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역 폭발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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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역 폭발 사고(裡里驛爆發事故)는 1977년 11월 11일 오후 9시 15분, 전북 이리시(현 익산시)의 이리역(현 익산역)에서 발생한 대형 열차 폭발 사고로 구포역 열차 전복 사고와 더불어 최악의 철도사고로 손꼽힌다.

사고 원인[편집]

인천에서 광주로 가던 한화의 전신인 한국화약의 화물 열차인 제1605열차는 당시 정식 책임자도 없이 다이너마이트와 전기 뇌관 등 40t의 고성능 폭발물을 싣고 이리역에서 출발 대기하던 중 폭발사고를 냈다.

당시 수사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호송원 신무일이 어둠을 밝히기 위해 밤에 켜 놓은 촛불이 화약상자에 옮겨 붙은 것이 원인이었다. 원칙적으로 열차의 단선 교행은 폭탄 및 화학 화물 화차가 여객 열차(만일 새마을호라 할지도)보다 우선 순위로 운행이 되고 있으며, 화약류 등의 위험물은 신호장, 신호소, 간이역은 물론 모든 철도역 내에 대기시키지 않고 바로 통과시켜야 하는 것을 무시하였고, 허술한 안전 의식이 인재를 불러왔다는 비판을 받았다.

피해 상황[편집]

당시 익산역에는 지름 30m, 깊이 10m의 거대한 웅덩이가 파였고 이리 시청 앞까지 파편이 날아갔다. 이리역 주변 반경 500미터 이내의 건물 9,500여채에 달하는 건물이 대부분 파괴되어 9,973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사망자는 59명, 부상자는 1,343명에 달했다. 이 중 철도인은 16명이 순직하였다. 철도에서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는데, 기관차 5량, 동차 4량, 화차 74량, 객차 21량, 기중기 1량이 붕괴되었고, 이리역을 통과하는 호남선 130m와 전라선 240m가 붕괴되어 총 23억여원의 재산 피해를 낳기도 하였다.[1]

기타[편집]

  • 이 사건 당시 무명이었던 희극인 이주일이 가수 하춘화를 구출하여 유명세를 탔다.[2]
  • 소설 <기찻길 옆동네>에 이리역 폭발사고가 기재되어 있다.[3]
  • 이 사고로 인해 대파된 가옥의 거주민들을 위해 이리역 북서쪽 모현동에 모현주공아파트를 건설하였다. 이 아파트는 이리시 최초의 주공아파트이며, 2010년에 재개발을 위해 철거되었다.[4][5]

가해자 체포[편집]

해당 열차의 다이너마이트를 맡긴 당시 36살의 신무일은 그날 술을 마시고 잠든 뒤, 추위를 막기 위해 촛불을 켰다가 촛불이 다이너마이트 쪽으로 넘어진 것을 감안해 법원은 신무일에게 책임이 있다고 판시하였다. 신무일은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주석[편집]

  1. 한국철도공사, 《철도주요연표》, 2010, 203쪽
  2. “[책갈피 속의 오늘] 1977년 이리역 폭발사고”. 동아일보. 2008년 11월 11일. 
  3. “[새로 나온 책] 기찻길 옆동네”. 뉴시스. 2007년 5월 8일. 
  4. “익산 모현아파트 재건축 시행인가”. 뉴시스. 2007년 5월 8일. 
  5. “익산 e편한세상 계약률 93%”. 한국경제. 2010년 9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