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월 2일 태국에서 시작된 동남아 통화위기가 동북아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면서 세계경제에 미칠 영향이 우려되고 있다. 만약 동북아의 금융불안이 전면화된다면 세계경제의 장기호황 국면도 위협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방콕의 부동산 공급과잉에서 시작된 동남아 통화위기가 홍콩을 거쳐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로 파급되고 있다. 만약 이 파급효과가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 대만, 중국과 같은 인접국에까지 미친다면 그 영향은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EU와 같은 선진국들이 아시아 통화위기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동아시아 국가들의 금융불안이 세계경제에 미칠 수 있는 영향과 그 전달 경로들을 짚어보고 각각의 가능성을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동남아 사태가 동북아에서 재연될 가능성
7월 2일 이후 달러화에 대한 동남아 국가들의 통화가치를 한 때 30∼40%까지 절하시켰던 통화위기가 동북아에서 재연될 가능성이 일각에서 논의되고 있다. 그 원인으로는 첫 번째로 통화위기가 대외부문과 금융부문의 건전성이 악화되어 있는 국가들로 쉽게 전염되는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 97년 7월 이후 10월말까지 동남아 국가들의 실질실효환율이 약 28%나 절하됨에 따라 동북아 국가들의 수출경쟁력이 약화되면서 이들 나라들도 조만간 대대적인 평가절하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7월 2일 이후 11월 18일까지 대만 달러와 한국 원화의 가치는 각각 11.3%와 12.0%씩 절하된 상태며 중국 원화의 경우는 뚜렷한 절하추세를 보이고 있지 않다. 따라서 동북아는 아직 전면적인 지역적 통화위기를 겪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동북아에서도 동남아와 같은 전면적인 통화위기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한마디로 한국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한국의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대외부채를 갱신하지 못하고 중앙은행도 외환보유고의 고갈로 통화가치 방어를 포기한다면 한국은 동남아 국가들과 같은 외채 위기(balance of payment crisis)를 겪게 될 것이다.
그 결과 원화가치가 더욱 폭락한다면 모든 수출품목에서 한국과 경쟁관계에 있는 대만 역시 경쟁적으로 평가절하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다시 중국 위엔화의 평가절하 유인을 증대시킬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은 동남아 국가들의 대폭적인 환율 절하에 따라 노동집약적 산업의 수출시장을 상당부분 잠식당할 가능성이 있으며, 한국과 대만이 평가절하 경쟁에 들어간다면 중간 정도의 기술수준을 요하는 품목에서도 수출시장을 상당부분 잠식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동남아에서 발생했던 도미노 현상이 동북아에서도 그대로 재현될 뿐만 아니라 11월 들어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동남아의 통화위기를 다시 악화시켜 아시아 전체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고조될 것이다.
일본을 통한 동아시아 위기의 확대 가능성
만약 동북아에서 발생한 통화위기가 세계경제로 확산된다면 그 고리를 제공하는 것은 일본이 될 것이다.
먼저 무역의 측면에서 동북아의 경쟁적인 평가절하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면 한국과 반도체, 자동차, 철강, 선박 등에서 경쟁관계에 있는 일본 역시 평가절하 경쟁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일본정부가 공공부문과 금융부문의 개혁정책을 추진하면서 국내경기가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엔화의 평가절하를 통한 수출증대로 경기부양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나타났던 각국간 경쟁적인 평가절하정책(beggar my neighbor policy)이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에서 재현된다면 이는 세계무역과 국제금융시장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먼저 아시아지역 통화의 전반적인 평가절하는 세계교역시장에서 전반적인 가격하락 현상, 즉 글로벌 디플레이션을 몰고 올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일본, 중국, 기타 개도국들의 대미 무역흑자가 급증하면서 미국내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어 90년대 이후 국제무역질서를 지배해 왔던 자유무역주의가 퇴조할 가능성도 있다. 다른 한편 동북아의 경쟁적인 평가절하는 이 지역에 대한 직접투자와 포트폴리오투자 비중이 높은 일본 기업과 금융기관의 재무구조를 악화시켜 이미 진행중인 일본의 금융위기를 심화시킬 것이다. 그리고 일본 금융위기의 심화는 다시 글로벌 금융시스템에 일대 혼란을 야기시킬 가능성이 있다.
