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원대군(綾原大君)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4B2A5C6D0B300B1592X0 |
호 | 담은당(湛恩堂) |
시호 | 정효(貞孝) |
일명 | 이보(李俌) |
생년 | 1592(선조 25) |
졸년 | 1656(효종 7) |
시대 | 조선 중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왕실 > 왕자 |
부 | 이성(李珹) |
처 | 문화유씨(文化柳氏) |
처부 | 유효립(柳孝立) |
[상세내용]
능원대군(綾原大君)에 대하여
1592년(선조 25)∼1656년(효종 7). 조선 중기의 종실.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보(李俌), 호는 담은당(湛恩堂). 선조의 손자이다.
문화유씨(文化柳氏) 유효립(柳孝立)의 딸과 결혼하였으며 11세 때 큰아버지인 의안군(義安君) 이성(李珹)에게 입양되어, 능원군(綾原君)으로 봉하여졌다.
1626년(인조 4)에 계운궁(啓運宮) 구씨(具氏)가 죽자, 주상(主喪)으로 일을 맡았다.
1632년에 능원대군으로 진봉되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따라 세자‧백관과 함께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그때 각 지방의 근왕병(勤王兵)이 모두 패배하여 남한산성이 고립되자 성내에서는 강화론(講和論)을 주장하는 자의 수가 늘어났다.
이때 그는 예조판서 김상헌(金尙憲)과 뜻을 같이하여 척화(斥和)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성품이 매우 온후하고, 늘 건실하게 생활하여 종실의 모범이 되었다고 하며, 그의 죽음에 왕도 친히 조상하였다고 한다.
인조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정효(貞孝)이다.
문화유씨(文化柳氏) 유효립(柳孝立)의 딸과 결혼하였으며 11세 때 큰아버지인 의안군(義安君) 이성(李珹)에게 입양되어, 능원군(綾原君)으로 봉하여졌다.
1626년(인조 4)에 계운궁(啓運宮) 구씨(具氏)가 죽자, 주상(主喪)으로 일을 맡았다.
1632년에 능원대군으로 진봉되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따라 세자‧백관과 함께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그때 각 지방의 근왕병(勤王兵)이 모두 패배하여 남한산성이 고립되자 성내에서는 강화론(講和論)을 주장하는 자의 수가 늘어났다.
이때 그는 예조판서 김상헌(金尙憲)과 뜻을 같이하여 척화(斥和)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성품이 매우 온후하고, 늘 건실하게 생활하여 종실의 모범이 되었다고 하며, 그의 죽음에 왕도 친히 조상하였다고 한다.
인조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정효(貞孝)이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孝宗實錄
宗班行蹟
孝宗實錄
宗班行蹟
[집필자]
공원영(孔黿泳)
대표명 | 능원대군(綾原大君) |
명 | 보(俌) |
봉호 | 능원군(綾原君), 능원대군(綾原大君), 능원대군보(綾原大君俌) |
시호 | 정효(貞孝) |
명 : "보(俌)"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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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