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별칭 | 태극전사, 붉은 악마, 아시아의 호랑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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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맹 | 대한축구협회 |
대륙 | 아시아 축구 연맹 |
감독 | 울리 슈틸리케 |
주장 | 기성용 |
최다 출전자 | 홍명보 (136 출전) |
최다 득점자 | 차범근 (58 득점)[1] |
최연소 출전자 | 김판근 (17세 242일) |
홈 구장 | 대한민국 소재 축구 경기장 |
FIFA 코드 | KOR |
FIFA 랭킹 | 57위 (2015년 9월) 확인 최고 순위: 17위 (1998년 12월) 최저 순위: 57위 (2015년 9월) |
첫 국제 경기 출전 |
대한민국 5 - 1 홍콩 (영국령 홍콩; 1948년 7월 6일) [2] |
최다 점수차 승리 |
대한민국 16 - 0 네팔 (대한민국 인천; 2003년 9월 29일) |
최다 점수차 패배 |
대한민국 0 - 12 스웨덴 (영국 런던; 1948년 8월 5일) |
유니폼 | |
FIFA 월드컵 | |
출전 횟수 | 9회 (1954년에 처음 출전) |
최고 성적 | 4위 (2002년) |
AFC 아시안컵 | |
출전 횟수 | 13회 (1956년에 처음 출전) |
최고 성적 | 우승 (1956년, 1960년)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 |
출전 횟수 | 1회 (2001년에 처음 출전) |
최고 성적 | 조별리그 (2001년) |
메달 기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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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축구 | |||
아시안 게임 | |||
은 | 1954 마닐라 | 축구 | |
은 | 1958 도쿄 | 축구 | |
은 | 1962 자카르타 | 축구 | |
금 | 1970 방콕 | 축구 | |
금 | 1978 방콕 | 축구 | |
금 | 1986 서울 | 축구 | |
동 | 1990 베이징 | 축구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대한민국의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대한축구협회에 의해 구성된다. 아시아에서 가장 성공적인 대표팀중 하나며 1948년 하계 올림픽에서 처음 국제 무대에 발을 내디뎠고 월드컵 진출은 1954년 FIFA 월드컵이 처음이다. 1986년 FIFA 월드컵부터 2014년 FIFA 월드컵까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8회 연속 본선에 진출했으며, 일본과 공동개최한 2002년 FIFA 월드컵에서는 아시아 최초로 4강에 진출하였다. 아시아 축구 연맹에 포함된 국가 중에서 FIFA 월드컵 최다 출전한 국가이다. 한편 역대감독으론, 남미보단 유럽, 동유럽 및 북유럽보단 서유럽, 서유럽중에서도 유독 네덜란드인 감독이 많이 대한민국 국가대표감독을 거쳣다.
목차
월드컵 역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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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스위스 월드컵[편집]
대한민국이 월드컵 본선에 처음 나선 것은 6.25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던 1954년 FIFA 월드컵이다. 김용식 코치 등 22명의 선수단이 방콕을 거쳐 50여 시간의 비행 끝에 대회 개막 바로 전날 밤에 스위스 베른에 도착하였고, 미숙한 준비 속에서 경기에 임한다. 당시 선수 교체 제도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기 도중 일부 탈진한 선수 몇 명이 쓰러지기도 하였으며, 결국 헝가리에게 0:9, 터키에게 0:7이라는 큰 점수차로 패배하였고, 대회 최하위를 기록하며 세계의 높은 장벽을 실감한 채 귀국한다. 이후, 계속된 노력에도 불구하고 32년 만인 1986년 FIFA 월드컵에서야 월드컵 본선 무대를 다시 밟게 되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경기 결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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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멕시코 월드컵[편집]
1986년 FIFA 월드컵에서는 우승후보로 불리는 국가들과 같은 조가 되었다.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한 조별 예선 첫 번째 경기에서 마라도나의 활약을 막지 못하고 3골을 내줬다. 하지만 대한민국도 막판 분전을 하여 후반 28분 박창선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최초의 월드컵 경기에서의 득점을 성공시켰다. 결과는 대한민국의 1:3 패배였다. 두 번째 경기인 불가리아와의 경기에서는 김종부의 득점에 힘입어 1:1로 비기며, 월드컵 사상 첫 승점을 따내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였던 이탈리아전에서 편파판정에 시달려 페널티킥을 허용했지만 이것이 골포스트를 맞춰서 실패하는 바람에 편파판정에 관한 의미는 사라졌으나 결과는 2:3으로 패배하며 최종 결과 1무 2패로 16강 진출에 실패하였다. 비록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월드컵에 진출한 역사상 처음으로 골을 넣고 첫 승점을 따낸 대회였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경기 결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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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편집]
역대 지역예선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내며 16강의 부푼꿈을 안고 2회 연속으로 진출한 1990년 FIFA 월드컵에서 한국은 벨기에에게 0:2 패, 스페인에게 1:3 패, 우루과이에게 0:1 패로 월드컵 조별 예선 최악의 성적인 3패를 기록하였다. 스페인전의 황보관의 프리킥 골이 유일한 득점이였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경기 결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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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미국 월드컵[편집]
1994년 FIFA 월드컵에서는 도하의 기적에 힘입어 3회 연속으로 본선에 진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1차전인 스페인와의 경기에서 후반 40분에 터진 홍명보의 골과 후반 45분에 터진 서정원의 골로 2:2 무승부를 기록함으로써, 지난 1990년 FIFA 월드컵에 이어 스페인에게 2번 연속 패배를 간신히 면하였을 뿐만 아니라 월드컵 출전 첫 경기부터 사상 처음으로 승점을 얻었으며 볼리비아와의 2차전에서는 0:0으로 무승부를 거두어 승점 2점을 땄다. 그러나 3차전인 독일과의 경기에서 후반전 분전에도 불구하고 2:3으로 패배해 16강 진출에 실패하였다. 만일 그 당시에 대한민국이 한 골을 더 넣어서 3:3으로 종료되어 최종결과가 3무승부(승점 3점과 골득실차 0점)를 기록하였더라도 16강 진출이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였다. 각 조 3위의 마지막으로 16강에 진출한 국가는 승점 4점이었던 이탈리아였는데 이탈리아와 같은 조였던 노르웨이는 승점 4점으로 대한민국보다 유리한 지점에 있을 뿐 아니라 이탈리아하고 골득실차까지도 동일했다. 노르웨이가 다득점에서 이탈리아에 앞섰으면 조 3위로 16강에 나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낮았기 때문에 조 3위로 16강 진출에 실패하는 상황이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경기 결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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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프랑스 월드컵[편집]
4회 연속으로 진출한 1998년 FIFA 월드컵에서는 1차전인 멕시코전에서 대한민국은 전반전에 나온 하석주의 선제골로 앞서 나갔지만, 하석주가 득점을 기록한 이후 상대 선수에 대한 백태클로 퇴장을 당하였고, 이후 후반전에서 연이어 실점을 거듭하여 1:3으로 역전패했다. 2차전은 조별 예선 상대 중 가장 강한 네덜란드와의 경기였다. 선수들은 기량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0:5로 대패하고 말았다.
