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鄭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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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정구(鄭逑)에 대하여
  • 생몰년 : 1543-1620
  • 시대 : 조선
  • 분야 : 문신/관료 > 문신-조선중기 > 문신, 학자
정구(鄭逑)에 대하여

정구(鄭逑)
1543(중종 38)∼1620(광해군 12).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 성주(星州)출신. 김굉필(金宏弼)의 외증손으로, 판서 사중(思中)의 아들이다. 성주이씨(星州李氏)와 혼인한 인연으로 성주에 정착하였다.

1. 가계와 수학

어려서부터 영민하고 재주가 뛰어나 신동이라 일컬었다.
7세 때 《논어》와 《대학》을 배워 대의를 통하였으며, 12세 때 그의 종이모부이며 조식(曺植)의 고제자였던 오건(吳健)이 성주향교의 교수로 부임하자 그 문하생이 되어 《주역》 등을 배웠다. 겨
우 건(乾)·곤(坤)두 괘만 배우고 나머지는 유취하여 8괘와 64괘의 뜻을 쉽게 통하였다 하니 그의 재주가 얼마나 비상하였던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1563년(명종 18)에 이황(李滉)·조식에게서 성리학을 배웠다. 그 이듬해 상경하여 과장(科場)까지 갔다가 시험에 응하지 않고 귀향하였고, 그뒤로는 과거를 단념하고 구도의 일념으로 학문에만 열중하였다.

2. 관직

1573년(선조 6)에 김우옹(金宇顒)의 추천으로 예빈시참봉(禮賓寺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그뒤에도 계속하여 관직을 제수하였으나 그때마다 사임하고,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따라서, 그는 학문하는 자세와 인격수양의 방법은 이황을 닮았고, 천성이 호방하고 원대한 기상은 조식의 모습 그대로였다.
1580년 창녕현감을 시초로 하여 그 이듬해에 사헌부지평, 1582년에 군자감판관에 제수되었으나 신병을 이유로 사임하고, 1584년 동복현감에 이어, 1585년에 교정청의 교정랑이 되어 《경서훈해 經書訓解》를 교정하였다.
1591년 통천군수에 부임하고, 그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격문을 각군에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도록 선도하였다.
1594년에 우승지·강원도관찰사·성천부사·충주부사·공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608년(광해군 즉위년)대사헌이 되었으나, 임해군(臨海君)의 옥사가 일어나자 이에 관련된 사람을 모두 석방하라는 상소를 올린 뒤 고향으로 돌아갔다.
1613년 계축옥사가 일어나자 상소하여 영창대군(永昌大君)을 구하려 하였으며, 향리에 백매원(百梅園)을 세워 향우문도(鄕友門徒)를 모아 교육하였다. 그는 관도에 나왔으나 내직을 사양하고 주로 외직을 맡았다. 이것은 당쟁에 얽힌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중앙정계보다 외직을 맡아 자신의 덕치주의 이상인 지방학문을 융성시키고 민중을 교화하기 위함이었다.

3. 학문과 저술

그의 학문세계는 우주공간의 모든 것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경서(經書)·병학·의학·역사·천문·풍수지리 등 모든 분야에 통달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예학(禮學)은 특출하였다.
그의 예는 가깝고 먼 것을 정하고, 믿고 못믿음을 결정하고, 같고 다름을 구별하고, 옳고 그름을 밝히는 기준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의 저서 《오선생예설분류 五先生禮說分類》는 정호(程顥)·정이(程#이96)·장재(張載)·사마광(司馬光)·주희(朱熹)의 예설을 분류한 것으로 예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예를 통하여 이웃과 사회, 그리고 국가생활을 이롭게 한다는 도덕지상주의적인 이론을 펴고 있다.
그리고 그의 성리학 부분의 대표작으로는 《심경발휘 心經發揮》를 들 수 있다. 이 책은 그의 경사상(敬思想)을 토대로 하여 이황의 《심경후론 心經後論》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역사서로는 고금의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여 정치의 득실과 그 요체를 밝힌 《고금충모 古今忠謨》와 《고금치란제요 古今治亂提要》 등 10여권이 있으며, 의서로는 눈병에 관한 처방을 수록한 《의안집방 醫眼集方》과 산아와 육아에 관한 《광사속집 廣嗣續集》이 있다.
그밖에도 수령직을 맡을 때마다 그 고장의 산천·물산·고적·인정·풍속 등을 조사, 수집하여 내용을 정리한 7종의 읍지(邑誌)를 간행하였는데, 현존하는 것은 《함주지 咸州誌》 하나뿐이다.
그밖에 《성현풍 聖賢風》·《태극문변 太極問辨》·《수사언인록 洙泗言仁錄》·《오복연혁도 五服沿革圖》·《심의제도 深衣制度》·《무이지 武夷志》·《곡산동암지 谷山洞庵志》·《와룡지 臥龍志》·《역대기년 歷代紀年》·《경현속록 景賢續錄》·《관의 冠儀》·《혼의 婚儀》·《장의 葬儀》·《계의 稧儀》·《갱장록 羹墻錄》 등이 있다.
인조반정 이후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성주의 회연서원(檜淵書院)·천곡서원(川谷書院), 충주의 운곡서원(雲谷書院), 창녕의 관산서원(冠山書院), 성천의 학령서원(學翎書院), 통천의 경덕사(景德祠) 등에 제향되었으며, 시호는 문목(文穆)이다.

참고문헌

  •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海東名臣錄, 象村集, 韓國儒學史(李丙燾, 亞細亞文化社, 1987). 〈李載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