글로벌 디플레이션 시나리오
동아시아의 경제위기가 세계경제로 확산될 수 있는 첫 번째 경로로는 글로벌 디플레이션의 가능성을 들 수 있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가치 하락은 이들 나라와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개도국들의 평가절하 내지는 통화위기를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 이런 점에서 가장 문제가 될 수 있는 지역은 동구와 중남미라고 할 수 있다. 먼저 동구권 국가들의 경우 높은 경상수지적자 비중, 실질환율의 절상, 금융부문의 부실화 등으로 통화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동구권 국가들이 통화위기를 겪는다면 중남미 국가들도 평가절하 유인이 강화될 것이다. 95년 이후 아시아 국가들의 평균적인 실질실효환율이 7% 가량 절하된데 반해 중남미 국가들의 실질실효환율은 11.5% 가량 절상되어 왔기 때문에 중남미 국가들은 동구권의 통화위기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미 충분한 평가절하 유인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동아시아, 동구, 중남미 국가들의 통화가치가 폭락할 경우 OECD 국가들에 대한 이들 국가의 수출상품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할 것이다. 물론 이것의 직접적인 효과는 OECD 국가들의 수입물가가 하락하는 것이지만 이를 통해 수입제품과 경쟁관계에 있는 교역재의 전반적인 가격인하 경쟁이 유발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글로벌 경쟁은 반도체, 철강, 자동차, 선박, 석유화학 등 이미 전세계적으로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주요 교역재들의 가격인하를 더욱 부추길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글로벌 디플레이션 압력의 형성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만약 이 시나리오에 따라 글로벌 디플레이션이 발생한다면 레버리지 비율이 높은 기업의 재무구조가 악화되면서 투자가 위축되고 전세계적인 증시침체에 따른 소비감소로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발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보호무역주의 부활 시나리오
동아시아, 중남미, 동구 국가들의 평가절하 경쟁이 가져올 수 있는 또 하나의 결과는 미국내 보호무역주의가 부활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93년 이후 연평균 20%씩 증가해 왔다. 만일 98년에 유럽과 개도국들의 수출가격 인하로 모든 지역이 순수출국이 되고 그 결과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가 현재보다 더 빠르게 증가한다면 미국내 보호무역주의 여론이 강화될 것이다.
미국인들 중 상당수는 미국의 무역적자가 내부적으로 실업과 낮은 임금상승률을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미의회 역시 NAFTA를 비롯한 90년대 이후의 자유무역주의적인 통상정책이 무역적자를 대폭 증가시켰다고 판단하고 있다. 최근 클린턴 행정부의 Fast-Track 법안의 의회비준 실패는 국제사회에 보호무역주의가 대두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만약 미국내 보호무역주의 경향이 강화된다면 개도국들의 경제회복은 지연될 것이며 이에 따라 미국의 경제성장률도 둔화돼 세계경제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세계증시 역시 보호무역주의로의 회귀를 세계경제의 장기호황의 종식으로 인식하고 폭락할 가능성이 있다.
글로벌 금융공황 시나리오
동아시아 경제위기가 가져올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글로벌 금융공황이 될 것이다. 동아시아의 경제위기가 통화위기나 외채위기의 형태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이 지역 금융시스템에 과다 노출되어 있는 해외 금융기관들의 자산구조가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96년말 BIS 통계를 보면 인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공급된 은행총여신은 모두 7천 5백억 달러에 달하는데 이 중 35.1%가 일본계 은행에 집중되어 있다.
