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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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국/이스라일국
히브리어: מְדִינַת יִשְׂרָאֵל‎
아랍어: دَوْلَة إِسْرَائِيل‎
Flag of Israel.svg Emblem of Israel.svg
국기 국장
표어 없음
국가 희망
Israel on the globe (de-facto) (Europe centered).svg
수도 텔아비브
(예루살렘을 수도로 주장1) 북위 32° 04′ 00″ 동경 34° 47′ 00″ / 북위 32.066667° 동경 34.783333° / 32.066667; 34.783333
정치
공용어 히브리어, 아랍어
정부 형태 단일국가, 양원제, 의원 내각제 공화국
대통령
총리
류벤 리블린
베냐민 네타냐후
역사
독립  
 • 독립 영국으로부터 독립
1948년 5월 14일
지리
면적 20,770km² (150 위)
내수면 비율 약 2
시간대 IST (UTC+2)
DST IDT (UTC+3)
인구
2015년 어림 8,309,400명 (97위)
인구 밀도 333명/km² (19위)
경제
GDP(PPP) 2012년 어림값
 • 전체 $2,528억 (49위)
 • 일인당 $32,200[1] (30위)
HDI 0.900 (16위, 2012년 조사)
통화 신 셰켈2 (ILS)
기타
ISO 3166-1 376, IL, ISR
도메인 .il
국제 전화 +972

1현재 예루살렘 서부는 이스라엘, 동부는 팔레스타인(요르단 강 서안 지구)이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실질적인 수도 역할은 최대 도시인 텔아비브가 맡고 있는 실정이다.

이스라엘국(히브리어: מדינת ישראל 메디나트 이스라엘, 아랍어: دولة إسرائيل 다울라트 이스라일[*])은 서부 아시아의 남쪽, 이집트의 동쪽에 있는 중동 국가이다. 비교적으로 작은 지역이지만 지리적으로 다채로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2] 기본법에서 스스로 민주 국가임을 정의하고 있다.

1947년 11월 29일, 유엔 총회가 영국의 위임 통치를 받던 팔레스타인강제적인 분할 계획을 채택하여 실행을 추진했다. 1948년 5월 14일, 세계 시오니즘 단체 경영이사, 그리고 팔레스타인 유대인 기구의 대통령 다비드 벤 구리온은 "에레츠 이스라엘에서 유대 국가를 수립하고 이스라엘 국가로 한다"고 선언했다.

1948년 5월 15일, 영국의 위임통치 종료와 함께 독립이 되었다.[3][4] 다음 날, 근처의 아랍 군대는 팔레스타인을 침공하고, 이스라엘 군대와 싸웠다. 이스라엘은 여러 번의 중동 전쟁을 하는 동안[5] 요르단 강 서안 지구, 시나이 반도 (1967년 ~ 1982년 사이), 남레바논(1982년 ~ 2000년 사이), 가자 지구골란 고원을 점령했다.[6][7][8][9][10]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지역을 부분 합병했지만, 요르단 강 서안 지구와의 국경은 논란이 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요르단과 평화 조약을 체결했지만,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을 해결은 여전히 이 지역의 갈등의 불씨로 작용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금융, 경제 중심지는 텔아비브이며[11], 예루살렘(동예루살렘을 포함할 시)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로 수도로 지정되었다.[12] 이스라엘 중앙국의 통계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인구는 8,051,200 명인걸로 2013년에 추산되었다. 그 중 6,045,900 명은 유태인이며, 아랍인(드루즈파와 동예루살렘 포함)은 1,663,400 명으로 두번째로 큰 그룹을 형성하고있다.[13] 이스라엘은 다민족국가로서 대부분의 이스라엘의 아랍인들은 이슬람교도이며, 네게브 사막베두인족과 같이 비교적으로 적지만 중요한 집단이다. 나머지는 기독교인들과 드루즈인이다. 그 외의 다른 소수자들은 마론파, 사마리아, 아프리카계 히브리인,[14] 아르메니아인, 체르케스인 등이 있다. 이스라엘은 또한 비시민권자 외국인 노동자들과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망명 신청자들로부터 상당한 인구를 이민받는다.

