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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실록 14권, 효종 6년 4월 23일 丁丑 2번째기사 1655년 청 순치(順治) 12년

윤대 무신 변급이 지난해 여름 영고탑에 출정하여 본 지형과 사정을 상세히 아뢰다

상이 주강에 나아가 《시전(詩傳)》 시구장(鳲鳩章)을 강독하였다. 강독이 끝나고서 윤대 무신(輪對武臣) 변급(邊岌)이 나아가 아뢰기를,

"신이 지난해 여름에 명을 받들어 영고탑(寧古塔)에 출정(出征)하였습니다. 회령(會寧)에서 북으로 8일 가서 영고탑에 이르고, 또 1백 리 가서 홀가강(忽可江)에 이르고, 자피선(者皮船) 【배 이름이다.】 을 타고 또 1백 리 가니 홀가강과 영고강(寧古江)이 합류하였습니다. 이 곳에서 동북으로 배로 1백 리 가는데 지세가 점점 낮아지고, 5일 만에 회통강(會通江)에 이르렀는데 물살이 매우 빨라서 노를 젓기가 매우 바빴습니다. 6일 만에 왈합(曰哈) 지경에 이르니 한 강이 서쪽으로 흘러오는데 그 너비가 임진(臨津)보다 더하고 이름을 운라강(雲羅江)이라 하며, 또 회통강과 합류하여 이름을 후통강(後通江)이라고도 합니다. 영고탑에서 14일 가서 비로소 왈합에 이르렀고 육로로 2천 4백여 리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영고탑에는 성이 있는가?"

하매, 대답하기를,

"목성(木城)인데 자못 작아서 성 안팎에 겨우 3백 집뿐이고 그 장수인 이합리(尼哈里)라는 자는 조금 일을 알고 또 살고대(煞古大)라는 자가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자피선의 크기는 어떠한가?"

하매, 변급이 아뢰기를,

"작은 것은 겨우 너댓 사람을 들일 만한 것으로 1백 40척이고 큰 것은 17인을 들일 만한 것으로 20척입니다. 신이 왈합에 이르러 비로소 적선(賊船)을 만났는데 큰 배 13척은 3백 석을 실을 만하고 작은 배 26척은 왜선(倭船)과 비슷하였습니다. 청나라 장수가 신을 선봉으로 삼으려 하기에, 신이 말하기를 ‘어찌 이 자피선을 타고 저들의 큰 배를 막을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청나라 장수가 옳게 여기고 드디어 왈합 3백 명과 청나라 군사 3백 명을 시켜 강변의 지세가 가장 높은 곳을 택해 진을 치게 하고 이어서 유붕(柳棚)을 언덕 위에 벌여 두고, 우리 군사를 시켜 가려진 물건에 의지하여 포를 쏘게 하였습니다. 적선이 점점 물러가는데 그 배는 몸체는 크나 노가 없어서 나아가 싸우지 못하고 흐름에 따라 내려갔습니다. 흑룡강(黑龍江)과 후통강이 합류하는 곳에 이르러 적이 처음에는 싸우려 하였으나 마침 동풍이 이니 드디어 돛을 올리고 갔습니다. 적선에 탄 남녀는 4백 명이 못 되고 가진 것은 화기(火器)뿐이고 그 용모는 다 만적(蠻賊)과 비슷하고 옷은 다 누른 비단이었습니다.

또 어피달자(魚皮獺子)가 있었는데 북경(北京)에 귀순하였습니다. 왈합 땅에서 15일정(日程) 떨어져 있어 그 사이가 아주 멀고 보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흑룡강 상류에 또 퍅합 부락(愎哈部落)이 있는데 이번에 이 적이 육지로 와서 퍅합을 약탈하였습니다. 퍅합이 항복하여 붙은 뒤에야 비로소 배를 만들어서 올 수 있었습니다. 쇠못을 쓰지 않고 나무와 줄로 얽어 묶었으니, 결코 해선(海船)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신의 생각으로 이 적은 반드시 서양 나라에서 왔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 땅과 서양은 아주 먼데, 어떻게 그러한 줄 아는가?"

하였다. 변급이 아뢰기를,

"왈합이 말하기를 ‘흑룡강과 운라강 사이는 몽고(蒙古) 땅이다. 흑룡강은 매우 넓고 강 어귀에 열진(列鎭)의 옛터가 있고 여해(如海)는 【부락 이름이다.】 영고탑 서남에 있는데 우리 나라와 멀지 않다. 왈합은 머리를 깎고 이마를 덮어 수건으로 싸며 옷에는 단추를 쓰며 포성(砲聲)을 들으면 남자는 귀를 막고 눕고 여자는 놀라 넘어진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14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11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과학-지학(地學) / 외교(外交)

○上御晝講講《詩傳》 《鳲鳩章》講訖, 輪對。 武臣邊岌進曰: "臣於去年夏。 奉命出征寧古塔, 自會寧北行八日, 至寧古塔又行百里, 至忽可江, 乘者皮舡。 【舡名。】 又行百里, 而忽可江寧古江合流。 自此東北舡行百里, 地勢漸下, 五日而達會通江, 水甚駃, 運櫂甚急。 六日而到曰哈境, 有一江西來, 其廣過於臨津, 名曰雲羅江, 又與會通合流, 名曰後通江。 自寧古行十四日, 始抵曰哈, 旱路二千四百餘里矣。" 上曰: "寧古塔有城乎。" 對曰: "木城頗小, 城內外僅三百家, 其將名尼哈里者, 稍解事, 又有名煞古大者矣。" 上曰: "者皮舡大小何如。" 岌曰: "小者僅容四五人者, 百四十隻, 大者可容七十人者, 二十隻矣。 臣到曰哈, 始過賊舡, 大舡十三隻, 可載三百石, 小舡二十六隻, 似舡矣。 淸將欲以臣爲前鋒, 臣謂之曰。 豈可乘此者皮舡, 以禦彼之巨艦乎? 淸將然之, 遂令曰哈三百及兵三百, 擇占江邊地勢最高處結陣, 因以柳棚, 列置崖上, 令我軍依蔽而放砲。 賊舡漸退, 其舡體大而無櫓, 故不能進鬪, 順流而下。 至黑龍江後通江合流處, 賊初則欲戰, 會東風起, 遂揚帆而去, 賊舡男女, 不滿四百, 所持惟火器耳, 其容貌, 皆類蠻賊, 衣皆黃錦。 黑龍下流, 又有魚皮㺚子, 歸順於北京。 自曰哈地。 相去十五日程, 其間絶遠, 人無見者。 黑龍上流, 又有愎哈部落, 今者此賊, 從陸地來掠愎哈, 愎哈降附後, 始得造舡而來。 不用鐵釘, 但以木索纏縛, 決非海舡之比。 臣意此賊, 必從西洋國來矣。" 上曰: "其地與西洋懸遠, 何以知其然乎。" 曰: "曰哈黑龍雲羅之間, 卽蒙古地也。 黑龍江甚廣, 江口有列鎭遺址。 如海 【部落之名。】 地方, 在寧古西南, 去我國不遠。 曰哈剪髮覆額, 裹之以巾, 衣用單紐, 聞砲聲, 則男子抱耳臥, 女人驚仆云矣。"


  • 【태백산사고본】 14책 14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11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과학-지학(地學) / 외교(外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