문제는 동아시아 금융위기에 대한 노출도가 가장 높은 일본계 은행들이 이미 95년 이후로 극심한 은행위기를 겪고 있다는 점이다. 94년 말부터 시작된 일본의 은행 파산은 올해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만약 동아시아지역에 대한 여신의 상당 부분이 부실채권화할 경우 일본 금융시스템의 위기는 더욱 고조될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은행권의 대동아시아 여신중 5∼10%가 부실채권화되었으며 이는 일본 국내 부실채권의 6∼11%에 달하고 있다는 추산이 나오고 있다.
따라서 일본 금융기관들은 장기적인 경기침체에 따른 부실채권과 대동아시아 부실채권의 급증으로 대손충담금을 급격히 증가시켜야 하는데다가 96년 중반 이후 동경증시가 30%나 폭락함에 따라 자기자본비율 유지를 위해 해외보유자산을 대량 매각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정도는 미약하지만 이미 국제금융시장에서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일본 금융기관의 대외 신용도가 약화되어 일본 금융기관들에 대한 가산금리가 인상되는 등 신용창조력이 약화될 경우 일본 금융기관의 보유자산 매각은 더욱 증가하게 될 것이다.
세계 최대의 채권국인 일본 금융기관의 대대적인 달러표시 해외보유자산 매각은 세계최대 채무국인 미국의 채권 및 증권시장의 자산가격을 폭락시키고 달러화의 폭락과 미국 금리의 폭등을 가져올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이는 다시 전세계적으로 달러표시 보유자산 매각을 부추기게 되어 미국채 소화불능 상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결국 달러화의 폭락과 미국 금리의 폭등이 지속되면서 국제금융질서가 마비되고 나아가서는 세계경제 전체가 침체국면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세계 경기의 침체 가능성
위의 시나리오들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현재로써 판가름하기 어렵다. IMF 등의 다자간 금융기구와 선진국들은 이러한 연쇄효과의 중대성을 감안하여 파급경로를 차단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느 하나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면 나머지들도 동시에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나리오들은 모두 세계경기의 침체로 귀결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특히 글로벌 디플레이션 시나리오의 경우에는 현실성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할 수 있다. EU 국가들이 통화통합의 수렴조건 달성을 위해 팽창적인 통화정책을 자제할 가능성이 크고 통화위기를 겪고 있거나 앞으로 겪을 가능성이 있는 개도국들도 팽창적인 통화정책을 집행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여 미약하나마 글로벌 디플레이션 압력은 상존할 것이다. 그러나 금본위제가 폐지돼 각국이 통화신용정책의 자율성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디플레이션 압력이 심화되는 것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마이너스 성장을 가져오는 전면적인 디플레이션의 가능성은 높지 않다.
보호무역주의 회귀 시나리오는 그대로 관철되기 보다는 미국을 비롯한 OECD 국가들의 무역수지 적자가 심화되면서 자유무역질서가 변질되는 형태로, 예컨대 지역주의가 강화되는 형태로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금융공황 시나리오가 완전히 실현될 것인가는 일본의 금융위기가 얼마나 강력하게 진행되는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일본의 금융위기가 심화되더라도 1조 달러에 달하는 일본은행의 순해외 보유자산중 얼마만큼이 매각될 것인지 그리고 이러한 보유자산 매각이 미국내 자산가치를 얼마나 변화시킬지에 대해서는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현재까지의 진행 상황으로 미뤄 볼 때 일본의 금융위기가 전세계적인 파국을 몰고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세개의 시나리오는 미약하게 나마 동시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의 국제적인 금융혼란이 세계경기 자체를 급속하게 냉각시키는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은 낮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수년간 호황기를 누렸던 세계경제는 이제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여기에는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 경제의 향후 전개방향이 중요한 변수라는 점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일단 동북아 국가들이 전면적인 통화위기로 빠져든다면 각각의 시나리오들의 현실성은 매우 높아질 것이며 이에 따라 세계경제도 침체국면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북상하는 아시아 금융위기 세계경제 위협
심재웅 | 1997.11.26
|
|
|
|
|
|
|
|
|
|
|
|
| economy_articlePagingBold
|
|
|
|
|
|
|
|
|
해외경제 전체목록보기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