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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일본인 기자 "10대 후반 위안부 20여 명 끌려왔다"

SBS뉴스

작성 2015.04.10 18:51 수정 2015.04.10 19:07 조회 재생수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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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자 출신인 일본인 활동가가 일제강점기에 일본 현지 군 비행장 공사 현장에 끌려온 조선인 남성과 위안부 여성이 있었다는 증언을 기록한 취재노트 사본을 경남 통영에서 공개했습니다.

가와세 순지(67)씨는 오늘(10일) 통영시청 브리핑룸에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통영거제 시민모임(대표 송도자)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40년 전 취재노트 일부를 복사한 자료를 소개했습니다.

가와세씨는 나라현 일간지인 나라신문사에서 1971년부터 1984년까지 13년 동안 기자로 근무했습니다.

그는 1975년 8월 일본 현지에서 인터뷰한 재일조선인 강정시(당시 65세)씨의 증언 등을 작성한 취재노트를 근거로 일제강점기에 일본 나라현 덴리시 '야나기모토 비행장' 공사 현장에 조선인 남성 3천여 명이 강제로 동원됐고 여성 20여 명이 위안부로 끌려왔다고 설명했습니다.

원본은 따로 보관하고 있는데 전체 분량이 수백 쪽입니다.

이중 조선인 강제 피해에 대한 부분은 20쪽 정도입니다.

취재노트에는 손으로 그린 시설물 배치도 등도 포함돼 있는데, 현재 비행장 시설 배치도와 비교하면 상당 부분이 일치합니다.

위안부 여성 20명 중 절반은 통영, 그 나머지는 진주 출신입니다.

그들 대부분의 연령이 10대 후반이라는 것 외에 이름 등 구체적인 명단과 주소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가와세 씨는 "위안소가 군인들이 이용했는지 대해서는 피해 당사자 증언이 없기 때문에 확인하지 못 했고 공장 노동자들이 이용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위안소를 이용하는 사람이 군인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위치가 해군 관할지역에 있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같은 취재내용은 해당 신문에 연재됐습니다.

1985년, 1987년, 1992년 세 차례에 걸쳐 책으로 나왔습니다.

가와세 씨는 "신문사 사풍이 아주 자유로워서 재일교포 문제나 차별에 대해 자유롭게 취재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가와세 씨는 기자회견에 이어 경남도립 통영노인전문병원에 입원 중인 생존 최고령 위안부 피해자 김복득(98)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이어 2년 전 시민모임이 각계각층의 모금으로 통영 남망산 조각공원 입구에 건립한 위안부 추모비 '정의비'를 둘러봤습니다.

가와세 씨는 "할머니가 생각보다 건강하셔서 안심이 된다"며 "오래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13년 기자 생활 이후 저널리스트로 '야나기모토 비행장 안내판 철거를 생각하는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모임은 이 비행장 공사에 조선인 남성과 여성이 동원됐다는 내용 등을 담은 안내판을 한 공원에 설치했는데 덴리시가 갑자기 철거한 것을 두고 각종 비판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통영거제 시민모임은 가와세 씨가 속한 모임의 활동에 힘을 보탤 수 있도록 그가 벌이는 운동 관련 서명을 벌여 그 결과를 일본으로 보낼 예정입니다.

가와세 씨는 오는 15일 서울 광화문에서 예정된 세월호 참사 1주기 문화제 등 국내 행사에 참석하고 오는 19일 출국할 계획입니다.

(SBS 뉴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