역사[편집]

1948년 텔 아비브에서 이스라엘의 독립을 선언한 다비드 벤구리온. 그는 이스라엘의 첫 총리이다.

현대 이스라엘은 19세기 시온주의 운동을 배경으로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영국군이 팔레스타인에서 철수하기 전까지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은 서로 충돌하였고 영국은 유대인의 편을 들어주었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은 이르군하가나 등 민병대를 조직하여 아랍인들과 분쟁을 일으켰고, 영국군이 팔레스타인에서 철수하자 이스라엘은 즉각 이스라엘 공화국의 건국을 선포하였고, 서방과 미국으로부터의 무기지원을 받아 아랍 연맹을 물리치고 제1차 중동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또한 제2차 중동 전쟁(시나이전쟁)과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스라엘에 복수를 다짐하던 안와르 사다트가 이집트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다시 중동에는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1973년 10월 6일, 드디어 이집트는 유대인들의 속죄일 욤키푸르 당일 이스라엘에 기습을 감행하기에 이르렀였다.(4차 중동전쟁) 하지만 미국과 서방의 지원을 받던 이스라엘은 비교적 약한 시리아군이 포진한 곳을 공습하면서 전세를 역전하기에 이르렀으며 끝내 제4차 중동전쟁(욤키푸르 전쟁)까지 승리로 이끌어냈다. 하지만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 또한 많은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놀라운 속도로 상처를 회복하였다. 장기간에 걸친 팔레스타인과의 분쟁 결과, 1993년에 PLO와 자치에 합의하여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자 지구요르단 강 서안 지구에 세워졌으나 현재까지도 분쟁은 계속되고 있다.

자연 환경[편집]

이스라엘 지도

지리[편집]

이스라엘은 북쪽으로는 레바논, 북동쪽으로는 시리아, 동쪽으로는 요르단, 남서쪽으로는 이집트, 서쪽으로 지중해와 접해 있다. 이스라엘은 지리적 특징상 아시아아프리카에 가까우며 민족적 특성상으로도 오히려 아프리카인 이집트에 가깝다. 바다와 사막의 사이에 펼쳐진 지역으로 특이한 기후로 인하여 이웃 민족 간에 분쟁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팔레스틴은 여러 작은 지역들로 나뉘어 있는데 이 작은 지역들은 서로 전혀 판이하다. 이들은 해안평야 지대, 구릉 지대, 중앙 산맥 지대, 요르단 계곡 지대, 트랜스요르단 지대, 그리고 북쪽과 남쪽의 이스르엘 평야 지대와 네게브 광야 지대 등이다.

기후[편집]

이스라엘의 기후는 작은 면적에 비해 상당히 복잡한 편이다. 이스라엘의 기후 분포를 이해하려면 이스라엘이 열대성 기후와 온대성 기후의 교차 지점에 있고, 지중해와 아라비아 사막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스라엘 여러 지역간의 지형적인 차이점이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우선 이스라엘의 기후는 열대성 기후온대성 기후로 뚜렷하게 교체되는 계절현상을 보여준다. 연중 4월에서 10월 사이엔 덥고 건조한 긴 여름이 계속되며, 11월에서 이듬해 3월까지의 겨울은 온난하고 다습하다. 이스라엘은 일년이 여름과 겨울로 양분되는 지역이다.

