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12.12.13 목 18:19
> 뉴스 > 인물
     
“자기만의 이념 고집해선 화해도 불가능”
초대석 | 김보애 회장이 만난 사람·이수성 새마을운동중앙회 회장
[27호] 2003년 06월 01일 (일) 00:00:00 안영민 기자 yman@minjog21.com

대담  김보애 《민족21》 회장
정리  안영민 기자 yman@minjog21.com 
사진  유수 기자 soo@minjog21.com


이수성 새마을운동중앙회 회장
1939년 경상북도 칠곡 출생
서울대학교 법학과 졸업, 동 대학원 법학박사
佛 파리 제2대학교 형법학 교환연구원  
서울대학교 학생처장, 서울대학교 법대 학장
서울대학교 총장, 서울대학교 병원 이사장 역임
국무총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백범기념관건립위원회 위원장 역임
현 새마을운동중앙회장

 


이수성 전 국무총리가 돌아왔다. 대선 때마다 유력 후보로 손꼽히던 ‘정치인’ 이수성이 새로 튼 둥지는 다름 아닌 새마을운동중앙회장과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이제 정치 일선과는 거리를 둔 채 민간단체의 수장이 된 것이다. 특히 그가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에 취임하면서 민화협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민화협의 활동 폭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것이라는 전망인데…. 이수성 전 총리를 《민족21》이 초대했다.

이수성 전 국무총리를 만난 곳은 새마을운동중앙회 회장실. 이 전 총리는 새 정부 출범 직후인 2월 27일 새마을운동중앙회장으로 선임됐다. 민화협 회원단체인 새마을운동중앙회장 자격으로 민화협 상임의장에 선출된 그는 지난 4월 대표상임의장으로 선임돼 민화협의 얼굴로 부상했다.

그렇다면 대학총장에서 국무총리를 거쳐 1997년에는 집권여당의 대권주자로 부상하면서 정치에 깊숙이 관여했던 그가 민간통일운동단체의 대표직을 수락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대담의 첫 물음에 대한 그의 설명이다.


“문화적 긍지 넘쳐나는 통일조국 원해”


“모든 학문과 과학, 예술에는 국경이 없다지만 인간에게는 조국이 있습니다. 그 조국을 먼저 생각하고 민족을 염두에 두는 사람이 많아야 나라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살아온 학자의 길도, 공직자, 정치인의 길도 결국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인생이었습니다.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직을 수락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예전에 남북관계가 긴박하게 돌아갈 때 장군 출신의 한 사람이 제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전쟁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북에다 한번쯤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 그 말을 듣고 제가 화를 냈어요. ‘북을 치면 우리도 다 죽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있습니까? 라고. 지금 우리나라는 남북분단, 지역갈등 등 산적한 문제 앞에서 제 길을 못 찾고 있어요.

그것을 해결하자면 우리에게는 화해, 용서, 단결, 사랑, 이런 것들이 필요합니다. 새마을운동중앙회도 민화협도 모두 그런 일을 한번 해보려고 맡게 된 겁니다.” 

- 화해협력이 이 시대 최고의 가치라는 말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앞으로 민화협 활동을 통해 북측 관계자들을 만날 기회도 많아질 텐데 그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남과 북을 구별 없이 대하는 순수한 마음, 단심(丹心)입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남도 북도 모두 사상과 이념을 앞세워 왔어요. 남이나 북이나 순수한 마음을 갖고 있지 못했던 거죠. 이를 극복해야 합니다.”

   
   
-신뢰구축을 위해서는 먼저 자주 만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자주 만나기만 한다고 해서 무조건 신뢰가 쌓이는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어떤 방식, 어떤 내용으로 만나는가 하는 것도 중요할 듯 합니다만.


