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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운명 좌우하는 제목사냥…

[국민일보] 1998-02-27 15면  매체  기획,연재  1273자

사극은 스케일이 큰 제목을 선호하고 미니시리즈 등은 감각적인 단어를 즐겨쓴다. 프로그램의 운명을 좌우하기도 하는 일이기에 담당자들은 가끔 노래방에서 「제목사냥」을 하기도 한다는데….드라마 제목을 정하는 일은 용을 그린 다음에 눈동자를 찍는 것에 비유된다.그만큼 신경이 쓰이고 공도 들여야 한다는 얘기다.봄철 개편을 맞아 선보이는 새 드라마 제목에 얽힌 이야기가 풍성하다.
MBC 새 일일극 「보고 또 보고」.나훈아의 노래 「사랑」에 나오는 「보고 또 보고,또 쳐다봐도」를 연상케 하지만 출제한 박복만 팀장은 가타부타 말이 없다.
드라마국 자체에서 후보작을 돌려보고 정하던 관행과 달리 이 제목은 MBC 사내 홈페이지의 여론조사를 통해 「손짓」 「부부무촌」 등 7개의 후보작 중에서 고른 것이다.이 제목을 놓고 KBS의 한 PD는 웃으면서 『뭘 보고 또 보란 말이야』라며 쏘아붙였다는 후문.
KBS 1TV 일일극 「살다 보면」.정감이 가면서도 싫증나지 않아야 하는 일일극 제목의 요건을 갖췄다.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정 때문에」나 「바람은 불어도」 같이 긍정적인 부사구나 절의 혈통을 잇고 있다.
사극은 「대망」 「풍운」 「개벽」에서 알 수 있듯이 추상적이면서 스케일이 큰 제목을 선호한다.KBS 1TV 「용의 눈물」의 후속작인 「바람의 생애」.조선 세조의 일대기를 다루게 되는데 수양대군을 일컫는 풍운아에서 바람을 뽑아냈다고 한다.MBC 「대왕의 길」은 애초의 제목 「화산가는 길」이 너무 상징적이어서 바꾼 것이다.
미니시리즈와 주말드라마 제목은 각양각색이다.다만 미니시리즈의 경우 20·30대를 주시청자로 삼는 트렌디 드라마가 대부분이어서 「사랑」 「열애」 「스타」 「프로포즈」 「모델」 「장미의 눈물」 「화이트 크리스마스」처럼 감각적인 단어가 애용된다.
제목은 통상 내용을 반영한다고 판단되면 노래·영화·광고문안을 가리지 않는다.
MBC주말극 「그대 그리고 나」는 노래 제목이고,SBS주말극 「아름다운 죄」는 조용필 노래 「그 겨울의 찻집」의 한 대목이다.그런 까닭에 『제목을 찾으러 노래방에 간다』는 말이 그럴싸하게 들린다.
드라마 제목은 결과론이지만 프로그램의 운명을 좌우하기도 한다.「바람은 불어도」에 시청률 바람이 불었고,「벼랑 위의 사람들」의 제작진은 언론통폐합 당시 실제로 해직돼 삶의 벼랑으로 내몰렸다.
히트한 드라마 제목은 상호로도 애용된다.「모래시계」와 「꿈의 궁전」이 도시 변두리의 레스토랑이나 룸살롱의 간판이 되었다.
제목은 어쨌든 드라마가 인기 있으면 좋은 것으로 평가된다.눈만 잘 그린다고 그림 속의 용이 하늘로 오를 수는 없다는 얘기다.〈김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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