이스라엘 기후는 계절이 뚜렷하게 교차되는 특성으로 인해 더위, 추위, 이슬, 서리, 바람, 눈, 얼음 등의 다양한 기후 현상을 보인다. 해안은 전형적 지중해성 기후여서, 여름에는 32 ~ 37℃까지 올라간다. 한편 고원지대는 더욱 건조하고 서늘한 기후를 보여서 여름에도 지내기 쉽고, 겨울에도 간간이 내리는 비 사이에 밝은 태양이 비치기도 한다. 남부 네겝 지방은 사막 기후이기에 여름에도 밤에는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며 대체로 겨울에 지내기 좋은 기후이다. 예루살렘 등의 고원지대는 더욱 건조하고 서늘한 기후를 보이며, 겨울에도 비와 밝은 태양을 볼 수 있다.

또한 이스라엘은 지정학적으로 서쪽의 지중해라는 큰 바다와 동쪽의 거대한 아라비아 사막 사이에 끼어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아열대성 기후와 지중해성 기후가 교차하는 독특한 기후조건을 지니고 있다. 여름철에는 건조하고 뜨거운 열기의 바람으로 견디기 힘든 여름철 기후를 형성한다. 그리고 겨울철에는 건조하고도 차가운 바람으로 체감 온도를 더욱 낮게 만든다. 유다 광야사해 주변 지역은 사막기후의 영향력이 크게 나타나는 대표적 지역이다. 따라서 이 지역은 목축문화가 발달했다.

이스라엘의 기후를 결정하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이스라엘 각 지역의 지형적 차이다. 지형의 높고 낮음의 차이는 이스라엘에서 강우량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약 9개월 동안의 건기 때는 비가 한 방울도 오지 않는 날씨가 계속된다. 바다에 가까운 해안 평야나 중앙 산지의 서편 곧 바다 쪽에 연한 기슭에는 농경에 충분한 양의 비가 내리며, 여름철에도 다른 어느 지역보다 많은 양의 이슬이 내린다. 따라서 이스라엘에서는 바다에 가까울수록 비옥한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다.

[편집]

이스라엘의 우기철은 이른비, 겨울비, 늦은비가 내리는 세 시기로 구분된다. 이른비는 겨울철이 시작기인 10월 ~ 11월경에 내리는 비다. 그 양은 여름 동안 극도로 건조해진 땅에 물기를 뿌려주는 정도이다. 그러나 이른비로 인하여 여름철 동안 마른 땅은 부드러워 지고, 농부들은 땅을 기경하여 파종할 수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에서는 이른비가 적당한 시기에 내려야 파종을 제때에 할 수 있다. 사막이나 광야지역에도 이른비가 내림으로 목축을 위한 초지가 형성되기 때문에 이른비는 유목민들에게도 매우 중요하였다.

장마비 또는 겨울비는 12월에서 2월 사이에 내리는 본격적인 비이다. 일년 중에 내리는 강우량의 대부분이 이 기간 동안에 내린다. 때로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소낙비가 내려 계곡에는 갑작스럽게 급류가 흐른다. 고대 이스라엘은 장마비를 방수가 잘 되어있는 저수조에 모아 여름철 급수를 대비하였다.

‘봄비’라고도 명명되는 늦은비는 3월-4월경에 내린다. 늦은비는 겨울동안 자란 농작물의 마지막 결실을 충실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늦은비는 곡식의 결실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늦은비를 축복의 단비라 불렀다.

강우량은 지역별로 다른데, 중앙산지는 다른 지역보다 많은 비가 집중적으로 내린다. 산간지역에 내리는 대부분의 겨울철 빗물은 석회암층을 침투하여 땅 깊은 곳에 형성된 지하수층으로 내려가며, 이러한 지하수들은 곳곳에서 샘을 이루어 땅 위로 분출한다. 이스라엘에서의 강우량과 비가 내리는 날수는 남쪽보다 북쪽으로 갈수록 많아진다. 또 산지에서의 강우량은 사막에 인접한 동편 기슭보다 바다에 인접한 서편 기슭이 언제나 많다. 그리고 물의 증발 정도는 태양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는 남쪽에서 보다 더 크다. 이 세 가지 요소를 종합하여 볼 때, 이스라엘에서의 서쪽지역과 북쪽지역은 남쪽지역과 동쪽지역보다 강우량이 더 많고 농작물의 재배에도 적합한 지역이다.