“설사 만나서 말다툼을 하더라도 만나지 않는 것보다는 자주 만나는 것이 당연히 더 낫죠. 군사력을 줄이자, 무기를 어떻게 하자는 것은 아직은 말이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통일이라는 말도 우리 주변 현실을 보면 대단히 신중하고도 어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미국이 우리의 통일을 바란다고 볼 수 없고, 중국도 일본도 러시아도 모두 마찬가지일 겁니다. 통일된 한반도는 대단한 저력을 갖게 될 텐데 그런 통일국가가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주변국가들을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이들 나라들에게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구체적인 통일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은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문화·체육교류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이 남북 간에 문화적 동질성을 이루는 일입니다. 특히 남쪽의 현실을 보면 우리의 전통문화보다도 서양의 퇴폐향락문화에 오염되어 있습니다. 집단과 사회를 생각하기보다는 개인만을 앞세웁니다. 충효의 마음은 우리 민족의 원류문화인데 이것이 무너지고 있어요.”

-문화가 중요하다고 하신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지금 21세기가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습니까? 통일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적, 군사적 강대국을 꿈꾸기보다는 도덕적·문화적 강대국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제 희망입니다.

“옳은 지적입니다. 백범 선생이 독립이 되면 중앙청의 수위가 되겠다고 하신 이야기는 다들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백범께서는 해방 뒤 이런 말씀도 하셨어요. ‘나는 우리 조국이 군사·경제강대국이 되기를 희망하지 않는다. 문화적 긍지가 넘쳐나는 문화강대국이 되길 희망한다.’
독일의 철학자 랑케도 이렇게 말했죠. ‘한 나라가 훌륭한 나라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것은 경제력도 국토의 크기도 군사력도 아니다. 그 나라 국민들의 갖고 있는 도덕적·문화적 힘이다.’ 나는 우리의 통일도 그런 원칙에서 풀어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보수와 진보는 한 나라를 이끄는 양대 축”

이쯤에서 정치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지난 대선 당시 이 회장은 노무현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또한 이회창 총재와 이인제 고문에 대해서는 “민족의 분열을 이용해 표를 얻고자 한다”며 강력하게 비판한 적도 있다. 이 때문인지 최근 민주당 내 신당추진 인사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하지만 이 회장은 정치재개에 대한 항간의 추측을 단호하게 부정했다.

“정치에 몸 담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오늘의 우리 정치는 안타깝게도 조선조 당파싸움을 연상케 할 뿐입니다. 정권을 잡는 것이 유일한 목표가 될 때 정치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정치에 이제 더 이상은 섞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정치보다는 고아원 원장이나 소년원 원장 같은 일이 내 적성에는 더 맞는 일입니다.”

-신당 추진 인사들로부터 ‘도와 달라’는 제안을 받지 않았습니까?

“몇 차례 찾아왔는데 ‘당신들이 추진하는 일이 옳다, 정치개혁을 꼭 이루라’고 격려는 해줬지만 정치참여와는 분명히 선을 그었습니다.”

이 회장을 잘 아는 정치계 인사들은 그를 두고 ‘정치를 참 잘 할 스타일인데 이상하게도 현실정치에서는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런 지적을 하자 그는 “이상론자가 현실에서는 늘 실패할 따름”이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회장님의 장점을 꼽으라면 항상 나오는 것이 특유의 친화력입니다. 이런 장점을 대북사업에 활용할 생각은 없는지요?

“내 스타일이 오히려 조직사회라는 특성을 가진 북측 사회와는 맞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대단히 자유분방한 사람입니다. 그런 자유분방한 스타일이 그들에게는 도리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지난 대선과 촛불시위 때 드러났듯이 북미관계, 남북관계를 둘러싼 보수와 진보간의 갈등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민화협의 결성 취지 중 하나가 남남갈등 해소이지 않습니까? 이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는 일은 보수만의 힘으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진보의 논리만 가지고도 불가능합니다. 보수와 진보는 한 나라를 이끄는 양대 축이라는 것을 갈등의 당사자들이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대화도 가능하고, 타협도 가능합니다.

진보랍시고 보수를 무조건 비판하고 보수랍시고 진보를 외면하려 든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불투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보다는 고아원 원장이 더 제격”

- 1996∼97년 국무총리로 재직할 당시 한총련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연세대 사건이 터졌고, 그 때문에 한총련은 이적단체로 규정되기도 했습니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도 한총련 문제를 이대로 둘 수 없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고, 사회 일각에서도 지금처럼 학생들을 묶어둘 수는 없다고 주장하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떤지요?

