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말한다] "한국전쟁 전후 월북은 배신 아닌 선택"
'북한 민족주의운동 연구' 이신철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

성균관대 이신철 연구교수가 캠퍼스에 앉아 자신의 저서 '북한 민족주의운동 연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희만 기자 phman@.
역지사지(易地思之)라! 상대 처지에서 생각해보고 이해하자는 의미다. 오해나 이해 부족이 갈등의 원인이 된다는 것. 결국 갈등은 해결할 수 없는 대상이 아니라 해법이 훤히 보이는 문제라는 얘기다. 통일도 다르지 않다. 오해를 벗고 이해로 다가선다면 훨씬 쉽게 풀릴 수 있다. 신작 '북한 민족주의운동 연구'(역사비평사/3만원)도 그런 가능성에 시선을 뒀다. 저자인 이신철(43)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를 인터뷰했다.

출간에 대해 먼저 물었다. 책은 이미 표지에서 "반공 이데올로기에 가려져 있던 북한 민족주의 통일운동의 실체를 밝힌다"라는 다소 선정적인 문구를 달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 공산당보다 '반공'에 대해 오히려 더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때라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 연구서는 이제 그다지 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월북과 납북을 다룬 것은 여전히 드물죠." 그런데 그는 왜 뜬금없이 월북에 관심을 두었을까. 사실 월북과 납북은 함의부터 달랐다. 월북은 남쪽 입장에서 '배신'의 동의어다. "솔직히 그런 부분이 궁금했습니다. 1948∼61년에 이뤄진 월북은 거의 다 자의적인 것이었거든요."

그는 제3장 '월북·납북인의 특징과 규모'에서 한국전쟁 이전 시기의 월북인을 5갈래로 나눴다. 박헌영과 같은 남로당 간부 중심의 사회주의 활동가들과 조국전선 결성을 끌어낸 홍명희 등의 중도좌파 민족주의자, 조벽암 등의 문학·예술 그룹인들, 역사학자 김석형 등 김일성의 직접 초청을 받은 전문가 집단, 그리고 마지막으로 강태무나 표무원처럼 부대원을 이끌고 집단 또는 개별적으로 월북한 군인들 등이다.

"이런 까닭에 이들에게 찍힌 배신자라는 낙인은 상당 부분 어폐가 있거나 왜곡됐다는 생각이 들었죠." 배신이 아니라 선택이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당시만해도 분단보다 통일 논의가 더 큰 무게를 차지했다. "연구 결과에서도 이들의 행태가 오히려 지금보다 더 선구적이었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최소한 평화통일을 화두에 올렸을 때라면 말입니다." 도발적인 발상이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연구를 하다보니 '재미있는 사실'을 많이 발견했다"며 흥미를 돋우었다. "평화통일 논의는 최근의 화두가 아닙니다. 전유물도 아니고…." 한국전쟁 이전부터, 남과 북에 각각의 정부가 들어섰을 때부터 평화통일은 중심 의제였다고 그는 말했다. 월북의 일면도 이런 이유에서 좀 더 깊게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평화통일을 위한 월북이라?

"당시 월북자 중 상당수가 조국전선(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과 재북평통(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의 중심축을 이뤘습니다.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중심세력이었다는 얘깁니다." 물론 남과 북에서 각각 일어난 권력투쟁에서 이들 세력이 밀리면서 평화통일은 좌절됐지만.

그가 앞서 말한 '재미있는 사실'이 더 궁금해졌다. "당시 남과 북은 지금과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습니다. 정치나 경제적으로 북한이 더 우월했던 시기였죠." 그런 상황에서 평화통일을 위한 북의 제의가 끊임없이 이뤄졌다. "그때 북한이 남한에 제의한 것이 무제한 전기 공급과 자유 왕래, 서신 교환 등이었습니다."

어째 많이 듣던 소리다. 최근 남한 정부가 북한에 대해 평화통일과 북핵 제거를 전제로 제의한 것이 바로 에너지였고, 이를 담보로 서신 교환을 요구했지 않은가.

책은 제2장 '평화통일운동과 재북 민족주의자들의 진로 모색'에서 역지사지의 북한 사례를 줄줄이 실었다. '1954∼1955년 전후 복구사업에서 자신감을 얻은 북한은 선전문화를 전파시키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토론에 나선 문화선전상 허정숙은 경제·문화 교류를 제안했다.(334쪽)" 허정숙의 제안에는 이런 대목도 있다. "우리는 우리의 신문, 잡지, 서적들을 남반부 인민들을 위하여 보낼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과학, 문화, 예술인들을 파견할 것이며…."

북한에 대한 이 교수의 관심은 1989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북한바로알리기운동'이 펼쳐졌다. 그때까지만해도 북한은 똘이장군이 무찔러야 하는 혹 달린 돼지와 그 앞잡이 늑대들이 지배하는 땅에 불과했다. 같은 뿌리를 가진 민족 개념은 최소한 교육현장에서 이식되지 못했다. 이번 학술서는 그런 혼란에서 비롯됐다. 20년 만의 일이다. 백현충 기자 choong@busanilbo.com


/ 입력시간: 2008. 02.23. 1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