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환상사전 ③  무기와 방어구 편

우리나라 전통

무기와 방어구

I

베는 무기 (도와 검)

II

도끼와 타격형 무기

III

창과 장대형 무기

IV

활과 쏘는 무기

V

갑주와 방패

VI

수레형 장비

▣ 본 내용은 저자가 공을 들여 수집 정리하고 집필한 자료입니다. 문예나 영상예술 등의 창작과 교육 정보로 참고하십시오. 단, 영리적 목적이나 출판 등의 용도로 복제 개작하거나, 저자의 동의 없이 무단 배포하지 마십시오.

들어가면서

  여기에서 소개할 한국의 전통 무기들의 대부분은 역사적 전쟁병기로서의 측면보다는 판타지 소재의 무기로서 주로 다룬다. 또한 문헌이나 기록상으로 우리 나라에서 실제 널리 사용되었던 혹은 그것에 유추하여 사용되었을 법한 무기들을 정리하고 소개한 것이다. 앞서 책머리에 밝힌 대로 일부는 고증에 가깝게 일부는 필자의 작위에 의해 과장되거나 상상으로 그려진 것도 있다.

  한 가지 유념해야 될 것은 우리 고대의 근력 무기체계는 가까운 조선시대보다는 삼국시대와 그 이전 철기의 발전에 주력해야 된다는 사실이다. 아래에서 소개되는 각종 무기들은 대개 이 원삼국 시대에 그 원형을 두고 있다. 도검은 약간 예외적으로 점진적으로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꾸준히 그 형태를 변형시키며 발전해왔다. 그 차이를 밝힌 것은 도검 전문가들로서 일반인들은 쉽사리 알 수는 없지만 형태나 철을 다루는 기술에서는 적지 않게 시대적 격차를 보이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한편, 조선 중기가 지나 17세기 정립된 《무예도보통지》에서 나온 무기들은 중국과 일본의 무기와 그 무술도 우리의 것으로 개발시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이미 고려 시대 10세기 무렵이 이십사반병기를 실전에 배치했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단지 그러한 병기를 다루는 병법과 무예만이 조선에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었을 뿐이라고 보여진다. 또한 고려의 해외 수출품 중에 무기가 있었던 걸로 미루어 짐작해 보면 조선에서 사용되는 단병기 중 상당부분이 이미 고려시기에 활발히 사용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판타지에 등장하는 무기와 방어구를 역사적인 잣대, 그리고 시대에 따라 다른 문화권의 무기와 우열을 따지고 현대의 것과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무기와 방어구들 역시 서로 전파되는 문화의 일부이다. 문화라는 것이 자생적으로만 태어날 수는 없는 법이라 다른 나라의 좋은 것을 본보기로 더 좋은 것을 개발한다. 중국의 드넓은 중원과 우리 한반도, 그리고 일본은 서로 치고 밀리는 대규모 전쟁을 통해서 적군의 좋은 기술을 배우고 받아들이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중국의 것과 서양의 것 역시 그 근본은 다르지 않다.

  그래도 차이는 존재한다. 각 문화권마다 무기체계의 차이는 그 문화권의 특색, 전쟁의 양상과 기술, 어떤 전술을 썼느냐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 예로 서양의 경우에서 그 견고함과 정밀함에서 뛰어나게 발달한 갑주는 그것을 때려부수기 위한 육중한 무기들을 낳았는데 칼은 무척이나 무디었다. 반면 동양의 문화권에서는 갑주가 점점 이동과 편의성에 주력한 대신 근력무기의 날카로움이나 정확성은 서양의 것보다 앞섰다. 이러한 차이도 시대가 흘러가면 또 다른 형태로 변화된다. 무엇보다도 무기체계의 격변을 일으킨 것은 화약무기의 발전이나, 본 서에서는 화약무기는 다루지 않고 근력무기에 한한다.

  ☞ 고려나 조선의 화약무기 중에서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기발한 아이디어의 무기들이 다수 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그것들이 매우 뛰어난 과학무기라는 특성상 이를 본서에서 소개하지 못함이 너무 아쉬운 점이다. 우리 고대의 화약무기에 대해 더 궁금한 분들은 국방홍보원에서 제작한 김기덕 감독의 다큐멘터리《한국의 전통무기 상하편》을 필히 참조하기 바란다.

  근대 서구열강의 등장으로 이러한 구분조차 무색하게 되기 훨씬 이전의 옛날, 중국은 무기를 다루는 무술 중에 기본기를 봉(棒)술로, 무기 중에 으뜸을 창으로 쳤고 무기가 또한 다양했다. 우리 나라는 고대로부터 궁시(弓矢)와 화포가 뛰어났고, 일본은 무기의 정교함에 있어서 칼과 조총이 좋았다.

  우리는 적어도 이 고대에 있어서는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우리의 고유한 무기와 방어구를 이해하고 판타지로 발전시켜야 한다. 우리의 고대 무기체계는 분명 동시대 서양의 것과는 다르다. 그리고 중국과 일본의 것과 아주 유사한 점도 다른 점도 있다. 이러한 것을 알고 이해하는 것은 우리만의 독특한 무기체계를 판타지로 아름답게 재탄생시키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울러 역사적인 초인이나 기인, 영웅들이 사용했던 판타지 무기들도 참고로 다룬다.

 

[ 베는 무기  :  도와 검 ]

 

칼이 존재해야 되는 이유

  도(刀·blade)는 외날로서 베는 기능을 주로 하며 검(劍·sword)은 주로 찌르는 용도로서 쓰인다. 도는 외날이라 만들기 단순하기 보여도 잘 만들기는 어렵고, 검은 양날이라 만들기 어려워보여도 요구되는 기술의 수준이 도보다는 높지 않다. 석기에서 청동기, 그리고 철기에 이르는 과정에서 칼의 발달과정을 보면 찌르는 것보다 베는 도구를 만드는 것이 기술상으로도 확실히 어려운 듯 싶다. 또한 검은 도에 비해 대체로 무겁다.

  칼을 나누는 일반적인 분류법은 도와 검·장단(長短)과 대소(大小)의 길이와 크기·재질·칼날의 형태나 칼자루의 장식 등등이다.

  고대 한국의 검을 분류하는데 있어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은 특히 조선시대에 이르러 검과 검술, 더러는 기관이나 일정한 관리가 차는 칼, 검술 등에서 그 이름이 혼동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검'이 그 검을 쓰는 검술을 말하기도 하고 혹은 그 검을 다루는 자를 말하거나 그 자가 속한 기관을 말하기도 하니 이 때문에 도검의 유물에 이름이 잘못 붙여진 경우도 실제 있는 것 같다. 어찌 되었든, 칼을 논할 때 칼 자체를 중심으로 놓고 봐야 할 것이다.

  고대 한반도의 선사 이래와 삼국시대에서는 전쟁터에 나가 전사로 싸운다는 것은 신분이 높고 선택받은 자만이 나갈 수 있는 명예로운 행위였다. 신분이 낮고 천한 사람은 노동으로 떼워 전사들의 뒷바라지 했을 뿐이다. 삼국시대의 전투는 적과 적의 대군들이 서로 만나자마자 우르르 떼거지로 맞붙는 천박한 전투나 의미없는 전쟁이 아니었다. 삼국지에 나오는 중원의 전투방식처럼 우리도 고대 원삼국과 삼국시대에서는 장군들이 나와 서로 맞짱을 떠서 최소의 희생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는 현명한 전투, 진정한 용기와 힘을 지닌 전사만이 장군과 영웅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그런 멋들어진 전쟁을 벌였다. 이렇게 맞장을 떠서 적의 깃발을 뺏으면 반은 이겼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철갑을 두른 기병대로 밀어붙이든 도끼부대로 적을 까부수든 한다.  

  서로 일대 일 승부를 벌이는 명예로운 승부에서도 칼은 잘 쓰이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엉켜 벌이는 전쟁터에서 창이나 활이 더 나았다. 상대가 튼튼한 갑주를 입고 있다면 칼의 효력은 그만큼 더 떨어졌다. 또한 좋은 칼을 구하는 것이 어려웠다.

  세월이 흘러 진정한 힘과 용기를 지닌 전사의 시대가 가고 배경만 있고 운만 좋으면 장수가 되는 시대가 온다. 적장하고 일대 일 진검승부 한번 안해보고 장군이 되고 영웅이 되는 그런 이상한 시대다. 궁노부대가 빗발치듯 화살을 쏘아 엄호를 할 동안, 병사들은 긴 창을 들고 박박 기고 뛰며 적을 도륙한다. 전쟁의 승리로 이끄는 장본인들은 이들 이름없는 병사들이지만 이들을 지휘하는 것은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는 장검을 빼들고 소리만 고래고래 지르는 자 ― 피 한번 손에 안 묻혀보고 장군 노릇한 자일 수도 있다.

  이런 의구심 속에서도 특히 판타지 장르에서는 무기로서의 도와 검에 많은 비중을 할애하고 있다. 그것은 전장을 떠났을 때의 상황, 즉 일상에서 닥칠 수 있는 위기라는 것이 평범한 인생에서는 더 많고 비중이 있기 때문이다. 도와 검은 이러한 일상적 난세에서 개인이 들고 다니는 무기로서의 그 가치가 단연 으뜸이다. 원수를 갚기 위해 혹은 괴한을 만났을 때,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르기 따지기 힘든 전장판이 아닌 좋은 놈 나쁜 놈이 확연히 구분되는 상황에서 도와 검은 그 전설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복수의 순간을 맞은 한 용사가 외친다 ― 이 원수야, 내 정의의 '창'을 받아라!

  아니면 ―  내가 이 날을 위해 십년 동안 '화살촉'을 갈아왔다. 각오해라!

  뭔가 좀 이상하다. 누가 절대 악에 대한 정의의 심판을 창으로서 내리겠는가. 원수를 없애겠노라며 누가 십년 동안 활촉을 다듬고 활시위를 당기고 있겠는가. 한 맺힌 영웅이란 폭포수 아래에서 내공이 담긴 커다란 도를 펑펑 내려치며 소리 한번 크게 지르는 것이 어울리며 멋있다. 판타지나 무협소설의 주인공은 설정이 허락한다면, 꼭 보검을 썼으면 하는 것이 M16도 구닥다리 총이 되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다. 심지어 현대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소설에서도 주인공은 종종 보검을 들고 설친다. 칼이 모든 총알을 막아내고 초능력을 실현하는 도구가 된다.

  혹자는 다음처럼 말한다.

  뭐 아무려면 어때? 멋있잖아 ― 맞는 소리다.

  어차피 현실세계의 잣대로 들이대면 설정의 무리가 따르는 게 판타지다. 그래서 멋진 칼을 든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컴퓨터 게임이나 판타지 소설에 끌리고 칼을 쓰면 질 상황에서 칼로 써서 이기는 게 재밌나 보다.

 

  ☞ <참고그림>서양 칼들의 모습들, 서양은 검(양날의 칼)의 역사라는 것을 보여준다. 맨 좌측의 것은 기원년 전의 로마의 짧은 칼 글라디어스로서 청동검의 비파형 혹은 세이지 잎과 닮은 도신의 형태를 보인다. 칼자루 끝은 뭉특한 쇠공형태로서 타격무기의 역할도 했다. 중앙은 10세기 이전 노르만 칼의 유물로서 우리나라의 환두대도(:고리자루 큰칼)와 닮아있다. 우측의 것은 십자군 전쟁 12세기 이후의 브로드 소드 broad sword로서 칼코등이와 도신을 감싸는 환도막이 부분이 없다. 밑날이 넓은 탓으로 상대의 칼과 맞부딪혔을 때 적의 칼이 미끄러지기 용이해서 이런 적의 빈틈을 이용, 뾰족한 날로 적을 찌른다. 브로드 소드는 궁수들의 칼, 용병들의 칼로서도 알려져 있으며 매우 날카롭고 베기도 뛰어났다.

 

판타지 무기로서의 칼의 분류

  여기서는 판타지 장르의 소재가 될 만한 칼들에 대해 짚고 넘어가겠다. 이 분류는 단지 용어로 사용됨을 위함이 아니라 칼의 상징성에 대해 이해를 돕기 위함이다.

  서양이든 한국이든 고대의 분위가 풍기는 판타지에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게 하는 신비한 검(혹은 도)이 있기 마련이다. 대개는 도가 아닌 검의 이름으로 또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검이 도보다 상징적 의미가 뛰어나다. 서양에서는 양날의 곧고 큰 검을 거꾸로 꽂은 것이 십자가와 비슷하다고 하여 그렇게 여겼다고 하는데 그런 신앙과는 전혀 관련이 없던 시대의 고대 한국에도 검을 상징적인 도구나 주술의 목적으로까지 사용을 했다.

  단지 찌르거나 베는 것 이외의 신기한 특성을 지닌 칼은 다음처럼 특성이 나뉜다. 세세한 설명을 위해 각 용어를 넓은 뜻이 아닌 좁은 의미로 풀어본다.

  우선 '보검(寶劍·precious sword)'의 사전적 의미는 값이 비싸거나 귀한 검을 말한다. 시대의 오래됨을 떠나 동시대로 취급하여 전자는 온갖 보석과 금으로 치장된 신라의 장식보검, 조선의 사인검·삼인검 등이 있다. 인검류(寅劍)는 그 제조과정이 특수하고 많이 생산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석을 박지 않아도 귀한 보검이 된다. 보검은 그 상징적 가치만 있을 뿐 칼과 칼이 맞부딪치는 실전용으로는 잘 사용되지 않는다.

  반면, '명검(名劍·excellent blade)'은 실전용 ― 서구의 칼문화에서조차 'sword'가 아닌 'blade'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으로서 단지 유명한 칼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칼로서의 기본기 중에서도 '베기'에 매우 충실한 칼을 말한다. 예를 들어 한번의 공격으로 단단한 바위를 두 동강이 낼 수 있다면 이 또한 명검인 것이다. 이러한 검은 일반적으로 훌륭한 장인(匠人)에 의해 만들어진다. 동양의 도검 문화에서는 검과 그와 적합하게 칼 부리는 기술 즉 검술과 그것을 부리는 사람을 하나로 일체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무기와 심신이 하나된 조화는 무예인의 바라는 경지이다. 따라서 검을 쓰는 기술이 뛰어난 유명한 영웅에게도, 그 전사들이 썼던 칼에도 이 '명검'이라는 호칭이 따른다. 우리 나라에서도 검이라 하면 검과 검술 혹은 그 검을 부리는 자를 통틀어 지칭하는 경향이 있다.

  다음 분류부터 칼에 판타지 무기다운 아주 특수한 능력이 부여된다.

  '영검(靈劍·ghost sword)'은 귀신이 붙은 검이다. 어떠한 사연으로 원주인의 혼이 검 속에 들어갔거나 죽은 자의 영혼이 칼 속에 깃들여 있는 칼이다. 영검은 반드시 보검이나 명검이 아니라 평범한 칼도 될 수가 있다. 기준은 그 안에 깃들여 있는 영적인 힘의 존재유무다. 영검은 대개 주인의 의지에 따라 복종하는데, 더러는 주인을 위협할 수도 있으며 절대 선악의 기준에 의해서 활동하지 않는다. 영검은 거의 주인과 교감하며 베거나 찌르는 것을 기본으로 아주 특별한 영적인 능력을 더해 파괴력을 보인다.

  영검과 유사한 것으로 '성검(聖劍·divine sword)'이 있다. 성검은 절대 신이나 선한 편의 신령이 내려준 검이다. 선택받은 자만이 성검의 주인이 된다. 성검은 신과 인간을 잇는 단지 매개체로서 선택받은 자와 교감한다. 따라서 악한 자가 성검으로 위력을 발할 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 한편 '마검(魔劍·sword with evil spirit)'은 영적인 힘을 내려준 세력이 악한 신이다. 마검은 중용을 지킬 줄 모르고 주인을 타락과 파괴의 화신으로 몰고간다. 고대 한국의 기록에서는 이 성검과 마검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한민족의 정신문화는 서구처럼 선과 악으로 양분되는 가치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신검(神劍·sword of god)은 신이 하사해 준 검이 아닌, '신의 검' 즉 신이 무기로서 사용하는 칼이다. 이를테면 신장(神將)들이 사용하는 칼이라 하겠다. 이런 칼은 인간이 거의 만져볼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오직 신만이 쓸 수 있다. 그러나, 일개 나무꾼이 선녀의 옷도 가져가는 판에 신검인들 못 가져가랴.

 

  아래에 열거되는 항목들은, 철기 원삼국 시대부터 조선의 임진왜란 직후까지 한민족이 사용했던 도와 검의 목록이다. 이들 중에는 상당한 고증을 거쳐 정리한 것도, 자료의 미비로 필자의 작위적인 과정과 상상의 산물로 살이 붙여진 것도 있다. 읽다보면 어느 부분이 필자의 개입이 들어갔는지 확연히 이해되고 구분될 것이다.

  ☞ 항목별 요약에서 길이는 아주 길다(140cm이상)·길다(110cm내외)·중간(80cm내외)·짧다(50cm내외)·아주 짧다(20cm이하)로 하였는데 이것은 같은 종류의 도검이라도 편차가 크기 때문이다. 또한 사용할 때 무게의 부담정도, 집도시 한손과 양손의 혹은 던지기의 가능여부, 찌르고 베는 기능별 충실도, 빠르기와 살상력 등으로 나타내었는데 이것은 현실적인 여건상 정확한 측정이 불가한 지라 각종 사료를 바탕으로 한 작가의 추정에 의한 것이며 일부는 판타지로 가공된 허구라는 것을 참작하길 바란다.

 

단검 [ 短劍·Short Sword ] & 단도 [ 短刀·Short Blade ]

□ 정의 : 짧은 칼의 통칭 □ 재원 : 짧다·가볍다·한손 □ 기능 : 찌르기 우수·베기 보통 □ 위력 : 빠르기·살상력 보통 □ 비고 : 긴 칼이나 창에 약함.

  한국에서는 고대 선사의 마제석검과 동검과 초기 철검에는 유난히 단검이 많다. 칼이 길어지는 것은 금속을 다루는 기술이 발전하면서부터이며 선사의 실전용 무기로는 칼보다 도끼와 창이 많이 쓰인다. 한국의 역사상 단검과 단도는 전쟁병기로서의 무기는 아니지만 모든 도와 검의 원조이자 호신을 위해서도 꾸준히 사용된다. 고대 한국의 청동단검은 서양의 대거(dagger)처럼 찌르기 전용의 것으로서는 너무 투박한 점이 있다. 베거나( : 날로 상처를 입히는 행위) 자르는( : 토막이 나게 하는 행위) 기능이 더 강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따라서 검의 폭이 넉넉하게 넓고 곧고 끝은 뾰족하지 않고 완만한 형태를 이룬다.

  단도는 단검보다 실제로 많이 쓰여 베거나 찌르는데 사용한다. 철기시대에 이르러 금속을 다루는 기술이 발달하자 예리한 날을 가공하는 기술이 좋아져 단검은 사라지고 단도가 지배한다. 그러나 칼날이 길어지고 삼국의 기병대들이 등장함에 따라 환두대도가 등장하고 전통적인 단도는 실전에서 호신용으로 사용된다. 시대가 흘러흘러 단도는 중국의 요도와 유사해진다. 칼코등이도 있고 도신도 알맞게 휘고 폭은 칼끝으로 갈수록 좁아져서 단도라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양손을 부리기도 좋은 형태로 발전한다. 중국의 영향을 받은 단도들은 이름과 달리 길이도 길고 칼자루 중간에 구멍이 뚫어져 수술같은 장식을 단다. 단도는 요도라고도 하여 말을 타고 칼부림을 할 때와 쌍검술을 할 때도 사용한다. 요도라 함은 허리에 차는 칼이라는 뜻인데, 당시 우리나라의 평균신장이 매우 작았던 것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단도의 범주에도 들어갈 수 있다. 잘만들어진 단도는 선물용으로도 종종 애용되어 지체높은 양반가의 벽에 걸리기도 했다. 서구의 검의 경우에도 허리에 차는 경우는 기원년전과 암흑시대에는 드물었으며 대개 등이나 겨드랑이 등의 부위를 이용해 칼을 휴대하였다.

  ☞ '패도'라 함은 사람이 각자 차고 다니는 고유한 칼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도검의 형태적 분류에서 나온 이름은 아니다.

 

도자 [ 刀子·Korean Nife ] ― 손칼

□ 정의 : 외날의 작은 호신용 칼. □ 재원 : 매우 짧다·매우 가벼움·한손 □ 기능 : 찌르기 보통·베기 약함 □ 위력 : 아주 빠르다·살상력 아주 약함 □ 비고 : 휴대 용이

  칼코등이는 없고 칼집이 있으며 칼자루와 칼몸통의 비율은 거의 같다. 도신은 대체로 곧은 편이고 끝이 날카로워 찌르기가 더 좋다. 원삼국시대에는 30cm 내외로 컸으나 시대가 흐를 수록 작아져 조선시대에서는 장도(粧刀)류와 거의 같아진다. 장도와 차이점은 단지 장식이 없다는 것이다. 도자는 조선시대에는 실용적인 것으로 발전되어 칼집에 쇠나 은젓가락 등을 넣을 수도 있게 된다. 실제로 나그네들 ― 주로 남자들이 실제 호신용이나 다목적으로 요긴하였던 칼로서 요샛말로 여행용 칼이라 해도 무난하다. 칼자루와 칼집은 같은 재질의 나무나 금속으로 만들어지며 긴 직육면체 형태로 각진 것도 있다. 끈으로 품이나 바지춤의 끈에 묶고 다닌다. 실전에서 도자의 사용은, 주로 장딴지 같은 살이 넉넉한 부위에 푹 찌르거나 휘둘러 베는 행위로 겁을 주는 것이다. 상대를 단번에 죽이기에는 다른 무기들보다 버겁고 여차 방심하면 적의 발길질에도 당하기 쉽다.

 

비수 [ 匕首·Bisu ]

□ 정의 : 단도의 일종으로서 암살용 칼 □ 재원 : 짧다·가볍다·한 손 □ 기능 : 찌르기 보통·베기 보통

□ 성능 : 빠르다·살상력 우수 □ 비고 :

  팔꿈치를 넘을 듯 말듯한 길이로서 소매 속에 넣고 품에 감추기 좋은 크기. 외날이 굉징히 예리하고 그 끝이 뾰족하여 찌르고 베기 좋으며 도신이 대개 곧다. 날이 예리하고 숨기고 다녀야 하는 만큼 칼집이 있다. 칼집과 칼자루는 대개 대나무로 만든다. 칼을 빼거나 집어넣을 때 소리가 않고 칠을 자제해 밤의 달빛도 반사시키지 않게 한다. 또한 칼자루에 가급적 장식이 없고 칼코등이가 없다. 일대일의 결투용 아니라 암살용이기 때문에 칼과 칼이 맞붙힐 일이 별로 없으므로 칼부림 속에서 손을 보호할 필요가 없다. 원수에게 복수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떳떳하지 않은 용도로 사용하는게 비수의 운명이다. 소리를 내지 않고 살금살금 뒤로 다가가 등쪽에서 심장을 찌르거나 목을 가로로 단번에 그어내기 좋다.

 

운검 혹은 별운검 [ 雲劒·Woon Sword ]

□ 정의 : 조선의 임금을 호위하는 무사들의 칼 □ 재원 : 중간·보통 무게·한손 □ 기능 : 찌르기와 베기 모두 우수 □ 위력 : 빠르고 높은 살상력 □ 비고 : 가진 자의 용기를 북돋운다.

  칼로서의 운검과 별운검은 도(刀)다 ― 그런데 왜 검(劍)이라 할까?

  별운검(別雲劍)은 조선시대 왕의 호위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별운검은 정규군과 독립된 특무기관으로서 왕의 호위를 맡았고 운검은 그 기관에 속한 무사들을 일컫는다. 임금은 그 무사들을 부를 때 운검 혹은 별운검이라고 했다. 조선시대에는 단지 검이라 하여 그 칼을 지칭하지 않고 검술도 포괄하는데 이 때는 그 기관명을 딴 것이라 생각된다. 참고로, 무예도보통지에서 제독검, 본국검 등등을 일컫는 것은 칼의 종류라기 보다는 검술무예를 말하는 바다.

  조선의 검은 그 기본과 대표가 환도(還刀)라 운검도 그 재원이 환도와 거의 같다. 차이가 있다면 장식과 색깔 등, 그리고 재원상의 융통성이다. 조선의 모든 공식적 전투병기는 장식을 자제하고 검은 칠을 했는데 민간의 것과 구분하고자 함이며 무신(武神)인 현무를 상징하는 주술적 의미도 있다. 반면 운검은 전쟁병기가 아니라 의전용 호위검이라 치장이 필요하다. 임금의 행렬과 어울리게 용린을 연상시키는 어피 등으로 만들어 칼집은 황금빛 혹은 붉은 빛이 돌고 수술도 밝고 붉은 것으로 달고 대개 구름문양을 새겨넣는다. 칼손잡이의 중간에는 의전수술을 달기 위한 구멍이 뚫려있는 것이 다른 환도 등과 구분되는 특성이다. 또한 작은 차이이지만, 슴베 부분이 짧아서 칼코등이와 도신을 밀접하게 연결시켜주는 '환도막이'부분이 길게 발달되어 있고, 도신의 끝이 각진 느낌도 준다.