당시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은 이후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감독을 맡게 되는 거스 히딩크였다. 대표팀은 네덜란드전의 대패 여파로 인해 당시 대표팀 감독이었던 차범근 감독이 대회 도중에 경질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겪게 되었다.
마지막 경기였던 벨기에전에서 한국은 경기 도중 머리 부상을 당한 이임생이 붕대까지 싸매고 투혼을 불사른 끝에 유상철의 동점골로 1:1로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최종 결과는 1무 2패로 또다시 16강 진출에 실패하였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경기 결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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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대한민국-일본 월드컵[편집]
대한민국과 일본에서 개최된 2002년 대한민국-일본 월드컵은 대한민국 축구 역사는 물론 세계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대회였다. 네덜란드 출신의 거스 히딩크 감독의 지휘 아래 맞이한 폴란드와의 예선 첫 경기에서 황선홍, 유상철의 득점으로 1954년 FIFA 월드컵에 출전한 이후 월드컵 사상 첫 승을 거두었다.
예선 두 번째 시합이었던 미국과의 경기에서, 전반전에는 미국이 대한민국을 제압했다. 전반전에 미국은 클린트 매시스의 선제골로 앞서가고, 대한민국은 이을용이 페널티킥 기회를 놓쳤다. 하지만 후반전에는 안정환의 동점골이 터지면서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사상 첫 16강 진출에 대한 희망을 이어나갔다.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였던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포르투갈의 두 선수 (주앙 핀투, 베투)가 퇴장당한 가운데, 박지성의 득점으로 1:0승리. D조 1위로 16강에 최초로 진출하였다.
16강전의 상대는 이탈리아였다. 대한민국은 전반 3분 안정환이 페널티킥 기회를 놓쳤다. 게다가, 이탈리아의 크리스티안 비에리에게 선취점을 내주면서 리드를 허용했으나, 후반 43분에 설기현이 동점골을 넣고, 연장 후반전에 안정환이 역전 골든골을 넣으며 2:1로 승리하여 8강에 진출하였다. 당시, 이탈리아 대표팀 선수였던 프란체스코 토티는 연장전에서 시뮬레이션 액션을 이유로 두 번째 경고를 받고 퇴장당했는데, 이 판정에 관한 논란이 뜨거웠다.[3] 하지만 당시 이탈리아 선수들의 팔꿈치가격으로 인해 김태영, 김남일 같은 선수들이 줄부상을 입기도 했다.[4]
8강전의 상대는 스페인이었다. 이 경기에서 양팀은 정규 시간과 연장을 모두 거친 후에도 0:0 무승부를 기록하였고, 경기는 승부차기로 이어졌다. 결국 스페인의 4번째 키커인 호아킨 산체스의 슛을 골키퍼 이운재가 막아내었고, 민의 마지막 키커였던 홍명보가 승부차기를 성공시키며 대한민국은 사상 최초로 월드컵 4강에 진출하였다.
준결승전(4강전)에서 대한민국은 독일의 미하엘 발라크에게 득점을 허용하며 0:1로 석패하였다. 결국 대한민국은 브라질에게 패배한 터키와 3•4위전을 치르게 되었는데, 3•4위전에서는 이을용이 프리킥 골을 기록했지만 터키의 하칸 쉬퀴르의 최단 시간 골과 일한 만시즈의 추가골로 인해 패색이 짙어졌다. 이후, 후반전 추가 시간에 송종국이 추가골을 넣었지만 최종 결과 2:3 패배로 4위를 기록했다.
또한 대표팀 서포터즈인 붉은 악마를 중심으로 한 길거리 응원은 월드컵의 또다른 볼거리로 꼽혔다. 2002년 월드컵 개인별 수상으로 주장이자 수비의 핵이었던 홍명보가 브론즈볼을 수상하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경기 결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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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독일 월드컵[편집]
2002년 한일 월드컵 직후 명예롭게 떠난 거스 히딩크의 후임으로 움베르투 코엘류를 기용하고 얼마 안가 경질하더니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당시 나이지리아를 이끌고 에르난 크레스포의 아르헨티나를 이기고 금메달을 획득했던 경험이 있는 조 본프레레를 감독으로 앉혔다가 또 다시 얼마 못가 경질했다. 그렇게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선임되어 2006년 월드컵을 준비하게 되었고 뒤늦게 부임한 아드보카트는 시간부족에 허덕여야 했다.
2006년 FIFA 월드컵 조별 예선 1차전에서 토고에게 전반 선제골을 내주었으나 이천수, 안정환의 연속골로 2:1 역전승을 거두며 월드컵 원정 사상 첫 승을 기록했다. 2차전 프랑스와의 경기에서는 박지성의 동점골로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마지막 상대인 스위스와의 3차전에서는 0:2로 패하여 1승 1무 1패를 기록하여 2승 1무를 기록한 스위스에게 밀렸는데 프랑스가 토고전에서 후반전에 2골을 넣어 2:0으로 프랑스가 승리하여 1승 2무가 된 프랑스에게도 밀려 16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3차전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알렉산더 프라이에게 허용했던 두 번째 실점에 대해서는 오프사이드 논란이 뜨거웠고, 한국 내에서는 당시 주심이었던 오라시오 엘리손도에 대한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FIFA의 정밀 분석 결과 오프사이드가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졌다.[5] 또한, 경기 후 24시간 안에 국제축구연맹에 500만명의 국민이 항의시 재경기가 가능하다는 헛소문이 퍼지기도 하였다.[6]
2006년 독일 월드컵 경기 결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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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편집]
3차 예선에서 3승 3무(3조 1위), 최종 예선 4승 4무(B조 1위)로 1954년, 1990년 대회에 이어 다시 한번 무패로 예선을 통과하였다.
한편 3차 예선과 최종 예선에서 모두 대한민국과 같은 조에 편성되었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B조 2위로 본선 직행을 결정지음으로써, 역사상 1974년 FIFA 월드컵에서 참가한 동독과 서독에 이어 두 번째로 분단국가가 월드컵에 동시에 참가하게 되었다.
