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하는 역사 철도·6]경인선의 아인스월드, 부천 : 부천역

복사꽃 피는 마을 도착한 열차 도시를 세우다

경인일보

발행일 2010-11-22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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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글┃조성면(문학평론가·인하대 강의교수)]신은 자연을 만들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던가. 복숭아의 도시(桃市) 소사를 현대도시(都市) 부천으로 만든 것은 8할이 철도이다. 영국의 시인 윌리엄 쿠퍼(William Cowper·1731~1800)의 말대로 부천은 인간이 만든 인공의 도시-경인선의 아인스월드이다.

도시는 삶의 터전이며, 삶의 예술이다. 그리고 이 예술은 아직도 완성되지 않는 진행형의 작품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시인이자 영화평론가였던 리치오토 카누도(Ricciotto Canudo)는 영화를 제7의 예술로 선언하면서 연극→회화→무용→건축→문학→음악의 순서로 예술의 목록을 제시한 바 있다. 최근에는 사진-만화-게임 등이 이 대열에 합류하여 모두 열 개의 장르가 예술의 반열에 올랐다.

예술의 개념과 목록이 이러하다면, 도시야말로 예술 가운데서 가장 최상위의 창작물이며 종합예술일지도 모른다. 오랜 세월동안 인간의 삶이 모여 만든 가장 리얼한 공동의 예술. 이 속에는 지난날의 역사 유적과 삶의 흔적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미래의 꿈까지 담겨있기 때문이다.

   
▲ 복사꽃 피는 마을 소사를 대도시 부천으로 변화시킨 부천역 전경.

지난 2006년에 발표된 UN 인구전망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인류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에는 세계 평균을 한참 웃도는 전체 인구의 81%가 도시에 살고 있으니 우리에게 도시야말로 최고의 생활예술이며 거대한 삶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동 시대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살고 있는 또는 가장 근대적인 삶의 방식인 도시. 이제 우리는 산기슭에서 태어나 산기슭으로 돌아가 묻히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영면하는 새로운 생의 주기를 갖게 되었다.

이같은 근대 도시의 형성과 발전에 끼친 철도의 영향은 실로 압도적이다. 시간과 공간의 개념은 물론 진정한 의미에서의 도시간 네트워크와 교류를 가능하게 했으니 철도는 도시화와 근대화의 엔진이었으며, 도시공간이라는 캔버스 위를 질주하는 페인터였던 셈이다. 그러니 안남도호부에 속해 있었던 복사꽃 피는 마을 소사가 일약 수도권 대표도시의 하나인 부천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동인이 철도라는데 별다른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부천은 경인전철을 중심으로 남쪽과 북쪽으로 분할돼서 발달한 도시이다. 에어플레인 앵글 곧 항공기의 시점에서 조감해 보면 부천은 부천역을 기준으로 남-북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쪽과 북쪽의 시가지는 다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와 39번 국도로 인해 동-서의 축으로 나뉘어 도시가 형성됐으니 이같은 도시의 밑그림을 그려낸 당사자가 바로 철도임을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부천은 철도가 만들어낸 인공의 도시, 아니 도시 이름 자체가 인위적이었다. 원래 개항 이전까지 부천은 족보에도 없었던 이름이었다. 1899년 경인선 개통 당시에도 부천은 그저 인천·축현·우각·부평 다음의 다섯 번째 정거장인 소사역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부재의 지명이었다.

대한제국 시대의 부천은 인천과 부평에 속해 있었으며, 이곳이 부천군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914년 대대적인 행정 개편이 진행되면서부터이다. 지명을 제정하는 흔한 방법의 하나는 A지명과 B지명을 결합하여 지명 AB를 만드는 방식인데, 이로 미루어보면 부천은 부평과 인천 혹은 부평과 굴포천의 이니셜을 한 글자씩 차용한 AB형 지명으로 생각된다. 그러다가 1931년을 기점으로 소사면과 소사읍의 시대를 거쳤고, 1963년 무렵 오류동·개봉동·고척동·온수동 등이 서울로 편입되는 변화를 겪는다.

   
▲ 부천시 원미구 춘의동에 있던 '한국만화박물관'과 도당동에 있던 '만화도서관'이 결합한 만화규장각.

부천이 수도권의 주요 도시로 가파른 성장세를 지속한 것은 하루가 다르게 인구가 증가했기 때문인데, 인구가 이렇게 부쩍부쩍 는 이유는 고도 성장의 바람을 타고 복숭아 밭 위로 공장들이 들어서고 또한 서울과 가까우면서도 우리 시대 서민들의 영원한 비원이며 로망인 '내 집' 마련의 꿈이 서울보다 수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천의 성장은 1965년 9월 18일 경인선 복선화를 시작으로 절정을 맞게 되거니와 1974년 8월 15일에 개통된 수도권 전철 1호선의 등장 등과 정확하게 비례하고 있다. 그리고 1981년 무렵부터 이런 변화는 더욱 가속화하여 부천역을 중심으로 소사 및 역곡역도 통근자들로 넘쳐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건 그렇고 부천은 어떻게 해서 복숭아밭 소사가 아닌 대도시 부천이 될 수 있었는가. 부평의 속지였던 부천이 중요 지역으로 부상한 것은 1908년 이곳 소사에 대규모 복숭아밭이 조성되고, 김포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실어 나르게 되면서부터이다. 이런 식민지 경제논리에 의해 세워진 작은 목조 건물 역사(驛舍)가 역사(歷史)를 만들어낸 것이다. 전라북도 '솝리' 이리가 어감때문에 익산이 된 것처럼 소사란 단어는 과부(召史)·학교사환(小使) 등과 소리가 같아 도시 지명으로 삼기에는 아무래도 부담스런 측면이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도시 지명 변천과 경인선의 발전 과정속에는 한국 근대사의 변화와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 전설적인 필독 알코올 에세이 변영로의 '명정 40년'(오른쪽)과 양주동의 '문주반생기'

사람이 사는 도시가 다 그렇듯 부천 역시 인간 냄새가 물씬 풍기는 문학 작품같이 드라마틱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할미산 기슭의 특수한 종교마을 신앙촌을 비롯하여, 바커스의 후예요 한국 문학의 삼주선(三酒仙)으로 꼽히던 오상순·염상섭·이관구 등과 함께 명정사(酩酊史)를 장식한 '논개'의 시인 수주 변영로(1898~1961), 그리고 부천의 자랑인 인공의 모형도시 아인스월드·부천만화박물관(한국만화영상진흥원)·국제판타스틱영화제 등 대중적 열광과 전설적 주당들의 신화적 이야기가 부천사의 동서남북을 교차하고 있다.

아참! 말이 나온 김에 같은 술 주 자라도 삼수가 붙은 주(酒)는 발효주를 그리고 마디촌이 붙은 주(酎)는 증류주를 가리킨다는 상식 정도는 알아야 할 것이고, 전설적인 필독 알코올 에세이 변영로의 '명정 40년'과 양주동의 '문주반생기' 정도는 꼭 챙겨 읽는 것이 술에 대한 예의가 될 수도 있겠다. 깊어가는 겨울, 퇴근길에 부천역 근방에서 반가운 이들을 만나 상사들 뒷담화나 하고 너절한 정치 얘기로 시간을 죽이지 말고 때로는 앞선 신화적 주당들의 갈지자 에세이를 읽으며 술의 참맛과 멋을 느껴보는 것은 어떠한지.

사진┃김범준기자 bjk@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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