 

왜검 [ Nitpondo ] ― 일본도

□ 정의 : 일본의 칼에 대한 통칭 □ 재원 : 중간·무게 중간·한손 □ 기능 : 찌르기 우수·베기 아주 우수. □ 위력 : 빠르고 높은 살상력 □ 비고 : 조선시대 수입된 일본검

  왜검은 한국 전통의 칼은 아니다. 그렇다고 왜검을 들여와서 우리의 것으로 만든 것도 아니다 ― '知彼知己'면 '百戰百勝'이라는 관점에서 다루며 <무예도보통지>에 있는 엄연한 수련의 검이다.

  왜검에는 우리 도검의 몇 배나 많은 수많은 종류가 있다. 좋은 일본도는 그 제조공정이 각 도장(刀匠)가문마다 비법이 있어 매우 독특하다. 이러한 과정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은 장인들이 혼을 넣어 거의 명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대물림과 전문가 시스템이 일본도가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이유다. 이처럼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부분들이 동시대 조선의 도검과 왜검이 다른점이다. 굳이 외견상으로 차이점을 꼽자면, 일본도의 칼날에는 인문(印文 : 칼날의 얼룩)이 있다. 인문은 도의 깃들인 장인의 혼을 상징하며 그 도장가문을 나타내는 문장과 같다. 인문이 없더라도 잘 만들어진 검에는 반드시 만든 사람이 누군가 하는 글귀를 새긴다. 자신의 혼과 가문의 명예를 걸고 만들어진 일본도. 그 소장적 가치뿐만 아니라 기능과 위력에서도 뛰어나서 강성과 연성을 고루 갖추고 그 날이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예리하다. 또한 동시대의 조선 환도는 그 도신이 칼끝으로 가면서 완만한 곡선을 가지는데 반해 왜검은 칼코등이 부터 그 곡선이 시작되어 더 반달모양으로 휘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왜검을 진열할 때에는 완만한 경사의 반달형 곡선을 지닌다. 칼자루는 질긴 끈으로 묶고, 칼집의 끈은 검은 헝겊띠이다. 전문적인 칼잡이 왜인들은 장중단 세 개의 칼을 한꺼번에 휴대하고 다니며 용도에 따라 고루 썼다.

  ☞ 만약 칼이름이 새겨져 있으면 그것이 고유한 그 칼 이름이 되는데 한국의 칼은 주인이 될 사람이 도장(刀匠)에게 부탁을 하지 않는 한 명문은 거의 없다. 조선의 유명한 도장(刀匠) 태귀련이 만든 명검의 경우는 예외다.

 

용광검 [ 龍光劍·Fantasy Weapon : Yong Gwang Sword ]

□ 정의 : 해모수의 칼  □ 재원 : ?  □ 비고 : 《한단고기(桓丹高記)〉고구려국본기 중

  해모수(解慕漱)는 고구려를 세운 주몽의 아버지이자 천제의 아들이다. 용광검은 그가 가지고 내려왔다는 성스러운 보검이다. 이 검으로 무엇을 했는지는 모르나 피를 묻힐 목적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용광검은 해모수가 자신이 천제의 자손임을 증명하기 위해 들고 온 검이다.

  해모수가 역사적 기록에 등장한 연대는 BC 80년 경으로 철기문화가 본격적으로 급속도로 전파될 때다. 신의 아들이 가지고 내려왔다는 용광검은 일단 철기로 봄이 타탕하다. 신의 아들이 들고온 검의 재질을 놓고 청동이니 철기니 따지는 것도 우습지만 용광검은 초기의 고리 자루 큰칼의 즉, 환두대도와 유사한 재원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문제는 양날이냐 외날이냐 하는 것인데 검이라 하고 다분히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칼이니 양날로 본다. 그리 길지는 않고 80cm 정도 내외로 아주 잘 제련되고 단조되어 칼날에 광채가 휘황하며 곧고 바르다. 칼자루에는 용문양의 장식이 되어 있고 칼자루 끝에는 고리가 있다.

  ☞ 해모수는 스스로를 천제의 아들이라 하며 지상으로 내려올 때 다섯 마리의 용이 끄는 수레에 용광검이라는 칼을 차고 삼천여 명의 선남선녀들을 대동하고 왔다고 한다. 해모수가 퍼뜨린 씨앗은 동부여의 해부루가 있다. 해부루의 아들은 '금와(金蛙)' ― 황금 개구리라는 것은 세발 까마귀와 더불어 태양의 상징 ― 다. 금와왕이 주몽을 품은 유화부인을 보호했던 것도 이러한 해모수로 시작된 미묘한 관계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해모수가 뿌린 태양의 정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월도 [ 月刀·Moon Blade ]  류

□ 정의 : 장대에 커다란 도가 달린 무기 □ 재원 : 크고 길다(전체길이 2미터 내외, 도신 0.7미터 내외)·약간 무겁다·양손 □ 기능 : 찌르기 보통·베기 매우 우수 □ 위력 : 느린 빠르기·매우 높은 살상력 □ 비고 : 왜인들에게 강함

 《무예도보통지〉― 18세기 정조 때 만들어진 무예 훈련서로 총 24개 무예와 각종 무기를 소개한다. 이 무기들의 대부분은 고려시대 11세기 때 무신 박원작의 건의로 전방에 실전배치되던 것으로 추정된다. 먼 훗날 조선의 기효신서나 무예도보통지는 왜구에 대처하기 위한 병법과 무예가 그 중심이 된다 ― 에서는 우리 나라 월도와 중국의 것과 차이를 설명하고 있는데, 날이 낙엽처럼 얇아 보기보다는 무겁지 않다 한다. 붉은 주칠을 하고, 칼자루와 장대를 연결시키는 부분은 황동장식을 한다. 도신의 모양에 따라 칼날이 각이 진 방도(方刀), 달을 뉘인 것 같은 언월도(偃月刀), 눈썹의 꼬리같아 하여 미첨도(尾첨刀)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쓰인 것은 언월도류다.

  이 중 미첨도는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랑을 받았다고 알려진다. 영화 <동방불패>에서 중국에 쫓겨가 동방불패와 연합한 일본 낭인들의 보졸무리가 들고 다니는 것이 바로 이 미첨도이기도 하다. 미첨도는 종종 '장도(長刀)'라고도 불렸으며, 그 제원이나 모양이 '협도'와 거의 유사하나, 보다 날렵하며 긴 일본도의 도신에 긴 자루를 붙여놓은 것과 같다. 중국이 아닌 일본에서 발달하여 중국에 침범한 일본 오랑캐들이 사용하여 악명을 떨쳤다. 언월도 중'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는 관우가 사용했다 하여 유명하다. 칼자루를 문 장식이 청룡과 달고 날은 그 청룡이 입을 벌려 불을 뿜은 것 같은 형상으로 되어 있다.

  월도는 '마상월도'라 하여 달리는 말에서도 사용하고 군졸인 병사들도 사용한다. 월도는 작전에 따라 사용하는 전술병기라기보다는 적들이 도망칠 때 여세를 몰아 더욱 내치거나 위용을 떨칠 요량으로 사용한다. 조선시대에는 특히 왜구들이 이 월도를 무서워하여 임진왜란 때 맹활약을 하고 당시 대인간 백병전의 근력무기로는 이만한 게 없어서 칼 중에서 단연 으뜸으로 친다. 그 이유는 그 위용으로 적에게 공포를 불러일으켜 도주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병법을 구사하는 실제 전술상으로는 적당하지 않았다.

  ☞ 서양의 동시기에 유행했던 것 중에서 '그레이브(grave)'라는 장대무기는 월도와 유사하다.

- 단월도

□ 재원 : 중간 길이·무겁다·한손 또는 양손

□ 기능 : 찌르기 약·베기 우수

□ 위력 : 보통 빠르기·살상력 크다

  조선시대에는 짧은 자루에 달린 월도가 있다. 무신칼로도 불리우는데 자루까지 칠을 하고 이름처럼 보통의 월도보다는 짧고 뭉툭하며 매우 육중해 보인다. 자루는 일반 월도와 달리 흑칠을 하였는데, 이것은 조선시대의 무관들의 장병기가 그 장식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흑칠을 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조정의 병기라 할 지라도 비전시의 행사나 의전용에 쓰인 무기들은 주칠을 하였다. 보통의 월도는 아무리 조정의 것이라 할지라도, 전시에 전술적 진법에 사용되는 병기가 아니라 무예의 수련 또는 편법적 전술에 이용되었으므로 평소에는 흑칠이 아니라 붉은 주칠을 하였던 것이다. 별운검이나 운검도 의전용에는 화려한 수술이나 황색이나 붉은 색의 칠을 하였다. 따라서 흑칠을 한 무신칼은 엄연히 병기로 분류되었던 병기용 월도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 협도(狹刀)

□ 재원 : 중간 길이·약간 무겁다 무게·한손 또는 양손 □ 기능 : 찌르기 약·베기 우수 □ 위력 : 보통 빠르기·살상력 크다

  조선시대에 주로 쓰이던 협도는 더러 장도(長刀)라고도 하며 월도와 흡사하나 칼날의 넓이나 단단해보이는 두께로 인해 훨씬 무게감을 준다. 월도는 두께가 얇고 넓은 편에 반하여, 협도는 그 도신이 좁으나 두께가 있으며 그 슴베부분 또한 두께가 있어 이 부분의 자루부분 또한 굵다. 실제로 월도에 비해 협도는 무게가 2배(4근) 정도 나간다. 월도 중 가장 모양이 유사한 미첨도(그림 중 왼쪽 하단의 날)의 경우에도 그 구분은 이런 무게감으로 확실하게 구분된다. 협도는 긴 자루의 특성상 보졸이 옆구리와 겨드랑이 팔 안쪽을 이용해 끼고 다녔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를 내며 베고 내리치는 월도나 협도들의 위력은 공격을 받는 칼이 댕강댕강 부러지기 쉽상이며 그 기세도 엄청나게 살벌했다고 전해진다.

  ☞ 패월도라는 것은 월도와 이름이 유사하나 다르다. 패월도는 주로 의식용으로서 운검이나 환도와 재원과 기본특성이 동일하고 장식이나 문양만 조금 차이를 보인다.

 

인검 [ 寅劍·Tiger Sword ] ― 사인검, 삼인검, 이인검

□ 정의 : 호랑이의 기운이 서려 있는 보검 □ 재원 : 중간·무거움·한 손 또는 두 손 □ 기능 : 찌르기 보통·베기 보통 □ 위력 : 느리다·살상력 보통 □ 비고 : 악귀퇴치

  검의 정의에 충실한 칼 몸통은 폭이 적당히 넓으며 곧다. 너비가 거의 균등하게 유지되다 칼끝에서 완만한 각도로 모아진다. 칼자루와 칼몸통의 비율은 1대 3 정도. 칼코등이는 장식적인 측면이 강하다. 눕혀진 칼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편평하게 봉오리나 구름을 연상시키는 문양이 주류를 이루고 칼자루 끝도 장식적인 문양으로 치장한다. 이와 다른 모양이나 형태라도 다음의 조건만 충족시키면 인검으로 분류한다. 사인검은 왕만이 지닐 수 있으며 네 마리 호랑이 기운이 깃들어 있는 검이다. 인년(寅年)·인월(寅月)·인일(寅日)·인시(寅時)인 때에 맞춰 60년마다 한 자루밖에 나올 수 없다고 한다. 왕족들이나 임금이 장군에게 하사하여 지니게 되는 삼인검은 사인검의 조건 중 인시를 제외한 세 마리 호랑이 기운을 깃들인 검으로 사인검보다 동일한 모양과 크기 혹은 그보다 작다. 이러한 인검에 칠성검의 특성을 부여하여 주술력을 높이기도 한다.

 

장검 [ 長劍·Zang Do ] ― 쌍수도 (雙手刀·Two Hang Sword) 대도 (대도)

□ 정의 : 매우 긴 칼 □ 재원 : 아주 길다(전체길이 2미터 내외)·약간 무거움·두 손 □ 기능 : 찌르기 우수·베기 우수 □ 위력 : 보통 빠르기·매우 높은 살상력

  쌍수도는 각각 양손에 쥐는 것이 아니라, 양손으로 잡고 쓸 만큼 크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장검은 일본 오랑캐가 중국을 범할 때 그 악명이 높았다. 실로, 이런 긴 장검은 일본도 중 태도(太刀)와 그 제원이 거의 동일하다. 형태상으로는 매우 미려하고 아름답다. 그 도신이 매우 날렵하고 예리하고 칼몸통의 너비도 좁아 바짝 독이 오른 것 같다. 칼자루는 두손으로 잡기에 충분할 정도로 길며, 날이 부러지지 않도록 환도막이 부분이 길다. 두 손으로 들 만큼 무거운 편은 아니나 그 길이가 워낙 길어 두 손으로 다루지 않으면 그 기술을 부리기 여의치 않다. 서양의 유사한 재원보다는 훨씬 빠르고 훨씬 예리하고 가볍다. 이렇듯 부르기는 검이라 하나 도의 형태로서 장도(長刀)라 해야 정확하다. 굳이 검이라 한 것은 그 상징적인 의미로 지휘검의 역할을 띠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보통 장도(長刀)라 하면, 장대에 외날의 도가 붙은 '협도'를 일컫기도 하고, 장검과 장도를 혼동하여 쓰이기도 한다. 이들과 혼동되는 걸 피하기 위해 장검이라 칭한 것으로 짐작된다. 장검과 혼동되는 장도(長刀)에는 동음이의어로 여인네들의 노리개와 호신용으로 알려진 장도(壯刀)도 있다.

- 성웅 이순신 장검 ― 태구련(太九連)의 검 外

□ 정의 : 이순신 장군의 장검 (2기)  □ 재원 : 매우 길다(197cm)·보통 무게·한손 또는 양손  □ 기능 : 찌르기 우수·베기 강  □ 위력 : 빠르기 중·살상력 강  □ 비고 : 현충사에 현존

  이순신 장군이 전장에서 직접 쓰던 것. 우리 나라 칼로서는 아주 드물게 만든 이의 이름과 제작 년월일이 있는데, 다름 아닌 당대 최고의 도공(刀工)인 태구련(太九連) ― 혹은, 태귀련(太貴連)이라고도 한다 ― 과 이무생이라는 장인이 제작한 것이다. 칼코등이의 테두리는 흡사 국화의 잎처럼 본땄으며 피홈이 특이하게 칼날부분이 아니라 칼등에 패여있고, 빨간 칠이 박혀있다. 실제 군도의 목적으로 동시대의 병기용 도검과 마찬가지로 흑칠이 되어있는데, 지휘검 용도의 보검에 가까웠던 것으로 사려된다.

  두 자루 중 하나에는 이순신이 직접 새긴 시구가 있다.

 

'三尺警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

― 삼척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물이 떨고,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

 

  이 박력 있는 시구처럼 이 아름다운 장검의 혈도는 붉은 칠로 채워져 귀기마저 넘친다.

  현존하는 칼에 판타지의 특성을 부여하는 것은 대단히 경계해야 될 일이나 판타지 작가들에게는 참으로 매력적인 무기 아이템이 아닐 수 없다.

  ☞ 이순신 장검과 관련된 아이템은 이뿐만 아니라 다수 현존한다. 명나라 황제가 이순신에게 하사하였다는 명조팔사품(明朝八賜品) 중 칼로서 귀도(鬼刀)와 참도(斬刀)도 있다. 귀도는 칼날이 짧고, 칼자루가 칼날만큼 긴데 그 끝에 귀신의 조각이 새겨져 있는 호신검이며, 참도는 일본의 왜검과 유사하고 죄지은 자를 베는데 쓰였다 한다. 이 칼들은 우리나라 것과는 그 장식이 확연히 구분된다.

 

칠성검 [ 七星劍·Chil Sung Sword ]

□ 정의 : 칼날에 일곱 개의 별이 박혀 있는 보검 □ 재원 : 보통 길이·보통 무게·한손 □ 기능 : 찌르기 보통·베기 보통 □ 위력 : 보통 빠르기·살상력 약 □ 비고 : 주술적 상징. 수명을 늘린다.

  칠성이란 원래 북두칠성을 뜻한다. 칠성신이라 하여 민간신앙에서 신으로서 그 영험함이 높다. 따라서 칠성검이라 하면 인검(寅劍)처럼 칠성의 그 영험함을 깃들이는 독특한 제조공정 혹은 의식을 거쳐야 할 것인데 그 과정에서는 잘 알려진 바가 없다. 단지 검신에 일곱 개의 별문양을 박았을 뿐이다. 독립적으로 칠성검이라 하는 칼의 형태를 보면 완전한 검의 형태로서 직도이며 칼자루와 검신의 비율은 1대 3.5 정도다. 칼자루는 다분히 장식적이고 칼 코등이도 마찬가지다. 칼날과 칼끝 모두 무딘 편이라 실전용으로는 가치가 없다. 임금이 보검을 하사한 일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무렵이 많은 데 박숭원, 신립, 정립 등이 장본인이다. 조선 후기에는 삼인검에 칠성을 금으로 새겨넣어 장검으로 제작해 공신에게 하사한 기록이 있다. 이렇듯 칠성검은 다른 검들과 융합될 수 있는 특징이 있는 것 같다.

 

칠지도 [ 七支刀·Fantasy Weapon : Chil ji Do ]

□ 정의 : 백제. 일곱 개의 가지날이 있는 칼 □ 재원 : 중간·약간 무겁다·한손 또는 양손 □ 기능 : 찌르기 우수·베기 보통 □ 위력 : 느리다·중간 살상력 □ 비고 : 모든 재앙을 회피할 수 있다.

  칠지도는 시대적으로 아주 희귀하고 세계적으로도 고유한 보검이다. 도(刀)라고 하나 외날이 아니라 주검신과 가시날 모두 양날 검의 형태다. 칠지도의 철제 검신은 고도의 단련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며 독특한 조형으로 좌우로 세 개의 가지날이 있다. 길게 쭉 잘 뻗은 주검신 좌우로 'ㄴ'자 형태로 꺾인 검이 엇갈려 세 개가 있다. 주검신의 앞뒤로는 금으로 글귀가 새겨져 있는데, 백제의 왕이 일본의 왕에게 칠지도를 준다는 내용 - 학술적인 주장은 분분 - 이다. 보검으로서의 가치가 너무 커서 실전으로 사용하기에는 적당치 않으나 만약을 가정하여 그 상황을 유추할 수는 있다. 판타지 무기로 분류하였으나 엄연히 실존하는 유물로서, 실제 유물에는 칼자루가 비장착된 상태이다. 당시의 환두대도의 고리는 슴베와 일치되었으므로 칼자루가 만약 존재했다면 당시의 환두대도의 양식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전용이 아니라,도신 하단을 보면 서양의 발전된 브로드 소드(ex.아처소드)와 유사하게 넓어지는 것이 보여진다. 이런 형태로 하단이 넓은 도신은 칼코등이와 도신을 연결시키는 부분을 금속판으로 덧대어 강화시키고 무게중심을 잡는 '환도막이(혹은 동호인)'부분이 대개 생략(서양의 칼은 칼코등이가 상대적으로 잘 발달되어 이 환도막이가 별로 사용되지 않았다)된다. 따라서 칼코등이가 존재했다면 도신을 지지하기 위해서라도 커야 했을 것이다. 당시 제련기술을 상대국에 뽐내기 위한 과시용 혹은 주술적이고 상징적인 가치의 소장물이라는 것을 감안해보면 칼자루나 칼코등이를 아예 만들지 않았을 가능성도 크다.

 

환도 [ 還刀·Hwan Do ]

□ 정의 : 조선의 대표적인 칼 □ 재원 : 중간·무게 중간·한손 □ 기능 : 찌르기와 베기 모두 우수

□ 위력 : 빠르고 높은 살상력 □ 비고 : 군도로서 전투병기

  환도는 군에서는 어엿한 병기로 취급되며 민간의 것과 구분하기 위해 검은 칠을 한다. 칼집과 장식수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칼날까지 검은 빛을 띤다. 칼코등이는 거의 원에 가깝게 둥근 형태로 손을 보호한다. 이러한 칼코등이의 형태는 다른 칼들에 비해 적과의 칼부림에서 손을 다칠 위험을 최소화시켜 주며, 바로 이러한 실용성 있는 원판의 칼코등이로 인해 '환도'라는 호칭이 붙었다. 의전용이나 상징적 의미의 검들이 칼고등이가 단지 장식인 것과 대조를 이룬다. 칼자루는 납작하게나 아주 동그랗지 않고 손에 쥐기 좋을 만큼 적당히 둥글고 칼자루 끝도 적당히 둥글다. 칼자루와 칼몸통은 전체길이가 길든 짧든 1:3 정도다. 도신은 칼자루에서 올라오면서는 거의 곧다가 칼 끝에 이르를 때 완만히 휜 편이라 동시대의 보편적인 왜검보다는 그 휘어지는 정도가 덜하다. 도신의 너비는 한동안 일정하다싶을 정도로 아주 완만하게 좁아지면서 칼 끝에 이른다. 한국. 칼집의 등쪽에는 두 개의 작은 고리가 있어 끈을 매달고 허리에 차거나 어깨에 메기가 좋다. 이러한 환도의 모습은 요도와 왜검 등 외래 칼들의 좋은 점을 받아들이며 개량된 결과로 보인다. 색채를 제외한 모든 재원은 조선 검의 표준사양이 된다.

 

  ☞ 일단 기본적인 상식을 알고 전통도검을 구분할 때는 (감상법이 아님을 유의) ① 칼의 길이나 크기를 봐서 장·중·단을 따진다. ② 양날인지 외날인지를 따져 검인지 도인지 구분한다 ③ 칼자루를 중심으로 재질·칼자루 끝의 모양과 장식, 칼코등이의 모양을 본다. 유사한 도검들을 구분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칼자루의 장식과 칼코등이다. 일반인들이 ③까지 정도 살피면 굳이 만지거나 설명을 듣지 않아도 대강은 구분할 수 있게 된다. 도신이 곡선을 이룬 정도, 칼의 시대적 발달 정도를 나타내주는 칼날의 단면, 칼 몸통의 폭과 칼끝으로 여며지는 정도, 칼자루와 칼몸통의 비율, 칼날에 새겨진 문자나 문양, 칼집의 재질·색깔·수술장식·칠 등은 도검 전문가의 영역이다.

 

환두대도 [ 環頭大刀·Hwan Doo Dae Do ] ― 고리 자루 큰칼

□ 정의 : 칼자루 끝에 고리가 있는 칼 □ 재원 : 약간 짧은 것부터 긴 것까지·보통 무게·한손 또는 양손 □ 기능 : 찌르기 우수·베기 중 또는 강 □ 위력 : 빠르기 중·살상력 중 또는 강 □ 비고 : 원삼국시대에서 고려 초까지 주력 도검

  대도(大刀)라 하나 보통 길이의 도검만 하다. 원삼국 시대에 칼이 보통 50cm내외의 단도에 불과했던 것으로 치면 대도라고 불릴 만하다. 시대적이나 지역적으로 오래 그리고 널리 사용되고 실전과 의전에 두루 쓰인다. 환두대도는 도신의 칼심을 칼자루에 박아서 사용하는 게 아니라, 도신에서 칼자루 부분의 슴베, 끝 고리에 이르기까지 하나로 제작되는 것이 특징이다. 골조가 되는 칼자루 부분에 가죽이나 천등으로 단단히 휘감아 손에 쥐기 좋은 형태로 만든다. 도검의 무게중심은 칼자루에 있으므로 쓰는 사람에 따라 쇠나 나무 등을 덧대어 칼자루의 무게를 달리 했을 수 있다. 도신은 곧다. 외날에 충실하고 도신의 등은 한쪽이 완전히 무디다. 시대가 흐르며 환두대도가 발전을 보이는 점은 장식이나 외형보다도 이 도신의 단조와 제련에 있던 것 같다. 고리가 아주 크고 안에 아무런 장식이 없는 것에서부터 안에 용모양의 문양을 넣은 것까지, 그 칼자루 고리의 모양이나 장식에 따라서 여러 종류가 있다. 찌르기도 좋고 베기도 좋고 의전용으로도 손색이 없다. 원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고대 한국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유행된 도검의 형태이다. 고리 자루 큰칼이라 할 때는 양날인 검의 형태도 포함한다.

 

특수도검들 및 기타 류

  언제부터인가 여러 가지 형태의 갖가지 도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박도와 같은 것들은 중국에서는 아주 흔한 것으로서 손잡이 끝에 둥근 고리가 달린 것도 있다. 이 밖에도 참수할 때 망나니가 쓰던 칼, 대나무로 자루와 칼집을 만들어 교묘히 위장한 칼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것은 사용하고자 하는 용도에 따라 재원이나 형태를 변용하고 독창적으로 개발한 것으로서 널리 쓰인 보편적인 것도 있으나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의식적 성격이 없고 호신용의 실용적인 것들은 전문 장인인 도공(刀工)의 손이 아닌 농기구를 만드는 대장간에서도 만들어진다.

- 고려시대 박서의 대우포(大于浦)

□ 재원 : 커다랗고 무거운 칼 □ 용도 : 공성병기인 운제를 파괴한다.

  몽고와의 항쟁때 박서라는 장수가 만든 것. 대우포는 일반적인 도검의 형태는 아니다. 그 크기가 엄청나게 크며 무게도 육중하며 날이 일부 톱처럼 되어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독특한 형태는 사람이 아닌 운제라는 공성병기를 무력화시키기 위함이다. 운제는 일반 사다리와 달리 독특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 난간을 잘라내야만 적의 성 침입을 막을 수 있었다. ―「수레 및 공성무기」 편 '운제' 항목 참조 ― 따라서 대우포처럼 커다랗고 무거운 칼이 유용한 것이다.