조 추첨 결과,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그리스와 한 조인 B조에 속했다. 첫 경기 상대인 그리스를 만나 이정수와 박지성의 득점으로 2:0으로 승리하여 원정 경기에서 유럽팀을 상대로 첫 승을 거두었다.
다음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는 박주영의 자책골과 곤살로 이과인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하였다. 이청용의 만회골로 한 점을 만회했지만 결과는 1:4 대패로 끝났다. 특히 이과인의 두 번째 골(대한민국의 3번째 실점)은 오프사이드라는 결론이 나와 논란이 일었다. 같은 날에 열린 그리스와 나이지리아의 경기에서 그리스가 2:1로 역전승을 거둠으로써, 대한민국이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자력으로 16강에 진출하는 길은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길 밖에 없었으며 패배할 경우 무조건 탈락, 무승부를 거둘 경우 아르헨티나가 그리스를 상대로 승리해야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으며 아르헨티나와 그리스가 무승부를 기록할 경우 대한민국과 그리스 상호간의 승점 및 골득실까지 같아지기 때문에 다득점으로 16강 진출팀이 가려지게 되었다.
예선 마지막 경기인 나이지리아와의 게임에서는 우체의 선제골이 있었지만 이정수의 동점골로 만회하였고 이어 박주영이 프리킥으로 역전골을 터뜨려 2:1로 앞서던 도중 김남일의 반칙으로 페널티킥을 얻은 나이지리아의 야쿠부가 동점골을 넣어 경기는 2:2 무승부로 끝났다. 하지만 같은 시각에 열린 아르헨티나가 그리스를 상대로 데미첼리스와 팔레르모의 골로 2:0으로 승리한 덕에 대한민국은 조 2위의 자리로 16강에 진출하였다. 즉, 대한민국이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같은 승점인 1승 1무 1패, 골득실차도 -1를 기록했지만 아르헨티나가 3승으로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함으로써, 사상 처음으로 원정 16강에 진출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한편, 대한민국과 월드컵 본선에 동반 진출했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3패에 골득실 -11로 조 최하위뿐만 아니라 32개 참가팀 중에서도 최하위로 탈락하였으며, 브라질과의 첫 경기에서 나온 지윤남의 골이 유일한 득점이었다.
16강전에서 대한민국은 A조 1위인 우루과이와 경기를 치루게 되었다. 경기 초반 우루과이의 수아레스에게 역습을 통한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후반 이후 경기 흐름을 다시 주도를 만들게 되면서 후반 23분 이청용의 득점으로 동점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수아레스에게 후반 35분 결승골을 내줘 1:2로 아쉽게 패배하여 8강 진출에는 실패하였다.
또한 대한민국은 스페인에 이어 페어플레이상 2위에 오르기도 했었다. 대한민국은 이 대회에서 미국, 이탈리아와 더불어 전 경기 득점을 기록하였다. 대한민국이 전 경기에서 득점을 올린 일은 1986년 대회 이후 24년만이다.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경기 결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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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브라질 월드컵[편집]
2014년 FIFA 월드컵을 앞두고 대한민국은 사상 첫 원정 8강 진출을 목표로 세웠다.[출처 필요] 2014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에서 대한민국은 첫 경기에서 레바논을 6:0으로 대파하며 좋은 출발을 했다. 그러나 2차전 쿠웨이트와의 경기에선 졸전 끝에 1:1로 비기며 우려를 낳았다. 3차전과 4차전에서 아랍에미리트를 각각 2:1, 2:0으로 제압하며 어렵게 조 1위 자리를 유지해 나갔다. 그러나 2011년 11월 15일 베이루트에서 열린 5차전 레바논과의 경기에서 졸전 끝에 1:2로 패하며 최종 예선 진출도 장담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급기야 당시 사령탑이었던 조광래 감독을 경질하였고 전북 현대 감독이었던 최강희를 급히 호출하였다. 최강희는 자신의 임기를 2014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까지라고 선을 그으며 사실상 시한부 감독 역할을 자처하였다. 2014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최종전 쿠웨이트와의 홈 경기에서 이동국과 이근호의 골로 2:0으로 승리하며 간신히 최종 예선 진출에 성공하였다. 이후 2014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에서 대한민국은 1차전에서 카타르를 4:1로 대파하고 2차전에서 레바논을 3:0으로 격파하며 좋은 출발을 했다. 그러나 3차전에서 우즈베키스탄과 졸전 끝에 2:2 무승부를 기록했으며 테헤란에서 열린 4차전 이란과의 경기에서는 마수드 쇼자에이의 퇴장으로 수적 우위를 점했음에도 불구하고 0:1로 패하며 가시밭길을 걷기 시작했다. 5차전에서 다시 카타르를 손흥민의 극적인 버저비터 골로 2:1로 승리하며 한숨을 돌렸지만 6차전 레바논과의 경기에서는 다시 졸전 끝에 1:1로 비겼다. 7차전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는 상대의 자책골로 1-0으로 승리하였다. 마지막 라운드인 8차전 이란과의 경기에서는 0:1로 패했으나 3위 우즈베키스탄보다 골득실이 1골 앞서 본선 진출에 성공하였다.
