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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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국기
Flag of Germany.svg
이름 연방기
Bundesflagge
용도 국기
비율 3:5
채택일 1949년 5월 23일
요소 검정, 빨강, 노랑의 삼색기
Flag of Germany (state).svg
독일의 국기의 변형
이름 Bundesdienstflagge
용도 정부기
비율 3:5
채택일 1950년 6월 7일
Naval Ensign of Germany.svg
독일의 국기의 변형
이름 Seekriegsflagge und Gösch
용도 해군기
비율 3:5
채택일 1956년 5월 9일

독일의 기(독일어: Flagge Deutschlands 플라거 도이칠란트[*])는 독일의 국가색인 흑색, 적색, 금색(Schwarz-Rot-Gold 슈바르츠-로트-골트[*])이 가로 세 줄, 같은 비율로 배치된 삼색기이다.[1] 이 기는 1919년 바이마르 공화국 당시 처음 국기로 지정되었다. 별칭은 연방기(Bundesflagge 분데스플라거[*])라 한다.[2]

흑-적-금의 삼색기는 19세기 초 처음 나타나 1848년 독일 혁명 당시 유명해졌다.1848년 ~ 1850년 2년간 단명한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에서 이 삼색기를 민주적 통일 독일 국가의 기로 제안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의 성립과 함께, 연방기는 독일의 국기로 지정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연방기는 서독동독 쌍방의 국기로 지정되었다. 양측의 국기는 1959년까지 동일하였으나, 1959년에 동독에서 국기에 문장을 추가하여 달라졌다. 1990년 10월 3일 독일이 재통일됨으로써 흑적금 삼색 연방기는 재통일된 독일의 국기가 되었다.

독일의 기가 항상 흑적금 삼색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1866년의 보오전쟁 이후 프로이센이 맹주였던 북독일 연방은 흑색, 백색, 적색 삼색기를 사용했다. 이 기는 나중에 1871년 독일의 통일로 성립된 독일 제국의 기가 되었으며, 1918년까지 사용되었다. 흑백적 삼색은 1933년 나치 독일이 성립되면서 다시 국가색으로 지정되었으며, 즉슨 공화독일의 삼색을 제국독일의 삼색이 대체한 꼴이 되었다. 이것은 제2차 세계 대전 종전까지 유지되었다.

흑적금과 흑백적 삼색 도식은 독일의 역사에서 여러 가지 의미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현재 사용되는 흑적금 삼색기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성립된 민주공화제과 관련이 있으며 독일의 단결과 자유를 상징한다. 이 자유란 독일이라는 국가의 자유 뿐 아니라 독일 국민의 개인적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다.[3] 바이마르 공화국 당시 흑적금 삼색은 극우와 극좌에 대하여 민주주의, 중도주의, 공화주의를 표방한 정당의 색깔이었다. 사민당, 중앙당, 민주당의 당원들이 좌익과 우익의 극단분자들로부터 공화국을 보위하기 위해 결성한 준군사조직 흑적금 국기단(Reichsbanner Schwarz-Rot-Gold)은 그 이름에서부터 드러나듯 사람들에게 공화국과 그 국기, 그리고 헌법에 대한 경의를 가르치려 했다.

기원[편집]

흑적금 삼색기의 기원: 1848년 독일 혁명(1848년 3월 19일 베를린).

독일과 흑적금 삼색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1840년대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흑적금 삼색기는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성립된 반동적 질서에 대항하는 운동의 상징이었다.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는 흑적금 삼색을 독일 연방의 공식 색으로 선언했다. 아마도 적색은 한자 동맹을, 금색과 흑색은 당시 남부 독일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오스트리아 제국(당시까지만 해도 "독일"의 일부로 간주됨)을 상징한 것으로 생각된다. 1848년 제정된 기의 색깔 도식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들이 난무하고 있다. 일설에는 카를스바트 결의에서 메테르니히에 의해 추방된 급진 대학생 단체인 부르셴샤프트의 색이라고도 하고, 또다른 주장으로는 나폴레옹 정복군에게 맞서 저항한 대학생 단체 뤼트초프 자유군단으로까지 거슬러올라간다고도 한다. 이 해석들 중 무엇이 진실이든 간에, 흑적금 삼색은 이 짧은 기간동안 독일의 국가색으로 받아들여졌고, 바이마르 공화국 성립 당시 재도입되어 대체로 사회적 자유주의를 의미하게 되었다.[4]

기의 변형[편집]

민간기[편집]

"독일 통일기"는 독일 재통일의 국가기념물으로, 1990년 10월 3일에 게양되었다. 이 기는 베를린 국회의사당 앞에서 나부끼고 있다.

독일의 국기인 연방기는 흑색, 적색, 금색의 삼색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것은 1949년 서독 헌정 당시 제정된 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에서 지정되었다.[5] 이후 지방정부의 기와 군기가 새로 생기면서, 민짜 삼색기는 현재 독일의 민간기상선기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비연방 당국이 연방정부와의 연결을 과시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한다. 예컨대 독일의 주들은 국기와 주기를 함께 사용한다.

