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원소와 과학자들

1) 1661년에 영국의 과학자 보일은 물질을 분해하여 가면 점점 단순한 것으로 되고 나중에는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몇 가지 근원적인 구성요소에 도달하게 된다고 생각하고 이것을 원소라고 하였다.
2) 1789년에 프랑스의 과학자 라부아지에는 그 당시 알려진 금속과 기체들에 대한 연구를하여 수소, 산소, 질소, 탄소, 황 등과 같은 몇가지 물질들을 원소라 하고, 자기 나름대로 33종류의 원소로 분류하여 표를 만들었다. 그런데 라부아지에가 원소로 분류한 것 중 다음에 예를 든 몇 가지는 과학의 발달로 원소가 아님이 확인되었다.
예) 석회(산화칼슘), 알루미나(산화알루미늄), 바리트(산화바륨),       실리카(이산화규소 )등

3) 19세기 초에 영국의 과학자 돌턴은 처음으로 그 때까지 알려졌던 원소를 그림으로 나타내었다.

◈고대의 원소 기호

물질을 기호로 나타내는 일은 옛부터 행해졌는데, 금속 7원소를 7가지 별에 비유하여 기호로 나타낸 것은 매우 오래 전의 일로 고대 이집트인은 이미 이 기호를 서 왔으며, 이들 기호는 어느 정도의 변화는 있었지만 중세 연금술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오래 쓰여졌다.

◈원소 기호의 시대적 변천

1) 원소를 나타내는 방법의 시대적 변천 : 오랫동안 원소를 그림으로 된 기호로 나타내었다. 그러나 원소의 종류가 많아짐에 따라 원소를 그림으로 된 기호로 나타내기가 복잡하고 번거로와졌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글자로 된 기호로 원소를 나타내기에 이르렀다.

2) 오늘날의 원소 기호 :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원소 기호는 베르셀리우스가 처음으로 제안한 것이다. 원소 기호는 그 원소의 이름을 라틴어나 그리스 어로 첫 글자 또는 글자 중의 적당한 글자를 따서 나타낸다.
     철(Fe) Ferrum, 은(Ag) Argentum, 금(Au) Aurum,
    수소(H) Hydrogen, 헬륨(He) Helium

3) 금과 수은에 대한 원소 기호의 시대적 변천

과학사

⊙ 베르셀리우스

스웨덴의 대화학자 베르셀리우스(Berzelius, J. J., 1779∼1848)는 근대화학의 발전에 크다란 공적을 남겼다. 일정 성분비의 법칙과 배수 비례의 법칙을 확립한 사람은 프루스트와 돌턴이지만 이들 법칙을 실험적을 뒷받침하여 준 사람은 베르셀리우스이었다 그는 원자량(원자의 상대적인 질량으로 현재는 탄소(C)의 원자량을 정확히 12로 하여 기준으로 삼는다.) 측정에 지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약 10년 동안 분석 실험을 계속하여 원자량을 계산하였는데, 오늘날의 원자량과 거의 차이가 없는 정확한 값이었다. 그가 사용하였던 조잡한 저울과 실험 기구를 생각한다면 아주 정밀한 실험 결과였다. 또한 이 일을 하는 동안, 원소 기호의 필요성을 느끼고 오늘날과 같은 원소 기호를 사용할 것을 제안하였고, 이후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 돌턴

돌턴(Dalton, J., 1766∼1844)은 영국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돌턴이 받은 유일한 학교 교육은 마을의 국민학교에서 받은 것이 전부였지만 12살 때 그의 수재성이 인정되어 마을의 국민하교 교장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모든 공부를 독학으로 하였는데, 21살 때부터 시작한 기상 관측은 죽기 전날까지 57년간 계속하였으며, 관측 회수는 20만번이 넘는다고 한다. 돌턴이 기상 관측하는 시간은 규칙적이어서 부근의 사람들은 그를 보고 자신들의 시계를 맞추기까지 했다고 한다. 돌턴은 그의 저서 『화학 철학의 신체계』에서 원자설을 주장하였는데, 매우 이해하기 쉬워 혁명적인 이론임에도 불구하고 큰 저항 없이 대부분 과학자의 지지를 받았다. 돌턴은 자신이 색맹이라는 것을 알고 색맹에 관한 연구를 발표하기도 하여, 색맹을 '돌터니즘'이라고도 한다.
그 당시 많은 과학자들이 원자설을 지지했는데, 스웨덴의 화학자 베르셀리우스는 평생을 정밀한 원자량 측정에 종사했다. 돌턴에게는 왕립 협회의 상을 비롯해 여러 가지 영예가 주어졌다.
돌턴의 원자설은 그 후의 화학 발전의 기초가 되었고, 현재는 원자의 모습도 볼 수가 있어서 원자의 실재는 완전히 증명되어 있다. 그뿐 아니라 원자 자체에도 구조가 있음이 밝혀져서 현대의 과학자들은 원자의 미세 구조를 밝히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
그외 돌턴이 기여한 분야는 기상 관측뿐만 아니라 식물과 곤충 채집에도 열중하는 한편, 신과 들을 두루 돌아다니며 공기를 분석하던 중 공기의 성분이 산소와 질소는 비중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어느 곳의 공기나 한결같이 그 구성이 일정함을 알아 내었다.
그 후 1799년 프랑스의 화학자 프루스트가 일정성분비의 법칙을 발표하자 돌턴은 이내 그의 법칙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에 착수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아내었다.
주석의 산소 화합물에는 산소 함유량이 11.9%인 것과 21.3%인 것의두 종류가 있으며, 같은 질량의 주석과 화합하는 산소의 질량을 계산해 본 결과 산소 사이의 질량비가 1 : 2임을 밝혀 내었다.
다시 그는 세 가지의 질소 화합물에 대해서도 앞에서와 똑같은 실험을하여 보았다. 그 결과 질소의 산화물 세 가지에서 질소의 일정량과 화합하는 산소 사이의 질량비는 1 : 2 : 3이라는 사실을 알아 내었다. 이러한 결과로부터 그는 'A, B 두 종류의 원소가 두 종류 이상의 화합물을 만들 때 A원소의 일정량과 화합하는 B원소의 질량 사이에는 간단한 정수비가 성립된다.'라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 사실은 뒤에 베르셀리우스에 의해 '배수 비례의 법칙'이라 이름지어졌다.그리고 돌턴은 그 당시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획기적인 이론을 발표함과 동시에 6종류의 원소에 있어서 원자의 상대적 질량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최초로 원자론을 제창한 이 기념할 만한 강의를 듣고 있던 청중은 겨우 7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 후 돌턴은 20여종의 원소에 대하여 원자량을 구했지만 측정은 부정확한 것이었고 더욱이 화학식에 대한 가정이 잘못 되었기 때문에 극히 불안정한 것이었다. 하지만 물질을 원자로 되어 있다는 전제 위에서 보이지 않는 원자를 상대적 중량으로 측정하려 했다는 것은 큰 역사적 의의를 지니며, 화학 변화를 정량적으로 취급할 수 있는 방법이 발견된 것은 그의 공로로 길이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