- 조선시대 임진왜란의 장병검(長病鎌)

□ 재원 : 자루와 낫 모두 쇠. 3인용으로서 매우 길고 무겁다. □ 용도 : 아군의 선박에 오르는 적의 목을 친다.

  장병검은 해전 시 배와 배끼리 근접전 시 유용한 특수검이다. 전체를 쇠로 만든 거대한 긴자루 낫과 같은 형태로서. 3인의 장병이 자루에서 나온 손잡이를 잡고 함께 호흡을 맞춰 횡으로 찍어 베듯 휘두른다. 아군의 갑판에 오르는 적의 수군은 한 둘이 아니기 때문에 3인이 횡으로 크게 휘둘러 치는 이 위력적인 장병검은 적의 목이며 몸통을 그야말로 벼 베듯 숭덩숭덩 동강낸다. 단, 칼부림이 이루어지는 근접전에는 의외로 쉽게 당할 수 있을 것이다. 장병검의 또 다른 용도는 적선의 돛을 찢어내거나, 적선에 근접한 뒤 노 대신에 장병검을 내밀어 3인 장정이 힘을 모아 적선 측면의 갑판을 뜯어내듯 부서내는데 쓰이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은밀하게도 확실하게 적선을 침몰시키기에 용이했을 것이다.

 

<참고> 김유신의 검 [ Fantasy Weapon : Divine Starlight Sword ]

□ 정의 : 신라 명장 김유신의 검  □ 재원 외 : ? □ 비고 : 판타지 도검

  원래는 보검이나 하늘의 별빛을 받아 영검(靈劍) 혹은 성검(聖劍)으로 진보된 검이다 ― 보검을 난승(難勝)이라는 도인에게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삼국사기의 기록에는 난세의 비법을 전해주었다 한다. 김유신의 보검 이후를 여기서는 편의상 '성광검(星光劍)'이라 하겠다.

 

"건복 29년(진평왕 34년 :  612)에 이웃 나라 적병이 점점 닥쳐오자, 공은 장한 마음을 더욱 불러일으켜 혼자서 보검(寶劍)을 가지고 열박산(咽薄山) 깊은 골짜기 속으로 들어갔다. (중략)이어서 천관(天官)께서 빛을 드리워 보검에 신령을 내려달라 기도하였다. 3일째 되는 밤, 허성(虛星)과 각성(角星) 두 별의 빛 끝이 빛나게 내려오더니 칼이 마치 흔들리는 듯하였다."

―《삼국사기〉김유신 열전 中

 

  성광검의 길이는 동 시대의 다른 것으로 추정하여 전체길이 80cm∼110cm. 인간이 만든 보검 이상일 경우 거의 도인 경우는 없으나 김유신이 열박산에 오른 것은 신령으로부터 영적 계시와 힘을 받음과 동시에 수련을 위함이니 당시 유행하던 환두대도의 형태로, 보검인 경우 대개는 양날이라 있는 그대로 검의 형태라 추정한다. 칼몸통은 적당히 넓고 곧으며 그 단면은 버드나무 잎 같고 칼끝은 완만한 곡선으로 미려하다. 칼손잡이는 환두형이며 장식이 화려히 꾸며지거나 특수한 과정을 통해 단련된 칼이다. 두 성스러운 별빛을 받아 단련되니 보검이었을 때도 가지지 못했던 상서로운 기운을 가득하다. 칼집에서 빼면 신비로운 성광의 광채가 사뭇 적병들의 사기를 꺾는다.

  성광검의 가장 큰 매력은 주인인 김유신과 영적으로 교감한 사실이다. 다음은 김유신 검의 신령스러움을 말해 주는 기록으로서 계백장군과의 치열한 전투로 인해 당나라와의 약속에 늦은 것으로 당이 꼬투리를 잡았을 때이다.

 

  "(당나라의 장군에게 김유신이) "황산(黃山)에서의 싸움을 보지도 않고 약속 날짜에 늦은 것만을 가지고 죄로 삼으려 하니, 나는 죄없이 모욕을 받을 수 없다. 반드시 먼저 당나라 군사와 결전을 한 후에 백제를 깨뜨리겠다." (김유신이) 이어 큰 도끼를 잡고 군문(軍門)에 서니, 성난 머리털이 곧추 서고 허리에 찬 보검이 저절로 칼집에서 튀어나왔다. (후략)"

―《삼국사기〉신라본기 태종 무열왕 中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 하여, 사실대로 기록할 뿐 지어내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진 삼국사기에서 이러한 기록이 여럿 등장함은 김유신의 신령스러운 검이 역사적으로도 분명 실재했음을 말해준다.

 

[ 도끼와 타격형 무기 ]

 

두 얼굴의 도끼

  여기 우리 나라 원삼국 시대의 한 고구려 장수가 있다.

  그가 당신이라고 치자.

  평소 재수 없다고 생각하던 적장수가 사신이라며 찾아왔다. 그는 당신의 왕과 당신을 모욕하고 있다. 당신은 그 자의 얼굴에 침을 뱉은 후에 당장 목을 치고 싶다. 눈앞에는 두 가지 무기가 있다. 칼과 쇠도끼 한 자루. 과연 당신은 어떤 것을 택할 것인가? 어떤 무기로 저 괘씸한 자의 목을 칠 것인가?  

   ― 답은, 도끼다.

  기원년 전후에서 고대의 도끼는 아주 친숙한 무기다. 또 만들기 쉽다. 심지어 석기시대에도 도구 중에 제일 먼저 만들어 썼으니 오죽하랴. 게다가 다용도다. 하루에 나무하는 게 중요한 일과였던 당시에는 도끼가 가정의 필수품이다. 병사들이 통나무를 베어 막사를 짓는데도 요긴한 도구다. 그러다가 싸움이 벌어지면 곧바로 병기로 전환된다.

  물론 전투용의 큰 도끼(鉞)도 있다. 고구려에는 도끼 부대 '부월수(斧鉞手)'가 있었다. 이 부대는 테러부대 혹은 특공대에 가깝다. 고구려 안악분 벽화의 행렬 때도 보이는 이들은 갑주도 안 입고 있지만 커다란 도끼만 달랑 어깨에 메고 있지만 어느 부대보다 용맹하다.

  당신도 이 도끼부대 출신이었다가 공을 세워 장수에 올랐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 도끼로 그 자의 목을 벨려고 하는데 적이 보낸 사신으로서의 장수라 차마 베지 못한다. 그 놈은 자기네 진지로 돌아가고, 밤이 어둑해 당신은 막사에 누웠는데 도저히 잠이 오지 않는다. 아까 받은 모욕이 생각나 분통이 터지고 이가 갈린다. 당신은 '애들' ― 도끼부대를 동원해서 밤에 기습을 해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든다.

  다음날, 드디어 두 진영이 서로 평원에서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기다렸던 전쟁이다!

  본격적인 싸움이 벌어지기 전에 어제 왔던 그 적 장수가 자꾸 시비를 건다.

  좋다, 당신은 기꺼이 받아준다. 어제 일이 영 찜찜했는데 잘된 일이다. 양 진영의 분위기가 고조된다. 좋은 볼거리다.

  당시의 전투에서는 적의 목을 벤다는 것에 상당한 가치와 의미를 두고 있다. 적의 목을 베는 것이 최고의 명예로 알고 또 그런 전쟁에 전사로 참가한다는 것은 천한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당신은 이러한 명예를 즐기는 진짜 전사다. 또한 창을 든 병졸보다 백병전 경험이 많은 진짜 장수다. 당신은 오른 손에 큰 쇠도끼(鐵鉞)를 잡고 왼손에는 작은 도끼(鐵斧)를 들고 있다. 당신은 엊그제 이 작은 도끼로 병사들과 함께 나무를 몇 그루 베었다. 그 나무로 대장군님의 막사를 세웠었다.

  지금 적장은 환두대도를 들고 있다. 용문양이 고리에 새겨진 대도를 뻐기듯 들고 있는 꼴이 더 얄밉다.  

  버럭 소리를 쳐서 기를 꺾은 뒤, 이내 끼랴! 말달려 적장과 붙는다.

  챙! 챙! 불꽃 튀기는 결투가 벌어진다.

  어느 순간, 당신의 큰 쇠도끼가 적장의 머리통을 찍었다. 도부수 출신에서 장수까지 올라왔던 당신. 역시 익숙한 도끼를 쓰길 잘했다고 잠깐 생각이 스친다. 아예 숨통을 끊을 양으로 목을 노려보는데 상대가 경갑주(:목과 그 언저리를 보호하는 갑옷)를 입고 있다. 으라차! 한번 더 머리를 찍자 적의 종판형 투구가 박살난다.

  마침내 적장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그러나 승부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적장의 목이 아직 몸뚱이와 붙어있다. 영혼까지 저승으로 보내버리려면 목과 몸을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의 관념이다. 말에서 내린 당신은 큰 도끼를 고쳐 잡는다. 쓰러진 채 기절해 있는 적장을 시큰둥하게 내려본다. 발로 툭툭 쳐가며 경갑주를 분리해낸다.

  그 단단한 나무들도 벴는데 하물며 사람 목 따위야.

  전장의 피에 물들은 당신에게는 가소로운 일이다. 적장을 목을 베는 것은 당연한 장수의 권리이자 책임이다. 별로 힘들지 않고 한두 번 내리찍자 죽은 적의 목이 몸과 분리된다. 피가 좀 튀겼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당신은 한 손에는 그자의 환두대도, 다른 손에는 그 자의 목을 자랑스럽게 들어 보인다.

  아군은 사기 충천하고 적은 기가 죽는다.

  보라! 적병은 벌써 도망치고 있다.

  싸움의 반은 벌써 이겼다.

  병사들은 전투 중에도 적이 도망가면 손에 무엇을 들었든 간에 도끼로 바꿔 잡고 쫓아가서 난도질을 해놓는다. 창을 든 병졸들이 말에서 적 대장을 떨어뜨린다. 도끼부대 병사들이 달려와 저항하는 적 대장의 갑주를 때려부순다. 그리고 '응징'한다. 역시 적의 숨통이 이미 끊긴 후라도 목이 몸하고 붙어있는 꼴을 보지 못한다. 바닥에 고깃덩이처럼 나뒹구는 적의 목을 베는데 칼을 쓰진 않는다. 도끼로 찍는 게 손쉽고 빠르다. 그렇게 목을 분리해낸 뒤 죽인 적의 수를 세고 유명한 적장의 것은 공공의 전리품으로 걸어놓는다.

  이러해서 당신은 승리했다. 도끼가 승리의 주역이었다.

 

  이상의 가공의 이야기에서, 생활도구로서의 도끼의 이로운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끔찍한 무기가 된다. 도끼는 갑주가 발달한 시대에 갑주를 때려부수기 위해 유행한다. 갑주라 하더라도 판갑의 갑주가 등장할 때에 한한다. 유연하고 탄력적인 찰갑에 도끼는 별 위력이 없다. 그러나 조선의 진주대첩에서 도망치는 왜병을 '긴자루 도끼와 낫'으로 거세게 몰아쳤다 즉, 찍어 죽였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철저한 응징을 할 때는 사용했던 무기다.

  도끼는 영혼까지 좌지우지할 정도로 생사박탈의 상징이며 막강한 절대권력의 상징이다. 그래서 도끼로 목을 벤다. 고려 왕의 성대한 궁중 의장행렬에 큰 도끼가 빠지지 않고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도끼는 계속 나무를 베고 장작을 팬다. 칼이 푸줏간에서 고기를 써는 것과 같은 이치니 도끼의 두 얼굴에 대해 별로 실망할 필요 없다.

  한편, 도끼와 생김은 다르지만 유사한 공포를 주는 무지막지한 무기들도 있다. 속된 말로 한방으로 보내버리거나 고통스럽게 때려죽이는 타격형 무기들이 바로 그것이다. 무기란 쓰는 자에 따라 정의와 평화를 지키는 수단도, 아니면 스스로 천하백정으로 몰락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는데 다음에 도끼와 더불어 소개하는 무기들에 적절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 청동기 시대까지 우리 나라에는 부채꼴 도끼 등 매우 다양한 형태의 도끼가 있었으나 본 책에서는 무기로서의 가치가 있고, 원삼국시대 이후의 철제무기만 다룬다는 점에서 다 소개하지 않는다. 아래에 소개되는 도끼들 중 손도끼는 일상도구의 성격이 강하나 무기로서 쓰일 것을 가정하여 소개되는 것이다.

 

납작도끼 [ 版像鐵斧·Long Plain Axe ]

□ 정의 : 납작하고 길죽한 사다리꼴의 도끼 □ 재원 : 중대형·약간 무겁다·한손 □ 기능 : 찍기 우수

□ 위력 : 중간 빠르기·높은 살상력 □ 비고 : 외날형 긴 납작도끼 두 가지 형

  길죽하고 납작한 모양으로 길이 30cm 내외, 너비는 10cm 내외다. 날은 원칙적으로 외날이다. 곡괭이처럼 찍는 타격감이 뛰어나서 도끼 특유의 탁월한 위력을 보인다. 한번 타격할 때 살상력이 높지만 다루기가 용이하지 않은 것이 흠이다. 납작도끼나 미늘쇠창으로 불리는 장대 무기의 날 등은 '덩이쇠'라는 기본형태로부터 발전된 것이다. 덩이쇠는 각종 무기나 공구가 기본이 되는 원형으로서 삼한이나 가야에서 이 덩이쇠는 곧 부(副)를 뜻해서 화폐로도 쓰인 것으로 보인다. 덩이쇠는 그 가공에 따라 넓적창의 날로 변형이 용이하며 일정한 공정을 거치면 양날 도끼로도 탄생된다. 덩이쇠라는 화폐적 용도로도 쓰이든 원형으로부터 이러한 도끼들과 양날형 납작도끼가 탄생된 것으로 보인다. 초기의 도끼들은 날덩이에 구멍이 있어 거기에 자루를 박아쓰는 것이 아니라 자루를 날덩이의 납작한 양측면에 대어 단단히 묶어서 사용을 했다.

 

손도끼 [ 手斧·Normal Hand Axe ]

□ 정의 : 한 손에 드는 작은 도끼. 장방형 □ 재원 : 조금 작다·조금 무겁다·한손 □ 기능 : 찍기 보통

□ 위력 : 보통 빠르기·살상력 중간 □ 비고 : 일상도구 겸용, 3가지 기본형태가 있다.

  한 손에 들 수 있는 손도끼로서 만들기도 비교적 쉽다. 날이 작아 보이지만 상당한 두께가 있어 크기보다는 중량감이 있다. 자루는 30cm 내외다. 이런 보통의 도끼들은 한손에 창이나 칼 등 주무기를 들고 다른 손에는 손도끼를 들고 전투에 임하기에 용이하다. 이 때 도끼의 역할은 상대의 갑주를 찍어 해체하고 칼이나 창으로 공격을 했을 때 적이 반격하는 걸 막기 위한 견제용 등 보조적 역할이다. 주무기로 사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나무등을 찍는 생활도구로 쓰여 다용도이다.

 

작은 손도끼 [ 小手斧·Throw Hand Axe ]

□ 정의 : 한 손에 드는 작은 장방형 도끼 □ 재원 : 작다·중간 무게·한손 □ 기능 : 찍기 보통·단거리 던지기 보통 □ 위력 : 보통·살상력 찍기 약·던지기 살상력 중 □ 비고 : 일상도구 겸용

  던지기가 가능한 손도끼들은 작고 아담한 게 특징이다. 작고 아담한 손도끼는 나무를 베기에도 버겁지만 던지기에 가능하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던지기에 적당한 도끼는 자루가 짧고 한쪽이 외날이고 장방형이며 적당한 두께가 있어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는 것이 특징. 날이 둥그스름한 것보다 날이 각이 진 장방형이라야 던졌을 때 찍히기가 쉽다. 전투 중에 보조무기로 사용하기에도 좋아서 주무기로 싸우다가 상대의 불식간에 손도끼를 던져서 상해를 주기에 적당하다.

 

긴자루 도끼 [ 鉞·Long Axe ]

□ 정의 : 큰 도끼 □ 재원 : 1.5미터 내외·무겁다·한손 또는 두 손 □ 기능 : 찍기 우수  □ 위력 : 중간 빠르기·살상력 강 □ 비고 : 도끼날 모양에 따라 세 가지 정도의 형태가 있다.

  80cm 내외로서 어깨에 걸치기 좋을 정도로 충분하게 긴 자루에 외날의 도끼날을 단 것이다. 고구려의 도끼부대인 '도부수(刀斧手)'가 사용하는 것으로서 이것만 사용해도 충분히 전투가 가능하다. 찍는 행위만으로 강력한 살상력을 주기 위해서는 적정한 중량감이 필요하고 날도 면적도 넓게 하기 위해서 둥그스름한 곡선을 준다. 즉, 찍는 타격력뿐만 아니라 베기로서의 기능도 강화시킨다. 날이 커질 수록, 그 두께는 상대적으로 얇아지는 경향이 있다. 즉, 작은 손도끼는 두툼하고, 큰 도끼는 두께가 얄팍하다. 이것은 크기에 따라 무게를 적정히 조절하여 다루기 용이하게 함이다. 날의 단면적이 넓고 둥그스름한 형태의 도끼는 이미 청동기 시대부터 있어왔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철기시대에 이르러 주무기로는 잘 쓰이지 않아 도리어 일상도구처럼 단순해진 경향이 있다.

  ☞ 진주대첩 때 '긴자루 도끼'를 사용해 왜구를 몰았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월부'나 '작자'의 재원일 것으로 짐작된다.

 

월부 [ 鉞斧·Wallboo : Korean Halberd ]

□ 정의 : 뾰족창에 거대한 외날의 도끼날을 단 것 □ 재원 : 자루의 길이는 중간부터 긴 것까지. 크고 무겁다·두 손 □ 기능 : 찌르기 약함·베기 우수·찍기 중간 □ 위력 : 느리다·살상력 높다 □ 비고 : 금월부 은월부는 의장용

  삼국시대에 월부는 매우 육중하고 위력적인 전투용 무기다. 적을 단호히 응징하는데 있어서 이 월부는 칼보다 앞선 무기로서 장군들도 애용했다. 자루가 매우 길고 날덩이의 면적이 매우 넓다. 거대한 반달형의 도끼날 뒤에는 뾰족한 갈고리 날이 있어 적을 찍어 당겨 죽이기에 충분하다. 뾰족창살으로 인해 찌르기도 가능하며 자루 끝에는 미루를 달 경우 뒤로 공격해오는 적을 견제한다. 이렇듯 월부는 창의 장점과 도끼의 장점을 융합하여 전후좌우 모든 방향으로 공격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창처럼 자루를 길게 할 수도 있으나 응용하기에 따라 중간 길이로 만들 수도 있다.

  중국에도 이런 무기가 있으며 서양의 중세에서는 '핼버드(hellbard)'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 핼버드의 경우 그 창날이 길며, 도끼날은 상대적으로 자루 중간에 붙은 듯 하다. 즉, 원거리 공격에는 창날을, 근거리에는 도끼날을 사용하는 것.

 

작자 [ 斫子·Zac za  :  Great Battle Axe ]

□ 정의 : 뾰족창에 거대한 양날의 도끼날을 단 것. □ 재원 : 자루의 길이는 중간부터 긴 것까지. 크고 무겁다·두 손 □ 기능 : 찌르기 약함·베기 매우 우수 □ 위력 : 느리다·살상력 높다  □ 비고 : 조선시대, 금작자 은작자는 의장용

  월부의 재원과 유사하나 외날이 아닌 양날인 것이 틀리다. 육중한 위용과 살벌한 분위기로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데 이로 인해 의장용 월부처럼 금칠 은칠을 하여 왕실의 권력과 위용을 상징하기도 한다. 작자나 월부의 앞에서는 단단한 갑주도 별 소용이 없다. 날의 날카로움이라기보다는 육중한 타격력이 때문이다. 월부와 마찬가지로 무겁고 느린 게 가장 큰 흠이지만 단순히 휘두르기만 해도 적을 상해할 수 있다. 월부와 작부는 오랫동안 무기로 사용되어 왔고 왕실이나 신의 절대적 힘을 상징하는데 가치가 있다. 조선시대에서는 월부와 작자에 용의 조각을 새겨 넣고 금칠 은칠을 하여 왕실 의장용으로도 쓰였다.

 

쇠도리깨 [ Battle Flail ]

□ 정의 : 자편이 막대형인 전투용 도리 □ 재원 : 길다 (긴자루 2.5미터 작은 자루 0.5미터 내외)·무겁다·두 손 □ 기능 : 타격성 우수 □ 위력 : 보통 빠르기·살상력 우수 □ 비고 : 기본형과 긴 사슬 원추형, 작은 도리깨형

  쇠도리깨는 농부가 곡식의 이삭을 팰 때 쓰는 도리깨에서 비롯된 것이나 그와는 목적과 재질도 전혀 다른 대인살상용이다. 긴 자루를 편(鞭), 작은 자루를 자편(子鞭)이라고 한다. 두 자루의 연결부분은 쇠두껍으로 마감하고 쇠 고리로 연결되어 있어 휘두를 때 자유자재로 움직여서 타격력이 높다. 긴 자루를 봉처럼 잡고 휘두르면서 그 원심력으로 작은 자루가 적을 타격한다. 작은 자루에는 돌기나 가시같은 정을 박아 파괴력을 높인다.

  쇠도리깨에 얼굴에 맞으면 이목구비가 나가고 사지나 몸통에 맞을 경우 뼈와 살점이 부서지는 심한 중상을 입고 정수리에 정통으로 맞으면 즉사한다. 단, 쇠도리깨를 아주 잘 다루는 사람이 사용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무예가 부족한 사람이 멋모르게 사용했다가는 제 머리가 박살나는 재수 없는 경우도 생기고 백병전의 전투에서 함부로 사용하다가는 적이 아닌 아군을 도리어 해칠 수도 있다.

- 자편이 변형된 전투용 도리깨

□ 재원 : 중간 길이(1미터)·무겁다·한 손  □ 기능 : 타격성 우수  □ 위력 : 보통 빠르기·살상력 우수  □ 비고 : 다루기 어렵다

  기술이 좋아지면 자편이 구형에 쇠침이 사방으로 나 있고 길다란 쇠사슬로 편과 길게 연결한 고난이도의 도리깨를 사용할 수도 있다. 이것은 파괴력이 더욱 높다. 겨드랑이에 끼고 다닐 만큼 작은 것도 있는데 쌍절곤과 유사하다.

 

철퇴 [ 鐵槌·Mace ] 류 ― 철추(鐵鎚)

□ 정의 : 전투용 쇠방망이 □ 재원 : 1.5미터(짧은 것에서 긴 것까지 다양)·가벼운 것에서 무거운 것까지·한손 또는 두 손 □ 기능 : 타격성 매우 우수 □ 위력 : 중간 빠르기 혹은 느리다·살상력 보통에서 높은 것까지 □ 비고 : 고대의 나무자루 철퇴, 대형 철퇴, 쇠몽둥이형 작은 철퇴.

  철퇴는 단 한 방으로 깨끗한 응징력을 보인다. 지팡이와 같은 긴 쇠막대기에 육중한 철추가 끝에 있는 형태이다. 원시적인 형태로, 나무방망이 끝에 요철이 있는 철판을 두르거나 쇠침을 박아 사용하던 것이 철퇴의 원조라고 본다. 철퇴는 전체가 금속으로 만들어진다.

  우리 나라의 철퇴는 천박하거나 무지막지하기만 한 무기가 아니다. 높은 무신들도 중형의 철퇴를 호신용이나 위엄을 상징하기 위해 휴대했고 세공과 칠 등으로 절제되면서도 미려하다. 철퇴 중 큰 것은 2미터 가까이 되는 것도 있는데 이걸로는 살짝 머리를 스치기만 해도 머리가 박살나서 즉사한다. 가벼운 것은 작은 육모 방망이 만한데 이것도 역시 그 살상력이 우수하다. 머리가 아닌 다른 부분을 칠 때는 단방에 죽이지는 못하고 큰 타박상만 입힌다. 공격이 다양하지 못하고 혹은 느리기 때문에 결투나 전투에서는 적당하지 못한다. 상대를 철퇴로 때려 죽일 경우는, 사지에 몰려 저항의 의지도 없는 죄인이나 적을 확실하게 처단할 때뿐이다.

 

철편 [ 鐵鞭·Iron Club ] 류 ― 고들개 철편

□ 정의 : 쇠로 만든 채찍형 □ 재원 : 1.5미터 내외, 보통 무게,·한손 □ 기능 : 타격성 우수 □ 위력 : 빠르다,·살상력 낮다.

  쇠로 된 채찍으로서 끈으로서 유연하게 휘두르는 그런 채찍이 아니라 달리는 말을 재촉하거나 태형을 내릴 때의 회초리에 가까운 기능이다. 즉, 후려치는 무기다. 형태는 신기할 정도로 검에 가까우며 납작하여 유연하고 코등이가 있는 것도 있다. 이런 검형 철편은 위엄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보이며, 훈련시에 모진 역할의 지휘봉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군기같은 규율이 적용되는 조직에서는 아랫사람이 말을 듣지 않을 때 이 철편으로 때려 버릇을 고쳐놓기에 적절하다. 단지 날이 없고 보다 납작하고 끝에는 대개 마름모 형태로 무게중심을 잡는 부분이 있어 휘두르는 힘을 높인다.

  무기로서의 철편은 상대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심한 고통을 주는 무기다. 철퇴보다는 타격력이 훨씬 약하지만 고통은 그 몇 배다. 또한 살상력이 아무리 낮아도 빠르기 때문에 여러 번 후려치면 실제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지휘관들이 패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철편으로 인질로 잡은 적병을 때려 죽였다는 이야기도 실제 문헌으로 남아있다. 회초리도 그러하듯 너무 무리하게 휘두르면 부러지기도 한다는 게 단점이다.