정부기[편집]

오스트레일리아의 독일 대사관에 게양된 연방직무기.

독일의 정부기연방당국 직무기(Dienstflagge der Bundesbehörden 딘스트플라거 데어 분데스버회르덴[*]) 또는 줄여서 연방직무기(Bundesdienstflagge 분데스딘스트플라거[*])라 한다. 1950년대에 도입된 정부기는 민간기에 방패 모양 연방문(Bundesschild 분데스실트[*])이 추가된 변형이다. 정부기의 연방문은 흑색과 금색의 5분의 1 너비를 차지하고 있다.[6] 연방문은 독일의 국장의 변형이며, 국장과 비교하여 차이점은 그림에 그려진 수리와 방패의 모양이 다르다. 연방문의 방패는 가장자리가 둥글둥글하지만, 국장의 방패는 가장자리가 뾰족하다. 연방직무기는 연방정부 당국에 의해서만 사용될 수 있으며, 그외의 다른 이가 사용하는 것은 불법으로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7] 하지만 연방직무기와 비슷하게만 생긴 기(연방문 대신 국장을 사용한다거나 하는 것)의 개인적 사용은 눈감아 주고 있다. 그러한 기는 국제 스포츠 경기와 같은 때 종종 볼 수 있다.

세로기[편집]

세로 민간기
세로 정부기

일반적인 가로기에 더하여, 독일의 많은 공공건물들은 세로기를 사용하고 있다. 많은 소도시 공회당에서 도시의 기(독일의 소도시들 대부분은 세로기만 도시기로 갖고 있다)와 함께 국기를 세로게양하고 있다. 이러한 세로기의 비율은 명확하지 않다. 1996년, 정부기의 세로게양 형태 배치가 제정되었다. 정부기를 세로게양 할 때는 연방문이 기의 중앙에 위치하고, 흑색과 금색 띠의 너비의 5분의 1 가량을 덮는다.[8] 현수막처럼 걸 때는 우측 그림에 보이는 것처럼 흑색 띠가 왼쪽으로 오게 걸어야 한다. 세로깃대에 게양할 때는 흑색 띠가 깃대와 접해야 한다.[9]

군기[편집]

독일 연방군(Bundeswehr 분데스베어[*])은 연방정부 측 조직인 고로, 육전에서는 연방직무기가 사용된다. 1956년, 해군 함미기인 연방군 해군력 직무기(Dienstflagge der Seestreitkräfte der Bundeswehr 딘스트플라거 데어 지스트라이트크레프트 데어 분데스베어[*])가 도입되었다. 이 기는 연방직무기의 오른쪽 끝이 제비꼬리 모양으로 갈라진 형태이다..[10] 이 함미기는 함수기로도 사용된다.

도안[편집]

독일의 기의 상세 시방서.

독일의 헌법인 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 제22조에 따르면,

“연방의 기는 흑색, 적색, 금색이다”
Die Bundesflagge ist schwarz-rot-gold.[5]

1950년 서독 정부의 설명에 따르면, 연방기는 너비가 동일한 막대 세 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체적인 세로-가로 비율은 3:5이다.[6] 바이마르 공화국 때 사용된 삼색기의 비율은 2:3이었다.[11]

독일의 기에 사용되는 색깔이 색체계상 정확히 어떤 색인지는 국기 제정 당시에는 공식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12] 1999년 6월 2일, 연방내각은 다음의 색깔을 사용한다는 공식 디자인을 내놓았고, 이는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13]

색체계 흑색(Schwarz 슈바르츠[*]) 적색(Rot 로트[*]) 금색(Gold 골트[*])
RAL 9005
흑옥색(Jet black)
3020
적신호색(Traffic red)
1021
카드뮴 황색(Cadmium yellow)
HKS 0, 0, 0 5.0PB 3.0/12 6.0R 4.5/14
CMYK 0.0.0.100 0.100.100.0 0.12.100.5
팬톤 Black 485 7405
16진수 #000000 #FF0000 #FFCC00
2진수 0,0,0 255,0,0 255,204,0
금색 띠를 금속성 금색으로 바꾸어 본 독일의 기. 1999년에 공식 색배합이 발표되기 이전까지는 이 버전이 공식석상에서 사용되기도 했다. 적색 띠도 현재의 공식 색배합보다 더 밝다는 것에도 주목.