이후 최강희 감독이 물러나고 홍명보 감독이 새로 부임했다. 2014년 FIFA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은 벨기에, 알제리, 러시아와 함께 H조에 속했다. 대한민국은 1차전 상대 러시아를 맞아 좋은 경기력을 보였다. 후반 23분 이근호의 중거리 슛을 러시아의 골키퍼 이고르 아킨페예프가 제대로 잡지 못하고 뒤로 흘리며 선제골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6분 후 문전 혼전 상황에서 알렉산드르 케르자코프를 제대로 마크하지 못하며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대한민국은 러시아전 때와 같은 전술을 들고 나온 반면 1패를 안고 있던 알제리는 주전 선수 5명을 교체하며 공격적인 전술로 경기에 임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다시 수비 불안 문제를 노출하며 전반전에만 알제리에게 3골을 내주고 무기력하게 끌려갔으며, 그 3골을 내주는 동안 슈팅은 한 차례도 날리지 못했다. 후반전에 손흥민과 구자철이 만회골을 넣으며 분전했지만 결과는 2:4로 패배하여 16강 진출에 적신호가 켜졌다. 3차전 상대인 벨기에를 맞아 홍명보 감독은 부진했던 원톱 박주영과 골키퍼 정성룡을 선발 명단에서 제외하고 대신 김신욱과 김승규를 선발 출전시켰다. 경기 중 벨기에의 스테번 드푸르가 김신욱에게 반칙을 범해 퇴장당하여 수적으로 우세한 상황에 놓였음에도 불구하고 고질적인 문제인 골 결정력 부족 등으로 수적 우위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여 후반 33분 얀 페르통언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0:1로 아쉽게 패배하였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결국 1998년 FIFA 월드컵 이후 16년 만에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1무 2패로 16강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으며, 이에 앞서 대한민국과 함께 AFC에 소속된 국가로써 월드컵에 참가한 일본(1무 2패), 이란(1무 2패), 오스트레일리아(3패)도 잇달아 단 1승도 없이 16강 진출에 실패함으로써 월드컵에 참가한 아시아 지역의 축구 국가대표팀 모두가 무승으로 16강 진출에 실패하는 불명예까지 떠안게 되었다. 월드컵이 끝난 후 홍명보 감독은 수많은 논란 속에 결국 사퇴하였고, 독일 출신인 울리 슈틸리케가 새로운 감독으로 신임되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경기 결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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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러시아 월드컵[편집]
선수단[편집]
현재 선수 명단[편집]
- 2015년 8월 28일 대한축구협회에서 발표한 2018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겸 2019년 AFC 아시안컵 지역 2차 예선 2015년 9월 경기에 출전하는 최종 선수 명단.
- 소속팀, A매치 출전 횟수와 골 수는 2015년 9월 3일 열린 라오스과의 경기 이후 기준.
번호 | 이름 | 생일 (나이) | 클럽 | 출장 | 골 | 데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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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키퍼 | |||||||
21 | 김승규 | 1990년 9월 30일 | (24세)울산 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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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페루, 2013년 8월 14일 | |
1 | 권순태 | 1984년 9월 11일 | (30세)전북 현대 모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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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라오스, 2015년 9월 3일 | |
23 | 김동준 | 1994년 12월 19일 | (20세)연세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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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칸 | |
수비수 | |||||||
4 | 김기희 | 1989년 7월 13일 | (26세)전북 현대 모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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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오스트레일리아, 2012년 11월 14일 | |
15 | 홍정호 | 1989년 8월 12일 | (26세)아우크스부르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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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나이지리아, 2010년 8월 11일 | |
19 | 김영권 | 1990년 2월 27일 | (25세)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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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나이지리아, 2010년 8월 11일 | |
5 | 곽태휘 | 1981년 7월 8일 | (34세)알힐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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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칠레, 2008년 1월 30일 | |
2 | 임창우 | 1992년 2월 13일 | (23세)울산 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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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중국, 2015년 8월 2일 | |
3 | 김진수 | 1992년 6월 13일 | (23세)호펜하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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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오스트레일리아, 2013년 7월 20일 | |
20 | 장현수 | 1991년 9월 28일 | (23세)광저우 푸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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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이란, 2013년 6월 18일 | |
12 | 홍철 | 1990년 9월 17일 | (24세)수원 삼성 블루윙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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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터키, 2011년 2월 9일 | |
미드필더 | |||||||
22 | 권창훈 | 1994년 6월 30일 | (21세)수원 삼성 블루윙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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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중국, 2015년 8월 2일 | |
16 | 기성용 | 1989년 1월 24일 | (26세)스완지 시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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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요르단, 2008년 9월 5일 | |
17 | 이청용 | 1988년 7월 2일 | (27세)크리스털 팰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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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요르단, 2008년 5월 31일 | |
8 | 이재성 | 1992년 8월 10일 | (23세)전북 현대 모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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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우즈베키스탄, 2015년 3월 27일 | |
13 | 구자철 | 1989년 2월 27일 | (26세)아우크스부르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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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중국, 2008년 2월 17일 | |
6 | 박주호 | 1987년 1월 16일 | (28세)보루시아 도르트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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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핀란드, 2010년 1월 18일 | |
7 | 손흥민 | 1992년 7월 8일 | (23세)토트넘 홋스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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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시리아, 2010년 12월 30일 | |
14 | 정우영 | 1989년 12월 14일 | (25세)빗셀 고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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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아랍에미리트, 2015년 6월 11일 | |
11 | 김승대 | 1991년 4월 1일 | (24세)포항 스틸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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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중국, 2015년 8월 2일 | |
18 | 김민우 | 1990년 2월 25일 | (25세)사간 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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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중국, 2013년 7월 24일 | |
공격수 | |||||||
9 | 석현준 | 1991년 6월 29일 | (24세)비토리아 드 세투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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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이란, 2010년 9월 7일 | |
10 | 황의조 | 1992년 8월 28일 | (23세)성남 F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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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라오스, 2015년 9월 3일 |
최근 1년이내에 차출된 선수 명단[편집]
최근 12개월 이내에 국가대표팀에 소집된 선수 명단. 은퇴한 선수는 명단에 없다.
