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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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력(Gregorian calendar)은 현재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양력(陽曆)으로, 교황 그레고리오 13세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레고리력의 1년은 365일 또는 366일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기원전 46년에 제정한 율리우스력의 단점을 보완한 역법이다. 율리우스력은 4년마다 2월 29일을 추가하는 윤년 계산 방법을 두었는데, 이 경우에 한 해의 길이는 365.25일로서 천문학의 회귀년 365.2422일보다 0.0078일(11분 14초)이 길어서 128년에 1일의 편차가 났다.

1582년 10월 4일 교황 그레고리오 13세율리우스력을 개정한 그레고리력은 율리우스력의 400년에서 세 번의 윤년을 제외시키는 방법으로 이를 해결했다. 그레고리력에 따르면, 1년은 365.2425일이 되어 천문학의 회귀년보다 0.0003일(26초)이 길고 약 3,300년마다 1일의 편차가 난다.[1]

동기: 부활절 계산의 기준점이 된 춘분[편집]

그레고리력의 채택 동기는 부활절을 언제 지켜야 할 지에 대한 로마 가톨릭교회 내의 의견 차이로부터 시작되었다. 기원 후 4세기 초에 소아시아(현재의 터키)에 위치한 도시 에페소스의 주교인 폴리크라테스는 부활절의 날짜를 로마에서 공식적으로 정한 날짜와 달리 정함으로써 의견 충돌을 빚었다. 폴리크라테스 역시 부활절의 날짜를 임의로 정한 것이 아니라 예수의 부활에 대한 요한 복음서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요한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가 부활한 날은 니산 14일(춘분 즈음 시작하는 달의 보름: 유월절) 이후 첫 안식일의 다음날이었는데, 부활절을 히브리력(태음력)의 유월절에 따라 정해야 한다는 교단들과 이에 반대하는 교단들 간의 대립이 생겼다.

325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소집된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부활절을 모든 기독교인들의 기념일로 통일하기 위해 춘분 이후 첫 보름 다음의 일요일로 정하였고, 춘분을 그 해 율리우스력에 따라 3월 21일로 확정하였다.

교황 그레고리오 13세의 역법 개정(1582년)[편집]

그러나, 율리우스력은 실질적인 장점에도 불구하고 천문학적 햇수와 날의 계산에서 작은 편차가 있었다. 즉, 율리우스력의 한 해의 길이는 정확히 365일 6시간이며, 이는 천문학적으로 계산한 1년의 길이보다 약 11분 14초가 길다. 이 편차가 제1차 니케아 공의회로부터 16세기까지 1,250년어치 오차가 누적되자 춘분일이 325년 당시보다 약 10일이 빨라진 3월 11일 즈음이 되어 달력에 큰 오차가 생겼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에서 교황에게 역법 개정에 대한 권한이 부여되고 이 오차를 줄이기 위하여 1582년 10월 4일 교황 그레고리오 13세가 율리우스력을 개정하였고, 개정한 달력은 그의 이름을 따서 그레고리력으로 부르게 되었다.

개정 내용: 윤년 계산방법[편집]

개정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1582년 10월 4일() 다음날을 1582년 10월 15일()로 한다.(위에서 설명한 10일의 편차를 제거함)
  2. 100년마다 윤일을 공제시키며, 이는 오직 해당 해가 400으로 나누어 떨어지지 않을 경우에 한한다.(율리우스력보다 편차가 적게 나는 윤력의 계산 방법을 도입함)

그레고리력은 1년을 365.2425일로 보아 율리우스력의 400년에서 3일을 빼야 했고, 이를 위해 400년에서 세 번의 윤년을 제외시키는 방법을 썼다. 즉, 율리우스력의 윤년 중에서 100으로 나누어 떨어지는 해는 윤년에서 제외하되, 그 중 400으로 나누어 떨어지는 해는 윤년으로 두었다.(예: 1700년, 1800년, 1900년은 윤년에 해당되지 않지만, 1600년과 2000년은 윤년이다)

나중에 개정한 나라들[편집]

현재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그레고리력이 통용되고 있지만, 가톨릭 국가들이 그레고리력 제정 후 1년 만에 대부분 이 역법을 시행한 것에 비해, 종교적 이유 때문에 개신교 국가들은 18세기 초까지, 정교회 국가들은 20세기 초까지도 기존의 율리우스력을 고수해왔다. 영국1752년 9월 2일 다음날을 9월 14일로, 러시아러시아 혁명 직후 1918년 1월 31일 다음날을 2월 14일그레고리력을 채택하였다.

이렇게 나라마다 역법이 달랐기 때문에 역사가들은 어떤 사건이 정확히 언제 일어났지는 규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2] 한 예로서 안톤 체호프독일의 바덴바일러에서 사망했을 때 그곳 경찰이 기록한 사망 날짜는 그레고리력에 따른 1904년 7월 15일이지만, 당시 러시아에서 쓰이던 율리우스력으로는 7월 2일이며 체호프 연구학회에서는 지금도 체호프의 사망일을 7월 2일이라고 한다.

한국1895년 음력 9월 9일조선 정부(을미개혁, 김홍집 내각)가 같은 해 음력 11월 17일1896년 1월 1일로 하고, 태양력 채택을 기념하여 건양(建陽)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기로 결정한 이래 대한제국을 거쳐, 대한민국도 그레고리력을 쓰고 있다.

참고 문헌[편집]

  • 《시간의 지도: 달력》, E.G. 리처즈, 이민아 옮김, 까치, 2003.

각주[편집]

  1. 이 때문에 2088년(윤년)의 춘분3월 20일이 아닌 3월 19일이며, 2092년2096년에도 춘분이 3월 19일이다가 그레고리력에 따라 평년2100년에 다시 3월 20일로 조정된다. 참고 : 춘분 - 북한과학기술네트워트, 2015년 7월 21일 확인.
  2. Gerald Leinwand (1986). 〈Prologue: In Search of History〉. 《The Pageant of World History》. Allyn & Bacon. 4쪽. ISBN 978-0-205-08680-1. England did not adopt the New Style calendar until 1752, and Russia did not adopt it until the Russian Revolution of 1917. Different dating systems in calendars make it hard for the historian to determine when something actually happened.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