금색? 황색?[편집]

기학에서는 금색과 황색을 거의 구분하지 않는다. 문장학에서도 둘을 싸잡아 오어(불어로 "금")라 한다. 하지만 독일의 기에서는 금색과 황색의 구분이 이루어져 있다. 독일의 기에 사용되는 색은 금색이지, 황색이 아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흑적금 삼색기를 국기로 사용하기로 했을때, 보수파, 왕당파, 극우파들은 이 색깔을 "흑색-적색-누렁색"(Schwarz-Rot-Gelb 슈바르츠-로트-겔프[*])라거나 "흑색-적색-겨자색"(Schwarz-Rot-Senf 슈바르츠-로트-젠프[*])이라거나 "흑색-적색-똥색"(Schwarz-Rot-Scheiße 슈바르츠-로트-샤이써[*])이라고 부르면서 공격했다.[14]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잡자 1918년 이전 제국 시절의 흑백적 삼색이 재도입되었고, 나치는 과거 왕당파들이 했던 레토릭을 그대로 사용하여 흑적금 삼색을 비하하였다.[15]

1959년 11월 16일, 독일 연방사법재판소(Bundesgerichtshof 분데스거리히츠호프[*])가 국기의 색깔을 "흑색-적색-황색"이라고 부르는 것이 나치 시절 이루어진 민주주의의 상징에 대한 악의적 비방과 상당하는 짓이라고 명시함으로써, 금색이 아닌 황색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불법이 되었다.[15] 1968년 문장학자 아르놀트 라보우(Arnold Rabbow)는 "독일의 국가색은 흑색-적색-황색이지만 독일인들은 흑색-적색-금색이라고 부른다"고 썼다.[16]

기의 날[편집]

2005년 3월 22일 독일 연방령에 따라, 다음과 같은 날짜에 공공건물에서 반드시 기를 계양해야 한다. 이날 모두가 공휴일인것은 아니다.

2006년 전 독일 대통령인 요하네스 라우의 사망 이후 애도를 위해 기를 계양한 뮌스터의 한 교회(Stadtweinhaus) 기 끝에 검은 리본이 달려 있다.
날짜 명칭 등제 이유
1월 27일 국가사회주의 피해자를 위한 추모의 날
Tag des Gedenkens an die Opfer des Nationalsozialismus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의 해방일이자, 국제 연합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로 지정되었다(반기).
5월 1일 노동절
Tag der Arbeit
노동자 복지 증진을 보여주기 위해 독일 노동조합이 확립했다.
5월 9일 유럽의 날
Europatag
후에 유럽 연합으로 이어지는 슈만 선언이 발표된 날이다(1950년).
5월 23일 제헌절 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이 제정된 날이다(1949년).
6월 17일 1953년 6월 17일 기념일
Jahrestag des 17. Juni 1953
1953년 동독 폭동 사태의 기념일이다.
7월 20일 1944년 7월 20일 기념일
Jahrestag des 20. Juli 1944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아돌프 히틀러의 암살을 기도한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의 기념일이다.
10월 3일 독일 통일의 날
Tag der Deutschen Einheit
독일의 재통일 기념일이다.
대림절 2주 전 일요일 볼크스트라에르테크
Volkstrauertag
모든 전시 동안 사망한 사람들을 추모하는 기념일이다(반기).
출처: 독일 연방정부 안내[17]

다른 주별 기념일 뿐 아니라 독일 연방하원유럽 의회 선거일에는 일부 지역에서 기를 계양하기도 한다. 독일의 대통령이나 다른 유명 정치인이 사망한 날 같은 경우에도 공공장소에서 반기 형태로 기를 계양하며, 이는 독일 연방내무부의 재량에 따라 결정할 수 있다.[17] 반기를 계양해야 할 때는 수직 길이를 낮추지 않는다. 대신, 기 꼭대기나(기둥에 걸려 있는 경우) 기가 교차하는 양 끝(배너처럼 걸려 있는 경우)에 검은 리본을 달아서 애도를 표한다.[18]

독일 국기사[편집]

중세[편집]

신성로마제국 황제기

14세기
15세기 ~ 19세기
FIAV 001000.svg FIAV historical.svg 신성로마제국전쟁기(13세기 ~ 14세기)

신성 로마 제국은 국기가 없었지만 흑색과 금색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의 색깔로 사용되었으며 황제기에도 금색 배경과 검은색 수리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13세기 말기 ~ 14세기 초기 이후 수리의 발톱과 부리가 적색으로 칠해졌다. 15세기 초부터는 쌍두 수리가 사용되었다.[19]

1804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프랑스 제1제국의 수립을 선언했다. 이에 대응하여 합스부르크 왕조의 신성 로마 황제 프란츠 2세는 자신의 사유영지(합스부르크 군주국)를 오스트리아 제국으로 선포하고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1세가 되었으며, 오스트리아 제국의 국기는 신성 로마 황제의 기에서 색깔을 따와 흑색과 금색 줄무늬를 칠했다. 나폴레옹이 1806년에 신성 로마 제국을 해체시킴으로써 프란츠 2세는 최후의 신성 로마 황제가 되었다. 그 뒤로도 흑색과 금색은 1918년까지 오스트리아의 국기에 사용되었다.