이름 | 생일 (나이) | 클럽 | 출장 | 골 | 최근 소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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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키퍼 | ||||||
이범영 | 1989년 4월 2일 | (26세)부산 아이파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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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EAFF 동아시안컵 | |
구성윤 | 1994년 6월 27일 | (21세)콘사돌레 삿포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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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EAFF 동아시안컵 | |
김진현 | 1987년 7월 6일 | (28세)세레소 오사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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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미얀마, 2015년 6월 16일 | |
정성룡 | 1985년 1월 4일 | (30세)수원 삼성 블루윙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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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미얀마, 2015년 6월 16일 | |
신화용 | 1983년 4월 12일 | (32세)포항 스틸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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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요르단, 2014년 11월 14일 | |
수비수 | ||||||
김민혁 | 1992년 2월 27일 | (23세)사간 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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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EAFF 동아시안컵 | |
김주영 | 1988년 7월 9일 | (27세)상하이 상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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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EAFF 동아시안컵 | |
이주용 | 1992년 9월 26일 | (22세)전북 현대 모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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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EAFF 동아시안컵 | |
정동호 | 1990년 3월 7일 | (25세)울산 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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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EAFF 동아시안컵 | |
김창수 | 1985년 9월 12일 | (29세)가시와 레이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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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미얀마, 2015년 6월 16일 | |
최보경 | 1988년 4월 12일 | (27세)전북 현대 모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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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미얀마, 2015년 6월 16일 | |
윤석영 | 1990년 2월 13일 | (25세)퀸즈 파크 레인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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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뉴질랜드, 2015년 3월 31일 | |
이용 | 1986년 12월 24일 | (28세)상주 상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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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코스타리카, 2014년 10월 14일 | |
임채민 | 1990년 11월 18일 | (24세)성남 F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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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우루과이, 2014년 9월 8일 | |
황석호 | 1989년 6월 27일 | (26세)가시마 앤틀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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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FIFA 월드컵 | |
미드필더 | ||||||
주세종 | 1990년 10월 30일 | (24세)부산 아이파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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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EAFF 동아시안컵 | |
이찬동 | 1993년 1월 10일 | (22세)광주 F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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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EAFF 동아시안컵 | |
한국영 | 1990년 4월 19일 | (25세)카타르 S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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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미얀마, 2015년 6월 16일 | |
염기훈 | 1983년 3월 30일 | (32세)수원 삼성 블루윙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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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미얀마, 2015년 6월 16일 | |
남태희 | 1991년 7월 3일 | (24세)레크위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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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미얀마, 2015년 6월 16일 | |
김보경 | 1989년 10월 6일 | (25세)마쓰모토 야마가 F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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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뉴질랜드, 2015년 3월 31일 | |
김은선 | 1988년 3월 30일 | (27세)수원 삼성 블루윙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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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뉴질랜드, 2015년 3월 31일 | |
한교원 | 1990년 6월 25일 | (25세)전북 현대 모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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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뉴질랜드, 2015년 3월 31일 | |
이명주 | 1990년 4월 24일 | (25세)알아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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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AFC 아시안컵 | |
