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 한석규 있어 한국영화 관객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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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2013.03.02. 오전 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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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모의 테마토크] 한국 영화계를 진두지휘하는 맏형 최민식(51)과 한석규(49)의 인연은 각별하다. 흥행에 크게 성공한 세 작품에서 만나 절정의 연기력으로 시청자와 관객을 사로잡았다.

1994년 최고 시청률 48.7%를 기록할 정도로 주말 저녁을 뜨겁게 달군 MBC 주말극 '서울의 달'.

시골출신 홍식(한석규)과 춘섭(최민식)의 방황과 좌절을 통해 가치있는 삶이란 뭣인가를 시청자들에게 물었던 인기 드라마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무작정 상경해 온갖 풍상을 겪으며 사는 제비족 홍식(한석규)은 고향에 남아 있는 춘섭(최민식)을 꾀어 서울로 올라오게 한다. 오자마자 500만원을 홍식에게 사기 당한 춘섭은 어떻게든 복수를 하겠다고 벼르지만 막상 홍식을 만나 보고는 오히려 그의 처지를 동정한다. 한 잔의 술로 화해를 한 두 사람은 이 황량한 도시에서의 성공을 굳게 다짐하며 서울 달동네에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1997년 8월 개봉돼 빅히트한 영화 '넘버 3'는 '배 배 배 배신이야'라고 외치는 송강호를 스타덤에 올려준 작품이지만 사사건건 부딪치는 조폭 태주(한석규)와 조폭보다 더 폭력적인 열혈검사 마동팔(최민식)의 충돌이 제일 돋보였다.

뜨내기 깡패였던 태주는 하극상 쿠데타에서 보스(안석환)를 피신시킨 대가로 조직의 넘버 3가 된 뒤 실질적인 넘버 2 재철(박상면)을 뛰어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태주는 조직의 최대 과업인 평화 호텔 인수건을 맡게 되지만 핵폭탄으로 소문난 마동팔 검사에게 막혀 쉽게 뜻을 이루지 못하자 그를 회유하려하나 실패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동팔은 태주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산다. '죄를 지은 새끼가 나쁜 새끼지 죄는 아무런 죄가 없다'는 독특한 철학을 갖고 있는 동팔은 깡패들과 맞장 떠 폭력으로 제압하기로 깡패들 사이에서 악명 높은 공포의 존재다. 항상 입에서 욕이 떠나지 않는 그는 아파트에서 태주를 만날 때마다 시비를 걸고 폭력을 행사한다.

1999년 2월 개봉돼 흥행에 크게 성공한 영화 '쉬리'는 국내에서 최초로 블록버스터란 용어가 붙은 작품으로 '베를린'의 원조 격이다.

국가 일급 비밀정보기관 OP의 요원 유중원(한석규)과 이장길(송강호)에게 중요한 제보를 자청했던 무기밀매상 보스 임봉주가 거리에서 저격당해 죽는다. 현장의 탄피를 보고 유중원은 직감적으로 북한 특수 8군단 소속 최고의 저격수 이방희(박은숙)가 1년만에 활동을 재개했음을 감지한다. 이방희는 이미 여러차례 정부 요인들을 저격한 뒤 유중원의 집요한 추적을 피해 잠적해 있었던 것. 유중원과 이장길은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방희가 임봉주를 통해 국방과학기술연구소에서 개발한 신소재 액체 폭탄 CTX를 확보하려 했다는 것을 알아낸다. 한편 북에서 침투한 박무영(최민식)과 특수 8군단의 정예요원들은 군단사령부로 이송 중이던 CTX를 탈취하는데 성공한다. 뒤늦게 유중원과 이장길이 CTX를 쫓지만 박무영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가까스로 목숨만을 구한다. 유중원은 탈취범이 리비아 대사관 진압 작전시 자신과 대면했던 박무영임을 알게 된다.