 

곤봉 [ 棍棒·Battle Rod ]

□ 정의 : 작은 창날이 달린 길고 유연한 막대기 □ 재원 : 2미터 내외·가볍다·한손 또는 두 손 □ 기능 : 타격성 우수·찌르기 약 □ 위력 : 빠르다·살상력 약하다 □ 비고 : 창날이 있는 곤봉과 없는 곤봉

  봉은 모든 막대형 무기들의 원조다. 원래는 짧은 막대형의 모든 타격무기를 포함하는 뜻이나 여기에서는 좁은 의미로 병기로서 막대가 길고 살상력이 높은 것에 한하였다. <무예도보통지>에 나와있는 병기로서의 곤봉은 작은 창날이 달려 있는데 이것은 중국에서 전래된 때문이다. 창날이 달려 있어 더러 단창과 혼동하기 쉬으나 창날이 커봤자 반 뼘을 넘지 않는다. 봉을 휘두르는데 제약이 있어 작게 만든다고 한다. 따라서 창날이 달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휘둘러서 치는 타격 공격이 주가 된다. 곤봉은 이렇듯 그 기능과 위력을 타격에 두고 있기 때문에 자루의 중요성이 크다. 자루는 강하면서도 탄력성이 우수한 나무를 쓴다. 곤봉은 무기 자체로서의 위력보다는 다루는 자의 기예에 의존하는 편이다.

 

[ 창과 장대형 무기 ]

 

창이란?

  창의 기본 형태는 긴 자루에 침처럼 뾰족한 칼날을 단 것이다. 창은 두손으로 잡고 사용하는 게 기본이다. 선사와 원삼국 그리고 삼국시대는 가히 창의 전성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타의 이유가 있겠지만 강력한 기마병이 있었기 때문에 기마병을 잡는 병기가 필요했다. 그 중 어떤 것은 중국으로부터 전래가 된 것이고 어떤 것은 우리 고유의 창들이다. 그 기능은 주로 찌르기(:spear) 아니면 던지기(:javalin), 더러는 찍어 끌어당기기도 했다.

  우리 나라에서 전장에서 창 던지는 전술을 사용한 기록은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다. 중국은 창이고, 한국은 활이고, 일본은 칼이라. 뛰어난 궁과 노가 있는데 우리가 창을 던질 때는 일종의 편법이었을 것이다. 이를 입증해주듯 중국으로부터 던지는 전문 창인 표창이 유입된 것은 임진왜란 이후로서 크고 작은 전란을 겪으며 다양한 무기체계의 필요성과 그 교육이 대두된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서 앞선 표창을 들여왔어도 삼국 이래 조선 군사체제의 전술운용에 사용된 기록을 찾기 힘들고 뒤에 나온 무예도보통지에서는 투창이 보조무기 정도로 소개된다.

  동양의 무기는 철기시대가 도래하기도 전에 활 문화가 뛰어나게 발달했다. 이것이 서양과 동양의 고대 무기체계를 가늠짓는 가장 중요한 척도이기도 하다. 궁과 노 등 장거리 무기가 월등히 뛰어나고 전문화된 무기이기 때문에 굳이 창을 힘들여 던질 필요가 없다. 이와 달리 활 문화가 발전하지 못한 문화권에서는 창을 던진다.

  활이 발달한 우리는 일단 던지기보다는 찌르는 기능의 창(:spear)이라고 본다.

  한편 고려나 조선의 창은 대부분이 중국의 것과 유사하다. 중국은 창과 장대형 무기에 있어서는 동시대 세계 최고 수준이고 또한 그들은 근력무기 중에서 창이 단연 최고라 여겼으니 좋은 것으로 써 먹을만 했다. 찌르기라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창은 월등히 오래 그 유행이 지속된다. 그러나 고려나 조선시대 사용하던 창들의 원형은 중국에서 전래된 것이라기 보다는 고대의 원삼국 시대에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다.

  원삼국 시대에는 창의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무척 다양하고 발달된 창 무기체계를 보인다. 당시에는 우리도 선사와 원삼국 시대에 투겁창, 극, 모, 과 등 중국과 거의 대등한 수준의 다양한 창과 장대무기들이 사용되었다. 찌르는 기능뿐만 아니라 때리고 치고 걸고 베는 등 거의 창인지 장대무기인지 도무지 무엇에 쓰던 무기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창은 강하다. 그렇다면 판타지에서도?

  싸움터에서의 효과적인 살상무기는 일단 긴 것이 단연 최고다. 서로 엉키다 보면 병사들끼리의 명예는 없다. 멋들어진 도검으로 폼 잡을 상황이 아니다. 상대가 등을 보이고 있어도 일단 찌르고 본다. 창은 한쪽으로만 찌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발달된 창들은 뒤쪽에 '물미'라는 것이 있어 뒤쪽으로도 찌를 수 있으니 한데 뒤엉킨 아수라장에서 여기저기 찌르고 다니기에, 또한 기마병에게는 창이 제격이다.

  병졸들은 성능 좋은 도검을 지니기 어렵다. 사람과 사람이 맞붙는 백병전에서 칼을 들고 방어하기는 힘들다. 칼을 들고 공수를 적절히 하기 위해서는 막을 것이 필요하다. 이를 테면 방패가 있어야 하거나 무예가 뛰어나야 적의 공격에 대응하다. 그러나 긴 무기는 길기 때문에 방패의 필요성이 별로 대두되지 않는다. 권투에서도 린치가 길수록 상대의 공격을 맞을 확률이 적고 먼저 찌르고 먼저 피할 수 있듯이 창은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에 충실하여 견제하거나 회피한다.

  한편으로 창과 장대형 무기들은 그 창날의 변형이 자유롭다. 커다란 도를 달면 언월도나 협도, 철추를 달면 쇠도리깨, 찌르고 베고 거는 다목적의 창도 만들어 낼 수 있다. 즉 창의 형태로는 무기개발이 손쉽고 용이한 것이다. 커다란 전란 중에서는 필요에 따라 창의 개조가 즉흥적으로 이루어졌다가 전란이 끝나면 이내 빠르게 자취를 감춘다.

  이렇듯, 창은 무예로서의 무기보다는 병기와 병법에 의해 운용되고, 이 때문에 판타지 무기로서의 가능성에 장애가 된다. 영웅이 쓸만한 상징적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그 모양이나 설정에 더 많은 변형을 거쳐야 한다. 또한 병졸들이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시시하다는 잘못된 편견, 혹은 사탄이나 들고 있는 삼지창 정도로 생각하고 드랴큐라 백작이 사람들을 꼬치처럼 꿰어 전시하던 그런 흉악한 무기로 여긴다는 서구적인 발상들 ― 우리는 이런 편견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어차피 한국적인 것은 개성이 있는 것이므로 얼마든지 창에 매력을 부여할 수 있다.

  다음에 소개하는 항목들은 한국의 역사상 사용된 기록이 있는 창들이다. 재원에서 길이는 자루길이에 크게 의존하는 것이므로 단창 중간 창 장창 등으로 융통성 있게 적용시킬 수 있다 ― ex. 갈고리 창에서도 긴 것과 중간 것 짧은 것이 있을 수 있다. 또한 명칭 및 각종 세부사항이나 설명 등에서는 미규명의 것이 아직도 많은 만큼 적절하게 가공을 하였으며 모(矛)나 과(戈), 극(戟) 등의 중국식 분류를 우리 나라에서 생산된 창이나 장대형 무기에 맞게 뾰족창·꺾창·넓적창·가지창 등으로 분류했다.

  아래 내용들을 기초로 여러분들이 상상해낼 수 있는 한국적 판타지 무기로서의 창은 더욱 다양할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갈고리창 [ Hook Polearm ]

□ 정의 : 갈고리 형태의 날을 붙인 창 □ 재원 : 3미터 내외·무게 보통·한손 □ 기능 : 찌르기 중·찍기 중

□ 위력 : 빠르다·중간 살상력 □ 비고 : 대 기마전에 유리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 갈고리 창은 낫을 매달아 베는 형태의 장대무기와는 다르며, 그 장대의 길이 또한 훨씬 길다. 갈고리 창은 대 기마전이나 갑주를 두른 적을 사용할 때 유용하다. 삼국시대에는 기마병이 주력으로서 가공할 기동력과 공격력, 방어력까지 갖춘 철갑부대였다. 철갑을 두른 말과 긴 창, 그리고 자신도 갑주로 무장한 적 기마병이 있다. 적을 쫓아 돌진하다가 갈고리 창을 든 보졸 하나가 튀어나와 냅다 갈고리 창을 찍는다. 기마병을 말에서 떨어뜨리는 것 말고도 적의 성을 기어오를 때 성 위에서 걸리적거리는 적 병사들을 찍어서 떨어뜨릴 수도 있다. 원삼국 시대 우리나라의 창은 거의가 '두껍창'으로서 창날과 일체화 된 긴 뚜껑을 장대 끝에 끼워 두루 못을 박아 고정시킨다.

 

기창 [ 旗槍·Flag Short Spear ] - 단창(短槍)

□ 정의 : 깃발을 단 단창(短槍) □ 재원 : 2미터 내외 □ 기능 : 찌르기 상 □ 위력 : 빠르다·중간 살상력 □ 비고 : 깃발로 아군사기 진작

  기창의 가장 큰 특징은 창날 아래의 작고 네모난 깃발이다. 의전용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실전에도 쓰인다. 창술의 동작이 찌르는 동작뿐만 아니라 길쭉한 곤봉처럼 휘두르거나 내치는 기술도 있으므로 기창을 힘차게 휘두를 때는 그 작은 깃발에서 팡팡 박력있는 소리가 난다. 적진 한복판에서 아군의 깃발이 휘날린다면 사기진작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런 것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효과일 뿐, 다른 창에 비해 실전적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기창은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의 태평성대와 조선시대에 두루 쓰였으며 실전용이라기 보다는 <무예도보통지> 등의 무예수련, 무과응시를 위한 수련용 창이었다.

 ☞ 기창은 기마부대의 창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때의 기창은 동음이의어로서 기마병이 쓰는 '騎槍'이다. 이는 장창을 적절히 변용해 기를 단 것으로 추정되며 길이는 2미터를 넘지 않는다. 기(마병)창과 같은 형태는 우리나라처럼 산하가 아기자기하게 엮여진 지형보다는 기마전술이 그 위력을 발휘하는 평원 등지에서는 유용했을 것이다.

 

꺾창과 가지창 [ 戈, 戟 ·GGuck Chang & Gazi Chang ] ― 과와 극

□ 정의 : 찌르고 찍고 베는 창의 일종 □ 재원 : 다양한 길이·가벼운 편·한손 또는 두손

  창의 분류에서 '모矛'란 찌르기 위한 뾰족한 날이 장대 끝에 붙은 것을 말한다. 이 모의 기본형에 날을 창대와 수직이 되게 장착한 것이 꺾창, 즉, '과戈'이다. 꺾창도 역시 기마병 잡는 창이라고 추측할 수 있지만 백병전을 할 때도 유리하다. 어깨나 머리통을 찍으면 훨씬 박력 있고 성처럼 높은 곳에 있는 적을 거꾸러뜨리기 용이하다.

  이와 유사한 것으로 꺾창(과 : 戈)과 뾰족창(모 : 矛)의 기능을 합쳐놓은 갈래창 혹은 가지창(극 : 戟)이 있다. 가지창은 찌르기도 하고 찍어 당기기도 베기도 하는 등 형태도 다양하다. 중국의 여포의 주무기인 '방천화극'이 유명하다. 극의 종류는 창 중에서는 고급품으로서 주로 장수들의 주문에 맞추어 그 모양이 다양하다.

 

낭선창 [ 낭선창·Lang Sun Spear ]

□ 정의 : 가지창의 일종. 장대에 나뭇가지 날들이 여럿 달린 것  □ 재원 : 4미터 내외·보통 무게 □ 기능 : 찌르기와 휘두르기  □ 위력 : 느린 편·중간 살상력(살상 범위가 넓다)  □ 비고 : 낭선독창 (살상력이 높고 확산된다)

  무성한 대나무나 침엽수의 나뭇가지를 꺾어놓은 듯한 창. 실제로 그 모양에서 고안된 듯 보인다. 자루는 쇠나 대나무로 만든다. 가지에 대나무 잎처럼 작은 날들이 붙어 있다. 모두 쇠로 만들 경우 무게가 적지않게 나가고 휘두를 때 저항을 많이 받게 되어 다른 창에 비해 느린 편이다. 가지는 9개에서 11개까지다. 살상의 깊이는 낮지만 그 살상반경이 워낙 넓고 또한 효과적이다. 사용되는 기술도 단순하다. 단지 흔들고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적들이 함부로 접근할 수가 없는데 탄성을 지닌 대나무로 자루를 만드는 것도 이런 효과를 높이기 위함이다. 적의 진영을 흐트러뜨리고 돌파하는데 낭선의 위력이 있다. 낭선의 날들에 독을 묻혀 사용할 경우 살상의 깊이도 높아지고 살상효과가 지속되어 그 살상력이 매우 높아진다. 통제하기 힘든 무기이고 살상범위가 넓기 때문에 자칫 아군에게도 피해를 입힐 수 있고, 갑주를 꼼꼼히 두른 적에게는 약하다는 것이 단점이다.

 

넓적창 [  ] ― 도끼날창·끌날창

□ 정의 : 끌같은 날을 자루에 단 창. 넓적창의 일종  □ 재원 : 길이 ?·가벼운 편·한손 또는 두손 □ 비고 : 원삼국시대

  넓적창은 장대를 찌르듯 밀어서 살상력을 가하는 무기다. 고구려의 화살촉 중에서는 적에게 타격을 크게 입히기 위해 도끼날 모양으로 된 것이 있다. 서유기의 사오정이 사용한 무기인 월아산에서 넓적한 쪽도 이 창날과 유사하다.

  넓적창의 끝은 검날처럼 날이 서있고 반듯하다. 다른 창으로 찌르면 구멍이 나거나 관통될 뿐지만 이 넓적창은 효과가 더 크다. 날카로운 수평의 날로 강하게 찌르듯 '밀면' 흡사 도끼로 찍은 것처럼 아주 깊숙한 상처가 날 수 있다. 만약 적의 목을 치면 그대로 밀리듯 잘려나가게 되는 형상. 넓적창에 맞으면 칼이나 도끼에 당한 것과 같아서 사지가 잘리기 쉽다.

 

다지창 [ 多指槍·Barb Spear ] 류 ― 이지창·삼지창·사지창

□ 정의 : 미늘살이 둘 이상 나 있는 뾰족창의 일종  □ 재원 : 길이 2미터 이내·보통 무게·한손 또는 두손  □ 기능 : 찌르기 우수·중단거리 던지기 보통  □ 위력 : 조금 느리다·던지기 살상력 보통·찌르기 살상력 보통  □ 비고 : 던지기·방어력 향상

  다지창에는 삼지창 말고도 두 갈래로 난 이지창과 네 갈래 창살로 된 사지창이 있다 ― 당파창은 날의 형태가 검날이므로 이에 속하지 않는다.

  '이지창'은 주살에 옆으로 살이 튀어나와 올라간 형태라 대칭은 아니다. '사지창'은 삼지창과 거의 같은데 단지 살이 네 개일 뿐이다. 이런 다지창은 고구려 뿐만 아니라 신라나 백제에서도 간간이 보인다. 극(戟)과는 달리 모든 날이 작살 형태이며 그 겨냥하는 바가 모두 찌르려는 한 방향이다.

  이러한 다지창들은 살이 많을수록 날을 작게 만들고 길이도 다른 창들 보다 작고 가볍다. 당파창과 달리 날이 없고 다른 뾰족창처럼 매끈한 쇠침이 아닌 것, 또한 창끝이 '∧형'인 이유는 이 창들이 투창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런 모양의 촉은 살에 박히면 빼내기가 힘들고, 억지로 빼내면 상처가 커진다. 들고서 싸우는 걸 전제로 하되 위급할 때 중단거리에 한하여 던진다.

  뾰족창 중에 살이 하나로서 이런 작살형 날을 지닌 것은 투창(投槍·javalin)이라고 한다. 거의 화살과 같은 날을 이룬다. 서양 판타지 무기에서 자벌린(Javalin)과 거의 유사하다.

  외촉형의 투창에서 창끝 가지가 둘 이상으로 만든 것은 근접전에서도 사용한다는 증거다. 상대의 공격을 막을 기회가 높아진다. 공격의 찌르는 동작이 곧 상대의 칼을 막는 수비형 동작이 된다. 이러한 방어적 기능에서는 두 개의 창살을 지닌 창보다는 네 개를 지닌 사지창이 더 확실하다.

  ☞ 미늘창은 끝이 두가지 또는 세 개로 갈라져 있는 창. 미늘의 첫째 뜻이 낚시바늘 끝에 있는 가시랭이 모양의 작은 갈고리라고 하여 삼지창 등과 혼동할 수 있으니 주의. 한편 극(戟)의 경우 워낙 그 형태의 변형이 많아 미늘창, 갈고리도끼창, 가지창이나 갈래창 등으로도 일컬어진다. 위의 이지창 삼지창 사지창 등은 뾰족창 계열로 이와 구분하기 위해 임의의 '다지창'이란 이름으로 뭉뚱그린 것이다.  

 

당파창 [ Dang Pa Spear ]

□ 정의 : 자루 끝에 세 개의 날 혹은 침이 달린 가지창  □ 재원 : 2.5미터 내외·약간 무겁다  □ 기능 : 찌르기  □ 위력 : 보통 빠르기·높은 살상력(형태에 따라 다르다)  □ 비고 : 방어력 향상

  날이 세 개인 창으로서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사극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처럼 조선시대 관아의 병졸들이 들고 다니는 창이 바로 이 당파창이다. 그러나 실물은 그 창날이나, 장대에 있어 훨씬 날렵한 맵씨를 자랑한다. 조선의 24삼지창으로 오인을 하나 삼지창과 당파창은 몇 가지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삼지창은 초기에 서양의 악마가 들고 있는 유형의 화살촉 모양의 끝날을 지닌 것에서부터 칼날을 달아놓은 것까지 크고 작은 돌연변이를 거쳐왔다. 또한 무속에서는 무구(巫具) 중 하나로서 무당이 신명이 크게 났을 때 삼지창을 들고 돼지머리를 푹푹 찌르기도 한다. 저팔계도 이 삼지창을 쓰는 것으로 본다. 그렇지만 삼지창은 그렇게 미련하고 사악한 무기는 아니다. 원삼국시대의 삼지창은 가지에 날이 없어 뾰족한 쇠침에 가깝고 끝에는 낚시바늘 같은 촉이 있다. 이런 모양은 철을 다루는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날로 바뀌어 간다. 길어진 가운데 날과 좌우 날이 바깥쪽으로 조금 휜 형태의 당파창은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도록 한다. 가지 사이로 적의 칼날을 막을 수 있다. 당파창은 적의 공격을 회피하지 않고 막을 수도 있는 가장 기능적인 창이며 삼지창이 고도로 진화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이 있다. 옛 삼지창이 가지고 있던 투창력이다.

 

동예모 [ Dong Yae Mo  :  Very long & Great spear ]

□ 정의 : 동예의 매우 길고 거대했던 고대 창  □ 재원 : 길이 9미터 이상·무겁다·한손 또는 두 □ 기능 : 찌르기 우수·베기 우수  □ 위력 : 매우 느리다·살상력 높다 □ 비고 : 2 ~ 3인 동시 사용?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소개된 동예 고유의 찌르기에 충실한 거대한 뾰족창. 창날만 해도 족히 1,2미터는 되지 않을까. 서양의 방진에서 사용되는 가장 긴 창의 경우에도 7미터를 넘지 않는다. 동예의 모가 9미터 이상이라는 것은 한 사람이 사용할 수 없거나, 한 사람이 사용한다면 거의 제자리에 그것을 붙들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만약 이동하면서 전투를 벌였다면 장정 두 세 사람이 붙어서야 수월히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터무니 없이 긴 창은 대평원에서의 대규모 전투를 하는 동시대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서 보이지만, 당시 동예는 고대 반도의 동해에 있었던 나라로서, 이런 대평원에서 전투를 할 일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허나, 당시의 전투양상이 기마병이 막강했던 것으로 볼 때, 동예모가 방진에서 창병의 역할을 담당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방진에서 창병이 사용하는 6,7미터 가량의 긴 창은 대평원을 상대로 해서 질주해 달려오는 기마병들에 대항하기 위한 바리케이트 역할로 존재했다. 서구에서 이런 장창을 이용한 전술은 기마병이 등장하는 대규모 전투라면, 기원전 이래로 10세기 이상 계속되었다.

  그런데 이런 창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을까? ― 동예의 마을에 오랑캐가 몰려온다. 여기서 오랑캐란 기마병을 갖춘 북방의 적들을 말한다. 동예모를 다루는 장정들은 적들의 한복판으로 돌진하지는 않고 기마병이 돌진해 오기를 기다리며 동예모를 들고 진영을 갖춘다. 즉시 적 네 다섯명이 동예모에 뚫려서 꼬치처럼 된다. 빼내는데도 협동심이 필요하다. 약간 여의치 않자 적 도수부(손도끼들 든 병사)들이 이 틈을 노려 도끼를 들고 달려온다. 이럴 경우에는 동예모와 그것을 다루는 자들은 좀 속수무책이 아닐 수 없다. 동예모는 팽개치고 덩달아 도끼들고 붙을 수밖에 ― 전술상 과시용이었을 가능성도 크다.

 

뾰족창 [ 矛·Normal Spear ] - 모矛

□ 정의 : 날이 없어 찌르기만 하는 창  □ 재원 : 길이 다양·한손 또는 두손  □ 기능 : 찌르기 강·중장거리 던지기 중  □ 위력 : 빠르다·살상력 찌르기 보통·던지기 보통  □ 비고 : 쇠침형·작살형·마름모형

  모(矛)는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창이다. 원래는 찌르는 기능만 있다가 창살에 검날이 생기면서 베기도 하는 창으로 발전되는데 찍어 끌어당기듯 베는 꺾창(과 : 戈)와는 다르다. 고려나 조선의 장창, 기창도 크게 보면 이 뾰족창의 범주에 들어간다. '모'는 장대에 끼우는 투겁형과 날 아래의 심지를 자루에 박는 두 종류이다. 혹은, 찌르기만 하는 형태(쇠침형·작살형·마름모형 검)와 창살에 양날이 있어 찌르기뿐만 아니라 벨 수도 있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후자는 검을 긴 장대에 단 것과 같아 검과 장대가 융합된 결과로서 우리가 흔히 창이라 하는 것은 이런 검날의 창살을 가진 것이다. 반면, 검날이 없는 찌르기 전용 창은 태초의 원시인들이 장대를 뾰족하게 깎아 만들다가 발달한 것이므로 모(矛)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원조 뾰족창들은 중단거리 투창용으로도 쓸 만하다.

 

  ☞ 구불구불한 날이 달린 긴 창 ― 사모(蛇矛·Snake Spear)는 삼국지의 장비의 주무기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잘 쓰이지 않았는데, 그것은 유용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일반 사병들이 쓰기에는 희귀하고 귀한 창이었기 때문이다. 사모는 구불구불한 날로 만들기가 어려운 대신 적에게 타격을 입히면 그 살상면적이 매우 높다. 장수들이 쓰기에 적당한 창이나 우리 나라의 장수들은 중국과 달리 창보다 칼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었으므로 문헌상에도 사모가 실제 전투에 쓰였다는 기록은 좀처럼 발견할 수 없다. 중국의 경우에는 아주 오랫동안 사모나 극처럼 창날의 변용이 널리 유행한 반면, 우리 나라에서는 원삼국과 삼국시대를 제외하고는 보편적이고 실용적인 형태를 추구하였다. 그것은 창이 사병들의 무기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삼발이창 [ Tripod javelin ]

□ 정의 : 세 개의 길죽한 쇠침이 뻗어나온 창  □ 재원 : 2미터 내외·가볍다·한손  □ 기능 : 찌르기 낮음·중장거리 던지기 우수  □ 위력 : 빠르다·던질 때 살상력 약함·찌를 때 살상력 보통  □ 비고 : 투창시 명중률이 높다. .

  원래는 바다 근해나 강에서 물고기를 잡기 위해 사용하는 작살. 고대 원삼국 시대의 해안 마을에서는 종종 전투에도 사용된다. 찌르기의 기능을 함과 동시에 중단거리용의 투창으로 사용한다. 경량의 쇠침이므로 던지기에 부담도 없고 쇠침이 삼발이형의 세 갈래이므로 어지간히 겨냥을 하면 다 꽂힌다. 명중률이 대단히 뛰어나지만 관통력이 약해 살상력은 떨어진다. 들고서 싸울 때의 전투력은 심하게 떨어진다. 쇠침의 한 끝이 한곳에 집중되지 않으므로 침이 박혀도 위력이 떨어지긴 하나 상대적으로 적을 찌를 확률은 높게 된다. 상대의 창이나 다른 무기의 공격을 막는데도 효과적일 수 있다.