이 시기 적색과 백색 역시 중요하게 사용되었다. 신성로마제국이 십자군에 참여했을 당시, 흑색-금색의 황제기와 함께 전쟁기가 사용되었다. 이 전쟁기는 "성 조지 기"(saint george flag)라고 하며, 적색 바탕에 백색 십자가가 그려진 기였다. 성 조지 기의 색깔은 덴마크의 국기와 유사하며, 이 색깔을 뒤집은 것이 잉글랜드의 국기이다.[19] 적색과 백색은 한자 동맹(13세기 ~ 17세기)의 색깔이기도 하다. 한자 동맹의 교역선들은 적백 삼각기를 달아 구분했으며, 한자 동맹 가맹 도시국가들은 적색과 백색을 도시 색상으로 선택했다(한자 동맹의 기 참조). 과거 한자 동맹 가맹도시였던 함부르크브레멘은 오늘날의 시기에도 적색과 백색을 사용하고 있다.

구엘프와 기벨린의 분쟁이 일어나던 12세기 ~ 14세기 북부 이탈리아에서, 기벨린(신성로마황제 지지파)의 군대는 신성 로마 황제의 전쟁기(적색 바탕에 백색 십자)를 채택하였으며, 구엘프(황제 반대파)는 색깔을 뒤집은 기(백색 바탕에 적색 십자)를 사용했다. 이 두가지 도식은 현대의 이탈리아 북부 도시들의 문장에 남아 그 과거 파벌 성향을 짐작케 한다. 대표적인 기벨린 도시였던 파비아, 노바라, 코모, 아스티는 지금까지 문장에 기벨린 십자를 사용하고 있다. 구엘프 십자는 제노바, 밀라노, 베르첼리, 알레산드리아, 레지오, 볼로냐 등에서 찾을 수 있다.

나폴레옹 전쟁[편집]

신성로마제국이 1806년에 붕괴하고, 그 예하 공국들과 대공국들은 나폴레옹의 괴뢰국들의 연합체인 라인 동맹에 가맹했다. 라인 동맹에 가맹한 여러 제후국들은 자기들 각자 깃발을 쓰기를 선호했고, 동맹은 자체 깃발은 없었다. 대신 프랑스의 청백적 삼색기와 보호자인 황제 나폴레옹의 황제기를 사용했다.[20]

나폴레옹 전쟁 당시 프랑스 침략군에 대한 독일의 저항은 흑색, 적색, 금색의 삼색으로 상징되었다. 이것은 대개 프로이센 육군의 의용군인 뤼트초프 자유군단의 제복 색깔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이 부대의 제복은 흑색에 그 끝동은 적색이었고 단추는 금색이었다. 흑적금 삼색은 신성로마제국 시절에도 사용되긴 했지만, 군복에 이 색깔을 차용한 것은 다분히 실용적인 이유였다.[21] 자유군단의 구성원들은 자기 옷을 각자 조달해야 했는데, 이것을 하나의 통일된 복식으로 맞추자니 몽땅 시커멓게 물들여 버리는 것이 가장 편했던 것이다. 금색 단추들은 널리 사용되고 있었고, 부대의 창기병들이 사용한 깃이 적색과 흑색이었다. 이때 이 삼색이 상징하는 것은 다음과 같았다.

피투성이(적색)의 싸움을 통해 암흑(흑색)의 노예 상태를 벗어나 자유의 광명(금색)을 찾으리라.[22]

독일 전역에서 모인 뤼트초프 자유군단 구성원들은 주로 대학생들과 식자들이었고, 뤼트초프 자유군단과 그 삼색은 독일 국민들 사이에 상당한 인지도을 얻게 되었다.[21]

독일 연방[편집]

1815년에서 1816년에 걸쳐 열린 빈 회의의 결과 나폴레옹 전쟁 이후 잔존한 모든 독일계 국가들의 느슨한 연합체인 독일 연방이 탄생했다. 연방은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신성 로마 제국을 대체하는 의미에서 만들어졌으며, 최후의 신성 로마 황제였던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2세가 연방 의장이 되었다. 연방은 자체적인 기는 없었는데, 종종 흑적금 삼색기가 독일 연방의 기로 혼동되기도 한다.[23]

1832년 5월 함바흐 축제.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뤼트초프 자유군단의 재향군인들은 1815년 6월에 예나에서 우어부르셴샤프트(Urburschenschaft; "원조 학우회") 조합을 결성했다. 예나 우어부르셴샤프트는 자유군단의 제복 색깔을 그대로 따서 적색, 흑색, 적색 가로줄무늬에 금색 테두리를 친 기를 사용했다. 검은색 띠 위에는 금색 나무가지가 그려졌다.[21] 뤼트초프 자유군단에 복무했던 대학생들이 여러 독일계 국가에서 모였었기 때문에, 우어부르셴사프트를 비롯하여 이와 유사한 부르셴샤프트(Burschenschaft; "학우회")들 사이에서 통일 독일 국가에 대한 구상이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1817년 10월 18일, 라이프치히 전투 4회 기념일 당시, 연방국가들 전역에서 모인 학우회 조합원들과 대학생들이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국(현재의 튀링겐 자유주)의 바르트부르크에 모여 자유롭고 통일된 독일 국가를 요구하였다.

