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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올림픽과 끝이 없는 이야기들
작성자 | 김현철 기자 조회 | 431 작성일 | 2004.07.19

Never Ending Olympic Stories

54년 8개월 6일 32분 20.3초...

이것은 역사상 가장 늦은 마라톤 기록이다. 물론 은유적 표현이긴 하지만. 이 기록의 주인공은 카나구리 시조라는 한 일본인 마라톤 선수. 그는 1912년 스톡홀름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했다. 그는 레이스 도중 마실 것을 제공해준 한 친절한 사람의 집에서 그만 깊은 잠에 빠져들었는데, 어처구니 없게도 그가 깨어난 것은 다음날이었다. 이날 이후 카나구리의 행방은 묘연해졌고 언제 일본으로 돌아갔는지 아니면 스웨덴에서 계속 사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카나구리는 뒤늦게 그의 행방을 수소문한 스웨덴 당국의 초청으로 75세의 나이가 되어서야 스톡홀름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의 레이스는 54년이 지난 그때서야 끝이 난 것이다.

 4년마다 한번씩 올림픽의 해가 돌아오면 늘 과거에 벌어졌던 올림픽에 관한 얘기를 하게 된다. 언제 어느 올림픽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졌었나 살펴보다 보면 참 기상천외한 일들도 많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 수많은 "끝이 없는 얘기" 들 중에서 독일의 작가 노테봄(Rudolf Nottebohm)이 쓴 여섯 개의 올림픽 에피소드 "올림피아"에 나왔던 흥미로운 이야기 몇 가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 1896년 제1회 올림픽. 미국선수단은 하마터면 개회식이 끝나고 나서야 그리스 땅을 밟을 뻔했다. 이유는 달력 때문. 그리스는 종교적 이유(그리스정교) 때문에 이미 전세계에 보편화된 현재의 그레고리력이 아닌 율리우스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율리우스력은 그레고리력보다 날짜가 12일 빠르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미국선수단은 허겁지겁 짐을 챙겨 떠났고, 이탈리아에서 간신히 그리스행 배를 잡아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리스 국왕이 막 개회선언을 하기 직전에서야 경기장에 들어설 수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생각조차 하기 힘든 이런 일이 첫 번째 올림픽에서 실제로 벌어졌다.

  제1회 아테네올림픽과 관련한 또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 당시 아테네의 소매치기들은 올림픽의 평화를 위해 경찰총장에게 대회기간 동안 그들의 주특기(?)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약속했다. 실제로 그 약속은 잘 지켜졌다고 한다.

◎ 1908년 런던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했던 이탈리아의 도란도 피에트리 만큼 불운한 선수는 없을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마라톤 코스의 길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42.195km가 아니라 25마일(약 40km) 정도였는데, 출발점을 윈저궁으로 옮긴 데다가 메리공주의 요청으로 약 345m가 더 늘어나는 바람에 42.195km가 된 것이다. (이것이 공식적인 마라톤 거리로 인증받은 것은 1921년.) 피에트리는 1위로 골인하기 직전에 탈진, 비틀거리다가 세 차례나 넘어졌고 급기야 경기진행요원의 부축을 받고 결승점을 통과한다. (이 진행요원 중에는 셜록 홈즈로 유명한 소설가 코난 도일도 있었다.) 피에트리는 결국 실격처리되었고 금메달은 2위로 들어오던 미국의 조니 헤이즈에게 돌아갔다. 피에트리가 부축받기 시작한 지점이 결승점 100m 전 쯤이었다고 하니까, 메리공주가 345m를 더 늘려달라고만 안했던들, 아니면 진행요원들이 부축하지만 않았던들 금메달의 주인공은 바뀌었을 것 아닌가. 이를 안타깝게 여긴 알렉산드라 왕비는 피에트리에게 골드컵을 선물했다고 한다. 이 사건 이후 진행요원들의 선발과 규제가 강화된 것은 물론이다. 피에트리는 4개월 뒤에 열린 뉴욕 대회에서 헤이즈를 45초차로 제침으로서 런던에서의 한을 풀었다.   

◎ 부부가 같은 날 같은 순간에 금메달을 딴 적이 있다. 1952년 헬싱키올림픽. 체코의 "인간기관차" 에밀 자토펙은 5천미터에서, 아내 다나는 창던지기에서 동시에 금메달을 따냈다.  이 두 사람은 태어난 날도 같았다고 하니, 천생연분이란 말은 이들 부부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찡그린 얼굴로 달리는 것으로 유명한 자토펙. 그는 그 이유에 대해서 싱거운 대답을 했다. "나에겐 웃으면서 뛸 줄 아는 재주가 없다."

◎ 1960년 로마올림픽. 도로사이클 175km 개인전. 러시아의 카피토노프는 마지막에서 두 번째 바퀴를 돌고서 승리의 세리모니로 힘차게 팔을 치켜들었다. 그러나, 그는 한바퀴를 덜 계산하고 말았다. 이 사이 라이벌 트라페(이탈리아)가 그를 제치고 선두로 올라섰지만, 카피토노프는 뒤늦게 실수를 깨닫고 다시 스퍼트, 간신히 1위로 골인했다. 하마터면 날아갈 뻔한 금메달이었다.

◎ 1968년 멕시코시티올림픽. 체코의 여자 체조선수 베라 카슬랍스카는 라이벌인 세계 최강 소련 선수들을 차례로 누르고 금메달 4개와 은메달 1개를 따내며 올림픽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그가 소련 선수들을 누를 수 있었던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프라하의 봄". 올림픽이 열리기 몇 달전,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표방했던 체코 국민의 염원은 소련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 그녀는 네 개의 금메달을 체코 대통령 스바보다, 공산당 의장 두브체크, 수상 체르니크, 그리고 국회의장 스믈콥스키에게 하나씩 전달했다고 한다. 금메달이 더 많았다면 체코 국민들 모두에게 하나씩 주려고 하지 않았을까.

 ◎ 다시 1968년 멕시코시티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한 탄자니아의 스티븐 아크와리는 날이 어둑해져서야 절뚝거리며 결승선을 통과했다. 걷기도 힘든 상태였지만, 아크와리는 결국 골인했다. 한 기자가 그에게 어째서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는 명대답을 남긴다. "내 조국 탄자니아는 스타트만 하라고 나를 멕시코에 보낸 것이 아니다. 경기를 끝마치라고 보낸 것이다." 시드니 올림픽 수영에 출전했던 "개헤엄스타" 무삼바니(적도 기니)의 원조는 바로 아크와리였다.

前 IOC 위원장 브런디지는 올림픽은 "20세기의 종교"라고 말한 적이 있다. 21세기에 들어서서 처음 열리는 아테네올림픽. 여전히 올림픽은 21세기에도 세계 최대의 종교, 세계 최대의 엔터테인먼트로 군림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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