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한국 재림교회의 시작과 역사

한국 재림교회의 출발

1904년 6월

이응현, 손응조▲ 이응현, 손응조
임기반▲ 임기반

미국 하와이로 노동이민의 길을 떠났던 개신교인 이응현 씨와 손흥조 씨가 일본 고베에서 잠시 체류할 동안, 일본인 재림교회 전도사 쿠니야 히데로부터 안식일과 침례 등 재림교회 교리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1904년 6월 12일 새벽에 침례를 받음으로서 최초의 한국인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응현 씨는 그날로 하와이로 향하였으나 손흥조 씨는 하와이 이민을 포기하고 귀국하던 중 감리교인 임기반(본명 혜주, 호는 근당, 독립운동가) 씨를 만나 재림교회 교리를 가르친 결과 그도 재림신자가 되었습니다.


1904년

여름, 그 후 진남포에 머물게 된 임기반 씨는 곧 주변 사람들에게 전도하여 새로운 신자들을 얻었으나 성경지식에 한계를 느껴 쿠니야 전도사를 초청하였습니다. 8월에 쿠니야 전도사가, 9월에 일본 주재 지림교회 선교책임자인 필드(F. W. Field) 목사가 내한하여 71명에게 침례를 베풀고, 평안남도 선돌(龍岡郡 立石里), 강대모루(江西郡 南三里), 용동(龍岡郡 九龍里), 바매기(中和郡 閒谷里) 4곳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1905년 11월

스미스 목사 가족▲ 스미스 목사 가족

일본으로 돌아간 필드 목사는 한국선교 상황을 세계선교본부인 대총회에 보고하였으며, 대총회에서는 즉시 미국 캔자스 출신의 스미스(W.R. Smith) 목사를 초대 선교사로 한국에 파견하였습니다. 스미스 목사는 다음 해인 1906년에 평안남도 순안에 선교본부를 설립하였습니다.


1907년

순안 의명학교▲ 순안 의명학교

1월에 미미 샤펜버그(Mimi Scharffenburg) 여사가 부임하였는데, 그녀는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두 팔을 벌리고 자신을 초청하는 꿈은 꾼 다음날, 대총회로부터 한국 선교사 파송 요청을 받았고, 23세 처녀의 몸으로 부르심에 응하게 되었습니다. 9월에 스미스 목사와 샤펜버그 선교사는 순안 지역 신도들의 협력을 얻어 한국 최초의 남녀공학인 순안 의명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1908년

순안 의료 진료소▲ 순안 의료 진료소
러셀 의사 가족▲ 러셀 의사 가족

최초의 의료선교사로 러셀(Riley Russel) 의사가 내한하여 순안에 의료 진료소를 설립하고, 진료와 구호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11월에 지금까지 일본 미션(Japan Mission)의 선교지로 있던 한국을 독립 선교지(Korean Mission)로 분리하였습니다.


1909년

순안 의명학교 교실 한 칸에서 출판사업을 시작하였고, 9월에 교단 본부를 순안에서 서울로 이전하였습니다. 선교본부의 서울 이전은 평안도 일원에 국한되었던 선교지가 전국적인 범위로 확대됨을 의미합니다.


일제 치하의 재림교회

1910년 8월 5일

초기 사역자들(1910년)▲ 초기 사역자들(1910년)

한국선교지 총회에서 국내 선교지역을 동서남중으로 4분하고 각 지역에 선교사와 한국인 조력자로 한 팀을 구성하는 선교 책임자를 임명하였습니다.


1915년 4월

이근억▲ 이근억
정문국▲ 정문국

제5차 선교지 연회에서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이근억, 정문국 두 사람이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1917년 2월

제6차 선교지 연회에서 한국교회가 미션(Mission)에서 대회(Mission Conference)로 승격하였으며, 한국 재림교회 최초의 고등교육 과정인 2년제 신학과가 의명학교에 설치되었습니다.


1917년 3월

한국교회가 대회(Conference)에서 합회(Chosen Union Mission)로 승격하였습니다.


1919년 5월

조선합회 제1회 총회(순안)▲ 조선합회 제1회 총회(순안)

한국선교지합회 제 1회 총회가 순안에서 개최되었습니다.


1936년

경성요양원(1936년)▲ 경성요양원(1936년)

현 삼육서울병원의 전신(前身)인 ‘경성요양원’이 개원하였습니다.


1941년 4월

북간된 시조(1947년 10월)▲ 북간된 시조(1947년 10월)

1916년 창간되어 25년의 역사를 지닌 본 교단의 기관지 교회지남(Church Compass)과, 1910년 창간되어 3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선교잡지 시조(時兆)가 일제의 의해 강제 폐간되었습니다.