정치 및 외교[편집]

이 나라는 공화정이며 의원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대통령은 의례적인 역할하는 존재이다. 현재 총리는 2009년 3월 31일 취임한 베냐민 네타냐후이다. 이스라엘은 전 세계에 161개국과 외교 관계를 맺고 94개의 대사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와는 적대적인 관계에 있으며, 상당수 이슬람 국가들과는 외교 관계도 없고 이들 국가는 이스라엘을 승인하지 않고 있다. 아랍 연합 회원국 중에서는 이집트, 요르단과만 정식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이집트와는 1979년에, 요르단과는 1994년에 평화조약을 각각 체결하였고, 모리타니1999년에 이스라엘과 완전한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으나 최근 단교했다. 역시 이슬람 국가인 이란과도 외교 관계가 없으며,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파키스탄 등 일부 남아시아·동남아시아의 이슬람 국가와도 외교 관계가 없다. 비이슬람권 국가 중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쿠바(쿠바 혁명 이후)와만 전통적으로 외교 관계가 없어왔으며, 최근 가자 지구 사태로 라틴 아메리카의 좌파 정권 국가인 니카라과·베네수엘라·볼리비아와 외교관계가 단절되었다. 이스라엘 주변의 이슬람교 국가들이 엘알 이스라엘 항공 등 이스라엘 국적 항공사대한항공 등 제3국가 국적의 항공사 소속 비행기들이 자국 영공 통과를 금지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이스라엘 관계[편집]

대한민국과는 1950년 한국 전쟁에서 의료 부대를 파병한 이후, 1962년 4월 수교하여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1962년 5월 7일경, 이스라엘은 주일 이스라엘 대사 다니엘 레빈을 한국 대사직(비주재)에 겸임하도록 임명하였다.[15] 그러나 대한민국이 원유 수급과 건설시장 확보를 위하여 아랍 국가와의 관계를 강화하자, 대한민국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위축되었다. 이스라엘은 1978년 주한 대사관을 폐쇄하고, 주일 대사관에서 대한민국 관련 업무를 담당하도록 하여 양국의 관계는 다소 소원해졌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관계 개선의 필요성이 커져, 양국은 1992년1993년 상주 대사관을 각각 재개설하였고, 다시 우호적인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대한항공이 이스라엘 텔아비브로 주 3회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취항하며 이 때는 이스라엘의 적국 영공을 통과하지 않기 위해 지중해 쪽으로 돌아가는 항로를 이용한다.

한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아랍 국가들을 지지 및 지원하고 있어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에 있으며, 서로를 승인하지 않고 있다.[16]

시리아와의 관계[편집]

이스라엘과 시리아 양국 정부는 2008년 5월 이후, 터키의 중재로, 간접 평화교섭을 재개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여름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가 사의를 표명하여 교섭도 중단되었고 게다가 같은 해 말,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을 이유로 시리아는 교섭동결을 표명하였다. 최대의 쟁점은 골란고원의 귀속문제인데, 시리아와 이란 간의 관계, 시리아가 지원하는 레바논의 시아파 조직 헤즈볼라의 무장문제 등도 교섭 과제이다. 미국의 오바마 정권은 시리아와의 관계 수복을 도모하여, 평화교섭재개의 환경을 조성하는데 열의를 보이고 있다. 또한 2009년 3월에 발존한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도 교섭재개의 원칙을 향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정권은 골란고원 반환에 소극적이고, 시리아도 또한 이 정권에 강한 불신감을 표명하고 있는 등, 교섭재개를 향한 구체적인 움직임은 아직 없다.[17]

행정 구역[편집]

수도예루살렘(히브리어로는 '예루샬라임', 아랍어로는 '알 쿠드스')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질적인 수도는 텔아비브이다.

