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1.26 13:32

이영훈 목사 가족 이야기

‘종교엔 국적이 없어도 종교인은 국적이 있다’는 말이 있다. 여기에 좀 더 보태면 종교인에겐 ‘고향도’ 있다.

최근 이영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은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남한은 북한에 대해 ‘수퍼 갑(甲)’으로서 통 큰 배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회별로 예산의 1%씩을 따로 떼어내 통일 이후를 대비하자고도 했다.

흔히 부모의 고향을 자신의 출신으로 치는 관례에 비추면 이영훈 목사는 ‘평양 출신’이다. 이영훈 목사는 최근 본지와 통화에서 “어려서부터 평양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고 말했다. 개신교계에선 일부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이 목사의 가족배경이 새삼 관심을 끈다.

이 목사 가족은 1948년 조부(祖父) 이원근 장로가 온 가족을 솔거(率去), 월남(越南)했다. 이 목사 가족이 개신교 신앙을 갖게 된 것은 증조부 때부터라고 한다. 최근 이덕주 감신대 교수가 펴낸 ‘남산재 사람들’(그물출판사)에 따르면 평양은 1890년대 중반 서울에서 올라간 외국인 선교사들과 현지의 한국인들에 의해 처음 선교가 이뤄진 후 급속도로 교세가 확장된 것으로 나온다. 그래서 마부(馬夫)가 목사가 되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동시에 교인이 되는 등 불길이 일어난 것. 원래 평양은 1866년 제너럴셔먼호 사건 이후 외국인 자체에 대한 적대감이 상당했다. 외국인들이 들고 오는 종교에 대해서는 더욱 말할 것도 없는 일. 그러나 30년, 한 세대가 지나면서 급속도로 이런 적개심이 사라지면서 훗날 ‘조선의 예루살렘’으로 불릴 정도로 개신교가 부흥했다.
한기총 대표회장으로 취임한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는 작년 9월 19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행동으로 보여주고 삶이 바뀌어야지 화려함이나 포장 보여주는 것은 아무 의미없다. 한기총은 철저한 회개와 갱신, 연합 노력으로 새로 태어날 것"이라고 했다. 이태훈 기자
한기총 대표회장으로 취임한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는 작년 9월 19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행동으로 보여주고 삶이 바뀌어야지 화려함이나 포장 보여주는 것은 아무 의미없다. 한기총은 철저한 회개와 갱신, 연합 노력으로 새로 태어날 것"이라고 했다. 이태훈 기자
이 목사 집안은 한국 현대 개신교 역사와 여러모로 인연을 맺고 있다. 이원근 장로가 출석하던 서문 밖 교회에는 훗날 새문안교회 담임이 된 강신명 목사가 교육전도사로 있었다. 또 작년 말 103세를 일기로 별세한 방지일 목사는 이영훈 목사의 백부(이경화 장로)와 자신의 고모(방복심 권사)의 중매를 서기도 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훗날 북에 공산정권이 들어섰을 때 조선그리스도교련맹(조그련) 초대 위원장을 지낸 강양욱 전 부주석과의 인연이다.

당시 평양에서 무역회사를 운영하던 이원근 장로는 직원 중에 회계를 담당하면서 똑똑하고 글도 잘 쓰는 ‘강 군’을 아꼈다고 한다. 그런데 광복이 되면서 세상이 바뀌었다. 이 목사가 전해 들은 강양욱에 관한 이야기.
“김일성의 외조부인 강돈욱과 6촌간인 강양욱은 이내 공산정권 핵심에 들어간 후 저희 할아버지께 공산정권에 협조하라고 강요했죠. 그러나 할아버지가 거부하자 나중에는 월남(越南)을 눈감아 줬다고 합니다. 그래도 할아버지 밑에서 신세를 진 인연을 생각해준 거겠죠. 그러면서 ‘남(南)에 내려가서 절대 관직을 맡지 마라’고 했답니다. 곧 자신들이 남침해서 통일할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이원근 장로는 1948년 6월 8명의 자녀를 데리고 해주로 이동해 거기서 배를 타고 인천으로 넘어왔다고 한다. 이후 월남한 실향민이 대부분 그랬듯 영락교회를 찾아 한 달간 텐트신세를 지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 이원근 장로는 미국인 타요한 선교사의 부탁으로 제주도로 가 여러 교회를 세우는 데 기여했다고 한다. 이영훈 목사는 친가로 숙부(이경준 목사)ㆍ고모부(윤명호 목사), 외가로는 외조부(김종삼 목사)ㆍ외삼촌(김선경 목사)ㆍ외사촌(김일규ㆍ김성규 목사)이 목회자인 ‘목사 집안’이다. 친척 중에는 미국에서 목회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으며, 이영훈 목사 역시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로 선출되기 직전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나성순복음교회 담임을 맡았었다.

이런 인연으로 북한 선교 혹은 교회 재건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이 목사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북한의 사정을 전해 듣고 있다고 했다. ‘예산 1% 적립’ 발언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6ㆍ25전쟁 전 북한엔 3500개 교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평양에는 봉수교회와 칠골교회를 빼고는 모두 흔적도 없이 파괴됐죠. 그렇지만 지방에 가면 여전히 건물은 있고 그걸 관공서로 개조해서 쓰고 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통일되면 바로 고쳐서 예배 드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각 교회가 예산의 1%씩을 따로 떼어서 쌓아뒀다가 통일이 되면 실제로 북한에 들어가 교회도 재건하고 학교와 병원, 영유아시설을 짓도록 하자는 것이지요. 또 북한 사회와 경제를 재건하는 일도 돕고요. 저희 여의도순복음교회도 올해 당장 10억원을 적립합니다. 또 현재 공사가 중단된 평양 조용기심장병원도 재개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실향민 후손 이영훈 목사가 제안한 한기총의 통일 대비 운동ㆍ캠페인이 어떤 효과를 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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