 

양지모 [ 兩指矛 Yang Zi Mo ]

□ 정의 : 양 갈래의 미늘이 난 뾰족창 □ 재원 : 3미터 내외·무겁다. □ 기능 : 말 탄 기병 거꾸러뜨리기와 성 수비시 도구 □ 위력 : 보통 빠르기·살상력 약

  양지모는 양갈래로 갈라진 큰 미늘에 긴 주살의 뾰족창날을 창작한 것이다. 양갈래의 미늘이 본체를 차지하고 뾰족창날을 후에 붙인 것이므로, 유물로 남아있는 것중에는 이 긴 주살의 검날이 떨어진 경우도 있다. 큰 양갈래의 미늘은 서양칼에서의 잘 발달된 칼코등이 역할을 한다. 적이 도검이나 창으로 공격해 들어올 때 이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다. 환두대도가 본격적으로 나타났던 원삼국 시대 무렵에 사용된다.

 

장창 [ 長槍·Josun Long Spear ]

□ 정의 : 긴 창  □ 재원 : 3미터에서 4미터·약간 무거운 편  □ 기능 : 찌르기 우수·베기 보통  □ 위력 : 빠르기 보통·살상력 높다. □ 비고 : 조선의 장창

  일단 위력이 검증된 창의 형태는 그 어떠한 무기보다도 오래 유행이 지속된다.

  장창의 원형은 이미 원삼국 시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장창은 자루의 재질이나 철을 다루는 기술 등이 발전하여 성능이 점차 개선되며 조선 후기까지 면면히 이어진다.

  한국의 대표 창이라고 할 수 있는 장창은 칼만큼 섬세한 면이 있다. 자루로 할 나무의 선택도 무게의 경중과 탄력을 따져 까다롭다. 뾰족하면서도 베기도 가능한 창날에는 피가 흐르도록 홈( : 血漕)이 나 있다. 이 홈의 역할은 비단 피가 검신에 묻지 않게 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피가 터지는 압력은 창이 깊숙이 들어가는 것을 막는데 이 홈이 있음으로 해서 피의 압력이 밖으로 손쉽게 분출된다. 즉 창으로 찔렀을 때 순간적으로 창이 더 빠르고 깊숙하게 들어갈 수 있다. 또한 칼날과 자루 사이에 적정한 크기의 코등이가 있어 적의 무기와 맞부딛힐 때 적의 공격이 안으로 치고 들어오는 것을 저지한다. 또한 자루 끝에는 뾰족한 물미로 마감되어 있다. 훌륭한 창술을 구사하는 주인과 만난 장창은 어떤 무기도 제압하는 훌륭한 성능을 발휘한다.

 

죽장창 [ 竹長槍·Bamboo Long Spear ]

□ 정의 : 대나무로 자루를 만든 긴 창  □ 재원 : 길이 6미터내외·가벼운 편·한손 또는 두손  □ 기능 : 찌르기 중  □ 위력 : 매우 빠르다·살상력 중  □ 비고 : 좋은 대나무를 사용할 것

  여기에서의 죽창은, 절간 대나무 밭에서 밑둥 잘라 챙겨들고 상단 비스듬히 베어 생긴 뾰족날로 탐관오리 원님 배를 쑤시는 그런 죽창은 아니다. 장인에 의해 탄생된 죽장창은 실제 전투에도 쓰인다.

  죽창의 생명은 날이 아니라 그 자루로서 대나무가 생명이다. 대나무는 특유의 탄력이 있으면서도 강해야 하니 그 재료 고르기가 까다로워 병기로서의 죽창은 대량생산은 되지 않는다. 일단 재료를 구했다 하더라도 생으로 쓰는 게 아니라 까다로운 공정을 거쳐야 적의 칼도 막아내는 병기로 탄생된다. 죽창은 창살의 길이가 한뼘 정도로 짧아서 적의 베는 공격에 자루가 동강 날 수도 있다. 현실에서는 단창으로서 호신용으로 지니거나 투창으로 삼는 편이 더 좋다. 신령의 기운이라도 받은 훌륭한 대나무민 있면 명기(名器)가 탄생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일은 '판타지'에서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톱창 [ Toup Chang  ] ― 미늘쇠창

□ 정의 : 양날 톱처럼 생긴 넓적창 □ 재원 : 길이 ?·약간 무겁다·한손 또는 두손 □ 기능 : 찌르기 약·치기  □ 위력 : 보통 빠르기·살상력 중

  오늘날 양날 톱의 원형처럼 보인다. 갑주를 입지 않은 적에게는 특별한 상해를 입힐 수 있다. ― 무기가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어떤 것은 제구(祭具)로 쓰이지 않았나, 혹은 제사를 담당하는 이가 위엄을 나타내는 지팡이로 짚고 다니지 않았을까, 의심이 될 정도이다. 미늘쇠라는 말이 원칙이나 여기서는 무기로 간주하여 톱창이라고 한다. 무기로 쓰였다는 것을 가정하여 볼 때, ― 톱창에는 그리 칼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대신 가시같은 게 있어서 만약 맨살인 옷을 스치기만 해도 살점이 뜯어져 나갈 수 있다. 톱창은 찌르기보다는 후려치거나 때린 뒤 당기는 동작에서 큰 상해를 입힐 수 있다. 단 한번의 가격으로 죽일 만큼 강력하지는 아니지만 적에게 끔찍한 고통과 부상을 줄 수 있다. 이런 창으로 얼굴을 가격당한다면 이목구비가 다 떨어져 나갈 것이다. 단, 갑주로 무장한 상대에게는 약할 수 있겠다.

 

표창 [ Korean Javelin ]

□ 정의 : 던지는 목적의 투창  □ 재원 : 2미터 가량·약간 가벼운 편·한손  □ 기능 : 찌르기 약·중장거리 던지기 우수  □ 위력 : 빠르다·던질 때 살상력 강  □ 비고 : 칼과 방패와 같이 쓸 수 있다.

  일본 닌자들이 쓰는 표창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닌자들이 쓰는 암기들은 창이 아니라 수리검이다) 이 창은 던져서 적에게 타격을 입히는 투창(投槍·javelin)이다. 그러나 손에 들고 싸우는 것도 가능하다. 관통력을 극대화시킨 다른 문화권의 것은 날이 없고 길죽한 침처럼 뾰족하기만 하다. 이 표창은 손에 들고 서도 싸울 수 있도록 날이 있고 좌우에도 날이 돋아 있다. 자루의 무게중심은 창날 끝에 있고 뒤쪽으로 갈수록 차차 가늘어서 던질 때 힘이 앞으로 쏠림으로서 멀리 날아갈 수 있다. 자루는 나무나 대나무로 만들고 방패와 같이 쓸 수 있다. 칼과 방패와 같이 쓸 수 있다 하여 일단 창을 던져 적을 선제할 목적으로 쓰였던 것 같다. 방진에서 투창이 제구실을 했던 서구의 방진에서와 달리, 우리나라 전술에서는 이와같은 던지기용의 창은 실전에서 별로 사용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뛰어난 쏘는 무기, 즉, 활이 있었기 때문이다.

 

[ 쏘는 무기 ㉠ :  궁시(弓矢) ]

 

활은 한민족 최고의 근력무기

  우리 나라 영웅의 비범했던 일화를 보면 활을 무척이나 잘 쐈다는 얘기는 하나같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고구려에서도 활을 잘 쏘면 제왕이 될 특출한 인재로 우대했으며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신궁에 가까웠다.

  우리나라의 고대 무기체계에서는 활에 대한 아주 특별한 애착이 칼에 모든 것을 집중하는 서양과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이다. 비단 조선에 이르러 유교의 영향으로 칼이 쇠퇴하는 듯한 경향이 보였던 것은 사실이나 활은 태초 이래 지금까지 우리 민족에게 아주 특별한 의미를 주는 무기다.  

  그렇다면 왜 도나 검이 아닌 궁인가?

  첫째는 우리는 무기를 사람을 죽이고 전쟁에서 이기는 목적이 아닌 심신을 수련하는 방편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궁은 비전시에도 가장 가까운 무기다. 사냥을 하고 시합을 한다. 즐기면서 기예를 닦을 수 있었던 유일한 무기다.

  둘째는, 우리는 기마민족의 후예라 말 달리며 쏘는 기술이 특히 강했다. 말 달리며 이동 중 겨냥하며 몸을 틀며 뒤로 쏘는 정교하고도 역동적인 궁술로서 특히 고구려인들이 매우 뛰어났다. 말 달리면서도 쏘는데 가만히 겨냥하면서 쏘는 걸 못할 리 없다. 활 잘 쏘는 민족이라 하여 중국에서 동이(東夷)족이라 했던 것은 유명하다. 피는 못 속이는 법이라, 현대에서도 우리 나라의 활 솜씨는 단연 세계 최고다.

  셋째로, 우리의 활을 만드는 기술은 그 기예만큼 뛰어나다. 태고 이래로 언제나 당시대 최고 비단 동양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수준을 가졌다. 우리 나라의 궁은 고대일수록 더 뛰어나고 그 명성이 높다. 비록 조선의 궁이 그 명맥을 잇는다 하나 전설적인 궁들의 명성과 성능에는 미치지 못한다 ― 컴퓨터 게임에서 많이 등장하는 판타지의 무기체계들은 칼보다 활이 대부분 약한 듯 보인다. 한국적 판타지에서도 그럴까?

  활은 한민족의 자존심과 자부심이 걸린 무기다. 중국이 창(槍), 일본이 도(刀)라면, 우리는 당연히 활이다. 판타지 장르의 고전무협에서 아주 극적인 장면이 있다면, 중국적인 판타지에서는 창을 든 장수들이 활개치고, 일본의 판타지에서는 사무라이들이 일본도비슷한 것을 들고 설친다. 우리의 영웅들은 어떠한가. 어렸을 때 읽었던 유명한 장수들의 전기나 설화를 읽어보면 그 답을 알 것이다. 활을 못 쏘면 영웅이 못될 것 같은 불안감마저 든다. 한국적 판타지 장르에서 활의 상징과 그 의미를 간과한다면, 아무리 한국적 판타지의 무기체계를 늘어놓고 영웅을 설정한다 하더라도 진정한 우리의 것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한편 쇠뇌 즉 노(弩)란, 기계적 매커니즘을 이용한 궁이다. 서양에서는 손에 들고 쏠 수 있는 석궁(石弓·crossbow)의 개념이나 우리의 노라 함은 그런 일반적인 석궁도 포함하면서 훨씬 크고 성능도 다양한 중장병기로서 전쟁터에서 주로 쓰인다.

 

궁(弓)의 종류

  궁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궁에 기본적인 사항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전문가 영역까지 짚고 넘어가지는 않으나 다음의 항목만 잘 알면 판타지 무협 장르를 개발하는 게임 이나 애니메이션 기획자, 영화 관계자나 소설 등의 관계자들은 그 설정이나 용어를 개발하는 작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① 길이로는 시위를 달았을 때를 기준으로 팔 하나 길이 안쪽이면 단궁(short bow), 사람 키만큼 크면 장궁(long bow)이라 한다. 다른 특성은 거의 같고 길이만 다르다면 장궁일수록 사정거리가 늘어나고 겨냥한 대로 화살이 향하는 정확성도 높아진다.

  ② 만드는 과정이나 난이도 등을 기준으로는 단순궁·강화궁·합성궁으로 나눈다.

  단순궁(simple bow)은 활몸체를 만드는 재료가 한두 가지로서 형태만 다듬은 후에 시위를 감아서 쓰는 가장 단순한 활이다. 여기서는 비단 나무로 만든 것뿐 아니라 철로 만든 것도 포함한다. 강화궁(strengthen bow)은 단순궁인 활의 몸체에 가죽이나 여타 부재료로 감고 조여서 그 탄성을 보강한 것이다. 합성궁(composite bow)은 그 제작 전반에서 아주 까다롭고 섬세한 공정을 거쳐서 태어난다. 활 몸체도 다양한 재료로 부분적으로 대고 합치고 덧붙여 만들며 부재료도 많다.

  강화궁 단계를 합성궁에 넣은 두 가지 단계도 있는데 환목(丸木)궁과 복합(複合)궁 혹은 단일(單一)궁과 복합궁이다.

  ③ 시위를 풀었을 때 활의 형태로서 직선형·반곡형(反曲形)으로 나뉜다. 직선형은 원래 약간 휜 형태였다가 시위를 풀면 거의 일직선이 되는 경우이며 대개 단순궁이 많다. 반곡형은 특이하게도 역으로 완전히 둥글게 휘는 형태를 이룬다. 그만큼 탄성력이 뛰어나다는 증거다. 다시 시위를 감았을 때는 탄성력을 잔뜩 품고 있다가 활을 쏠 때 뿜어낸다.

  시위를 걸었을 때 모양으로는 만궁(彎弓)형·직궁형으로 나뉜다. 직선형은 사실은 완만하게 굽어진 것이다. 합성궁에서는 반곡형의 성질 때문에 끝에서 처마모양으로 쳐 올라가듯 미려한 곡선을 이루는 만궁형이 된다. 잉글리쉬 롱보우로 대표되는 서양의 활은 두개 정도의 서로 다른 형질의 나무를 맞댄 강화궁의 직궁형이 만은 반면, 우리의 활은 합성궁에 거의 만궁형이다.

  여기서 만궁형은 반곡형과 같은 성질이고, 직선형과 직궁형 또한 같은 성질에서 비롯되니 결국 시위를 매기거나 벗기거나 형태로서는 만궁형·직궁형으로 나뉘는 셈이다.

그림0. 만궁과 직궁

  ④ 재료로 구분하자면 무척 많은데 주재료로 나누면 목궁(木弓·wood bow)·각궁(角弓·horn bow)·철궁(철궁·iron bow)·죽궁(竹弓·bamboo bow) 등이다. 활시위는 대개 소힘줄을 사용한다.

 

  위의 분류대로라면 가장 위력적인 활은 장궁·합성궁·만궁형(반곡형)·각궁·군용궁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활이 될 것이다. 이 밖에도 군용이나 수렵용 등의 용도에 따라, 활을 당기는 근력의 정도에 따라, 검은 칠을 한 노궁과 붉은 칠을 한 동궁 등 색깔이나 장식별로도 나뉜다. 목궁의 예를 들어도 장궁과 단궁이 있을 수 있고 여기에 각각 단순궁과 강화궁이 있을 수 있으니 이와 같은 조합에서 탄생될 수 있는 종류와 그 성능은 대단히 다양하다.

 

각궁 [ 朝鮮角弓·Horn Composite Bow ]

□ 정의 : 조선의 각궁 (조선시대 정량궁 기준)  □ 재원 : 장궁·복합궁·만궁형(반곡형)·각궁  □ 기능 : 쏘기 우수·사정거리 길다 □ 위력 : 정확성 높다·살상력 높다 □ 비고 : 쏠 때 반동 주의

  맥궁의 기본 특성과 모양은 면면이 이어져 내려와 조선까지 내려온다. 평원이 아닌 성채 중심의 전쟁이니 기마형태로 전투를 벌이지 않는다. 전쟁양상의 변화에 따라 각궁도 변화될 수밖에 없지만 맥궁의 기본 특성은 유지한다. 크기에 따라서는 단궁에 가까운 일반 각궁(角弓·horn bow), 장궁에 가까운 정량궁(正兩宮·super bow), 거대해서 의전용으로 주로 쓰이는 예궁(禮弓 혹은 大弓·great bow)이다. 조선에 이르러서는 중국 물소뿔을 쓰는데 그 재료가 검다하여 흑각궁이라고도 하며, 소뿔이 없으면 녹각궁(鹿角弓)이라 하여 사슴뿔로도 만들었다 한다. 크기와 일부 재료만 다를 뿐 각궁의 형태는 같다. 또한 활 몸체를 모두 뿔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성질의 나무가 주가 된 복합몸체에 납작하게 자른 뿔을 부분적으로 대어 탄성을 준다. 각궁은 그 몸체가 가벼우면서도 편편하다. 각궁은 거의 이러한 합성궁으로서 까다로운 공정을 거치는 바 노련한 궁장(弓匠)이 아닌 자는 만들지 못한다. 각궁은 성능이 다른 활보다 월등히 뛰어나다. 특히, '정량궁'은 크고 튼튼할 뿐만 아니라 무거운 화살도 거뜬히 쏘고 성능도 탁월하다. 정량궁으로 쏠 때는 반동이 강하여 힘이 부실한 자는 튕겨져 나가니 힘 센 궁수들이 쓴다. 또한 조선시대 병기가 그러하듯 흑칠을 한다.

 

<참고> 거타지 [ 居陀知·Guttazi ]

□ 소개 : 신라의 궁수 □ 특기 : 활쏘기 □ 비고 : 《삼국유사》기이편

  거타지는 하늘에서 내려온 여우요괴를 쏘아 떨어뜨린 명궁이다.

  옛날 당나라로 가는 신라 왕자의 행렬에 있었다. 당나라로 항해하던 배가 곡도 근해를 지날 때, 물살이 심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할 상황이 되어 왕자인 양패가 걱정을 하였는데 그의 꿈속에 한 노인이 나타나 활 잘 쏘는 이를 섬에 놓고 가면 풍랑이 곧 멎을 거라 했다. 이 노인은 서해의 용왕인데 간을 빼먹는 아기중에 의해 일가가 거의 몰살되어 있었다. 왕자가 거타지를 곡도에 놓고 당나라로 떠나버렸다.

  요샛말로 왕따가 되어 섬에 홀로 남겨진 거타지.

  노인이 나타나 여우요괴를 없애달라고 하자 거타지는 승낙하고 다음날 아기중을 맞혀 떨어뜨렸다. 정체를 보니 다름 아닌 여우요괴였다. 외로운 거타지는 용왕의 딸을 달라하니 용왕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여 딸을 매화가지로 변하게 하여 건네주었다. 거타지는 용녀를 품에 넣고 용을 타고 당나라로 일행의 뒤를 쫓아가니 당나라의 황제와 양패의 일행들이 이를 보고 영웅으로 대접하기에 이른다.

- 거타지의 활 (판타지 무기)

□ 특성 : 장궁·강화궁·목궁·보통 빠르기·사정거리 멀다  □ 위력 : 살상력 중간·100% 정확성

 

낙랑단궁 [ Nang Lang Dan Goong ] ― 단궁(檀弓)

□ 정의 : 낙랑지대에서 난 박달나무 활 □ 재원 : 단궁·강화궁·직궁형·목궁 □ 기능 : 쏘기 우수·사정거리 중간 □ 위력 : 정확성 높다·살상력 높다 □ 비고 : 단순궁이자 직선형인 일반 목궁 vs 강화된 M형 목궁

  고구려의 맥궁과 함께 고대 선사의 대표적인 궁으로서 박달나무로 만든다. 재료와 산지(産地)의 이름을 따 '낙랑단궁'이라 불리운다. 그 원형은 고조선의 단순궁이다. 단순궁인 상태로 사정거리와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활의 몸체가 아주 긴 장궁으로 만들어야 썼다. 그러나 말을 타며 수렵 등이나 기마전투에 쓰기 위해서는 장궁이 불편하므로 성능을 개선시켜 크기를 줄일 필요가 있다. 활 몸체 중 질이 다른 나무를 덧대어 시위를 맬 때 탄성을 더 많이 품게 하고 몸체를 감고 조여 탄성을 개선한 강화국의 형태가 아닐까 한다. 여기에 낙랑단궁 특유의 비법이 어딘가에 더했을 것이다. 이렇게 탄생된 낙랑단궁은 날카로운 눈과 훌륭한 활솜씨를 가진 주인을 만나면 날아가는 기러기 쯤은 거뜬히 맞출 수 있다.

 

목궁 [ 木弓·Wood Bow ] 류 ― 호(弧·Ho) & 고(古·Go)

□ 정의 : 나무로 만든 활 중 진한의 호(弧) □ 재원 : 단순궁·직궁형·목궁 □ 기능 : 쏘기 중간·사정거리 중간  □ 위력 : 정확성 중간·살상력 중간 □ 비고 : 수렵용

  호(弧)는 진한에서 사용한 활로서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소개된 바 있다. 박달나무로 만드는 동시대의 단궁(檀弓)과는 다른 것으로서 만든다. 진한의 호는 단순궁 혹은 강화궁으로서 성능은 그리 뛰어나지 않다.  

- 조선의 호(弧)

□ 재원 : 단순궁·복합궁·만궁 □ 기능 : 쏘기 중간·사정거리 중간 □ 위력 : 정확성 중간·살상력 중간  □ 비고 : 군용

  조선시대에도 이를 계승한 호가 있는데 그 성질이나 구조가 개량된 것으로 복합궁에 가깝다. 또한 조선에는 옛날 원삼국이나 삼국시대처럼 말 타며 쏜다 하여 고궁(古弓) 혹은 동개궁이라는 것이 있다. 말 타며 쏘니 당연히 짧고 가볍다.

- 조선의 고(古) 혹은 동개궁

□ 재원 : 단순궁·직궁형·목궁  □ 기능 : 쏘기 중간·사정거리 중간 □ 위력 : 정확성 중간·살상력 중간  □ 비고 : 군용

  제대로 된 목궁은 참나무 뽕나무 대나무 등 여러 가지 나무를 적절히 사용한다. 따라서 좋은 목궁 하나를 만드려면 주재료인 나무를 고르거나 부재료를 가공하는데도 전문가적인 손길이 필요하다. 각궁(角弓)보다는 성능이 못하지만 굳이 목궁이 쓰는 것은 비교적 빨리 만들어지고 수고도 적기 때문이다. 전쟁 없는 평화로운 시대에서야 목궁만한 게 없고 이런 연유로 목궁은 민간의 수렵용이며 병사의 연습용으로 애용된다.

 

맥궁 [ 貊弓·Mac Goong ]

□ 정의 : 고구려 맥족의 각궁 □ 재원 : 단궁·복합궁·만궁형(반곡형)·각궁 □ 기능 : 쏘기 우수·사정거리 길다 □ 위력 : 정확성 높다·살상력 높다 □ 비고 : 고구려

  우리나라 각궁의 원조이자, 고대 활 중 가장 성능이 뛰어났던 전설적인 활이다. 고구려 맥족이 만들었다 하여 맥궁인데, 벽화에도 등장하는 활이다. 말 타면서 쏴야 하므로 주로 장궁이 아니라 단궁(short bow)일 것이다. 고구려 무용총에서 말달리며 활을 쏘는 궁수에는 이 고구려 맥궁의 모습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 이를 보면 마치 뼈들을 이어 만든 듯 관절처럼 마디가 보인다. 실제로 뼈마디가 아니라 멋을 내기 위한 문양으로 추정된다. 또한 후대의 각궁과는 다른 형태를 지니고 있으나 그 형태가 복합궁이며 만궁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 색깔이 매우 흰 것으로 보아 중국의 검고 큰 물소뿔이 아니라 우리 나라 소의 뿔로 만든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뛰어난 성능의 맥궁은 말달리며 쏘는 궁수가 주로 애용한다.

 

애기살 [ Baby arrow ] ―  고려전·편전

□ 정의 : 대롱에 담아 쏘는 작은 화살  □ 구성 : 아기살·퉁아·활장갑  □ 기능 : 쏘기 매우 우수·사정거리 매우 길다.  □ 위력 : 매우 빠르다·높은 명중률과 살상력(한방에 사살)  □ 비고  :  보이지 않고 소리도 나지 않는다 → 저격용

  아더왕이 '엑스칼리버'를 백 번 휘두르는 것보다 잘 날린 우리의 '애기살' 한 방이 세계를 구할 수도 있다.

  ― 여기 원수가 있다. 그는 수많은 군대를 거느리며 요새같은 성곽 안에 은거하고 있다. 그는 당신의 복수를 우려해 아주 단단한 갑주를 입고 있다. 사방은 아주 고요하다. 경계하는 병사가 알려오길 멀리 천(千) 보 밖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한다. 원수는 아무나 값나, 놈은 당신을 이렇게 비웃으며 술이나 한잔 먹으러 방을 나가는데, 갑자기 윽! 하고 쓰러진다. 이내 부하들이 달려온다. 대장이 다혈질이더니 드디어 중풍을 맞았구나! 이런 짐작도 사라진 부하들의 얼굴엔 경악이 찬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작은 화살이 이 사람의 갑주를 뚫고 심장에 박혀있다. 주위를 살피지만 적의 흔적은 아무도 없다. 그들은 이 앙증맞으면서도 가공할 위력을 지닌 화살이 어떻게 날아오고, 어디서 날아오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 고려전이라 하는 이름처럼 수세기 전 고려시대부터 유명했다. 편전 혹은 아기살은 고려전이라 하여 고려시대부터 중국사람이 붙인 것이다. 근데 왜 하필 유독 '화살(箭)'을 지칭해 유명해졌을까? 그건 위의 허무맹랑한 이야기처럼 아기살 빼고는 아무 것도 알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작은 아기살은 '통아(桶兒)'에 담겨 좋은 궁으로 쏘아진다. 이 통아의 역할은 총신이 긴 총의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총신이 긴 총일 수록, 멀리, 그리고 정확도가 높다. 따라서, 궁이 아닌, 이 보조적 장치인 통아가 고려전이 천 보밖에서도 갑주를 능히 뚫는다는 소문의 핵심이 된다. 고려전은 아무나 쏜다고 혹은 비슷하게 본떠서 만들어서도 그 만큼 위력적으로 멀리 날아가지도 않는다. 아기살뿐만 아니라 아기살을 쏘는 관인 통아, 보조장비로서 활장갑 그리고 고려전을 쏠 줄 아는 궁수가 필요하다. 고려전의 사수가 눈이 좋아 천 보 밖의 것도 볼 수 있다면 위의 가공의 이야기처럼 저격수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고려전의 구성과 고려전 저격수의 양성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나라에서 극비로 취급했다.