국방[편집]

이스라엘의 군인이 아랍 민간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스라엘은 인접 아랍국가들과 팔레스타인과의 잦은 분쟁 때문에 징병제를 채택하게 된 국가로서 남자와 여자 모두 병역 의무를 지고 있고 병역 기간은 남자는 3년, 여자는 2년에서 3년 동안 복무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특히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과 드루즈교를 믿는 사람들은 군에 복무해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과는 달리, 1995년부터 폭력에 반대하는 평화주의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신념에 의한 병역거부를 허용하고 있는데 정부의 까다로운 검증을 거쳐야 한다. 본인이 이슬람교 신자이거나 무종교인 사람이라면 징집이 되지 않으나 자원입대는 허용하고 있다.

이스라엘 방위군(약칭 IDF)은 미국제 최신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 오랜 기간동안 미국의 묵인 혹은 지원하에 핵무기를 개발하여 주변 국가들을 겨냥해 네게브 사막 깊숙한 곳에 수백기의 핵탄두를 숨겨놓았다. 비공식 핵 보유국이다.

이스라엘은 선진국들 중에서 사우디 아라비아와 오만 다음으로 가장 높은 GDP 대비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는 나라다. 이스라엘 방위군(IDF)은 이스라엘의 보안 조직들 중 유일한 군사 조직이며 내각에 속한 참모총장의 지휘를 받고 있다. IDF는 육군, 해군, 공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스라엘 방위군은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기간 동안 건국 이전부터 존재했던 하가나 같은 준군사조직들이 통합되면서 세워졌다. IDF는 또한 군 정보부에 많이 의지하며 짧은 역사 속에서 여러 주요 전쟁들과 국경 분쟁에 참여하였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실전에 능숙한 군대가 되었다.

경제[편집]

초기에는 미미 하였지만, 이스라엘의 경제는 오히려 주변 아랍국가를 뛰어넘고 있는 실정이다. 이스라엘은 종횡단거리가 짧아서 자동차, 버스, 트럭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으로도 쉽게 갈 수 있게 해주는 광범위한 도로망이 주요한 교통수단이 되고 있다. 철도는 전국으로 예루살렘, 텔아비브, 하이파, 나하리야를 오가고 있다. 벤구리온 국제 공항은 이스라엘의 가장 큰 주요 국제 공항이다.[18]

사회[편집]

국민[편집]

국민의 4분의 3 이상이 유대인, 20%가 팔레스타인인이며[19], 그 외에 많은 소수민족이 있다. 한국인은 유학이나 사업 관계로 소수가 거주한다. 유대인은 건국 이후 주변 아랍 국가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유입되어 그 수가 크게 불어났으나, 최근에는 팔레스타인인의 출생률이 높아 팔레스타인인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 국적의 팔레스타인인은 이스라엘 국민으로서 법적으로 유대인과 동등한 지위를 보장받으며(단, 무슬림인 경우 군복무 의무는 없음), 국회에는 의석의 일정 비율은 팔레스타인인에게 의무적으로 배당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에서 소수인으로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고, 교육과 취업의 기회도 적기 때문에 유대인에 비해 사회·경제적 조건이 열악하다[20][21].

언어[편집]

히브리어(국민어)와 아랍어공용어이다. 히브리 문자와 아랍 문자 표기 방식은 모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쓴다. 특히, 히브리어는 이스라엘의 국가 언어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약 30년에 걸친 영국의 신탁 통치와 미국에서 건너온 많은 이주민의 영향, 정부의 영어 교육으로 영어도 제2언어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그래서 모든 도로 및 공공장소의 표지에는 히브리어, 아랍어, 영어를 함께 표기한다. 요르단, 이집트, 레바논계 유대인은 아랍어 사용을 많이 한다. 한편 소련에서 건너온 유대인도 많기 때문에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이 아랍어 다음으로 많다.