박종우 | 1989년 3월 10일 | (26세)알자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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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제주 전지훈련 | |
김성준 | 1988년 4월 8일 | (27세)성남 F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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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제주 전지훈련 | |
윤일록 | 1992년 3월 7일 | (23세)FC 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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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제주 전지훈련 | |
공격수 | ||||||
이정협 | 1991년 6월 27일 | (24세)상주 상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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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EAFF 동아시안컵 | |
김신욱 | 1988년 4월 14일 | (27세)울산 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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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EAFF 동아시안컵 | |
이종호 | 1992년 2월 24일 | (23세)전남 드래곤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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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EAFF 동아시안컵 | |
이용재 | 1991년 6월 8일 | (24세)V-바렌 나가사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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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EAFF 동아시안컵 | |
지동원 | 1991년 5월 28일 | (24세)FC 아우크스부르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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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뉴질랜드, 2015년 3월 31일 | |
이근호 | 1985년 4월 11일 | (30세)전북 현대 모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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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AFC 아시안컵 | |
조영철 | 1989년 5월 31일 | (26세)울산 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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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AFC 아시안컵 | |
박주영 | 1985년 7월 10일 | (30세)FC 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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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이란, 2014년 11월 18일 | |
이동국 | 1979년 4월 29일 | (36세)전북 현대 모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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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코스타리카, 2014년 10월 14일 | |
강수일 | 1987년 7월 15일 | (28세)제주 유나이티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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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아랍에미리트, 2015년 6월 11일 |
주장[편집]
역대 대표팀 주장[편집]
이름 | 활동 기간 | 임명날짜 | 비고 |
---|---|---|---|
최영일 | 1997년~1998년 | ||
홍명보 | 1998년-2002년 | 2002년 FIFA 월드컵 주장 | |
유상철 | 2003년-2005년 | ||
이운재 | 2004년-2005년 | ||
김남일 | 2006년-2008년 | 2006년 8월 14일 | 베어백호 1기 주장 |
박지성 | 2008년-2011년 | 2008년 10월 9일 | 당시 역대 최연소 대표팀 주장 |
박주영 | 2011년-2012년 | 2011년 2월 8일 | 역대 최연소 대표팀 주장 |
곽태휘 | 2012년-2013년 | 2012년 2월 19일 | 최강희호 1기 주장 |
하대성 | 2013년 | 2013년 7월 17일 | 홍명보호 1-3기 주장 |
구자철 | 2013년-2014년 | 2013년 9월 30일 | 홍명보호 4기 주장 |
이청용 | 2013년-2014년 | 2013년 11월 14일 | 홍명보호 5기 주장 |
이근호 | 2014년 | 2014년 1월 26일 | 홍명보호 6기 주장 |
기성용 | 2014년 | 2014년 10월 9일 | 슈틸리케호 1기 주장 |
구자철 | 2014년 | 2014년 11월 12일 | 슈틸리케호 2기 주장 |
기성용 | 2015년 | 2015년 1월 7일 | 2015년 AFC 아시안컵 주장 |
곽태휘 | 2015년 | 2015년 6월 1일 | 슈틸리케호 3기 주장 |
김영권 | 2015년 | 2015년 7월 28일 | 2015년 동아시안컵 주장 |
역대 대표팀 월드컵 본선 대회 주장[편집]
이름 | 선수가 주장을 맡은 대회 | 출전 | 비고 |
---|---|---|---|
주영광 | 1954년 FIFA 월드컵 | 1 | 경기 비출전 본선 조별리그 2차전은 박규정이 임시 주장직 수행 |
박창선 | 1986년 FIFA 월드컵 | 34 | |
정용환 | 1990년 FIFA 월드컵 | 85 | 경기 비출전 본선 조별리그 2차전, 3차전은 최순호가 임시 주장직 수행 |
최인영 | 1994년 FIFA 월드컵 | 51 | 경기 도중 교체된 본선 조별리그 3차전은 홍명보가 임시 주장직 수행 |
최영일 | 1998년 FIFA 월드컵 | 55 | 경기 비출전 본선 조별리그 1차전, 3차전은 유상철이 임시 주장직 수행 |
홍명보 | 2002년 FIFA 월드컵 | 136 | 경기 도중 교체된 본선 토너먼트 16강전, 3,4위전은 유상철이 임시 주장직 수행 |
이운재 | 2006년 FIFA 월드컵 | 133 | |
박지성 | 2010년 FIFA 월드컵 | 100 | |
구자철 | 2014년 FIFA 월드컵 | 43 |
코칭 스태프[편집]
직위 | 이름 | 비고 |
---|---|---|
감독 | 울리 슈틸리케 | |
수석 코치 | 카를로스 아르무아 | 피지컬 코치 겸임 |
코치 | 신태용 | 올림픽 대표팀 감독 겸임 |
코치 | 박건하 | |
골키퍼 코치 | 김봉수 |
역대 감독과 수석코치[편집]
감독 | 수석코치 | 경기수 | 승 | 무 | 패 | 승률 (%) | 취임 | 사임 | 비고 |
---|---|---|---|---|---|---|---|---|---|
울리 슈틸리케 | 카를로스 아르무아 | 19 | 13 | 3 | 3 | 68.42 | 2014년 10월 1일 | ||
신태용 (대행) | 2 | 1 | 0 | 1 | 50.0 | 2014년 8월 18일 | 2014년 9월 8일 |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내정된 상태로 2014년 10월 1일 공식 취임을 앞두고 베네수엘라전, 우루과이전 감독대행직 수행 |
|
홍명보 | 김태영 | 19 | 5 | 4 | 10 | 36.8 | 2013년 6월 24일 | 2014년 7월 10일 | |
최강희 | 최덕주 | 12 | 6 | 2 | 4 | 58.3 | 2011년 12월 21일 | 2013년 6월 19일 | |
조광래 | 박태하 | 21 | 12 | 6 | 3 | 71.4 | 2010년 7월 21일 | 2011년 12월 8일 | |
허정무 | 정해성 | 43 | 21 | 15 | 7 | 66.3 | 2007년 12월 7일 | 2010년 7월 2일 | |
핌 베어벡 | 홍명보 | 17 | 6 | 6 | 5 | 52.9 | 2006년 7월 1일 | 2007년 7월 25일 | |
딕 아드보카트 | 핌 베어벡 | 20 | 10 | 5 | 5 | 62.5 | 2005년 10월 1일 | 2006년 6월 30일 | |
요하네스 본프레레 | 허정무 | 25 | 11 | 8 | 6 | 60.0 | 2004년 6월 24일 | 2005년 8월 23일 | |
박성화 (대행) | 4 | 2 | 1 | 1 | 62.5 | 2004년 4월 20일 | 2004년 6월 15일 | ||
움베르투 코엘류 | 박성화 | 18 | 8 | 3 | 7 | 52.8 | 2003년 2월 3일 | 2004년 4월 19일 | |
김호곤 (대행) | 1 | 0 | 0 | 1 | 0 | 2002년 11월 18일 | 2002년 11월 20일 | ||