 

죽궁 [ 竹弓·Bamboo Bow ] 류

  죽궁은 대나무로 만든 활이다. 일반 서민들도 쓸 만큼 대중적인 무기이다. 더구나 뒷산을 누비는 마을 사냥꾼인 당신에게 활은 밥줄이다.

  불행히도 당신은 어제 깊은 산 속에서 굴러 떨어져 목궁이 부러지기 말았다. 화살을 잔뜩 담아두었던 동개도 잃어버렸다. 재빠른 토끼를 곡괭이나 식칼 들고 쫓아갈 수는 없다. 먹고는 살아야 되고 돈은 없다. 어쩌겠는가, 직접 활을 만드는 수밖에. 당신은 눈썰미와 손재주가 좋아 초보적인 죽궁 정도면 직접 만들 수도 있다. 텃세하는 중 몰래 절간 뒤 대나무밭에 들어가 좋은 놈을 슬쩍 낫으로 베어온다. 시위로 쓸 소힘줄은 푸줏간 개똥이네 고모하고 물레방앗간에 가서 방아질 몇번 하고 얻어 쓴다. 쓱싹 뚝딱하고 만들어 놓고 보니 막막하다. 너무 간단해 허탈하다. 활보다 화살 만드는 게 도리어 일이다. 걱정할 필요 없다. 화살대도 대나무살로 만드니 남은 짜투리를 쓰면 된다.

- 단순궁으로 제작된 죽궁

□ 재원 : 중궁·단순궁·직궁형·죽궁  □ 기능 : 쏘기 중간·사정거리 단거리  □ 위력 : 정확성 낮다·살상력 중간  □ 비고 : 민간인 호신용. 수렵용

  죽궁은 언제부터인가 민간에서 만들어졌다. 민간에서 만들기에 목궁보다 죽궁이 더 용이하다. 죽궁들은 장인의 손을 거치지도 않고 손쉽게 만들어졌으며 길이는 다양하고 직궁이며 단순궁이다. 단순궁이므로 어떤 대나무를 선별해 몸체로 삼느냐가 중요하다. 재수가 좋아 좋은 대나무가 걸리면 그만큼 좋은 활이 탄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아무리 잘 만들어져도 너무나 심플한 죽궁을 든 자에게 나라의 안녕을 맡기기에는 미덥지 않다. 무기로서의 가치가 있는 죽궁은 강화궁이며 최소한 중궁 이상의 재원을 지닌다.  

- 강화궁으로 제작된 죽궁

□ 재원 : 중궁·강화궁·직궁형·죽궁 □ 기능 : 쏘기 우수·사정거리 중거리  □ 위력 : 정확성 높다·살상력 높다  □ 비고 : 궁장이 만든 군용

 

철궁 [ 鐵弓·Iron Super Bow ] ― 철태궁 ?

□ 정의 : 철로 만든 활 □ 재원 : 단순궁(혹은 합성궁)·만궁형·철궁 □ 기능 : 쏘기 우수·사정거리 중장거리  □ 위력 : 정확성 높다·살상력 높다 □ 비고 : 병기용

  철궁은 몸체를 모두 철로 만든 것이고, 철태궁은 활 몸체에 일부 철을 덧대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시위를 풀어도 시위를 감은 듯 그대로인 불변형은 탄력을 품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성능이 떨어지는 철궁이다. 제대로 만든 철궁은 몸체를 철이라는 단일 재료로 만든 단순궁이면서도 만궁처럼 매끄러운 곡선을 이룬다. 이러한 철궁은 각궁과 그 모양이 흡사하고 시위를 풀면 탄성으로 반대쪽으로 둥그렇게 휘어 반곡(反曲)형을 이룬다. 철에서 이런 만궁형과 반곡형의 탄력을 얻기 위해서는 철을 다루는 기술이 매우 뛰어나야 하고 활의 몸체가 판판하고 얇아야 한다. 잘 만든 철궁은 그 위용이 멋지고 각궁에 필적할 정도로 성능도 뛰어나기 때문에 용사의 기상을 노래한 시구에도 그 이름이 종종 인용된다. 평소 민간인이 수렵에 사용한 것이라기보다는 병기용이었다.

 

화살 [ 矢·arrow ] 류

  좋은 활과 좋은 화살, 그리고 좋은 궁수가 삼위일체가 되어야 명궁(名弓)이 나고 신궁(神弓)도 난다.

  전쟁에서 화살은 비단 궁으로 쏘지만 않는다. 쇠뇌용이나 화약무기의 대포로도 쏘지만 쇠뇌용 화살은 2미터가 넘는 것도 있는 등 기본적으로 크기와 무게면에서 구별된다. 여기에서는 주로 궁에 쓰는 화살을 말한다. 같은 형태라도 시대별 나라별로 고유한 이름을 붙여 말한다. 모양에 따라, 용도에 따라, 재료에 따라 화살의 종류는 천차만별이다.

  화살대의 재료에 따라서는 이 중 싸리나무 화살인 호시(弧矢)가 최고라 고구려에서는 이 싸리나무 화살을 쓴다. 호시와 함께 신라 이래로 내려온 죽전(竹箭)도 유명하다. 버드나무와 철 등으로 만든다. 이 밖에도 화살 길이와 무게에 따라서 나눈다.

  화살 촉의 모양에 따라서는 작살형·유엽(柳葉)형·도끼날형·쇠침형·마름모형·검날형·삼날형 등이 있다. 작살형은 한번 꽂히면 빠져나오지 않아 자칫 무리하게 뽑으려 하다가는 화살대가 부러져 상처가 더 심해지고, 도끼형은 빼기는 용이하나 흡사 칼에 찔린 듯 상처가 베인다. 삼날형 등의 화살에 맞으면 구멍이 난 것보다 출혈이 심하다. 각 기본형에도 마치 돌연변이처럼 다양한 모양들이 있다. 이러한 변형이 이루어지는 것은 살상력을 높이기 위함이나, 단순하고 날렵한 쇠침형이 갑주를 뚫기에는 도리어 더 용이하다. 이러한 형태는 원삼국과 삼국시대에 더욱 다양하며 그 시대의 다양한 창날과 거의 유사한 특성을 보인다. 즉, 창날에 쓰이던 형태들이 화살촉의 형태에도 두루 쓰였는데, 이것은 당시의 전술양상과 갑주들의 특성 때문에 이렇게 매우 다양한 방식의 공격력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용도와 특징에 따라서는 불화살·소리화살·연습용·연락용 등이다. 불화살은 불을 붙여 날리기 좋게 뭉특하게 심지를 감아놓은 것이고 소리화살 ― 명적(鳴鏑)·울고도리·효시 등과 같은 말 ― 은 화살을 쏘면 그 날아가는 압력과 둥근 통에 뚫린 소리구멍으로 인해 새가 울듯 소리가 난다. 소리화살은 전시 때 신호용 혹은 수렵 때 화살이 날아간 방향과 재미를 더하기 위해 쓰인다. 고구려에서는 수렵활동에서 소리화살을 많이 쓴다. 연습용은 날이 뾰족하지 않고 뭉특하여 오늘날로 치면 서바이벌 훈련용 쯤으로 쓰인다. 연락용은 세시(細矢), 신전(信傳) 등이 있는데 화살대에 쪽지를 감아 날리거나, 임금의 명을 전하기 위한 용도였다.

 

 

[ 쏘는 무기 ㉡ : 쇠뇌(弩) ]

 

한국형 쇠뇌는 중장병기

  서양에서는 기계장치를 이용한 활은 10세기 전후 석궁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으나 동양에서의 쇠뇌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기까지 아주 고대로부터 면면이 사용된 무기다. 쇠뇌란 기계적 장치를 이용하는 활이라 보면 된다. 서양의 석궁과 유사하나 서양의 것은 쇠뇌보다는 그 의미가 훨씬 좁다. 석궁은 쇠뇌라는 큰 범주에 속하는 일부일 뿐이다.

  서양에서는 석궁이 갑옷을 뚫기 때문에 요긴하게 사용되자 석궁이 궁을 대체하는 현상까지 일어났다 ― '로빈후드'나 '윌리엄 텔'은 일반적인 궁이 아닌 석궁을 쓰는 자로도 묘사된다. 서구에서 석궁이 궁을 훨씬 압도하는 것은 그들의 문화에서는 궁(弓)의 위력이 석궁에 비해 형편없이 약하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 나라는 궁시의 제조기술와 궁술이 고대부터 뛰어나기 때문에 석궁이 궁을 대체하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에게 쇠뇌는 기계적 장치를 이용한다는 것 때문에 궁이 할 수 없는 특별한 장거리 공격 즉, 다연발 발사무기로 사용된다. 화약이 아닌 시위를 이용해서, 총알이 아닌 화살을 발사할 뿐 오늘날의 기관총이나 미사일이나 다름없다. 무겁고 큰 화살, 더러는 창까지 멀리까지 날릴 수도 있다. 그 뿐이랴, 돌도, 탄환도 날릴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쇠뇌는 주로 성채를 공격하거나 수비할 때 사용되었다. 또 쇠뇌는 힘이 좋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갑주에 강하고 다른 병기를 부수는데도 사용된다.

  궁을 다루는 자들과 별개로 노수(弩手)와 노사(弩師)로 따로 불릴 정도로 그만큼 궁과는 독립된 영역이다. 노를 만드는 사람들은 장인이라기보다는 발명가에 가깝고 노를 쏘는 사수는 무사라기보다는 병사다. 궁을 만드는 사람이 어떻게 하면 훌륭한 작품을 만들까 골몰한다면 노를 만드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적을 많이 죽일까 혹은 어떻게 하면 적의 병기를 부숴 버릴까 하는 문제에 골몰해 있었다. 우리 나라에 있어서 쇠뇌는 완전한 전쟁병기이기 때문에 그만큼 궁이나 칼이 얽매었던 상징적 가치에서 자유로워 실용적인 혁신이 가능했다.

 

강노 [ 强弩·Kang No : Super crossbow ]

□ 정의 : 쇠뇌를 강력하게 개량한 것 □ 재원 : 1인 작동·틀과 찰탁 가능 □ 기능 : 쏘기 우수·사정거리 길다·5발 동시발사  □ 위력 : 정확성 높다·살상력 높다·살상범위 중간

  시위를 잡아당기는 방법은 근력으로도 가능하고 틀에 있는 장치를 돌려서 감아 당길 수도 있다. 틀에서 분리하여 쓸 때는 발로 당겨서도 쓰는 등 상황에 맞게 변형해서 쓸 수 있다. 장치를 이용한 것은 청동기 유물로도 발견되며 이런 기계를 이용해 시위를 당기는 고정틀에서 쇠뇌를 탈착할 수 있는 유형도 있다. <그림>에서는 고리를 시위에 감고 기계장치를 돌려 감아 당기게 된다. 강노의 격발시스템은 여느 쇠뇌처럼 방아쇠 역할을 하는 줄이나 막대를 잡아당기는 방식이다. 강노는 동시에 화살 여러 개를 발사할 수는 있는데 순차적으로 연달아 발사하는 것은 아니다. 방아쇠를 잡아당기면 우르르 다발로 발사되는 원시적 다연발 방식. 이런 다발성 쇠뇌에는 그 강한 탄성을 충분히 얻기 위해 장전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단점인데 강노는 단발형 쇠뇌보다는 느리고 다연발 쇠뇌보다는 짧다. 다연발 쇠뇌는 성곽과 같은 높은 지대에서 고정 장착한 뒤 떼거지로 몰려오는 적군을 향해 발사하기에 좋다. 다연발이 아닌 동시다발형은 작은 범위에 있는 둘에서 셋 정도에게 확실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 쇠뇌인 강노는 신라시대, 당나라에까지 이름을 떨친 유명한 쇠뇌발명가 구진산()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고려시대 별무반에서 쓰였다고 한다.

 

수질구궁노 [ 繡質九弓弩·Suzilno No. 9 ] ― 구궁노

 

□ 정의 : 다연발 쇠뇌 □ 재원 : 고정형, 크다. □ 기능 : 쏘기 우수·사정거리 길다·9발을 연속적으로 발사 □ 위력 : 정확성 낮다·살상력 높다·살상범위 크다 □ 비고 :

  고려의 박원작은 전쟁병기개발에 관심이 많아 크고 작은 많은 병기를 개발한다. 박원작의 병기들은 조선시대의 무기체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수질구궁노는 구궁노라는 이름으로 사용된다. 수질구궁노는 박원작의 수질노(繡質弩) 시리즈의 최종산물로서 왕의 격찬을 받으며 전방에 실전배치되었다. 다연발 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다발형보다 어렵다. 수질노를 횡으로 3, 층으로 3으로 쌓으면 9개의 다연발 시스템이 갖추어지고 층마다 시위를 당기는 기계를 하나로 연결하여 커다란 기계장치로 동시에 시위를 감아 매기게 장착한다. 격발장치는 끈으로서 쇠뇌의 사수가 하나씩 당겨 연발식, 한꺼번에 당겨 다발식 등 전술상황에 따른 운용이 가능하다.

 

연노 [ 連弩·Youn No ] ― 수노(手弩)·탄노(彈弩)

□ 정의 : 개인휴대용 단발형 쇠뇌 □ 재원 : 소형·1인용·휴대용  □ 기능 : 쏘기 중간·사정거리 저 □ 위력 : 정확성 중간·살상력 낮다 □ 비고 : 자동장전·조선시대 중후반

  연노는 편전에 가까운 작은 화살들을 통 속에 넣은 다음에 흡사 집게를 벌렸다 오므리는 식으로 뒤의 손잡이를 벌리면 자동으로 시위가 당겨져 장전이 된다. 그리고 다시 그 집게 손잡이를 강하게 오므리면 그대로 발사된다. 따라서 별도로 당길 방아쇠가 없이 장전과 더불어 사격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는 장점이 있다. 화살은 요즘의 탄알개념이다. 화살이 아니라 탄환을 날릴 수 있는 연노를 탄노라 한다. 연노는 개인이 휴대하며 다니기 좋고 다루기 쉬워 아녀자나 어린이들이 사용하는데도 무리가 없다. 시위를 당기는 힘이 일정하여 일정한 사거리를 유지할 수 있으나 발이나 기계로 감아서 시위를 당기는 다른 쇠뇌보다 그 힘이 약하여 멀리 나가지는 못한다. 또한 탄으로 쓰는 화살이 작고 짧으며 깃이 작아 먼 거리의 명중률은 그리 높지 않다. 그러나 단발식으로 발사하여 연발의 효과를 내므로 단거리에서는 위력적이라 하겠으며 개량하여 탄창에 해당되는 화살통을 단 것도 있다.

 

팔우노 [ 八牛弩·Pal Woo No ]

□ 정의 : 다발형 거대한 쇠뇌  □ 재원 : 대형·고정형  □ 기능 : 쏘기 매우 우수·사정거리 길다·최대 백여발 발사  □ 위력 : 정확성 중간·살상력 매우 높다·살상반경 매우 넓다.  □ 비고 : 여덞 마리의 소가 시위를 당긴다.

  여덟 마리의 소로 시위를 당겨야 만큼 강한 궁체를 지니고 있다. 궁체는 하나가 아닌 셋으로서 앞에 두 개, 뒤에 한 개로서 뒤의 것은 앞의 두 개와 줄로서 연결시켜 역방향이지만 탄성의 방향을 앞으로 주게 한다. 이로서 최대 백여 발에 이르는 화살을 날릴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지닌다. 적의 중병기를 부수기 위해서 거대한 화살을 여러 개 날릴 수도 있으며 백여 발에 이르는 작고 가벼운 화살들을 통속에 넣어 한꺼번에 날린다. 시위가 워낙 강해 방아나 줄을 잡아당겨서는 쏠 수 없고 짧은 방망이로 방아틀쇠 부분을 쳐서 쏜다. 통에 있던 화살이 허공에서 일제히 산개하듯 날아가다가 비오듯이 쏟아지게 되는데 오늘날의 융단폭격과 비슷해서 살상범위가 매우 넓다. 팔우노의 또다른 장점은 힘이 좋은 탓에 곡사형이 아닌 거의 직선형으로 화살을 날릴 수 있기 때문에 정확성이 뛰어나고 돌에도 깊이 박힌다는 것이다. 거대한 화살을 적의 성벽에 발사해 계단처럼 만들 때도 사용된다.

 

포노 [ 砲弩·Po No ]

□ 정의 : 구진천이 만든 목노  □ 재원 : 중형·2인·고정형  □ 기능 : 쏘기 우수·사정거리 길다·최대 5발 다발  □ 위력 : 정확성 중간·대인 살상력 높다·구조물 파괴력 중  □ 비고  :  2미터 내외 쇠뇌살 사용

  포노는 주로 수성용으로서 기계를 돌려서 시위를 당긴다. 커다란 강노라고도 할 수 있다. 고정형이며 뒤의 돌리는 기계로 감아서 시위를 끌어 당겨 방아쇠와 연결된 고리에 건다. 고정용 틀. 여러 개의 선로를 갖춘다.

- 구진천의 천보노 [ 千步弩· ] ― 목노(木弩)·천보뢰(千步雷)

□ 정의 : 구진천이 만든 목노 □ 재원 : 중대형·고정형 □ 기능 : 쏘기 우수·사정거리 매우 길다 (1000보 이상)·최대 3발 다발 □ 위력 : 정확성 중간·살상력 높다·살상범위 중간 □ 비고 : 창처럼 길고 큰 화살을 쓴다.

  신라 유명한 노사(弩師) 구진천(仇珍川)의 브랜드 가치가 부여된 쇠뇌명. 그는 당나라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신라의 첨단 쇠뇌 제작기술을 누출시키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일정한 주로에서 발사되는 쇠뇌살이 멀리 날아가려면 궁으로서의 탄성이 극대화되어야 한다. 따라서 천보노의 비밀은 바로 나무로 만든 궁의 몸체로서, 목궁으로서 만궁의 형태를 썼던 것으로 보인다. 창과 같은 쇠뇌살을 날려야 했으므로 궁은 무척 컸을 것이다. 그렇게 거대해도 쇠뇌의 구조상 궁으로서의 본래의 특성을 잃어버리기 쉬우나 구진천의 천보노는 그대로 이 특성을 유지한다.

 

[ 방어구 : 갑주와 방패 ]

 

  갑주란, 갑옷과 투구를 말한다. 비단 금속뿐만 아니라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지며 외부의 공격이나 환경으로부터의 위험에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착용하는 비평상 의복 전체를 뜻한다. 따라서 보호를 위해서 생가죽을 의복에 덧댄다면 그것도 하나의 갑주가 된다.

  다른 무기들도 그러하듯 갑주도 역시 우리 나라의 기원전후부터 대략 10세기 이내의 원삼국과 삼국시대에 가장 다양하고 그 시대별로 따져도 동북아에서 뛰어났던 축에 속한다.

  무기와 마찬가지로 갑주도 그 나라의 문화나 전쟁양상에 따라 그 양식이 달라진다. 서양과 동양의 갑주가 그 방호의 원리에는 서로 아주 유사한 동질성을 지니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발전한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의 것은 무엇보다도 활동성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서양의 갑주 같은 육중하고 정교한 메카닉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다. 실용적이며 검소한 것이 대부분이며 어떤 것은 잘 치장된 의복과도 같은 멋스러움을 지닌다. 갑주 재료는 뼈·가죽·철·놋쇠·비단·모직·면·한지 등 매우 다양하고 갑장(甲匠·armor maker)이라는 전문가의 손에서 만들어진다.

 

  ① 갑주의 구조상으로는 크게 판갑(板甲·plate armor)과 찰갑(札甲·scale armor)으로 나눌 수 있다. 찰갑은 비늘갑옷이나 괘갑이라고도 한다. (찰갑과 괘갑 양식은 따로 분리하는게 좋지 않을까?)

  판갑은 크고 납작한 철판을 종 혹은 횡으로 이어서 통으로 짜맞추기를 한 것이다. 철판을 인체공항적으로 두들겨 구부리고 각 부분의 철판을 리벳을 박아 두들기듯 이음새 없이 꼼꼼하게 마무리 짓는다. 우리 나라의 판갑은 전신형이라기 보다는 부분형이며 독립된 몸통갑주가 많다.

  찰갑은 방호력을 위한 조각인 갑옷미늘(scale)을 단 갑옷이다. 갑옷미늘의 소재는 비단 금속뿐만 아니라 가죽이나 종이 등도 될 수 있다. 물고기 비늘이나 기와처럼 겹치게 만드는 게 정석으로서 길죽한 큰 미늘도 있고 둥그스름한 작은 미늘도 있다. 이렇게 겹치는 방식은 움직임이 많은 어깨 부분에 적용한다. 굳이 겹치지 않고 손바닥만한 정사각형의 철편을 바둑판식으로 의복에 붙이거나 서로 연결하는 방식(정통 괘갑형)은 움직임이 적은 몸통에 쓴다.  

 

  ② 입는 방식과 복식의 형태로는 두루마기형·자루형·탈착형·조끼형 등이다.

  두루마기식, 일명 포형은 긴 외투처럼 여며 입는 것이며 부분갑주가 필요없고 안에 셔츠형 갑주나 조끼형 갑주를 껴입을 수 있다. 두루마기 식은 착용감과 활동성이 뛰어나고 팔꿈치 위에서 시작하여 발목 위까지 가린다. 서구나 다른 문화권의 갑옷에도 찰갑이 있으나 두루마기 형과 결합된 우리의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두루마기 형은 직물을 겹겹이 하여 위 혹은 안에 갑옷미늘을 단다. 겉감과 안감 사이에는 솜같은 보온재와 완충재를 넣을 수도 있어 사계절의 변화가 심한 우리 나라에 적합하고 의복으로서의 기능도 할 수 있다. 찰갑식과 궁합을 맞춘 두루마기 갑주는 방호력과 활동성 등 모든 면에 두루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나라 자루형 갑옷은 어깨를 완전히 가려 팔꿈치 위까지 내려오고 밑단은 대개 무릎 위까지 가리고 다리 가리개 등의 부분 갑주와 일체형이다. 보병이나 일반 장수들은 대개 이런 갑주를 입고, 신분이 높은 장수나 왕은 이러한 전신 갑주 위에 화려한 장식의 소매 없는 몸통 갑주를 덧입는다. 자루형 중에는 다리를 보호하는 가리개가 붙어 있지 않은 것도 있다. 말에 타지 않은 사병들이 이런 갑주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셔츠처럼 쇠사슬로 만든 것, 면으로 만든 것도 있다.

  탈착형은 몸통에 씌워 여닫게 되어 있거나 몸에 끼우는 부분 갑주들이다. 경칩이 달리거나 끼우는 정강이 가리개나 종장판형인 목 가리개 등 주로 판갑 등이 이에 속한다.

  조끼형은 부분 갑옷으로서 흉갑이 많다. 주로 생명을 좌우하는 가슴과 윗배 부위를 집중적으로 목적으로 차고 소매 없는 몸통 갑주도 이 범주에 속한다 하겠다. 병사들 중에 소매가 없는 갑옷을 입는 자는 팔 움직임이 자유로워야 되는 궁수였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들은 강한 시위를 당겨야 하므로 반드시 활장갑과 팔 가리개를 했을 것이다.

 

투구는 갑주의 인상

  투구는 세로의 긴 철판을 짜맞춘 종판갑식 투구와 통짜로 두들겨 만든 것 등이 있고 차양이 있고 뿔이 있는 것 등 그 부분적인 장식에 따라 다양하다. 대개 정수리가 높이 돋아있게 하거나 수술같은 장식을 달아 키를 커보이게 한다. 이런 효과는 신분이 높은 장수일수록 더할 수밖에 없다. 거의 길다란 혹처럼 보이게 하는 것도 있다.

  투구가 기능적으로 구분되는 가장 큰 기준은 볼이나 턱, 목을 보호하는 귀덮개(혹은 목가리개)를 들 수 있다. 귀덮개가 짧은 것은 부분갑주인 경갑주를 착용해야 충분한 보호력을 얻고 비 두루마기형과 어울린다. 또한 일부는 방한모처럼 턱밑에서 묶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반면, 귀덮개가 긴 투구는 길이가 어깨까지 내려오며 뒷목을 완전히 감싸고 두툼하다. 또 그 안이나 밖이 찰갑으로 둘러져 있다. 이런 투구는 판갑에는 쓰이지 않고 목갑주를 대체한다.

 

갑주양식에 따른 보조갑주

  판갑에서는 사용되는 부분갑옷은 목갑주(경갑 : 頸甲)·팔가리개(굉갑 : 肱甲)·정강이 가리개(경갑 : 頸甲) 등으로서 몸통갑주에서 독립된 부분갑옷으로서 판갑과 같은 구조를 이룬다. 어깨(상박갑 : 上膊甲)과 하체를 가리는 부분은 대개 본 몸통갑옷의 일부로 본다.

  자루형 전신찰갑에서 사용되는 부분갑옷은 목과 정강이와 팔 가리개다. 특히 목갑주는 고대에는 반드시 적의 목을 베는 게 전투의 풍습이었으므로 유난히 발달된 형태다. 자루형 전신찰갑을 착용하고 요대를 찬다.

  그런데, 이 전신 찰갑에 통조끼와 같은 몸통갑주가 또 덧입혀지는 경우가 있다. 목갑주 등 부위별 갑주가 크게 발달한 삼국시대가 그러하다. 고구려 철갑기병들의 것은 다리 덮개가 거의 무릎 아래까지 내려와서 바지로 착각하기 쉬울 정도이고 목갑주가 깔대기처럼 발달하고 가슴언저리에서 하관까지 보호할 정도다. 때문에 각 부위별 갑주를 몸에 더욱 밀착시키고 고정시켜야 하는데 이것이 몸통갑주다.