교육[편집]

문맹률은 중동 국가 중에서 가장 낮다.[22] 의무교육은 1학년에서 12학년까지다. 나라 전체에 여덟 개 대학이 있고 여러 단과 대학이 있다. 예루살렘에 위치한 히브리 대학교는 중동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킹사우드대학교와 함께 200위 안인 대학교다.

문화[편집]

종교[편집]

수도인 예루살렘에는 수많은 유대교, 이슬람교기독교 성지가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유대교가 약 80% 이상으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종교이며, 이슬람(수니파), 기독교, 메시아닉쥬, 신약성서에도 등장하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믿는 사마리아 종교, 드루즈(이슬람과 기독교가 혼합된 사상) 등이 존재한다.[23]

관광[편집]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은 기독교이슬람교의 성지로 세계 3대 종교의 성지순례객이 끊이지 않는다. 또한 베들레헴, 나사렛, 갈릴리 지역들은 예루살렘과 함께 종교관광지로서 각국의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단, 레바논 접경지역과 가자지구는 군사적 분쟁과 테러위험이 존재한다.

출처 및 주해[편집]

  1. Israel's per capita GDP adjusted for purchasing power parity (PPP)
  2. https://www.cia.gov/library/publications/the-world-factbook/geos/is.html
  3. http://www.mfa.gov.il/mfa/foreignpolicy/peace/guide/pages/declaration%20of%20establishment%20of%20state%20of%20israel.aspx
  4. http://www.mfa.gov.il/mfa/aboutisrael/history/pages/zionist%20leaders-%20david%20ben-gurion.aspx
  5. Gilbert, Martin (2005). The Routledge Atlas Of The Arab–Israeli conflict (8th ed.). Routledge. ISBN 0-415-35900-7.
  6. 〈The status of Jerusalem〉. 《The Question of Palestine & the United Nations》. United Nations Department of Public Information. East Jerusalem has been considered, by both the General Assembly and the Security Council, as part of the occupied Palestinian territory. 
  7. BBC News (29 March 2006). “Analysis: Kadima's big plans”. 10 October 2010에 확인함. 
  8. Kessner, BC (2 April 2006). “Israel’s Hard-Learned Lessons”. Homeland Security Today. 26 April 2012에 확인함. 
  9. Kumaraswamy, P. R. (5 June 2002). “The Legacy of Undefined Borders”. Tel Aviv Notes. 25 March 2013에 확인함. 
  10. “Israel Journal: A Land Without Borders”. 《The Epoch Times》. 20 March 2012에 확인함. 
  11. http://www.lboro.ac.uk/gawc/world2008t.html
  12. http://www.knesset.gov.il/laws/special/eng/basic10_eng.htm
  13. http://www.jewishvirtuallibrary.org/jsource/Society_&_Culture/newpop.html
  14. http://www.globalpost.com/dispatch/israel-and-palestine/090430/israels-black-hebrews
  15. “駐韓이스라엘大使...레駐日大使가兼任”. 동아일보. 1962년 5월 9일. 【예루살렘7日로이타同和本社特約】 駐日 이스라엘 大使 다니엘 레빈 博士는 한국대사직 (비주재)을 겸임토록 임명되었다고 예루살렘에서 발표되었다. 
  16.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이스라엘 참조.
  17. 다테야마 료오지 (立山良司) 외 1. 〈中東〉. 《현대용어의 기초지식(現代用語の基礎知識)》 (일본어). 지유고쿠민샤(自有国民社). 555쪽. ISBN 978-4-426-10128-2. 
  18.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이스라엘의 교통·도시
  19. Israeli Arabs: 'Unequal citizens' BBC
  20. 차별에 우는 아랍계 이스라엘인 주간동아 2007년 2월 13일
  21. 이스라엘 아랍인 사면초가 서울신문 2009년 4월 22일
  22. 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 Report 2005
  23. 세계기도정보

바깥 고리[편집]

이스라엘[편집]

대한민국[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