“연대사태 때 새벽에 학교 안으로 진입하라는 청와대 지시가 내려왔어요. 나는 반대했죠. 진입하더라도 낮에 진입하고, 또 학생들 퇴로를 열어두고 진입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지시하기도 했어요. 그러나 내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새벽에 진압작전이 벌어졌습니다.
현재 한총련 문제를 보면 우선은 한총련이 반성하는 모습을 진실되게 국민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봐요. 하지만 이러한 반성이 한총련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에요. 극단적 진보만큼 극단적 보수도 심각한 문제이니까요.”

-그래도 학생들에게 ‘관용’을 베풀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관용도 필요하고 학생들의 변화도 필요합니다. 동시에 이루어져야겠죠.”

학생운동 이야기가 나오자 이 회장은 386세대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여줬다. 아마도 거기에는 서울대 학생처장 시절 겪었던 1980년 5월 ‘서울의 봄’에 대한 기억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1980년 5월 15일 10만명의 대학생이 서울역에 모여 민주화시위를 벌였을 때, 그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당시 광화문과 효창운동장 일대에 군부대가 대기중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왔어요. 급히 서울역으로 가서 학생 대표들 20여 명 하고 버스 안에서 회의를 했죠. 청와대로 간다 안 간다 한창 논쟁을 벌이는데 내가 나서서 학생들을 설득했어요. 수많은 학생들이 다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결사적으로 청와대 행을 말렸죠.”

학생 대표들은 그의 의견을 수용해 일단 해산을 결정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서울역 회군’ 사건이다. 그런데 문제는 며칠 뒤 터졌다. 이 회장이 보안사에 끌려간 것. 시위학생들에게 동정적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시위를 마친 수천 명의 학생들이 비를 맞으면서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학생들에게 밥 먹이라고 학교식당에 지시했습니다. 쌀이 모자라 라면까지 끓였습니다. 이게 당시 신군부의 눈밖에 났나 봅니다. 빨갱이 놈들에게 밥 먹이는 게 말이 되냐고….

결국 보안사로 끌려갔죠. 그런데 조사내용이 황당했습니다. 김대중한테 돈 받아서 학생데모 지원했다고 시인하라는 겁니다. 며칠이 지났을까, 조사관 한 사람이 오더니 ‘내일 신문에 당신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기사가 나갈 것’이라며 ‘우선 살아야하지 않겠느냐, 그냥 인정해라’고 회유·협박하는 겁니다.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매 한가지, 차라리 자살을 하기로 결심했죠. 안경을 깨 동맥을 자를 작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안경을 벗었을 때 어디선가 환청이 들려왔어요. 하루만 더 참으라고…. 어차피 죽을 거, 일단 하루를 더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수사관들이 면도를 하라고 하더니 잘 다려진 와이셔츠도 한 벌 가지고 왔습니다. 그들의 안내를 받아 보안사에 갔습니다. 이학봉이 기다리고 있더군요.

   
   
그가 ‘조사를 해보니 큰 혐의가 없다, 가서 학생처장 일 잘 하시라’며 풀어줬죠. 그 길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가짜 협심증 진단서 끊고는 바로 학생처장직 사표를 냈습니다.”

옛 일을 회상하던 이 의장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새마을운동중앙회장으로,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으로 그는 새로운 국가 미래를 열기 위해 지금 자신이 서야 할 곳이 어디인가 고심하고 있다.

“교육사업, 국민의식개혁운동에 주력할 생각입니다. 그 중에는 화해교육, 통일교육도 당연히 포함되어야지요. 그것이 30년 학자의 길을 걸었던 내가 마지막으로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2003년 6월]

안영민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민족21(http://www.minjog21.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닉네임 비밀번호 이메일
제   목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민족21소개 | 광고문의 | 제휴안내 | 기사제보 | 행사게시판 | 독자게시판 | 사이트링크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 마포구 신수동 448-6 한국출판협동조합B동 2층 | 전화번호 02-336-6150 | 팩스번호 02-336-6128
사업자등록번호 101-81-61783 | 발행인 명진 | 대표 정창현
Copyright 2007 민족21.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minjog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