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7월 24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략력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1(1912)년 4월 15일 평양시 만경대에서 김형직선생님과 강반석녀사의 맏아드님으로 탄생하시였다.

아버님이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아드님의 이름을 장차 나라의 기둥이 되라는 뜻에서 《성주》라고 지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부모님의 혁명활동로정을 따라 조선과 중국의 여러곳으로 이사하시며 어린시절을 보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버님의 선견지명으로 어린시절부터 중국말을 배우시고 중국인소학교에서 중어공부를 하시여 중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시였는데 이것은 후날 중국땅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시는데 커다란 도움으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을 하자면 자기 나라를 알아야 한다고 하신 아버님의 뜻을 받들고 주체12(1923)년 3월 중국 팔도구로부터 만경대까지《배움의 천리길》을 걸으시여 외가집이 있는 칠골 창덕학교에서 공부하시였다.

주체14(1925)년 1월 아버님께서 또다시 일제경찰에 체포되시였다는 뜻밖의 소식을 전해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비장한 맹세를 다지시며 결연히 만경대를 떠나시였다.

주체15(1926)년 6월 아버님 김형직선생님께서 서거하신 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반일민족주의단체가 중국 화전에 세운 2년제군사정치학교인 화성의숙에 입학하시였으며 그곳에서 같은해 10월 17일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하시고 그 책임자로 선거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화성의숙에서 반년간 공부를 하신 후 보다 넓은 지역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시기 위하여 그곳을 떠나 혁명활동의 무대를 길림으로 옮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길림육문중학교에서 공부하시면서 주체16(1927)년 8월 27일 타도제국주의동맹을 보다 대중적인 조직인 반제청년동맹으로 개편하시고 8월 28일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을 결성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여러 대중단체들을 조직하시고 반일투쟁들을 지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19(1930)년 6월 30일부터 7월 2일까지 진행된 카륜회의에서 조선혁명의 진로와 그 기본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전략전술적문제들을 전면적으로 밝히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7월 3일 카륜에서 첫 당조직인 《건설동지사》를 조직하시고 7월 6일에는 이통현 고유수에서 항일무장투쟁준비를 위한 정치 및 반군사조직인 조선혁명군을 결성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1(1932)년 4월 25일 상비적인 혁명무력인 반일인민유격대(그후 조선인민혁명군으로 개편)를 창건하시고 항일무장투쟁을 조직령도하시여 주체34(1945)년 8월 15일 조국을 해방하신 후 그해 9월 조국으로 개선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4(1945)년 10월 10일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를 조직하시고 당창건을 선포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5(1946)년 2월 8일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를 조직하시고 위원장으로 선거되시였으며 20개조정강을 발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5(1946)년 8월 공산당과 신민당을 합당하여 북조선로동당을 창립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짧은 기간에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을 성과적으로 령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첫 민주선거를 조직하시여 북조선인민회의를 구성하시고 거기서 국가정권의 새로운 중앙기구인 북조선인민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선거되시였으며 사회주의에로의 과도기 임무를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7(1948)년 2월 조선인민혁명군을 정규적인 혁명무력인 조선인민군으로 발전시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7(1948)년 9월 9일 조선인민의 통일적중앙정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하시고 전체 조선인민의 일치한 념원에 따라 공화국정부 수상, 국가수반으로 선거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8(1949)년 6월 30일 북남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들의 합동전원회의를 소집하시고 조선로동당 위원장으로 선거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9(1950)년 6월 25일부터 주체42(1953)년 7월 27일까지 조국해방전쟁을 빛나는 승리에로 령도하시여 민족의 자주권을 수호하시고 미제의 내리막길의 시초를 열어놓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2(1953)년 8월 5일 당중앙위원회 6차전원회의에서 전후경제건설의 기본로선을 제시하시고 그 수행을 위한 투쟁을 령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와 함께 도시와 농촌의 생산관계를 사회주의적으로 개조하기 위한 사회주의혁명을 밀고나가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5(1956)년 4월에 진행된 조선로동당 제3차대회와 주체50(1961)년 9월에 진행된 당 제4차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장으로 다시금 선거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혁명에 관한 새로운 사상을 제시하시고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을 그 기본내용으로 규정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51(1962)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제4기 5차전원회의를 소집하시고 날로 로골화되는 미제국주의자들의 새 전쟁도발책동에 대처하기 위하여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새로운 전략적로선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55(1966)년 10월 당중앙위원회 제4기 14차전원회의에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로 선거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6(1957)년부터 주체59(1970)년까지 공업화의 력사적과업수행을 성과적으로 령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61(1972)년 12월 최고인민회의 제5기 제1차회의에서 채택된 새로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에 따라 공화국주석으로 선거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59(1970)년에 진행된 당 제5차대회와 주체69(1980)년 10월에 있은 당 제6차대회에서 당중앙위원회 총비서로 또다시 선거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를 조선혁명의 총적과업으로 규정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61(1972)년 5월에 조국통일3대원칙을, 주체69(1980)년 10월에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주체82(1993)년 4월에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의 10대강령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회주의를 수호하고 주체혁명위업을 완성하기 위하여 후계자문제를 빛나게 해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83(1994)년 6월 평양에서 미국 전 대통령 카터를 접견하시고 핵문제와 관련한 조미협상을 시작하며 북남수뇌자상봉을 하기 위한 유리한 조건을 마련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온 세계의 자주화를 위하여 정력적으로 사업하시다가 주체83(1994)년 7월 8일 새벽 2시에 집무실에서 급병으로 서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민위천을 일생의 좌우명으로 삼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원수칭호와 공화국3중영웅 및 로력영웅칭호를 수여받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러 나라의 국가 및 정부수반들, 당지도자들을 비롯한 7만여명의 외국인사들을 접견하시였으며 54차에 걸쳐 연 87개 나라들을 방문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70여개 나라와 국제기구들로부터 180여개의 최고훈장과 메달, 30여개 도시의 명예시민칭호, 20여개의 이름있는 다른 나라 대학으로부터 명예교수, 명예박사칭호, 169개 나라 당 및 국가, 정부수반들과 진보적인민들로부터 16만 5 920 여점의 지성어린 선물들을 받으시였다.

중국과 몽골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이 세워져있고 100여개 나라 480여개의 거리, 기관, 단체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으로 불리우고있으며 세계적으로 《국제김일성상》이 제정, 수여되고있다.

위대한 수령님의 고전적로작들은 110여개 나라에서 60여개 민족어로 2 457만여부 출판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