 한 음악 다방에서 통키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것을 시작으로 명동의 큰 무대로 활동범위를 넓혔다.

그러다가 가수 이장희의 동생인 이승희와 한 호텔의 나이트 클럽에서 스타 가수들의 무대 사이를 잇는 들러리 역할로 듀엣활동을 하였으며, 이승희와 결별한 후에는 김동환작약도에서 지옥훈련을 감행한 후 듀엣으로 활동했다.

가수 데뷔[편집]

1976년에 이장희의 주선으로 음반 제작에 들어갔다. 그러나 1978년에 녹음작업이 끝나고 음반이 나오기 기다리던 중 이장희가 미국으로 여행갔다가 그곳에 매료되어 장기 체류를 하고 김현식이 대마초 사건까지 연루되어 정식 데뷔를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2년 후인 1980년에 서라벌 레코드사에서 '봄여름가을겨울'을 타이틀곡으로 한 1집 앨범을 발표하였는데, 그 때는 그의 음악적 노선이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이 앨범에서 그는 맑은 미성을 바탕으로 소울 록 트로트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들을 선보였다.

결혼, 그리고 밤무대 활동[편집]

1982년에 결혼하여 그 해 12월에 아들 김완제를 얻게 된다.[2] 동부이촌동 공 무원 아파트에 신접살림을 차리고 인근에 피자가게까지 열어, 직접 배달도 하는 등 결혼이 가져다준 행복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1년 후에 가게를 접고, 세종호텔 나이트클럽에 나가면서 밤무대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 후에 크라운호텔과 하얏트 호텔에서도 활동했다.

2집 앨범[편집]

1984년에는 언더그라운드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동아기획에 스카우트되어 그 해 10월에 '사랑했어요'를 타이틀곡으로 한 2집 앨범을 녹음하여 발표하였다. 노래가 발표되자 방송보다는 음악다방, 나이트클럽 등 다운타운에서 반응이 나타났다.

2집 활동 때까지는 주로 밤무대에서 공연을 많이 하였다. 전인권과 함께 한 그룹 '검은 나비'의 리드 싱어 및 조원익이 리드하던 그룹 '동방의 빛', 정성조의 '메신저스'에 들어가 밤무대 최고의 가수로 부각되었다.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 결성, 그리고 본격적인 콘서트 활동[편집]

1985년김종진, 전태관, 장기호, 유재하와 함께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그룹을 결성하였으며 이들의 연주로 3집 앨범을 녹음한다. 그러다가 녹음 후에 유재하가 탈퇴하고 장기호의 소개로 박성식이 들어왔으며, 1986년에 '비처럼 음악처럼'을 타이틀로 한 3집 앨범을 발표한다. 이 음반은 30만장이상이 팔려나가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여 대중적 인기를 얻었으나 계산된 기획에 의해 움직이는 방송의 속성에 거부감을 느껴 방송 출연을 자제했기 때문에 '얼굴 없는 가수'로 통했다.

3집 앨범 발표이후에는 라이브 극장 등에서 공연 활동을 주로 하였으며, 이정선, 엄인호 등을 만나면서 블루스로 음악적 색깔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시련과 재기[편집]

그러다가 1987년 11월에 밴드 들국화의 전인권, 허성욱과 함께 대마초 상용 혐의로 또다시 구속되었다. 5개월 후 1988년 2월에 삭발을 한 채 63빌딩에서 재기 콘서트를 벌였다.

4집 활동 및 신촌 블루스[편집]

1988년 9월에 '언제나 그대 내곁에'를 타이틀로 한 4집 앨범을 발매하였고, 같은 해 말에는 음반 판매량이 가장 큰 음반을 발표한 가수에게 수여되는 제 3회 일간스포츠 골든 디스크상을 수상하였다.

1989년에는 신촌블루스 2집 앨범에도 참여하여 '골목길' 등을 녹음하였으며, 강인원의 주도로 제작한 영화 음악 '비오는 날 수채화'[3]를 녹음하였다.

5집 발표 및 6집 앨범 녹음[편집]

1990년에는 3월에 '넋두리'를 타이틀 곡으로 한 5집 앨범을 발표했으며,[4] '이별의 종착역'을 녹음한 신촌블루스 3집 앨범도 동시에 발표되었다.

하지만, 재기 콘서트 이 후 밤샘 녹음, 폭음, 줄담배 등은 그에게 치명적인 건강 악화를 불러와 병원에 실려 가는 횟수가 늘어났다. 건강이 악화된 와중에도 사랑과 평화의 최이철, 김명수와 함께 그의 유작 앨범인 6집 녹음에 들어갔으며, '신촌블루스', '비오는 날 수채화' 팀과 전국 각지를 누비며 라이브 콘서트를 열었다.

사망[편집]

6집 음반 작업을 마무리하던 중 1990년 11월 1일 오후 5시 20분에 자신의 자택인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렉스 아파트에서 간경화로 별세했다. 향년 34세.

사후에 발표된 앨범[편집]

사망 후 발표된 6집 앨범 타이틀곡인 〈내 사랑 내 곁에〉는 1991년에 크게 히트하여 판매량 200만장이라는 무지막지한 기록을 세웠다., 그 해 제6회 일간스포츠 골든 디스크 대상을 수상하였다[5].

1996년에는 병상에서 즉흥으로 녹음한 노래들 중 미발표된 노래들로 구성된 앨범 《Self Portrait》가 발표되었으며, 2002년 1월 22일에는 다시 병상에서 통기타 반주로 녹음한 미발표곡들을 모은 앨범인 《The Sickbed Live》가 발매되기도 했다.

추모 열기[편집]

1991년 2월 9일63빌딩에서 김동준, 김민효, 송재원, 이금숙, 성충제, 유준석, 송정현, 이현준, 조지윤, 배준형, 장무성 등 30여 명의 가수들이 참가한 추모콘서트가 열렸으며, 같은 해 6월에는 12곡이 실린 추모앨범 《하나로》가 발매되었다. 2000년에는 사망 10주기를 맞아 김민종, 한동준, 신승훈, 김종서, 임재범, 윤종신 등 후배 가수들이 헌정 앨범 《Tribute To Kim Hyun Sik》을 발매했으며, 2010년에는 20주기 헌정앨범도 발매되었다. 에픽하이는 〈11월 1일〉이란 곡으로 김현식과 유재하를 추모하기도 했다. [6]

오해[편집]

김현식의 5집 마지막에 수록된 '할렐루야'라는 개신교 찬송가 때문에 그를 개신교 신자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김현식 본인은 무종교인이었으며 5집에 수록된 해당 곡은 개신교인이었던 그의 전 아내가 김현식이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며 불러주기를 원해서 수록한 것이라고 한다.

앨범[편집]

각주[편집]

  1.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110200209214011&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90-11-02&officeId=00020&pageNo=14&printNo=21287&publishType=00020
  2. 후에 김완제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수의 길을 걷고 있다.
  3. 강인원, 권인하와 함께 불렀다.
  4. 생애 마지막으로 발표한 음반이다.
  5. 이경란 기자 (2006년 12월 3일). “골든디스크, 20년 쏟아진 진기록”. 일간스포츠. 2011년 11월 5일에 확인함. 
  6. “김현식의 발자취”. 2008년 11월 1일에 확인함.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