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용 목사의 체험 한국 현대사 ④]

12·12 직후 만난 DJ, “군인들은 내게 충성할 것”

“그때 박정희는 김병삼이라는 사람을 밀었습니다. 박정희는 직접 목포에 내려와 선거를 돕기도 했어요. 너무 탄압이 심해서 도무지 옴쭉달싹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유세장에서 독을 품고 목청을 높였죠. ‘박정희가 목포에 와서 나를 죽이려 하는데, 나는 결국 죽는다. 그래서 여러분께 유언을 하겠는데 내가 죽으면 장례식을 하기 전에 내 시체를 밟고 전주로, 그리고 서울로 올라가라. 그래서 이 정권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그후로는 탄압의 강도가 좀 약해졌습니다. 덕분에 제가 목포에서 국회의원이 된 겁니다. 제 경험으로 보건대 박정희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제가 대통령후보로 나가면 마지막 유세를 서울에서 할 텐데, 적어도 수십만명이 모일 것입니다. 그 군중을 이끌고 청화대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면 제가 이길 수 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아, 역시 김대중이란 사람이 뭔가 다른 게 있는 인물이구나’ 하고 생각했죠. 다음날 제가 윤보선씨를 찾아가서 신민당 후보 김대중을 지지하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윤보선씨는 “강 목사가 사람을 몰라도 그렇게 몰라? 김대중이란 사람은 머리털부터 발톱까지 완전히 정치적인 사람이야”라는 거예요. 그리고는 “김대중을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정치적으로 이용할 지도 모른다면서요. 그래서 제가 다시 설득했습니다.

“해위(윤보선의 호) 선생, 그렇게만 볼 게 아닙니다. 내가 세 사람 다 만나봤는데 가능성 있는 사람은 김대중씨밖에 없습디다. 이번에 박기출씨를 내보내면 1963년 선거와 똑같은 결과가 나옵니다. 그때 끝까지 출마를 포기하지 않은 변영태씨 때문에 해위 선생이 그 사람이 얻은 표만큼의 차이로 진 것 아닙니까. 이번에 박기출씨가 나오면 김대중은 박기출씨가 얻은 표만큼의 차이로 질 겁니다. 그러면 국민들이 ‘도대체 누가 박기출이를 내세웠냐’고 들고 일어날 겁니다. 해위 선생이 매그루더에게 5·16 쿠데타군을 진압하지 말도록 했다는 게 사람들의 머릿속에 아직도 남아 있질 않습니까. 그후에 반(反)박정희 운동을 해서 겨우 상처가 아물었는데, 이번에 그런 결과가 나오면 해위라는 이름은 우리 역사에서 영원히 지워지고 말 겁니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듣지 않고 나왔어요. 바로 그 다음날 오후에 박기출이 기자회견을 갖고 물러났습니다. 윤보선씨가 김대중씨 지지로 돌아선 겁니다.

박 : 그렇게까지 애를 썼는 데도 김대중 후보가 패했으니 상심이 크셨겠군요.

“조용히 돌아가시오”

강 : 실망스러운 일도 있었죠. 김대중씨가 1971년 4월18일 장충동에서 마지막 유세를 했는데, 당시 박정희 정권은 공무원들을 죄다 소풍 보내고 버스도 운행하지 않았어요. 그랬는 데도 엄청난 인파가 모여들었습니다. 교통이 두절되자 사람들이 전부 걸어서 왔는데, 장충단공원 남산 꼭대기까지 정말 구름처럼 몰려오더군요. 김대중씨한테 들은 말이 있던 터라 ‘오늘이 바로 그날이구나’ 싶었습니다. 더구나 그 며칠 전에 박정희가 춘천에서 군인들을 모아놓고 “총 한번 쏘아본 적도 없는 국민학교 어린이 같은 작자에게 어떻게 나라를 맡기겠냐”고 들쑤셔서 안보론이 제기된 마당이라 저는 그날을 D데이라고 생각했죠. 먼저 이태영 박사가 나와서 지지연설을 했는데 그처럼 기막힌 선동 강연은 처음 들어봤어요. 산이 떠나가도록 사자후를 토하더라고. 그런데 막상 김대중씨가 나와서는 엉뚱한 소리를 했어요.

“오늘 이렇게 교통까지 통제하는 데도 여러분들이 이처럼 많이 오셨으니 선거는 끝난 겁니다. 내가 대통령이 된 겁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소동을 일으키면 그 자가 기다렸다는 듯 군대를 앞세우고 몰려올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나를 대통령 만들려면 조용히 가 주십시오….”

듣고 있으려니 저 사람이 지금 무슨 얘길 하고 있는 건가 싶더군요. 이젠 기대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투표하는 날 저녁에 텔레비전도 안 봤어요. 질 게 뻔하니까.

‘원죄’와 반공 사이

박 : 그후 윤보선씨는 유신체제에 맞서 재야에서 활동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강 : 특별한 이유가 있었죠. 지난호에서도 말했듯이 윤보선씨는 민주당 정부가 나라를 다 망치고 공산화 위기를 초래할 지경에 왔다고 우려했기에 5·16으로 군인들이 반공을 하겠다고 나서니까 그들을 치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그런데 그 후에 박정희가 하는 걸 보니 이게 아니다 싶거든. 그런 사정을 어지간한 국민들도 다 알았기 때문에 윤보선씨에게 원한을 품은 이가 적지 않았어요. 본인도 ‘결국은 내가 박정희를 집권하게 만들었다’며 고통스러워 하다가 꼭두각시 노릇을 그만두고 하야한 거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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