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한국i닷컴 > 한국일보 > 사회

"일제 토지ㆍ식량 수탈론은 상상된 신화"
이영훈 교수, 국사교과서의 수탈론 비판

일본은 1910년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한 여세를몰아 8년에 걸친 대대적인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하고 1920년에는 15년 계획으로 이른바 산미증식계획을 추진한다.

이 두 사업에 대한 우리의 상식은 수탈론이다.

즉, 일제는 토지조사나 식량증대를 명분을 내세웠으나 실제는 조선 국토의 40%와 엄청난 쌀을 강탈했으며, 이에 절대다수 농민은 하루아침에 자기 땅을 잃고 유리걸식하는 신세로 전락했다고 한다.

토지조사사업과 미곡증대사업에 대한 이런 통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론이있을 수 없는 사실(史實)이요 사실(事實)이었다.

하지만 이영훈(李榮薰.53)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런 통념들이 객관적 사실의 뒷받침이 전혀 없는 상상이요 신화라고 잘라 말한다.

21세기 동북아시아 평화와 공존을 표방한 지식인 연대기구인 `한ㆍ일 연대21'발족을 기념해 19일 서울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개최되는 국제학술대회에서 그는 `국사교과서에서 그려진 일제의 수탈상(收奪相)과 그 신화성'을 발표한다.

이 글은 `한ㆍ일, 새로운 미래 구상을 위하여'(부제 : 교과서 문제를 중심으로)라는 대회 주제에 맞춰 우리에게 익숙한 일제 수탈론이 신화화한 과정을 추적하는한편, 그것이 왜 성립할 수 없는지를 반박한다.

여기에서 그가 주장하는 대요(大要)는 실로 간단하다.

토지조사사업으로 조선농민이 토지를 빼앗겼다는 신념도, 미곡을 강탈당했다는 주장도 태평양전쟁 말기의전시 시국을 제외하고는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에 의하면 토지조사사업의 경우, 그것은 종래 전근대적 토지제도를 근대적 제도로 원시(原始) 창출하는 과정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총독부나 일부 특권층의토지수탈이 자행될 여지는 거의 없었다.

그뿐 아니라 국유지를 둘러싼 분쟁에는 민유지(民有地)로 판정되어 조선 농민에지급된 토지가 많으며, 다른 국유지는 1924년까지 일본회사나 일본이민자가 아니라그 땅에 대한 연고가 있는 조선 농민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불하되었다는 것이다.

조선총독부가 추진한 산미증산 계획 또한 이를 통해 증대된 쌀은 일본으로 `수출'된 것이지, `수탈'일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 교수는 총독부가 총칼로 쌀을 마구 빼앗아 일본으로 실어 가는 일은 원리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하면서, 쌀이 일본으로 유출된 것은 것은 가격이 3할정도 높은 시장을 찾아가는 과정, 즉, 수출이었다고 말한다.

이 교수에 따르면, 값싸고 질이 좋은 조선 쌀이 유입되자 일본 농민들의 원망은그만큼 폭증했으나, 당시 조선과 일본은 관세가 폐지된 통합시장이었으므로 일본정부는 이를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국사학은 "식민지 지배의 조선에는 어떠한 형태의 법과 제도, 혹은 그들로 대표되는 어떠한 수준의 문명도 결여되었던 것처럼 그 국민을 가르쳐왔다"면서"과연 전통 한국사회는 조선총독부가 마음껏 재산과 인권을 유린하도록 방치할 만큼그렇게 낮은 문명 단계였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하고 있다.

한편 이 학술대회에는 최원식(인하대)ㆍ김철(연세대)ㆍ박유하(세종대)ㆍ시마무라 데루(일본 여자미술대)ㆍ고모리 요이치(도쿄대) 교수 등이 참여한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입력시간 : 2004/11/18 17:43





기사프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