거스 히딩크 | 핌 베어벡 | 38 | 16 | 11 | 11 | 56.6 | 2001년 1월 1일 | 2002년 6월 30일 | |
박항서 (대행) | 1 | 0 | 1 | 0 | 50.0 | 2000년 12월 20일 | 2000년 12월 20일 | 거스 히딩크 감독이 내정된 상태로 2001년 1월 1일 공식 취임을 앞두고 한일전 감독대행직 수행 |
|
허정무 | 정해성 | 34 | 18 | 5 | 11 | 60.3 | 1998년 10월 14일 | 2000년 11월 13일 | |
김평석 (대행) | 1 | 0 | 1 | 0 | 50.0 | 1998년 6월 22일 | 1998년 6월 25일 | ||
차범근 | 김평석 | 41 | 22 | 8 | 11 | 63.4 | 1997년 1월 8일 | 1998년 6월 21일 | |
박종환 | 최만희 (1996년 7월 8일 ~ 1997년 1월 7일) |
16 | 8 | 3 | 5 | 59.4 | 1996년 2월 15일 | 1997년 1월 7일 | |
정해성 (트레이너) (1996년 2월 15일 ~ 1996년 6월) |
|||||||||
고재욱 | 박경훈 | 1 | 0 | 0 | 1 | 0 | 1995년 10월 20일 | 1995년 10월 30일 | |
정병탁 | 조윤환 | 0 | 0 | 0 | 0 | - | 1995년 9월 16일 | 1995년 9월 30일 | |
허정무 | 이장수 | 1 | 0 | 1 | 0 | 50.0 | 1995년 8월 1일 | 1995년 8월 12일 | |
박종환 | 최만희 | 2 | 1 | 1 | 0 | 75.0 | 1995년 4월 26일 | 1995년 7월 31일 | |
아나톨리 비쇼베츠 | 김성남 | 16 | 8 | 4 | 4 | 62.5 | 1994년 7월 24일 | 1995년 2월 26일 | 축구 국가대표팀 최초 외국인 감독 (성인 대표팀 기준) |
김호 | 허정무 (1993년 12월 6일 ~ 1994년 7월 23일) |
37 | 14 | 15 | 8 | 58.1 | 1992년 7월 8일 | 1994년 7월 23일 | |
유기흥 (1992년 12월 29일 ~ 1993년 11월 24일) |
|||||||||
조광래 (1992년 7월 8일 ~ 1992년 11월 9일) |
|||||||||
고재욱 | 허정무 | 6 | 3 | 0 | 3 | 50.0 | 1991년 5월 22일 | 1991년 7월 27일 | 축구 국가대표팀 최초 전임 감독 |
박종환 | 김희태 | 10 | 8 | 2 | 0 | 90.0 | 1990년 8월 9일 | 1991년 10월 23일 | |
이차만 | 김희태 | 4 | 3 | 0 | 1 | 75.0 | 1990년 7월 3일 | 1990년 8월 8일 | |
이회택 | 이차만 | 30 | 19 | 5 | 6 | 71.7 | 1988년 10월 6일 | 1990년 7월 2일 | |
김정남 | 김호곤 | 2 | 2 | 0 | 0 | 100.0 | 1988년 7월 6일 | 1988년 10월 5일 | |
박종환 | 원흥재 | 9 | 4 | 1 | 4 | 50.0 | 1986년 11월 20일 | 1988년 7월 5일 | |
김정남 | 김호곤 | 26 | 15 | 7 | 4 | 71.1 | 1985년 3월 19일 | 1986년 11월 19일 | |
문정식 | 김정남 (1984년 12월 17일 ~ 1985년 3월 18일) |
10 | 4 | 3 | 3 | 55.0 | 1984년 7월 3일 | 1985년 3월 18일 | |
공석 (1984년 7월 3일 ~ 1984년 12월 16일) |
|||||||||
박종환 | 이이우 | 2 | 1 | 1 | 0 | 75.0 | 1983년 8월 23일 | 1984년 7월 2일 | |
조윤옥 | 이세연 | 6 | 4 | 0 | 2 | 66.7 | 1983년 1월 29일 | 1983년 8월 22일 | |
최은택 | 김정남 | 3 | 1 | 2 | 0 | 66.7 | 1982년 6월 21일 | 1983년 1월 28일 | |
김정남 (대행) | 김호곤 (트레이너) | 35 | 23 | 4 | 8 | 71.4 | 1980년 5월 4일 | 1982년 6월 18일 | |
장경환 | 최은택 | 8 | 7 | 1 | 0 | 93.7 | 1979년 3월 29일 | 1980년 5월 3일 | |
함흥철 | 김정남 | 21 | 18 | 1 | 2 | 88.1 | 1978년 3월 2일 | 1979년 3월 28일 | |
김정남 (대행) | 5 | 2 | 0 | 3 | 40.0 | 1977년 9월 17일 | 1977년 12월 18일 | ||
최정민 | 김정남 | 21 | 14 | 1 | 6 | 69.0 | 1977년 1월 1일 | 1977년 9월 16일 | |
문정식 | 박경화 | 14 | 8 | 2 | 4 | 64.3 | 1976년 5월 14일 | 1976년 12월 31일 | |
함흥철 | 김정남 | 29 | 22 | 5 | 2 | 84.5 | 1974년 11월 17일 | 1976년 5월 13일 | |
최영근 | 최은택 | 9 | 3 | 5 | 1 | 61.1 | 1974년 1월 | 1974년 11월 17일 | |
민병대 | 문정식 | 17 | 10 | 2 | 5 | 64.7 | 1972년 12월 21일 | 1973년 11월 20일 | |
함흥철 | 박경화 | 19 | 11 | 3 | 5 | 65.8 | 1972년 6월 16일 | 1972년 12월 20일 | |
박병석 | 박경화 (1972년 4월 6일 ~ 1972년 6월 15일) |
5 | 1 | 2 | 2 | 40.0 | 1971년 12월 7일 | 1972년 6월 15일 | |
박상훈 (1971년 12월 5일 ~ 1972년 4월 5일) |
|||||||||
홍덕영 | 4 | 1 | 0 | 3 | 25.0 | 1971년 11월 | |||
한홍기 | 그레이엄 아담스 (1971년 3월 ~ 1971년 10월 6일) |
27 | 17 | 2 | 8 | 66.7 | 1970년 2월 13일 | 1971년 10월 6일 | |
우상권 (1970년 2월 13일 ~ 1970년 10월) |
|||||||||
강준영 | 5 | 4 | 0 | 1 | 80.0 | 1969년 11월 | 1969년 12월 | ||
김용식 | 강준영 | 4 | 1 | 1 | 2 | 37.5 | 1969년 1월 | 1969년 10월 | |
박일갑 | 6 | 4 | 2 | 0 | 83.3 | 1968년 8월 | 1968년 12월 | ||
장경환 | 박일갑 | 15 | 10 | 3 | 2 | 76.7 | 1967년 7월 | 1967년 11월 | |
민병대 | 한창화 | 8 | 5 | 3 | 0 | 81.2 | 1966년 7월 | 1966년 12월 | 실제 감독 역할은 한창화 |
홍건표 | 정남식 | 6 | 3 | 1 | 2 | 58.3 | 1965년 8월 | 실제 감독 역할은 정남식 | |
정국진 | 김규환 | 0 | 0 | 0 | 0 | 0 | 1964년 9월 | 실제 감독 역할은 김규환 | |
민병대 | 김규환 | ' | 1962년 3월 | 실제 감독 역할은 김규환 | |||||
이종갑 | 김규환 | ' | 1961년 10월 | 실제 감독 역할은 김규환 | |||||
이유형 | 김용식 | ' | 1961년 3월 | 실제 감독 역할은 김용식 | |||||
위혜덕 | 김용식 | ' | 1960년 10월 | 실제 감독 역할은 김용식 | |||||
김용식 | 민병대 | ' | 1960년 3월 | ||||||
정국진 | 정남식 | ' | 1959년 7월 | ||||||
김근찬 | 민병대 | ' | 1958년 4월 | ||||||
이유형 | 김성간 | ' | 1956년 8월 | ||||||
박정휘 | 주영광 | ' | 1955년 12월 | ||||||
김용식 | ' | 1954년 6월 | |||||||
이유형 | 배종호 | ' | 1954년 3월 | ||||||
김화집 | 이용일 | ' | 1952년 4월 | 1954년 2월 | |||||
박정휘 | 이유형 | ' | 1948년 12월 | 1950년 4월 | |||||
이영민 | ' | 1948년 6월 | |||||||
박정휘 | ' | 1948년 5월 |
개인 기록[편집]
※ 아래 기록은 2015년 3월 18일을 기준으로 한다. ※ 현역 선수는 굵은 글씨로 나타냄.
최다 출장 선수[편집]
# | 이름 | 활동 기간 | 경기 | 골 |
---|---|---|---|---|
1 | 홍명보 | 1990–2002 | 136 | 10 |
2 | 차범근 | 1972–1986 | 135 | 58 |
3 | 이운재 | 1994–2010 | 133 | -115 |
4 | 이영표 | 1999–2011 | 127 | 5 |
5 | 유상철 | 1994–2006 | 124 | 18 |
6 | 조영증 | 1975–1986 | 109 | 1 |
7 | 김태영 | 1992–2004 | 105 | 3 |
8 | 박성화 | 1975–1984 | 103 | 26 |
황선홍 | 1988–2002 | 103 | 50 | |
이동국 | 1998–현재 | 103 | 33 | |
11 | 허정무 | 1974–1986 | 101 | 30 |
12 | 박지성 | 2000–2011 | 100 | 13 |
13 | 김남일 | 2000–2013 | 98 | 2 |
14 | 최순호 | 1980–1991 | 97 | 30 |
15 | 조광래 | 1975–1986 | 95 | 15 |
16 | 김진국 | 1972–1978 | 94 | 27 |
최종덕 | 1975–1981 | 94 | 9 | |
박경훈 | 1980–1990 | 94 | 1 | |
하석주 | 1991–2001 | 94 | 23 |
최다 득점 선수[편집]
# | 이름 | 활동 기간 | 경기 | 골 | 경기당 평균 골 |
---|---|---|---|---|---|
1 | 차범근 | 1972–1986 | 135 | 58 | 0.43 |
2 | 황선홍 | 1988–2002 | 103 | 50 | 0.49 |
3 | 박이천 | 1969–1974 | 88 | 36 | 0.41 |
4 | 김재한 | 1972–1979 | 57 | 33 | 0.58 |
이동국 | 1998–현재 | 103 | 33 | 0.32 | |
6 | 허정무 | 1974–1986 | 101 | 30 | 0.30 |
최순호 | 1980–1991 | 97 | 30 | 0.31 | |
김도훈 | 1994–2003 | 72 | 30 | 0.41 | |
9 | 김진국 | 1972–1978 | 94 | 27 | 0.29 |
이영무 | 1975–1981 | 84 | 27 | 0.32 | |
최용수 | 1995–2003 | 69 | 27 | 0.39 |
최연소 데뷔 선수[편집]
※ 명단은 10대에 A매치 데뷔한 선수들 전체를 데뷔 나이 기준으로 정렬한 것이다.
