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몬트의 산골짜기에서 로빈 윌리엄스를 생각하다

ZUMA24.com
로빈 윌리엄스가 출연했던 영화 ‘천국보다 아름다운’의 한 장면.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유명을 달리했다. 그는 모든 사람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사랑했던 배우 중의 하나다. 빼어난 조각 미남도 아닌 그가 할리우드의 많은 영화를 통해 사랑받았던 이유는, 우리가 삶에서 대면해야 하는 많은 문제들을, 잔잔한 웃음을 선사하며 소통할 줄 아는 배우였기 때문일 것이다.

로빈 윌리엄스의 사망 소식을 들은 건 어제 저녁 미국 동부 버몬트의 산골짜기를 운전하고 있을 때였다. 아들이 그 소식을 스마트폰으로 보고 전해줬다. 마침 산 너머에서는 황금색 슈퍼문이 떠오르고 있었다. 슈퍼문은 신비로운 색깔이었고, 마치 우리나라의 지리산과 비슷한 정감을 주는 버몬트의 산들은 부드럽고 장엄하게 느껴졌다. 그런 신비한 풍경을 보면서 들은 그의 죽음에 대한 소식은, 그가 ‘천국보다 아름다운’ 이란 영화와 ‘빙 휴먼(Being Human)’이란 영화에 나온 장면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빙 휴먼’에서 그는 다섯 번의 삶을 통해 인간의 삶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표현했다. 로빈 윌리엄스는 선사 시대인부터 현대인을 연기하면서, 육체의 생존을 위해 싸워야 했던 선사시대인의 어려움, 로마시대와 중세시대를 거쳐 현대인으로 살아가면서 겪는 어려움을 그려냈다. 영화는 크게 성공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참 좋았다.

그가 환생을 거듭하면서 반복되는 사람이 되가는 험난한 과정,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의 어려움을 스크린으로 본 다음부터, 나는 내 인생의 어려운 순간마다 이 영화를 떠올렸다.

영화에서 그려낸 ‘인간됨’은 선사시대든 현대든 정답 없이 어렵고 복잡하기만 하다. 우리는 잔인한 현실의 매 순간을 마주해야 할 때, 행복을 느끼거나 마음의 평화를 가지기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러한 순간에도 인생의 깊은 의미를 흘낏 짐작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이 영화에서처럼 시대를 막론한 모든 인간의 숙명일 것이다. 반면 ‘천국보다 아름다운‘이란 영화는 진정한 사랑이 참담한 정신적 상태의 아내를 구하는 희망과 구원을 아름다운 CG작업으로 만든 영상미와 함께 보여준다.

영화란 원작자의 세계관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연기자는 그저 이를 실감나게 연기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로빈윌리엄스의 작품 선택이나 그가 보여주는 표정과 눈빛에서, 그가 항상 인생의 심오한 부분을 인식하고 건드림을 알 수 있다. 그 부분으로 인해 그가 모든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배우로 남게 됐으리라고 생각한다.

‘천국보다 아름다운’이란 영화가 좋았던 이유는 특별한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다. ‘빙 휴먼’이 삶의 어려움을 보여주었다면,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지옥으로 표현된 가장 난해한 어려움 속에서도 인간이 스스로 사랑과 희망, 믿음을 구할 수 있다는 메시지다. ‘빙 휴먼’이 간접적으로 동양의 윤회 사상을 가지고 접근했다면,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천국과 지옥이라는 서양 기독교의 사상이 깔려 있다.

난 이 두 영화를 자주 생각했었다. ‘빙 휴먼’의 장면들은 내게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어려운 상황의 연속이라는 각오를 하게 만들었다. 나만의 어려움이 아니고 이 시대만의 험난함이 아닌, 선사 시대인을 연기한 로빈 윌리엄스의 눈빛에서 볼 수 있듯, 우리 모두가 당면한 필수 조건임을 받아들이게 됐기 때문이다.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인간이 스스로의 천국을 언제든 만들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보여줘 사랑하는 작품이다. 이 시대는 과학적 연구결과와 객관적 표현을 위주로 소통하는 게 전문성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개개인이 느끼는 삶에 대한 부분은 예술이나 종교의 영역안에서 논의돼야만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정도의 차이와 문화권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삶에 대한 다각도의 답을 알게 모르게 항상 구하고 있다. 그래서 일상에서 치열하게 경제활동을 하고 논리적 실랑이를 하다가도, 오래된 덕담과 현자의 말씀들을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을 통해 열심히 실어 나른다. 우리에게 내재된 한 조각의 산소와 천국을 끌어내야 하니까.

로빈 윌리엄스의 사인으로 추정되는 단어로부터 여러 가지 복잡한 감회가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영웅이 아닌 평범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해왔기에, 그의 아내가 현명하게 표현했듯 가장 아름다운 예술가이자 인간 중의 하나였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평생에 걸쳐 우리에게 영감을 주었던 그의 아름다운 작품활동에 감사 인사를 보낸다

임미정은 피아니스트이자 한세대학교 교수, 음악 NGO인 하나를 위한 음악재단(Music For One)의 설립자다. 음악을 통한 남북 교류와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음악 교육 프로젝트를 한국, 아프리카 국가에서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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