바르트부르크 축제 당시 예나 우어부르셴샤프트의 금-적-흑 삼색기가 특히 눈에 띄었고, 이후 흑색, 적색, 금색 조합은 통일 독일 국가에 대한 열망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현상유지를 원했던 오스트리아 제국은,[24] 1819년 카를스바트 결의를 통해 모든 학생조직을 금지시켰고, 부르셴사프트들의 시대는 끝이 났다.

1832년 5월, 약 30,000 명의 사람들이 함바흐 축제에서 자유, 통일, 공민권을 요구하며 데모를 벌였다. 바르트부르크 축제 이후 흑색, 적색, 금색 색조합은 자유주의, 민주주의, 공화주의 운동의 상징으로 정착해 있었고, 함바흐 축제에서 이 색깔의 깃발들이 일제히 휘날렸다. 축제를 묘사한 현대의 그림들은 주로 금-적-흑 삼색기(현대 독일의 기가 뒤집힌 형태)를 묘사하곤 하지만, 현재까지 남아있는 깃발들은 흑-적-금 삼색기들이다. 당시 함바흐 성에 내걸렸던 깃발을 "최초의 깃발"(Ur-Fahne 우어파너[*])이라 하여 현재 함바흐 성에 영구보존되어 있는데, 이 깃발은 흑-적-금 삼색기에 적색 띠 부분에는 "독일의 재탄생"(Deutschlands Wiedergeburt 도이칠란트 비더게부르트[*])이라는 글자가 수놓아져 있다.[25]

혁명과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편집]

1848년 3월 베를린 혁명 현장.
FIAV 000001.svg FIAV historical.svg 독일 제국함대의 전쟁기(1848년 ~ 1852년)

1848년 독일 혁명이 일어나고, 거리 곳곳의 민중들은 삼색기를 휘날렸다. 자유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았고, 오랜 숙고 끝에 국가 의회가 형성되었다. 이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는 흑색-적색-금색을 독일의 공식 색상으로 선언하고, 흑적금 삼색기가 독일의 상선기라는 법을 통과시켰다.[26] 또한 해군기 역시 동일한 색상을 사용했다.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는 1850년에 붕괴하고, 오스트리아가 의장국 노릇을 하는 독일 연방이 복고되었다. 오스트리아는 삼색기를 포함하여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의 움직임들을 억압하였다. 이후 다민족 제국이었던 오스트리아를 미래의 독일 국가에 포함시킬 수 있느냐의 문제가 쟁점이 되었다. 오스트리아를 맹주로 하여 거대제국을 만들자는 대독일주의(großdeutsche)와 오스트리아를 제외하고 게르만 민족이 살고 있는 땅끼리만 통합하자는 소독일주의(kleindeutsche)가 대립하였다. 독일 연방 내의 양강인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이원대립구도는 결국 1866년 보오전쟁으로 폭발했다. 보오전쟁 와중 오스트리아 편에 붙은 남독일 국가들은 흑적금 삼색기를 사용하였다.[23] 전쟁 결과 프로이센 왕국이 맹주가 된 북독일 연합이 오스트리아를 격파하고, 몇년 뒤 소독일주의에 따른 독일 통일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북독일 연방과 독일 제국[편집]

2:3 FIAV 110110.svg FIAV historical.svg 북독일 연방(1866년 ~ 1871년)과 독일 제국(1871년 ~ 1918년)의 기. 바이마르 공화국 초기(1918년 ~ 1919년)에도 사용되었으며, 1922년 ~ 1933년에는 외무용으로 사용되었다. 나치 정권 치하에서는 1933년부터 1935년까지 비율이 다르고 색상은 같은 기가 사용되었다.

독일 연방이 해산됨에 따라, 프로이센은 1866년 8월에 북독일 연방 조약을 맺고 1867년에 북독일 연방 헌법을 추인함으로써 독일 연방의 비공식적인 계승자인 북독일 연방을 성립시켰다. 이 연립체는 맹주 프로이센을 비롯하여 21개의 북독일 국가로 이루어져 있었다.