※ 만나이 이후 일수 계산은 만 17세, 18세, 19세가 되는 기준일은 제외하고 다음 날부터 A매치 데뷔일까지 계산하며 윤달을 포함한다.
(예: 김봉수 선수처럼 만 18세가 되는 1988년 12월 4일은 제외하고 5일부터 A매치 데뷔일자인 1988년 12월 11일까지 7일로 계산)
※ 현역 선수는 굵은 글씨로 나타냄.
최연소 데뷔 골[편집]
스포서십[편집]
스폰서[편집]
- 2015년 6월 10일 현재
나이키, KT, 하나은행, 네이버, 현대자동차, 교보생명보험, 아시아나항공, 하이트, 카페베네, 서울우유
용품 스폰서[편집]
기간 | 스폰서 | 비고 |
---|---|---|
1977–1984 | 아디다스 아식스 코오롱액티브 프로스펙스 위크엔드외 다수 [9][10] |
최초 용품 스폰서는 아디다스이나 1987년 지금과 같은 용품 스폰서십 계약이 있기까지 아식스, 코오롱액티브, 삼성물산 위크엔드 등 국내외 브랜드의 여러 유니폼을 그때그때 마다 선정해서 착용하였으며 현재와 같은 용품 스폰서십 개념은 아니었다. |
1984–1987[11] | 위크엔드 |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출전시 삼성물산 SS패션 스포츠 브랜드 위크엔드 유니폼 착용[12] 1987년 대한축구협회와 현재와 같은 공식 용품 스폰서십 계약을 한 최초의 스포츠 브랜드이다. |
1988–1995 | 라피도 | 1988년 1월 라피도 브랜드 출시로 변경[13][14] |
1996–현재 | 나이키[15] | 대한축구협회는 1995년 말에 나이키와 1996년 1월 1일부터 1997년 12월 31일까지 2년간 용품 스폰서십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리고 이 계약을 시작으로 재계약 과정을 통해 2019년 12월 31일까지 24년간 장기 계약을 유지중이다.[16] |
유니폼 변천사[편집]
1954 홈
(1954 WC) |
1960 홈
(1960 AC) |
---|
위크엔드 (1984년–198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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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피도 (1988년–199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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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 (1996년-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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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3년 9월 미국 월드컵 최종 예선을 앞두고 당시 세계적인 유니폼 트렌드에 맞게 화려한 무늬 추가해서 변경하였다.[17]
2. 붉은색 유니폼이 상대팀에게 적개심을 불러 일으켜 경기력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하얀색 유니폼으로 교체하였다.
3. 미국 월드컵 조별 예선 2차전 볼리비아전에서는 홈 유니폼 상의와 원정 유니폼 하의를 조합하여 임시 써드 유니폼을 만들어 착용하였다.
4. 1995년 말 용품 스폰서십 계약 후 1996년 나이키가 최초로 공급한 유니폼은 라피도에서 디자인하여 1995년 10월 31일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공개된 유니폼과 똑같은 디자인에 브랜드 로고만 나이키로 변경한 유니폼이었다.
5. 나이키가 디자인한 최초의 유니폼으로 디자인을 한 토모코 반도씨는 "한국에 대해 가장 강렬하게 기억되는 이미지인 태극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하였으며
1996년 7월 8일 올림픽 대표팀의 콜롬비아 대표팀과의 평가전때 처음 착용되었다.
6. 4년 동안 기본적인 디자인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넘버 프린팅과 골키퍼 유니폼 등에 있어서 약간의 변경이 있었다.
같이 보기[편집]
- 대한축구협회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 결과
- 대한민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트레이닝 센터
- 도하의 기적
- 도쿄 대첩
- 한일전 (축구)
- 공한증
- 붉은악마
- 대~한민국
- 오 필승 코리아
각주[편집]
- ↑ KFA 공식 차범근 A매치 기록
- ↑ 첫A매치 골은 故정남식•정국진씨, 《문화일보》, 2007년 8월 6일 작성.
- ↑ 8강 태극전사들 “헛구역질 날 정도로 뛰었다”, 《동아닷컴》, 2002년 6월 19일 작성.
- ↑ -월드컵- 대표팀, 김남일.김태영 부상 변수, 《연합뉴스》, 2002년 6월 19일 작성.
- ↑ 이석무 (2006년 6월 27일). “FIFA, 한-스위스전 비디오 분석 '심판판정 옳았다'”. 마이데일리. 2010년 1월 18일에 확인함.
- ↑ 홍제성 (2006년 6월 24일). “네티즌들 스위스전 재경기 주장”. 스포츠한국. 2008년 1월 2일에 확인함.
- ↑ “Referee designations for matches 1-16” (PDF) (영어). 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 2010년 6월 5일.
- ↑ “Referee designations for matches 17-24” (PDF) (영어). 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 2010년 6월 14일.
- ↑ 송기룡. “한국 대표팀 유니폼 역사”. 월간 축구가족. 다음 글자 무시됨: "작성일자 --" (도움말)
- ↑ “대표선수도 국제경기서 버젓이 서독 아디다스, 일본 미즈노등 외제 스포츠용품 국내시장 석권”. 경향신문. 다음 글자 무시됨: "작성일자 1981년 2월 27일" (도움말)
- ↑ “월드컵 상혼 장외서 뜨거운 "광고전쟁"”. 경향신문. 다음 글자 무시됨: "작성일자 1990년 6월 20일" (도움말)
- ↑ “필승!위크엔드스포츠-멕시코월드컵에서 대표팀과 함께 뜁니다”. 경향신문. 다음 글자 무시됨: "작성일자 1986년 5월 30일" (도움말)
- ↑ “외국스포츠상표 국내진출러시의류”. 매일경제신문. 1988년 1월 30일.
- ↑ “3개상표 개발 삼성물산”. 매일경제신문. 1988년 2월 16일.
- ↑ “축구협회 월드컵유니폼 교체 '후원금 최소 100억'”. 경향신문. 다음 글자 무시됨: "작성일자 1997년 12월 11일" (도움말)
- ↑ “축구협회, 나이키와 1200억원 후원 계약”. 스포츠경향. 다음 글자 무시됨: "작성일자 2012년 1월 4일" (도움말)
- ↑ “축구대표 선수복 노랑, 흰색 가미”. 한겨레. 1993년 9월 28일.
바깥 고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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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영어) 대한축구협회 공식 웹사이트
- 대한축구협회 페이스북
- 대한축구협회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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