이렇게 최민식과 한석규는 각별한 인연 속에서 한국영화의 쌍끌이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동반성장한 동료다. 최민식은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고 한석규는 멜로 액션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한국 영화계의 대표 주연배우였다. 하지만 어느덧 세월이 흘러 그들도 한국나이로 50대 초반이다. 이제는 원톱 주연배우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공동주연 혹은 주조연으로 한국영화계에서 꼭 필요한 배우들이다. 또래의 캐릭터, 혹은 그들만이 가진 개성을 감안할 때 그들을 대신할 배우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민식 생애 가장 걸작이자 그의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파이란'과 '올드 보이'는 배우 최민식에 대한 구구한 설명이 필요 없는 명쾌한 해답이다. 친구 용식(손병호)을 형님이라 부르며 보스로 모시는 인천 변두리의 삼류건달 강재(최민식)는 심지어는 후배 깡패들에게조차 위협받는 하찮은 존재다. 그는 불법 비디오 테입을 유통시키다가 걸려 열흘 간의 구류를 살다 돌아올 만큼 보잘 것 없는 삼류인생이다. 한창 때 깡패 생활을 같이 했던 용식은 어느새 조직을 거느리면서 별볼일 없이 거추장스럽기만 한 강재에게 나이트클럽 삐끼나 하라고 명령한다. 그러던 어느날 용식이 경쟁조직의 보스를 살해한 뒤 강재에게 그의 소원인 배를 한 척 사줄테니 대신 감옥에 가라고 제안하고 강재는 갈등한다. 그러던 그에게 파이란(장바이즈, 장백지)이라는 중국 여인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된다. 그리고 강재는 자신을 남편이라고 고마워하는 이미 죽은 이 여인의 여정을 따라 가며 힐링한다. 강원도 한 항구에서의 최민식의 오열 신은 아마 한국 영화 중 몇 안 되는 명장면으로 기록될 것이다.

최민식의 나약하고 비루한 절정의 연기는 '올드보이'에서 이어진다. 술 마시고 조잘대기 좋아하는 오대수(최민식)는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살자'라는 이름처럼 찌질한 캐릭터의 전형적인 샐러리맨이다. 그날도 예외 없이 술이 거나하게 취해 집에 돌아가는 길에 존재를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납치된 그는 무려 15년간 사설 감금방에 갇혀있다 드디어 풀려나 자신을 가둔 우진(유지태)으로부터 게임을 제안받는다. 그리고 그는 우진이 고교동창이었으며 학창시절 우진에게 엄청난 사건이 있었고 그에 자신이 연루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더불어 새롭게 사귄 연인 미도(강혜정)와의 관계가 우진에 의해 설정됐고 거기에는 전율할 사연이 있다는 것에 절규한다.

최민식은 초반의 너저분한 캐릭터부터 15년간 감금돼 있으면서 아내의 죽음을 알게 되고 악마가 돼가는 킬러의 캐릭터 그리고 충격적인 사연 앞에서 개보다 더 비굴해지는 캐릭터까지 천변만화하는 모습을 기가 차도록 그려냈다. 이 영화를 박찬욱 감독이 기획한다는 소식을 듣고 둘째 가라면 서러울 연기파 송강호가 맡고 싶다고 연락했었다는 에피소드는 유명한데 과연 최민식이 아닌, 송강호가 오대수를 연기했다면 이런 그림이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최민식은 완벽했다.

한석규는 팔색조다. '서울의 달'의 뻔뻔한 제비족도, '쉬리'나 '텔 미 썸딩'의 냉철하고 현명한 수사관도, '8월의 크리스마스'의 더 없이 맑고 순수한 영혼을 간직한 평범한 사람도 그가 맡으면 안성맞춤이 된다. 게다가 그의 얼굴과 연기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야비한 캐릭터마저도 잘 어울린다. 두 마디도 필요 없는 '천생 배우'가 바로 그다.