  두루마기형 전신 찰갑은 그냥 긴 외투처럼 입으면 된다. 드러나는 목에 대개 붉은 명주 천으로 받히고 보조갑의를 입기도 하며 요대를 착용한다.

  판갑이나 자루형 전신찰갑의 설정에서 주의할 점은 깔때기처럼 발달한 목갑주를 하면 귀덮개가 발달한 투구를 쓸 수 없다는 점이다. 즉 시대적이나 복식학상으로도 맞지 않는다. 이렇듯 보조 갑주들도 각 갑주 양식에 맞는 것이 있고 그렇지 않는 것이 있다. 우리 나라 갑주의 구조적 양식이 중요한 것이므로 이 기준만 지키면 많은 응용 갑옷이 탄생될 것이다.

 

<참고> 골갑주 [ 骨甲주·Born Barb Armor Set ] ― 골찰갑(骨札甲)

□ 정의 : 뼈로 만든 갑주  □ 재원 : 전신 찰갑형·투구·조금 무겁다.  □ 기능 : 전신·활동성 좋다  □ 방호 : 찌르기에 중·베기에 강·타격에 약·불에 약  □ 비고 : 주술적 의미

  뼈로 만든 갑주라고 원시적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기능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뼈 특유의 희고 무딘 광택으로 독특한 매력을 풍기는 아름다움도 지니고 있다. 찰갑으로 만들어 착용감이나 활동성 등 기능이 뛰어나다.

  그 신비로운 제조방법을 추정해 보면, 불이나 끓는 불에 상하지 않은 소뼈 중 납작하고 조직이 치밀한 것을 골라 조직이 잘 경화되도록 특별한 건조과정을 거친다. 이것을 갑옷미늘 형태로 잘 갈고 구멍을 뚫은 뒤 역시 소에서 나온 가죽끈이나 힘줄 등과 같은 천연재료로 꿰어 서로 겹치게 연결한다. 뿔이 붙은 소 해골 그대로 사람의 머리에 맞게 두부를 이룬다. 역시 찰갑으로 두른다.

  이러한 골갑주에는 주술적 의미도 있을 것으로 보여 부분적으로 사람의 뼈를 쓰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불러일으킨다.

  ☞ 원시갑주 중에는 청동갑주도 있다. 청동은 녹이 잘 슬지 않은 특성상 출토될 가능성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고유한 유물이 없는 바, 우리 나라에서는 사용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고 별도의 항목으로 넣지 않는다. 위 골찰갑은 일부가 실제로 백제와 함경도 등지에서 출토된 것이다.

 

가야판갑 [ 伽倻版甲·KAYA Plain Plate ] 의 구성 ― 단갑(短甲)

□ 정의 : 가야에서 난 판갑  □ 재원 : 몸통형과 각 부분갑주  □ 기능 : 전신 보호·활동성 보통  □ 방호 : 찌르기에 약·베기에 강·타격에 중·불에 중  □ 비고 : 투구·목·팔·정강이

  기원년 전후의 원삼국 시대에 한반도는 남반부에서는 주로 판금형, 그리고 고구려와 같은 북방에서는 길쭉한 철편을 가죽끈으로 물고기비늘처럼 겹쳐서 이은 찰갑형, 또는 종판형 갑주양식을 사용했다. 북방의 기병대들이 남부지방을 침범하면서 찰갑양식이 전해지고 그 이후의 전술적 양상에 따라 이 판금형 단갑형태는 사라졌을 것으로 보인다.

  가야판금은 만들어진 지역의 이름을 딴 브랜드 갑옷이라고 할 수 있다 겉보기에는 금속으로 만든 코르셋(corset : 허리와 배를 조이는 보조 의상)을 연상시킨다. 다른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판갑은 여러 개의 철판을 일관된 형태로 이어서 된 것이 많으나 가야에서 만들어진 판갑은 외관상 거의 통짜형에 가깝고 판과 판의 이음새도 현대의 리벳처리를 한 듯 깔끔하며 허리부분이 잘록하고 문양이 미려하다. 등판은 긴 횡판(또는 종판)을 조금씩 겹쳐서 이어나갔으며 가슴판과 등판은 가죽끈이나 철판으로 이으며, 어깨에도 가죽끈을 대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의 목갑주는 주발형 혹은 깔대기형으로 크게 과장되어 있는데, 이는 점점 간소화된 것으로 보인다.

  (목갑주를 제외한다면) 이와 같은 양식은 동시대 로마의 것과 유사하다. 투구와 팔뚝과 정강이·목 가리개와 한 구성을 이룬다. 그림에 좌측 투구는 겉의 보호 외장재를 금속의 긴 종판을 세로로 잇대어 만든 종판형 투구(:국립박물관 자료참조)로서 정수리가 과장되게 높이 솟은 것은 몽골형 양식이다. 우측의 것은 동시대 가야의 또다른 형태로서 둥그런 모자형태의 금속 머리쓰개인데 관모형 투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가야판갑과 유사한 것으로 신라 브랜드의 판갑이 있다. 신라의 것은 가야판갑에 비해 투박한 맛이 있는 반면 실용적이고 튼튼하다. 신라나 가야의 투구에는 앞에 짧은 모자챙이 달린 관모 차양형, 귀덮개를 아랫턱에서 잡아맬 수 있는 방한모형 관모투구 등의 종류가 있다. 관모형에는 대개 날개모양의 장식을 다는데 투구 옆에 붙이기도 하고 정수리에 달기도 한다.

 

 

쇄갑 [ 鎖甲·Chain Mail ] 류 ― 쇠사슬갑

□ 정의 : 철로 작은 고리를 만들어 짠 갑주  □ 재원 : 자루형·철·적정한 무게  □ 기능 : 상반신 보호·활동성 매우 우수  □ 방호 : 찌르기에 중·베기에 강·타격에 중

  우리 나라에 쇄갑이 등장한 것은 기원 년 전후까지 올라간다. 역사에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것은 고구려 시조인 주몽의 쇄갑이다 ―《삼국사기》중 고구려의 사당에 그의 쇠사슬로 만든 갑옷을 보관해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쇄갑의 양식이 당시에는 매우 귀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쇄갑은 유연하여 활동하기 편하고 다른 갑주 안에 받혀 입을 수 있으며 독립적인 갑주로도 충분하다. 서구의 체인메일과 유사한데, 서구의 것이 팔목에서 목 발목까지 덥는 완전 전신형이라면 우리의 것은 어깨와 허리선을 살짝 넘는 셔츠형이다.

- 주몽(朱夢)의 쇄갑과 모 [ ·Ju mong's Fantasy Weapons ] ― 고주몽·동명성왕

□ 소개 : 고구려의 시조  □ 특기 : 활쏘기

  주몽은 해모수의 아들이라는 점 말고도 알에서 태어났다는 것으로 더 유명하다. 해모수는 장인인 하백(河伯)의 행동에 화가 나 떠났는데, 곧이어 유화부인도 쫓겨났다. 유화부인은 동부여 금와왕에 의지하다가 커다란 알을 났는데 바로 주몽이다. 주몽이 알로 태어난 것은 해모수가 태양의 상징 '세발 까마귀(三足烏)'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세발 까마귀는 훗날 고구려의 상징이 된다.

  주몽이라는 이름은 활을 잘 쏜다하여 붙여진 것인데 7살에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쐈는데 백발백중이었다. 비범한 재능을 시기한 이들과 어머니의 권유를 주몽은 동부여를 탈출하여 재사(再思)·무골(武骨)·수거(獸居)라는 걸출한 세 사람을 얻고 고구려를 건국하는 기초를 닦는다.

  주몽에 관련된 무기는 삼국사기 고구려 보장왕 편 당태종의 침입 때 주몽의 사당에 있었던 쇄갑(鎖甲)과 모(矛)이다. 한 미모의 무당이 이를 지키고 있었다고 하는데 전연시대의 것이라고 전해진다.

- 경번갑 [ 鏡幡甲·Gyung Burn Mail ] ― 환갑(環甲)

□ 정의 : 쇠사슬과 가죽(혹은 철편)을 이어놓은 것.  □ 재원 : 상반신·중간 무게  □ 기능 : 몸통과 하복부 어깨 보호·활동성 우수  □ 방호 : 찌르기에 중·베기에 중·타격에 약

  쇠판 대신 가죽을 사용한 것은 무게를 줄이기 위함이다. 두루마기형이나 판갑형 갑옷을 바깥쪽에 껴입거나 안에 면갑을 입어 이중삼중으로 보호가 가능하다. 독립적으로 입어도 무관하다. 가죽이 아닌 철판을 쇠사슬과 이을 경우 무게는 무거우나 방호력이 증대된다. 서양의 banded mail도 이와 유사한 구조이다.

- 쇄자갑 [ 鎖子甲·Leather Piece Mail ]

□ 정의 : 가죽미늘을 쇠고리와 연결한 갑주  □ 재원 : 전신형·찰갑·가볍다  □ 기능 : 전신 보호·활동성 상  □ 방호 : 찌르기에 중·베기에 중·타격에 약

  (쇄갑과 쇄자갑이 동일하다고 보나) 쇄갑의 양식에 네모난 가죽 미늘을 결합시킨 것이다. 또한 경번갑이 철을 매단 것이라면 쇄자갑은 가죽을 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죽은 주로 돼지가죽을 쓰고 등과 몸통에 가죽미늘을 단다. 경번갑보다는 훨씬 가볍고 쇄갑보다는 만들기 쉽다. 그냥 입기보다는 다른 외장형 갑옷에 받혀 입는 게 낫다.

 

내갑의 [ 內甲衣·Inner Wire Cloth Armor ]

□ 정의 : 솜 속에 철선을 감은 청색 무명옷  □ 재원 : 몸통형·가볍다  □ 기능 : 상반신 전체 손등 팔뚝 보호·활동성 우수·보온성 우수  □ 방호 : 찌르기에 약·베기에 중·타격에 약·불에 매우 약함  □ 비고 : 상하의·장갑 조선시대

  평시에는 저자거리를 활개해도 거리낌없을 정도로 편하고 눈에 덜 띠는데 반해, 전투시에는 사정이 달라 그 밖에 더욱 튼튼한 갑주를 둘러야 하는 속옷 갑주라 하여 내갑의이다. 밖은 청색의 무명이고 안감은 삼베라, 솜을 넣어 잘 만든 전통한복처럼 보이지만 실은 속의 솜과 함께 철사그물이 촘촘히 있다. 적의 공격으로부터의 몸을 지켜줄 뿐만 아니라 통풍 좋고 방온효과도 있으니 겨울철 방한을 위한 기능성 보조 갑주라 하겠다. 보통의 갑주가 민소매이거나 팔꿈치 아래를 덮지 않는데 반하여 내갑의는 손목까지 닿는다. 장갑은 끼는 것이 아니라 두르는 것이다. 일단 엄지와 중지를 안쪽의 고리에 끼어서 손등을 덮고 팔 전체를 두른 뒤 팔뚝 안쪽의 끈을 당겨서 조이면 된다. 찰과상 등으로부터 팔등과 손등을 보호할 수 있으며 손바닥이 드러나는 탓에 무기를 거머쥐고 다루기에 매우 편리하다.

 

금칠도철갑 [ 金漆塗鐵甲·Twilight Armor ]

□ 정의 : 오색과 금빛이 찬란한 백제의 보물 갑주  □ 재원 : 약간 무겁다. □ 기능 : 전신보호  □ 방호 : 찌르기에 강·베기에 강·타격에 강  □ 비고 : 투구와 의장 및 부속 갑옷 포함

   금칠도철갑은 당의 황제가 백제에 사신을 보내 구해다 입었을 정도로 화려하고 탐나는 보물 갑주다. 전해지는 기록에 따르면 오색이 짙고 금빛이 찬란했다고 한다 ― 만약 이 기록이 맞는다면 ― 삼국에는 당시 금광이 있었으므로 실제 금으로 도금을 했을까?

  아니다. 여기서 '금칠(金漆)'이라는 것은 '옻나무의 일종인 금칠나무에서 나는 옻'을 말한다. 이것은 현재에도 각종 고급 전통공예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신기하게도 실제 금빛이 나고 휘황한 광택이 있다. 따라서 이것을 철에 응용했다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나무가 아닌 철에 칠하려면 특수한 기술이 필요했을 것이다.

  백제의 문화는 도검이나 갑주 등의 형태와 색깔 등에 특별히 어떤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는 걸 즐겼던 것 같다. 오색이 짙다고 하는 것은 오방색인 적·황·청·백·흑을 나타내는 것으로 음양오행의 의미로서 황색은 갑주 자체가 금빛이니 황제를 상징한다. 옻칠과 청옥 혹은 은이나 검은 가죽 등을 이용해 갑옷미늘의 일부 혹은 투구나 망토 등을 대상으로 화려하게 꾸며진다.

  ☞ 위에서 판타지가 아닌, 일부 역사적인 관점에서 소개한 금칠도철갑은 '명광개(明光鎧)'의 특별한 종류로 보여진다 ―《당서(唐書)》와《삼국사기》고구려 본기 보장왕 편에는 고구려 정벌에 나선 당 태종이 명광개(明光鎧) 1만벌을 노획했다고 한다. 또한 명광개(明光鎧)는 백제의 당나라 주요 수출품으로서 이름처럼 휘황한 광택을 냈을 것이다. '명광개'라는 말에서 '개(鎧)'는 '개갑(鎧甲)' 혹은 괘갑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쇠미늘을 단 갑주'를 뜻한다. 따라서 금칠도철갑은 명광개의 일종으로서 찰갑주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하겠다.

 

찰갑주의 구성 - 기마철갑 [ 騎馬鐵甲·Horse Riding Warrior Full Armor Set ]

□ 정의 : 기병과 말이 두르는 완전무장의 철갑  □ 재원 : 전신 찰갑형·매우 무겁다  □ 기능 : 기병의 전신과 말  □ 방호 : 찌르기에 강·베기에 강·타격에 강·느린 스피드  □ 비고 : 고구려 개마기병갑

  고구려의 유명한 개마기병들이 둘렀던 철갑. 투구와 목갑주 몸통갑주, 손목가리개 등이 있다 특이한 것은 하반신 갑주가 유난히도 발달 ― 바지형 갑주와 발목 위까지 가리는 덮개형이라는 설이 있다 ― 했다. 유물로 남아있는 고구려의 찰갑주는 그림에서보다 그 날찰이 훨씬 길며, 각 찰을 잇는데 가죽끈의 효용이 컸다.

  고구려의 벽화에 나타난 개마기갑병의 모습에서는 바지에 가까운 찰갑이 사용되었고, 그 복식(:국립중앙박물관 재현품 참조)에서 서양 15세기 이후의 풀 플레이트 메일의 착용방식(리얼 웨폰 서양 중세의 방어구들 중)과 닮아 있다. 고구려 개마기갑병의 찰갑주는 민소매형으로 일체화된 흉갑과 등갑, 그리고 배와 허리, 낭심 등을 보호하는 찰갑주(tace)를 두르고 찰갑으로 방호처리된 장딴지와 정강이 보호대를 각각 착용한다.

  하부와 다리 부분을 보호하는 갑주가 필요한 것은 기마병이라는 특성상 하체 중 다리 부분을 적 병사에 의해 공격당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승마한 자세로 말 안장에 의해 가려지는 허벅지 안쪽의 갑주는 생략되기도 한다.

  그 후에 나타나는 변형되고 간소회된 찰갑(혹은 괘갑)의 갑주에서는 견갑과 하박갑,이 착용된 가죽옷 또는 천옷을 입은 뒤, (좌측그림) 기능이 극대화된 종판형이나 찰갑양식의 목갑주를 착용하고, (좌측그림) 몸통갑을 씌우고 투구를 쓰며 필요에 따라 요대나 팔목 보호대를 착용한다. 고구려의 투구는 종판의 금속을 세로로 연결한 투구가 기본이 되고 귀덮개는 두건형 혹은 횡판형을 쓴다.

  기마병들은 주로 평원전투에서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으며 당시의 전술양상과 화살 및 창등의 무기체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 시대의 고구려나 중국의 기마병들의 유행갑주는 거의 완전한 철갑부대로서 자루와 날이 긴 뾰족창을 썼다. 이들의 기동력은 사람이 아닌 말에서 얻는 것이므로 기마병의 갑주의 경우 이동력을 고려할 필요가 덜했다. 대신 어떠한 화살과 창 공격에도 견딜 수 있는 튼튼하고 치밀한 구조로 갑주가 발달했다. 따라서 철로 된 찰갑으로 짜여진 통짜형 양식을 택했다. 말에 두르는 갑주도 동일한 양식이며 몸통뿐만 아니라 말머리도 철갑으로 된 투구를 씌웠다.

  원삼국 시대와 삼국시대의 투구는 구조와 외관상 길다랗고 납작한 철판을 구부려 세로로 잇대어 만든 종판형과 큰 주발을 엎어서 늘려만든 듯한 통짜형이 있다.

  종판형은 기원년 전후에서 삼국시대에 가장 유행하였다. 세로의 길죽한 철판을 머리 모양에 맞게 구부리고 이어서 만든 것이다. 그 시대의 종판형은 귀덮개가 짧아 볼이나 턱을 보호할 뿐이다. 따라서 적에게 목이 잘리는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목 가리개 전용 갑주를 하는데 보병들은 흉부와 목을 동시에 보호하는 것을, 기마병들은 깔대기처럼 커다란 것을 한다. 정수리에는 짧은 길이의 쇠침에 대개 붉은 수술 같은 장신구를 단다. 수술은 그 자의 소속을 나타내는 기능이 있는 한편 수탉이 붉은 벼슬로 위압을 주는 것처럼 사람도 보통 붉은 수술을 달아 용맹함을 뽐낸다. 기마병들의 것은 장식이 더욱 높고 화려하다. 몽고형이라는 것은 앞서(ex. 가야판갑) 밝혔듯이 정수리가 높고 둥그스름한 뚜껑이 얹어진 형태다. 어떤 것은 얼굴 하나만큼 혹처럼 올라가 있다. 즉, 키가 커 보이는 것이 몽고형 투구의 장점이다. 역시 짧은 판형 귀덮개가 있다.

 

두정갑 [ 豆釘甲·Rivet Armor ] 류

□ 정의 : 겉에는 정을 박은 듯 하고 안에는 철편을 덧댄 갑주  □ 재원 : 전신 두루마기형·안쪽은 찰갑형 가죽·복합  □ 기능 : 상하반신 전체와 머리 보호·활동성 보통·보온성 보통  □ 방호 : 찌르기에 강·베기에 중·타격에 중  □ 비고 : 투구·팔 가리개 포함, 조선시대 사극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두정갑은 단추와 같은 둥그런 놋쇠 못(:리벳)을 박고 목면이 몇 겹이고 안쪽에는 네모난 방호재들이 겹겹이 붙어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방호재는 철편인데 가죽인 경우에는 '면피갑'이나 '견피갑'이 된다. 어깨는 가죽이나 쇠로 견장식으로 밖으로 붙은 것이 보호해준다. 두정갑과 같은 조선시대의 두루마기형 갑주는 방호재가 안에 감춰지기 때문에 훨씬 실용적이고 두석린과 대등한 방호력을 지니고 그보다 가볍다. 거의 발목까지 덥게 하는 외투형식으로서 두석린갑과 마찬가지로 안쪽에 경량 갑옷을 받혀 입을 수 있다. 두정갑은 겉감이 거의 직물이기 때문에 베기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듯 보이는데 안의 방호재가 금속이고 겉에 달린 놋 머리가 이를 차단해주는 역할을 한다.

  두루마기형이든 아니든 두정갑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분리되어 있는 소매 부분이다. 두루마기형의 갑주는 팔꿈치 이하의는 무기를 다루는 팔과 손의 자유로운 운용을 위해 일부러 드러낸다. 따라서 팔꿈치 아래를 보호하는 보조갑주를 착용하게 되는데 두정갑과 방호의 원리는 동일하다. 분리형 소매인 팔가리개를 착용할 때는 팔에 두르고 사슴가죽 끈으로 조여서 착용한다.

  투구에서는, 거주창스러운 부분 갑주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된 두루마기 갑주와 잘 어울리면서 귀덮개의 기능이 매우 발달하게 된다. 이런 것은 어깨까지 내려오고 목과 그 언저리를 보호하게 된다. 귀덮개의 안팎은 갑주와 동일한 양식으로 손바닥만하고 네모난 금속이나 가죽판을 붙이거나 두정갑처럼 겉은 리벳으로 안에는 찰갑을 대거나 갑옷미늘을 달지 않고 그냥 직물 위주에 가죽이나 정을 단 것도 있다.

  우리 투구의 장식은 수술 혹은 깃털·두정(豆釘)·상감기법의 문양·날개·뿔 모양 등이며 기능적인 면에는 차양이나 귀덮개의 형태나 갑주양식 등의 특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우리의 기본적인 투구형과 그 구조만 지키는 것이 중요하고 군용병기의 정해진 양식을 따를 필요는 없으며 장식에 따라 많은 응용이 가능하다.

 

면흉갑 [ 棉胸甲·Cotton Breast Armor ]

□ 정의 : 많은 면을 압축하여 만든 부분갑주  □ 재원 : 조끼형 흉갑·무겁다  □ 기능 : 가슴 보호·보온성 우수  □ 방호 : 찌르기에 강·베기에 약·타격에 강·불에 매우 약  □ 비고 : 좀 먹기 쉽다

  면갑은 방호를 필요로 하는 조선시대 궁중의 아녀자들이 손수 지어 입었던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면갑은 100% 순면을 자랑한다. 그러나 땀을 흡수하고 환경친화적이며 상쾌한 착용감만 주는 것은 아니다. 면갑은 면소재의 천을 겹겹이 눌러서 만든 것으로 보기와 달리 튼튼하며 그 무게 또한 만만찮다. 그러나 베는 공격에는 약하고, 면의 특성상 비라도 맞으면 무게가 배로 무거워진다. 더 심각한 경우는 불화살에 맞을 때다.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입었건만 이런 상황에서는 얼른 벗어야 산다. 그렇지 않으면 안 입은 것만 못해서 끔찍하게 타죽을 테니까.

 

면피갑 [ 棉皮甲·Myun Pi Armor ] ― 견피갑(絹皮甲)

□ 정의 : 겉은 면(이나 명주), 안은 가죽으로 방호재를 단 것  □ 재원 : 자루형 상반신·조금 가볍다  □ 기능 : 상반신 보호·활동성 상  □ 방호 : 찌르기에 강·베기에 약·타격에 중

  겉감이 면일 경우 면피갑이고, 비단일 경우 견피갑이라 한다. 방호력간에 서로는 별 차이 없다. 목부분이 트인 것이 기본형인데 밑단이 엉덩이 밑까지 내려와 요대를 차도 잘 어울린다. 두정갑이나 두석린갑, 견피갑은 일정 계급 이상의 고위직들이 입었던 반면, 면피갑은 사병들이 입었을 것으로 사려된다.

  기본 형태와 방호의 원리는 속감에 단 방호재가 철편이냐 가죽이냐는 것이 다를 뿐 두정갑과 다를 게 없다. 단, 두정갑은 안감과 겉감 사이에 솜과 더불어 넣는 반면, 면피갑과 견피갑은 안감의 안쪽에 단다. 놋쇠 리벳을 박아 넣고 안은 방호재를 단다. 방호재는 네모난 가죽을 촘촘히 겹쳐 단 것으로 내장형 찰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철이 아니라 가죽이기 때문에 찰과상이나 타박상을 막기에 좋고 날카롭고 뾰족한 무기에는 금속 미늘을 단 것보다는 약하다. 가죽이 어느 정도 방화력이 있으므로 겉감인 면이나 명주섬유가 타더라도 불 공격을 웬만큼 견딜 수 있다.

  면피갑 혹은 견피갑이 두루마기형일 경우도 있다. 지금의 두터운 면직 코트와 유사한 외관으로서 장수들도 즐겨 입는다. 주로 화살공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려 한다면 이 정도 갑옷으로도 충분하다. 면피갑과 견피갑의 투구의 두건은 역시 그와 같은 방호원리에 따른다.

 

모피 갑주 [ 毛皮甲胄·Pelt Armor ]

□ 정의 : 털짐승의 생가죽으로 덧대 만든 갑주  □ 재원 : 의복형·약간 무겁다  □ 기능 : 전신.  □ 방호 : 찌르기에 중·베기에 중·타격에 중·추위에 상  □ 비고 : 모자 털신 손목가리개 등 포함

  원시라고 할 만한 고대에는 모피를 그대로 의복 겸 갑주로 사용했으나 점점 시대가 흐를수록 갑주에 여러 가지 다양한 재료가 복합적으로 사용되고 모피도 이 재료가 된다. 여기에서는 부분이 아닌, 전신 모피갑주를 지칭하는 것으로 흔히 산적들이 입는 것으로 묘사되는 옷으로 보면 무방하다. 바늘로 꿰매어 만들기에는 생모피의 특성이 너무 질기기 때문에 사슴가죽의 짜투리로 가죽끈으로 만들어 이러한 부분 부분들을 결속시키는데 사용한다. 토끼나 오소리 너구리 등의 생모피는 부드럽고 털이 많아 모자로 만들기에 적합하고 면적이 넓은 몸통부분에는 멧돼지 가죽, 사슴가죽 등 큰 짐승의 가죽을 두른다. 장갑과 신발 등도 만들어 추위를 이기기에도 좋고 이 때문에 북부지방의 산에서 활동하는 전사나 산적들이 애용해 왔다. 호랑이 가죽이나 곰가죽 등 귀한 것을 쓰면 카리스마 등도 돋보인다.