국제적인 인식표를 갖고 싶었던 해운업계에서 새로운 연방의 기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 의문을 가장 먼저 제기하였다. 북독일 연방의 국제 해운 활동은 프로이센과 과거 한자 도시국가였던 브레멘, 함부르크, 뤼베크가 사실상 전담하고 있었다. 함부르크 상공회의소 서기였던 아돌프 쇠트비어(Adolf Soetbeer)가 이 점에 착안하여 1866년에 프로이센의 색상인 흑색과 백색에 한자 동맹의 색상인 적색과 백색을 더한 기를 제안했다. 이듬해 북독일 연방 헌법은 흑백적 가로 삼색기를 상선기와 해군기로 채택하였다.[27]

빌헬름 1세는 이 색상 선택을 매우 마음에 들어 했다. 적색과 백색은 프로이센 왕국의 전신인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의 상징색이기도 했기 때문이다.[21] 금색이 사라진 것 역시 이 새로운 독일 국가가 흑색과 금색을 상징색으로 하는 오스트리아를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냈다. 보불전쟁 이후 남독일 국가들이 북독일 연방에 합쳐져 독일의 통일이 이루어졌고, 프로이센의 호엔촐레른 왕가가 1871년 독일 황제의 위에 올랐다. 독일 제국 헌법은 흑색, 백색, 적색을 국가색으로 정했으며,[28] 북독일 연방에서 사용하던 삼색기가 1892년에 정식으로 제국 국기로 지정되었다.

흑백적 삼색기는 독일 제국이 붕괴한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 마지막 날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바이마르 공화국[편집]

2:3 FIAV 100000.svg FIAV historical.svg 바이마르 공화국의 기(1919년 ~ 1933년).

1918년 독일 공화국의 선언과 뒤이은 혁명기를 거쳐 1919년 8월 소위 바이마르 공화국이 성립되었다. 19세기의 반독재 운동과 신생 민주공화국 사이의 연결점을 만들기 위해, 옛날의 흑적금 삼색기가 1919년 바이마르 헌법에 따라 국기로 지정되었다.[29] 로이스그라츠 후국, 로이스게라 후국, 발데크 후국 등 자그마한 독일계 제후국들과, 발데크 후국을 계승한 공화국인 발데크 자유주 역시 국기 비율과 색 배치 순서는 달라도 흑적금의 삼색을 유지한 바 있다. 상선기에는 제국 시절 국기인 흑백적 삼색기가 유지되었으나, 왼쪽 구석에 새로운 흑적금 삼색기가 칸톤으로 추가되었다.

“옛날 깃발을 나부끼게 하자” 왕당파 국가인민당의 선거 포스터. 1932년.

그러나 국기의 변화는 많은 독일인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그들은 국기의 변화를 1차대전에서 패배한 결과에 따른, 수치의 상징이라고 생각하였다. 독일 국가방위군(Reichswehr 라이히스베어[*])은 예전 삼색기를 계속 사용했으며, 보수주의자들은 예전 색상으로 회귀할 것을 요구했다. 왕당파와 극우분자들은 새로운 국기를 갖은 멸칭(전술한 #금색? 황색? 참조)으로 비하하면서 더욱 강경하게 반발했다. 결국 타협안으로서 1922년, 해외 외교관 공관용으로 흑백적 삼색기가 재도입되었다.[11]

제정 독일의 상징은 곧 왕당파와 국가주의자들의 상징이 되었으며, 전선병사동맹 철모단 따위 왕당파 국가주의자 단체에서 사용되었다. 독일 제국 시절의 군기인 독일 제국전쟁기(Reichskriegsflagge 라이히스크리그스플라거[*]) 역시 유사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국가인민당(좌측 포스터를 볼 것)과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나치당) 등 바이마르 시기 활동한 많은 국가주의 정당들은 제국 색상을 상징색으로 사용했으며, 이것은 현대 독일의 극우민족주의 정당인 독일 민족민주당까지 이어지고 있다.

1924년 2월 24일, 바이마르 대연정을 구성한 3개 정당(중앙당, 민주당, 사민당)의 당원들과 노동조합원들이 마그데부르크에 모여 흑적금 국기단(Reichsbanner Schwarz-Rot-Gold 라이히스바너 슈바르츠-로트-골트[*])이라는 조직을 결성했다. 이 조직의 목적은 극좌와 극우 양쪽에서 끊임없는 압박을 받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취약한 민주주의를 보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단체를 통하여 흑적금 삼색기는 독일 민주주의의 상징일 뿐 아니라, 정치적 극단주의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거듭났다. 이것은 국기단의 초대 주석인 오토 회슬링의 말로 대표된다. 그는 국기단의 임무를 “스바스티카소비에트의 별에 대한 투쟁”이라 묘사하였다.[30]

공산주의자들과 국가사회주의자들 사이의 분쟁의 폭력성이 날이 갈수록 더해갔고, 극심한 경제 불황과 무지막지한 하이퍼인플레이션, 공화국의 부패로 독일인들 사이의 양극화는 계속하여 심화되었다. 결국 바이마르 공화국은 1933년에 붕괴하였고, 나치가 권력을 장악(Machtergreifung 마흐터그라이풍[*])했으며,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의 제국총리(Reichskanzler 라이히스칸츨러[*])가 되었다.

나치 독일[편집]

3:5 FIAV 110110.svg FIAV historical.svg 독일의 국기(1933년 ~ 1935년). 제국 시절 국기와 배색은 같고 비율이 다르다.
3:5 FIAV 110110.svg FIAV historical.svg 독일의 국기(1933년 ~ 1945년).