연인과 동거중인 아파트 평수를 넓히기 위해 넘버 2가 되고자 고군분투하며 남들이 넘버 3라고 얘기하면 발끈해 '내가 넘버 투야'라고 외치는 깡패 태주는 영화 속에서는 조폭으로 그려지지만 사실 그의 삶은 지난하고 고단한 대다수 서민 가장의 얘기다. 가족에게 조금 더 좋은 음식과 비싼 옷을 제공하고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에 다름 아니다. 그런 '넘버 3' 속 태주의 연기는 한석규였기에 가능했고 한석규가 있었기에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다.

40대 중반에서 한동안 침체기 겪었던 두 사람은 이제 완전하게 부활해 제 2의 전성기를 활짝 열고 있다. 최민식은 지난해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흥행에 견인차 역할을 한 뒤 현재 '신세계'로 확실하게 이정재 황정민의 지지대 역할을 하고 있다.

경찰청 수사 기획과 강과장(최민식)은 국내 최대 범죄 조직인 골드문이 기업형 조직으로 세력이 점점 확장되자 신입경찰 이자성(이정재)에게 잠입 수사를 명하고 8년뒤 자성은 골드문의 2인자이자 그룹 실세인 정청(황정민)의 오른팔로 성장한다. 하지만 어느덧 깡패가 돼가는 자성은 정체성에 흔들리는 가운데 강과장에게 임무를 끝내달라고 요청하고 강과장은 그런 자성을 오히려 협박하며 더욱 많은 요구를 한다.

어쩌면 '어이 브라더'하며 누구보다 자성을 믿는 깡패 정청보다 더 깡패처럼 폭력적이고 야비하며 목적을 위해 물불 안 가리는 강과장이 더 조폭같은 인물이다. 그건 덥수룩한 수염 밑에서 세월의 잔주름으로 연기하는 최민식이기에 그려낼 수 있는 캐릭터다.

'베를린'은 배우보다 류승완이란 감독이 더 주인공인 영화다. 그리고 영화 속에는 하정우와 류승범이라는 개성과 연기력에 있어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젊은 스타들이 등장한다. 여기서 한석규는 철저하게 기둥과 서까래 역할만 할 뿐 화려한 인테리어는 두 배우에게 넘기고 있다. 하정우와 류승범의 격돌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재미있지만 한석규라는 주춧돌이 있어 더욱 빛난다.

내달 14일 개봉될 '파파로티'에서 한석규의 존재감은 더욱 빛난다. 절대 앞으로 나서지 않지만 그 누구보다 빛나고, 그닥 강한 캐릭터를 그리지 않지만 스크린에서 양각으로 부각되는 인물로 돋보이는 인물이 한석규란 배우다.

여기서 그는 어리지만 또래 배우 중 연기력이 단연 돋보이는 이제훈과 환상의 버디무비를 만들어낸다. 한때는 촉망받는 성악가였지만 지금은 시골 촌구석 예고의 음악선생으로 전락해 하루하루를 무념무상으로 때우는 마치 오대수같은 인물 상진을 연기한다. 그러는 가운데 타고난 주먹으로 일찌기 조폭생활을 하지만 노래를 좋아하고 또 그만큼 뛰어난 실력을 지닌 장호를 만난 뒤 상진의 삶은 다시 희망이 불타오른다.

대사를 입안에서 굴리는 특유의 화법으로 얼굴 표정을 다양하게 변화시키는 한석규의 연기를 보다 보면 저절로 힐링이 되는 영화가 '파파로티'고 그래서 이제훈의 연기력이 더욱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어쩌면 한석규는 '뿌리깊은 나무'의 욕하는 임금 이도처럼 짜증내는 캐릭터가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불편함을 연기하는 한석규에게서 관객은 천금같은 연기력을 발견함으로써 작품 속으로 녹아들어가기 마련이다.

이제 안성기가 할아버지 역을 맡아야 할 나이에 다다르고 황정민 하정우가 대표적인 연기파와 주연배우로 자리잡은 한국 영화계에서 최민식과 한석규는 든든한 대들보이자 묵은 간장같은 필수양념이다. 한국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은 그들이 있어 즐겁고 그들의 연기가 살아있어 한국영화가 믿음직스럽다.

[언론인,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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