 

용린갑 [ 龍鱗甲·Dragon Skin Armor ] ― 두석린갑(豆錫鱗甲)

□ 정의 : 두석을 갑옷미늘로 사용한 갑주  □ 재원 : 전신 두루마기형·찰갑형·복합형·투구 포함·중간 무게  □ 기능 : 상하반신 전체와 머리·활동성 보통·보온성 보통  □ 방호 : 찌르기에 강·베기에 강·타격에 중·불에 중

  이순신 장군이 입은 것으로 흔히 묘사되는 조선시대의 두석린갑은 녹이 슬지 않는 주석 등의 금속으로 찰갑을 한 갑주다. 원삼국 시대에 종판형 갑주양식에 비롯된 길죽하고 크던 갑옷미늘이 삼국시대에 이르러 동그스름하게 작아지고 정교해지며 광택에도 신경을 쓰게 된다. 여러가지 갑주양식이 혼용되면서 괘갑주로 고착화되기 시작한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는 이런 적당히 작고 정교해진 겹치기 찰갑들이 견갑 등 움직임이 많은 곳에 쓰인다. 조선시대의 이르러 완전히 두루마기형 갑주 형태에 붙게 되면서 용의 비늘 같다하여 '용린갑'이니 하는 것은 갑옷미늘의 미려한 구성과 색채 때문이다. 참고로, 갑주 중에 '―린(鱗)'이라 하는 갑주들은 고위 장수가 입는 것으로서 물고기 비늘 같은 모양으로 작게 다듬어진 갑옷미늘을 위아래로 겹치는 찰갑의 기본양식에 충실한 포형 찰갑주를 일컫는다. 두루마기형일 경우 대개 속과 안감을 있어서 보온성과 착용감이 좋다. 다른 갑의를 안에 껴입어서 방호력을 높일 수 있으나 무게로 인해 체력이 많이 소비되고 활동성도 떨어질 수가 있다. 투구는 종판형으로 짜맞추거나 통짜로 두들겨 기본틀을 만들고 외장을 붙인 것으로 매우 발달해 있는 덮개는 갑옷과 일체화된 양식을 보여준다. 비 두루마기형일 경우에는 찰갑식은 움직임이 많은 어깨나 다리 덮개에 한하고 가슴이나 몸통은 일반 괘갑식이나 다른 배열의 철갑을 두를 수 있다.

조선시대 무렵의 투구는 통짜 짧은 덮개형(ex. 두정갑에서 투구), 통짜 뿔형, 상감투구<그림> 등으로 나뉠 수 있다. 통짜형은 사다리꼴이나 세모꼴의 철판 네 조각 정도를 이어서 머리쓰개의 기본을 만든 것이다. 통짜형은 투구에 붙은 귀덮개가 목갑주를 대체하도록 길고 두툼한데, 이것이 선대의 종판형 등과 구별되는 점이기도 하다.

- 황룡린갑 [ 黃龍鱗甲·Yellow Dragon Armor ] ― 도금동엽갑(塗金銅葉甲)

□ 정의 : 황룡의 비늘을 두른 갑주  □ 재원 : 전신 두루마기형·적정한 무게  □ 기능 : 전신보호  □ 방호 : 찌르기에 강·베기에 강·타격에 각  

  도금동엽갑은 구리에 금도금을 하여 미늘을 단 갑주다. 여기서는 황동(:놋쇠)을 쇠미늘에 사용하거나 쇠미늘에 입힌 것에 한하여 '황룡린갑'이라 칭했다.

  옛날 우리의 구리는 '고려동'이라 하여 멀리 송나라까지 그 명성을 떨쳤다. 문제는 구리는 연해서 갑옷미늘로 쓰기에는 적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20%의 아연을 섞은 황동에 납을 소량 첨가하면 거의 금빛과 다름없다. 이렇게 좋은 구리를 써서 금빛 나는 황동미늘을 단다면 갑주로서의 기능도 뛰어나고 입는 자의 카리스마를 돋보여 준다. 황룡린갑은 두석린갑과 그 구성과 형태가 유사하고 성능도 거의 같은데 부위별 장식이 더욱 화려하고 미늘에 미려한 문양을 새겨 장식미를 높인다.

  ☞ 철미늘에 수은을 뿌려 도금한 수은갑(水銀甲·Quicksilver Armor)은 '백룡린갑'이라 해도 잘 어울린다.

 

가죽갑 [ Leater Armor] 류 - 저피갑 [ 저皮甲·Pig Leather Armor ]

□ 정의 : 돼지가죽으로 미늘을 만들어 엮은 갑주  □ 재원 : 전신형·찰갑·가볍다 □ 기능 : 전신 보호·활동성 상 □ 방호 : 찌르기에 약·베기에 약·타격에 약  □ 비고 : 투구 포함

  안감이 없고 가죽으로만 엮은 것으로 평상복에 걸칠 수 있는 형태다. 돼지가죽은 비교적 구하기 쉽고 생가죽을 쓰기 때문에 번거롭지도 않다. 마을잔치 때 잡은 돼지 한 마리로 저피갑 몇 벌은 만들어낼 수 있으니 가정에서도 만들 수 있다. 가죽을 벗겨내고 적당히 손질한 가죽을 제단해 여러 겹 겹치고 붙여 일단 네모난 미늘을 만들고 이것을 불에 그을린 사슴가죽으로 만든 가죽끈으로 엮는다. 사슴가죽이 없다면 돼지 가죽으로 해도 된다.

* 현갑 [ 玄甲·Black Armor ] ― 유엽갑 (柳葉甲)

□ 정의 : 철찰을 사슴가죽끈으로 엮어 만든 것  □ 재원 : 몸통형·중간 무게  □ 기능 : 몸통 보호  □ 방호 : 찌르기에 중·베기에 상·타격에 중

  유엽갑의 일종으로서 안감을 대지 않고 쇠미늘과 사슴가죽끈만으로 엮어 흑칠을 하여 만든 갑주를 말한다. 사슴가죽으로 만든 끈은 인끈이라 하여 관리들의 신분을 나타내는 패나 도장 같은 것을 넣은 중요한 주머니와 몸과 연결하는 기능을 했는데 이것은 사슴가죽 특유의 질긴 성질과 칼날 같은 것에도 쉽사리 끊어지지 때문이다. 이렇게 사슴끈으로 네모 반듯한 쇠미늘을 모두 엮은 뒤 통째로 검은 칠 ― 검댕이와 섞은 옻칠을 한다. 저피갑과 마찬가지로 일반 의복 위에 그냥 걸쳐 입을 수도 있고 방호력이 양호해 전쟁터에서 병사들이 입기에도 충분하다.

 

종이갑 [ 紙甲·Paper Armor ] ― 사사을갑(沙士乙甲) = 철흉갑 [ 鐵胸甲·Iron Breast Armor ]

□ 정의 : 종이로 외장, 철편으로 내장한 갑옷 가슴 갑주 □ 재원 : 조끼형·흉갑·조금 무거운 편 □ 기능 : 몸통형 보호 □ 방호 : 찌르기에 상·베기에 상·타격에 상 □ 비고 : 병사용

  한지공예를 연상시키는 갑주. 겉보기에는 현대의 방탄조끼와 매우 닮아 있다. 칼과 창과 화살 등 거의 모든 근력무기의 공격에 대해 강력한 방어력을 지니고 가슴과 윗배 아닌 다른 부분을 방호하지 못하는 것이 흠이다. 가급적 두루마기 갑주 안에 입으면 이상적일 것이다.

  닥나무 종이를 여러 번 접고 찢어 붙이고 물에 불리고 합치고 건조하고 하는 과정을 여러 번 거치면 마치 가벼운 나무처럼 딱딱해진다. 철편을 내장하여 깔고 그 위에 앞과 같은 방식으로 붙여나가며 외장을 만든다. 통풍이 잘 되고 서늘한 곳에 오랫동안 말려 딱딱하게 마른 뒤에는 검은 옻칠을 한다. 옻칠을 하면 잘 좀 먹지 않고 습기와 불에도 저항성을 지닌다. ― '흑칠' 혹은 '칠(漆)을 한다'는 것은 대부분이 옻칠을 말한다 ― 한지로 만든 종이갑은 매우 질길 뿐만 아니라 칼날에도 잘 베이지 않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종이갑은 다리품으로 산과 들을 누벼야 하는 전사의 부담을 한결 덜해준다. 습기에는 약해 곰팡이가 피거나 좀 먹기 쉽다.

  ☞ 옻칠은 공예품이나 가구만 칠하는 것이 아니다. 옻칠의 색깔로 대표적인 것은 흑칠(黑漆)과 붉은 주칠(朱漆)이다. 남색과 초록색 등 다른 색깔도 낼 수 있지만 옻칠과 결합한 색은 서양 도료와 달리 원색적으로 경박하게 튀지 않고 은은하다. 비단 색깔뿐만 아니라 옻칠은 여러 이로운 특징들이 있어 군용 병기에 색깔을 입히는데 많이 사용된다.

 

철편갑 [ 鐵片甲·Iron Piece Armor ] ― 철갑

□ 정의 : 쇠로 미늘을 만들어 붙인 갑주  □ 재원 : 전신형·자루형 찰갑·약간 무겁다  □ 기능 : 전신·활동성 중  □ 방호 : 찌르기에 중·베기에 강·타격에 중  □ 비고 : 투구와 요대

  바둑판과 같은 짜임새를 지닌 일반 괘갑형의 철편 갑주는 오랜 세월 동안 가장 널리 사랑받아왔다. 서구나 동양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양식으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삼국 시대 이후 고려, 조선시대 초중기까지 두루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바둑판 같은 괘갑형은, 협의의 찰갑처럼 물고기 비늘처럼 상하좌우가 서로 정교하게 겹치지는 않으나 손바닥만한 철편들을 종횡으로 나란히 줄맞춰 꼼꼼하게 가죽끈으로 이어 만든 것이다. 몸통 갑주나 견갑 등 장딴지 전측면을 보호하는 하체 보호장비의 방호재로 주ㅜ로 쓰인다. 장수들도 즐겨 입는 것으로 입은 후에 필요에 따라 요대를 착용하여 몸에 밀착시킨다. 투구의 귀덮개도 같은 양식으로 한다.

 

방패 [ Korean buckler & Shield ] 류

  방패는 무엇으로 만들었느냐, 어떤 형태인가에 따라 그 종류가 구분된다. 우리 나라의 경우 그 재질로는 참나무와 등나무로 만든 방패가 일반적이다.

  '방패'라는 것은 사각형으로 길죽한 것(shield)을 가리키며 '원패'라 할 때는 둥근 방패(buckler)를 가리킨다. 원삼국시대에는 장방패의 형태가 주를 이루었으며 점점 후대로 접어들면서 가볍고 부리기 쉬운 원방패가 유행한다. 장방패도 원삼국 이후로 오랫동안 나무와 금속을 잇대어 만들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등나무 재질의 방패가 유행된다.

- 등패

□ 재원 : 등나무 덩굴 직경 1미터 내외·안쪽의 손잡이  □ 방호 : 찌르기에 강·베기에 강·타격에 중·.  □ 비고 : 방호 원등패 & 등나무 장방패

  등패(등牌·wisteria vine buckler)는 등나무 줄기로 촘촘히 엮은 것으로 소쿠리의 뚜껑을 짜는 것과 유사하다. 단 적방향으로 향한 부분은 둥그렇게 융기되고 그 가장자리가 바깥으로 휘어 있어 적의 화살이나 창 공격이 뚫지 못하면 빗겨가게끔 세밀하게 설계가 되어 있다. 또한 귀신의 그림 등을 붙여두어 주술적 의미로 보호의 기원을 했다. 패 안쪽의 손잡이는 뽕나무나 등나무로 만들고 미끄러지지 않도록 천으로 감는다. 등패는 보병용과 기마용 두 가지가 있는데 기마용의 경우 더 작고 가볍다. 칼자루가 짧고 뭉특하여 방패에 걸리지 않는 요도(腰刀)식 칼이나 단창(短槍)과 함께 사용한다.

- 장방패

□ 재원 : 참나무 등·크고 무겁다.  □ 방어 : 찌르기에 강·베기에 강·타격에 강

  장방패(sheild)는 주로 나무로 만들며 약간만 몸을 움츠리면 완전히 그 안에 가려 방호될 수 있는 크기이다. 장방패를 든 병사들은 대개 대열의 선두에 일정한 대열로 늘어서서 화살이나 창을 이용한 적의 선제공격을 무력화시키며 아군의 안쪽 핵심 대열을 방호하게 된다. 장방패를 들면 방호력이 매우 높아지는 대신 강력한 살상력을 지닌 두손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거의 불가하다. 장방패가 좀 더 발전되면 가장자리와 이음에 쇠를 둘러 더욱 견고하게 하고 주술적인 의미가 담긴 화려한 그림들이나 부적문구를 그려 넣는다.

 

마름쇠 [ Caltrop ] ― 철질려

□ 정의 : 뾰족한 침이 난 적 침투방지용 장애물 □ 기능 : 적 침투 방지

  마름쇠는 고대 동서양 두루 쓰이는 간접 방어구이자 장애물이다. 크기는 아주 작아서 손안에 쥐어질락 말락한 크기이며 던지면 어느 방향으로든 침이 향하게 네 개의 긴 침으로 이루어져 있다. 손으로 흩어 뿌리면 되는데 굳이 전시가 아니더라도 집을 도둑으로부터 보호하는 용도로도 사용된다. 크기가 작아 풀이 난 들판에 뿌리면 적이 볼 수 없어 더 효과적이다. 기마병에게도 효과적이며, 수성하는 입장에서 바로 아래의 성벽에 뿌리면 기어오르다 떨어지는 적들에게는 생명을 위협할 만한 치명적인 지뢰역할도 한다. 우리 나라의 마름쇠들은 저마다 작은 구멍이 뚫려 있어 질긴 실로 서로 연결한 뒤 운용할 수도 있다.

 

<참조> 치우 [ 蚩尤·Chi Woo ]

□ 소개 : 환웅조선 14대 임금이자 동이의 군신(軍神)  □ 특기 : 창술과 병법  □ 비고 : 한단고기 외

  아주 멀고 먼 상고시대, 치우는 중국의 기록에 자주 등장하는 싸움과 병법에 뛰어난 능력을 지닌 절대군주이자 전쟁신이다. 환웅조선의 14대 임금이라고도 한다. 그 모습은 흡사 철갑의 기계인간과 같고 인상은 무시무시하고 전법 또한 가공했다고 전해진다. 머리는 쇠로 되어 있고 쇠뿔이 돋아 있으며 이마는 구리로 되어 있으며 몸이 쇠로 되어 화살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러한 묘사 - 비록 과장되긴 하였으나 - 로 볼때, 치우가 당대로서는 짐작도 못할 고도로 뛰어난 전신 갑주를 입고 있었으며 철기 제조 등 쇠를 부리는 기술이 매우 뛰어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인류전쟁사 최초로 화생방전에도 능하여 '염초'를 통하여 독한 가스를 뿜어 전술에 이용했다.

* 치우천왕의 전신갑주와 창

□ 성능 : 방호력과 공격력 최상  □ 비고 : 투구의 입에서 붉은 독가스를 뿜는다.

  치우는 혼이 빠지게 현란한 전술을 구사하니 물과 불을 일으키고 풍우조화를 일으킨다고 전해진다. 치우가 고대 동이의 군신이다, 혹은 치우가 구려(句麗)의 군주라고 하니 우리의 조상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어찌나 광포하고 그 기세가 무서웠던지, '귀면기와'를 비롯한 도깨비의 기원이 이 무시무시한 절대군주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

  ☞ 고대의 기록들과 여러 가지 추측과 학설들을 접하게 되면 중국의 것이라고 알고 있었던 신화 속 영웅들이 우리의 조상과 결코 별개가 아니라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치우천왕과 더불어 신령 편에서 소머리신으로 소개했던 신농씨도 그러하다.

 

[ 수레형 장비 ]

 

  드라마나 소설, 혹은 전략형 컴퓨터게임 등에서 보여지는 대규모 전쟁장면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각종 수레형 공성무기들이다.

  성 공격을 위한 수레형 장비들은 무기들이라기보다는 특정용도를 위한 발명품에 가까운 것들이 많다. 비전시에서 이러한 장비들은 별로 쓸모가 없는 지라 평소에는 애물단지에 불과하지만 수많은 아군과 적군이 붙어 싸운 상황에서 그 장비들이 어떻게 사용되고 어떤 전술에 의해 배치할까를 상상하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또한 판타지를 배경으로 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수레형 장비 및 공성무기에 대한 기대와 재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다음은 우리 역사상 등장했던 가장 대표적인 병기형 수레 장비들이다.

 

검차 [ 檢車·Sword Vehicle ]

□ 정의 : 수많은 검이 달린 수레  □ 용도 : 적 장애물이자 공격용  □ 특성 : 대인 및 대기마병 공격에 유리  □ 위력 : 살상력 중  □ 비고 : 성 전투용은 아니다.

  검차는 우리 나라에서 발명한 고대 수레장비이다. 무수하고 날카로운 검들이 적 방향으로 박혀 있는 형태를 띤다. 공성용이 아니라 수많은 기마병들과 병사들이 대형을 이루며 싸우는 평원 전투에서 사용된다. 따라서 우리 조상들이 북방을 지배하던 고구려 때 사용된 것으로 본다. 검차를 앞세우면 평탄한 대지에서의 싸움에서 가장 큰 위력을 지닌 기마병들은 검차의 위협 때문에 다가오지 못하고 적들은 활이나 투창으로서만 응수할 수밖에 없다. 검차를 운용하는 아군의 경우에는 병사들은 마치 달구지의 손잡이를 잡고 밀 듯이 검차의 후미를 잡는다. 그리고 대형을 이루어 세차고 줄기차게 밀어부치는 것만으로 적을 후퇴시킬 수 있다. 움직이지 않을 때 적 병사의 근접공격에 당할 수 있다는 것이 단점이다.

 

누거 [ 樓車·Tower Carriage ]

□ 정의 : 수레에 망루를 얹은 것  □ 용도 : 적의 성 관측용 및 점령용  □ 비고 : 고려시대

  '대우포'를 개발한 박서가 발명한 공성용 병기. 다락방처럼 생긴 망루를 세워 그곳에 사다리를 장착해 병사들을 올라가게 한 뒤, 지상의 병사들이 뒤에서 밀거나 끌면 바퀴로 성까지 굴러가게 된다. 성벽에 닿으면 병사들이 재빨리 성벽으로 넘어가는 단순한 원리다. 자체무기가 없기 때문에 공격용이라고 보기는 약간 초라한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만큼 융통성이 있다. 굳이 성벽에 갖다 붙이지 않아도 떨어진 곳에서 성안의 적 동태를 감시하거나 망루 위에 궁수나 포수를 배치하여 엄호진지로 사용할 수 있다. 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에 적의 불화살 공격에 약한 것이 흠이다.

 

운제 [ 雲梯·Ladder Carriage ]

□ 정의 : 공성용 사다리 차  □ 용도 : 적의 성 점령용  □ 특성 : 접이식 대형 사다리 부착

  운제는 그 활용에 있어서는 누거보다 못하나 최초의 사다리차이며 성 위를 넘어가고자 하는 공성용 장비 중에서 가장 널리 쓰였던 것이다. 장정 서넛이 한꺼번에 기어오를 수 있는 폭넓고 튼튼한 사다리가 있는데, 반은 평소에는 접혀져 있다. 본격적인 성공격이 이루어지면 병사들은 수레를 성 가까이에 미는데 완전히 붙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이 상태에서 그 접이식 사다리를 펼쳐 성벽 위에 대게 되는데 그 각도가 비스듬한 경사를 이루게 된다. 일반 사다리를 이용하자면 그 경사가 높고 가파르고 사다리가 가벼워 적의 발길질에도 쉽게 뒤로 자빠질 수가 있으나 이 운제를 이용할 경우 그 각도가 낮고 또 사다리가 뒤로 넘어가지 않도록 끈으로 고정하는 부분이 있어서 대우포 같은 것으로 사다리 난간을 부수지 않는 이상 적이 넘어오는 것을 쉽게 막을 수 없다.

 

충차 [ 衝車·Crash Vehicle ]

□ 정의 : 수레에 뾰족한 통나무를 매단 것  □ 용도 : 적의 성문 파괴  □ 특성 : 인력으로 밀어 충돌시킴  □ 위력 : 구조물 파괴력 뛰어남

  충차의 용도는 단 한가지다. 무조건 적의 성문을 부수는 것. 충차는 바퀴가 달려 있기 때문에 병사들의 힘도 덜어줄 뿐만 아니라 아주 편리하다. 무거운 통나무를 굳이 힘들여 들지 않아도 된다. 수레를 그냥 밀기만 하면 병사들의 힘의 총합에 짧은 거리나마 가속도가 붙어 적의 성문에 충돌한다. 따라서 적은 수의 병사로도 효과적으로 적의 성문을 파괴할 수 있다. 얼마나 빨리 적의 성안으로 진입하는가에 따라 승패가 달린 성 점령전투에서 이 충차는 마지막 최후의 승리의 문을 열게 된다. 좀 발전된 충차는 통나무 끝에 철판이나 쇠침을 박아 파괴력을 높이고, 수레에도 적의 공격에 잘 부서지지 않도록 아주 두꺼운 가죽으로 보호외장을 두른다.

 

포차 [ 砲車·Throwing Stone Carriage ]

□ 정의 : 수레에 돌을 날릴 수 있는 원시적 포대를 세운 것  □ 용도 : 적의 성 공격용  □ 특성 : 인력으로 돌을 날림  □ 위력 : 구조물 파괴력 뛰어남

  원삼국 시대의 포차가 돌을 날리는 원리는 아주 원시적이다. (상식과 같은 도르레의 원리나 탄성이 아닌) 단지 사람의 힘만이 사용된다. 막대기 끝에 바위를 얹어 놓고, 그 끝에 있는 끈을 수십 명이 순간적으로 당긴다. 그 힘으로 돌이 적의 성으로 날아간다. 바위를 멀리 적의 성까지 날리기 위해서는 병사들의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 자칫하면 돌이 맥없이 바로 앞에 떨어져 선봉대로 나선 아군의 한복판에 떨어지는 불행한 사태도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돌을 날리는 인력을 모으기 위해 이를 전문적으로 지휘하는 포차 통제관이 요구되며 포차에 동원된 병사들은 서로 호흡을 맞추기 위해 많은 훈련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잘 날린 바위는 적의 성벽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성 축조기술이 덜 발달한 고대에서는 매우 위력적이었음은 틀림없다.

  ☞ 후대의 중국과 서양에는 포차에다가 쇠뇌의 원리를 이용한 투석기(catapult)가 등장하는데  중원에서 물러난 이후 우리 나라는 이러한 발전된 원리의 투석기가 널리 쓰이지는 않았다. 한반도에 국한 지역에서는 주로 산성이라서 이러한 거대하고 이동이 번거로운 투석기보다는 다연발 혹은 다발형의 뛰어난 쇠뇌가 쓰였기 때문이다. 다만, 고려시대 뛰어난 무기발명가이자 무신인 박원작(朴元綽)이 개발했다는 뇌등석포가 이 투석기가 아니었을까.

 

혁거 [ 革車·Leather Carriage ]

□ 정의 : 두터운 가죽으로 보호시설을 두른 수레  □ 용도 : 이동용 공격진지  □ 특성 : 적의 공격을 방어  □ 위력 : -  □ 비고 : 고려시대 박원작

  고려 11세기 경 박원작이 개발한 것으로 알려진다. 나무로 튼튼하게 네모난 상자 혹은 세모진 천막처럼 두터운 가죽을 튼튼히 두르고 이 안에 장수나 병사들이 숨어 적의 공격을 막으며 성에 가까이 이동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든 반드시 둘러막아야 할 부분은 바로 천장. 혁거는 성을 방어하는 적들이 돌이나 화살, 뜨거운 기름 등을 쉴 새 없이 퍼부어 대므로 이를 막고자 고안한 수레장비이다. 훗날 조선시대의 임란 때는 일본이 이 혁거와 유사한 귀갑차로 성을 방어하는 우리 병사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참고> 비거 [ 飛車·Flying Vehicle ]

□ 정의 : 하늘을 나는 수레  □ 용도 : 적 관측용이자 도피용  □ 특성 : 글라이더와 동력식 병용  □ 위력 : 중거리 비행

  (믿기 힘들겠지만) 우리 나라는 라이트 형제보다 5세기 정도 앞서 세계 최초의 비행기를 개발한 나라이다. 하늘을 나는 수레, 즉 비거가 실존했다는 기록은 속속 전해져 온다. 서양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설계에서부터 라이트 형제에 의해 비행기가 탄생되기까지 하늘을 날고자 하는 인간의 줄기찬 욕망과 흡사하게, 비거는 실학의 토대를 가꾸던 자들이 여러 세대를 거쳐 나름대로 꿈꿔왔던 발명품이다. 정평구라는 자가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활강만 하는 글라이더식이 아니라 새가 날개짓을 하듯이 발로 동력을 낸다. 전체적으로 새가 나는 원리와 모습을 흉내내어 만든 것이다. 실제로는 전쟁의 작전에 운용되지 않았지만, 관측용으로는 충분히 활용 가능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는 백과사전식 정설에서 벗어나서 정평구가 아닌 다른 자가 만들었다는 설도 있고 꽤 구체적으로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비거의 모습을 묘사한 소설도 있다. 또한 국내 유수의 TV 방송국에서 역사 다큐멘터리로 방영된 적도 있으니 판타지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