1933년 1월 30일, 나치 정권이 수립되었고, 흑적금 삼색기는 걸레짝이 되었다. 동년 3월 12일, 법으로 두 가지 기를 국기로 정했는데, 하나는 제국 시절 삼색기를 재도입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나치당 당기였다.[31][32]

독일 제국대통령(Reichspräsident 라이히스프레지덴트[*])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죽고 1년 뒤인 1935년 9월 15일, 히틀러는 대통령과 총리를 합친 총통(Führer 퓌러[*])이 되었다. 이후 국기를 두 개 쓰던 것은 끝났고, 나치 당기만이 독일의 유일한 국기로 사용되게 되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1935년 7월 25일에 발생한 "브레멘 사건"이 거론되고 있다. 이때 한 무리의 시위자들이 뉴욕에 정박중이던 독일 배 SS 브레멘(SS Bremen)에 난입하여 이물 깃대에 걸려 있던 나치 당기를 내려서 찢어버린 뒤 허드슨 강에다 처박아 버렸다. 독일 대사관이 항의하자 미국 공무원들은 독일 국기는 손상을 입지 않았으며 손상된 것은 일개 정당의 상징일 뿐이라고 대꾸했다.[33] 새로운 국기법이[34]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연례 당대회에서 발표되었고,[35] 이 자리에서 헤르만 괴링은 흑백적 삼색기는 지나간 시절의 상징이며 "반동분자들"이 사용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36]

나치 기의 디자인은 1920년대 중반에 히틀러가 제안했으며, 처음에 당기로 사용되었다. 적색 배경에 백색 원반과 흑색 스바스티카가 중앙에 위치한 모양이다. 《나의 투쟁》에서 히틀러는 나치 기가 만들어진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우선 제국 시절의 깃발과 같은 색상을 사용해야 한다. 히틀러의 의견에 따르면 그 색상들은 "영광스러운 과거와 독일 민족의 영광에 대한 존경을 나타내는 존경받는 색상"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새로운 기는 … 거대한 포스터와 같은 효율성을 지녀야 한다.” 왜냐하면 “수백 수천 가지 경우에서 매우 눈에 띄는 엠블렘이야말로 운동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제1요인”이기 때문이다. 나치 프로파간다는 기가 상징하는 바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적색은 사회를, 백색은 운동의 국가적 사고를, 스바스티카는 유대인에 대한 아리안 민족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다.[37] 여러 사람들에 의해 여러 가지의 디자인이 제안되었지만, 최종적으로 결정된 것은 히틀러가 직접 만든 디자인이었다.[38]

백색 원반이 중앙에서 벗어난 스바스티카 기는 독일 선적의 민간 선박의 상선기로 사용되다가, 독일 전쟁해군(Kriegsmarine 크리그스마리네[*]) 군함의 해군기로 사용되었다.[39] 해상에서 사용된 스바스티카 기는 "왼쪽을 바라보는" 것과 "오른쪽을 바라보는" 것이 따로 있어 좌현과 우현에 각각 게양되었다. 한편 국기로 사용된 것은 어느 쪽에 게양되든 모두 오른쪽을 바라보는 기가 사용되었다.[40]

1933년부터 일러도 1938년까지, 나치는 스바스티카 기들을 피의 기(Blutfahne 블루트파너[*])로 건드림으로써 기를 "정화"하였다. 피의 기란 나치 패거리가 1923년 맥주홀 폭동을 일으켰을 때 사용한 스바스티카 기이다. 이 행사는 뉘른베르크 전당대회 때마다 행해졌다. 1938년 최후의 뉘른베르크 전당대회 이후에도 이 짓을 계속했는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연합국 관리위원회가 제정한 첫 법률은 모든 나치 상징을 폐기하고 관련 법규들을 모두 폐지하는 것이었다.[41] 그때 이후로 많은 서방세계 국가에서 스바스티카 깃발의 소지는 불법이 되었으며, 특히 독일에서는 반입이나 전시도 금지된다.

2차 대전 종전 직후[편집]

2:3 FIAV 000100.svg FIAV historical.svg 독일의 국기 (1946년 ~ 1949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한 이후, 점령된 독일 지역은 연합군이 분할 통치하게 되었다. 이 당시 독일 정부 및 독일 국기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국제법 상 독일 함선은 국기를 달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결국 연합국 점령위원회국제 신호기에서 스왈로테일 끝에 C를 상징하는 C-삼각기(독일어: C-Doppelstander)로 알려진 기를 지정했다. 위원회는 "이 기에 대해 모든 국적의 군함이나 상선에 대한 경례를 표하기 위해 기를 올렸다가 내리는 식을 할 수 없다"라고 정했다.[42] 마찬가지로, 점령된 일본 지역에서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스왈로테일 끝에 E를 상징하는 신호기를 사용했다.