1943년 2월 4일

종로경찰서에 1년간 구금되어 옥고를 치른 교회 지도자들, 우로부터 김상청, 오영섭, 김례준, 이성의, 방착욱(1943년 12월)
▲ 종로경찰세에 1년간 구금되어 옥고를 치른 교회 지도자들, 우로부터 김상청, 오영섭, 김례준, 이성의, 방착욱(1943년 12월)
일제에 의해 조선연합회(재림교회 한국선교본부) 지도부가 종로경찰서에 구금되어 교회해산을 강요받았습니다.
6월 2일 최태현 목사가 일제 경찰의 고문으로 순교하였습니다.


1943년 12월 28일

교회 강제해산 성명서 (1943년 12월)▲ 교회 강제해산 성명서 (1943년 12월)

일제에 의해 한국재림교회가 강제 해산되었습니다. 해산 당시 교회는 100곳, 교인수는 3,000명이었습니다.


1945년 10월 18~24일

조국 광복 후 교회 재검을 위한 전국신도총회가 소집되었습니다. 구 황실 소유의 강릉 근처 부지 22만 평을 구입하여 삼육대학 등 삼육교육사업을 재개하였습니다. 이보다 앞선 1월, 합회 재무와 중학교장이 동경에서 영친왕을 만나 학교 설립 계획을 설명하고 쾌히 승낙을 받았습니다.


6.25와 재건시기의 재림교회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교회는 전쟁 이재민을 돕기 위한 ‘구제위원회’를 조직하여 적극적인 구호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1954년 3월 9일

서울삼육병원▲ 서울삼육병원

삼육서울병원은 1.4후퇴 때 제주도 성산포로 피난하여 하루 수백명씩 환자들을 무료 치료하였습니다. 또한 피난 수도 부산의 시급한 의료봉사를 위해 서구 부용동에 삼육서울병원분원을 시작하여 오늘날 삼육부산병원이 탄생하였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6.25 전후로 다양한 의료 활동을 전개한 삼육서울병원 류제한 박사(G, H, Rue)의 공로를 인정하여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수여하였습니다.


1957년

이승만 대통령을 예방하여 환담하는 류제한 박사▲ 이승만 대통령을 예방하여 환담하는 류제한 박사

삼육서울병원장 류제한 박사가 이승만 대통령의 주치의로 위촉되었으며, 주한 미국대사관은 삼육서울병원을 미국 비자 신청자의 건강진단 병원으로 지정하였습니다.


1958년

한국 재림교회의 ‘구호봉사회’가 한미국호협정의 결과로 국내 10대 구호 단체 중 하나로 선정되어, 매해 평균 8만 명의 극빈자를 구호하였습니다.


1963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는 한국 재림교회의 구호활동을 인정하여 1863년 8.15 광복기념식장에서 공익포장을 수여하였습니다.


1966년

한국 재림교회는 6개 지방대회에, 안식일학교학생 수가 10만 명을 넘어서고, 침례교인 수도 3만 명에 육박하였습니다.


1960년대 말

경제 침체로 선교적 침체기를 맞아 남한선교지역이 3개 대회로 축소되었습니다.


1979년대 말

3개 대회로 축소되었던 선교구역이 5개 대회로 확대 개편되면서 선교적 활력을 회복하였습니다.


1994년

한국선교 90주년 기념식▲ 한국선교 90주년 기념식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한국선교 90주년 기념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새로운 도약

2004년

한국 재림교회는 1904년 이래 지난 100년 동안, 우리 민족이 겪어온 격랑의 근현대사 속에서 이 민족과 동고동락하며 의료, 교육, 출판, 식품, 복지, 선교산업 등을 전개하여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교회에 축복하시어 2004년에는 17만 4천여 명의 신도와 교회 889개, 종합대학 1개, 전문대학 2개, 고등학교 7개, 중학교 8개, 초등학교 10개, 병원 6개, 외국어학원 35개, 건강식품 공장 3개 그리고 출판사 등을 갖춘 한국 기독교의 견실한 교단으로 서게 하셨습니다. 이밖에도 종합복지관 2곳, 노인복지관 2곳, 노인요양원 2곳을 위탁 운영하고 있습니다.


2004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의 건강과 복지에 기여햐여,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정직하고 청렴한 이미지로 국가와 지역사회를 봉사해 왔으며, 전 세계적으로 선교활동이 가장 활발한 교단 중 하나입니다. 오직 성경만을 신앙과 생활의 최고 권위와 표준으로 믿고, 사람들로 하여금 인류의 최대 소망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도록 준비시키기 위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복음주의 개신교입니다.


2004년

한국선교 100주년 기념▲ 한국선교 100주년 기념

한국선교 제2세기를 맞은 한국 재림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더욱 헌신하여 맡은 바 소명을 다해 나갈 것입니다.


2004년

한국선교 100주년 기념식▲ 한국선교 100주년 기념식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한국선교 100주년 기념식을 거행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