오데르-나이세 선 서부의 독일 주들은 점령 지역을 따라 재편되었으며 새로운 주 정부가 수립되었다. 미국 점령 지역 내에서 옛 뷔르템베르크 자유주바덴 공화국의 북부 절반이 1946년 뷔르템베르크바덴 주로 통합되었다. 이 주의 주기는 검정-빨강-황금색 삼색기로 선정했다.[43] 이러한 색상 선색은 삼색기의 역사적 사용 방식에 근거하진 않았지만, 빨강-검정으로 이루어진 뷔르템베르크 주기에 황금색을 추가한 간단한 방식이었다.[44] 공교롭게도 바덴 주의 주기는 빨강-노랑으로 색상 선택이 두 주기의 조합으로 오해받을 수 있었다. 1952년 뷔르텐베르크바덴 주는 현대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일부가 되었으며, 주기는 검정-황금으로 선정했다.

전후 만들어진 2개의 다른 주인 라인란트팔츠 주(프랑스 점령 지역) 및 니더작센 주(영국 점령 지역)은 주기에 휘장을 덧붙인 검정-빨강-황금색의 삼색기를 공통으로 이용하기로 결정했다.[45][46] 이 두 주는 다른 주의 일부분에서 떼어져서 새롭게 만들어진 주였으며, 이전 주에서 가져올 색상 조합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새로운 주기를 받아들였다. 다음과 같은 두가지 이유로 검정-빨강-황금색의 삼색기를 이용했다. 이 색상은 이전 주의 어느 하나와 특별하게 관련이 있지 않았으며, 이전의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사용한 국기로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47][48]

분단 독일[편집]

재통일 이후 현재[편집]

참조 사항[편집]

각주[편집]

  1. “Anordnung über die deutschen Flaggen, dated 13.11.1996” (pdf) (독일어). 2012년 2월 14일에 확인함. Die Bundesflagge besteht aus drei gleich breiten Querstreifen, oben schwarz, in der Mitte rot, unten goldfarben [국기는 폭이 같은 가로줄 세 개로 구성된다. 위줄은 흑색, 중간은 적색, 아래줄은 금색이다] 
  2. http://bundesrecht.juris.de/gg/art_22.html, Artikel 22 des Grundgesetzes für die Bundesrepublik Deutschland
  3. Federal Parliament of Germany (2004년 12월 15일). “Schwarz Rot Gold. Symbol der Einheit” (독일어). 2007년 5월 29일에 확인함. 
  4. The Flag of Germany
  5. Basic Law for the Federal Republic of Germany (23 May 1949). German version and English version (December 2000) (PDF). See Article 22. Retrieved on 24 February 2008. Archived 2월 27, 2008 - 웨이백 머신
  6. Federal Government of Germany (1950년 7월 7일). “Anordnung über die deutschen Flaggen” (독일어). 《documentArchiv.de》. 2007년 8월 9일에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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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Federal Government of Germany (1956년 5월 25일). “Anordnung des Bundespräsidenten über die Dienstflagge der Seestreitkräfte der Bundeswehr” (German). 《Gesetze im Internet》. 2008년 2월 10일에 확인함. 
  11. Government of the German Reich (1921년 4월 11일). “Verordnung über die deutschen Flaggen” (독일어). 《documentArchiv.de》. 2007년 8월 9일에 확인함. 
  12. “Colours of the Flag (Germany)”. 《Flags of the World》. 1998년 8월 5일. 2008년 2월 24일에 확인함.  Contains a letter from the German Ministry of the Interior (30 July 1998)
  13. Federal Government of Germany (2007년 12월 17일). “Primärfarben” (독일어). 《Corporate Design Documentation》. 20107-09-26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2월 26일에 확인함. 
  14. (독일어) Dreyhaupt, Rüdiger F. (2000). “Flags of the Weimar Republic”. Der Flaggenkurier 11: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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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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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어) Jörg-M. Hormann, Dominik Plaschke: Deutsche Flaggen. Geschichte, Tradition, Verwendung. Edition Maritim, Hamburg 2006. ISBN 3-89225-555-5.
  • (독일어) Ottfried Neubecker: Heraldik. Wolfgang Krüger Verlag, Frankfurt am Main 1977. ISBN 3-8105-13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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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어) W. Smith, O. Neubecker: Die Zeichen der Menschen und Völker. Unsere Welt in Fahnen und Flaggen. Reich Verlag AG, Luzern 1975. ISBN 3-7243-0115-4.
  • (독일어) Veit Valentin, Ottfried Neubecker: Die deutschen Farben. Leipzig 1929.
  • (독일어) Paul Wentzcke: Die deutschen Farben, ihre Entwicklung und Deutung sowie ihre Stellung in der deutschen Geschichte. (Quellen und Darstellungen zur Geschichte der Burschenschaft und der deutschen Einheitsbewegung, 9), Heidelberg 1927, 2. Aufl. 1955.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