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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까지 의무를 다한 제2연평해전의 전사자 故 박동혁 병장

 

2002년 6월 29일 발발한 제2연평해전으로 우리 해군에서 총 6명의 전사자가 발생하였습니다. 대부분 전사자는 해전 당일 순국하였지만, 한 명만은 상처를 입고 병상에 있다가 9월 20일에 세상을 떠났는데요. 그의 이름은 故 박동혁 병장입니다.

 

 

 

 

박동혁 병장은 1981년 경기도 안산시에서 출생하였습니다. 2000년 원광 보건대 치기공과에 입학하여 자신의 치기공소를 차리겠다는 꿈을 갖고, 대학 시절 학업에 매진해 장학금을 받으면서도 식당 아르바이트를 해 번 돈으로 부친에게 건강보조식품을 선물했던 효자였습니다.

 

그리고 동생이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자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 드리기 위하여 2001년 2월 12일 해군 456기로 입대하였는데, 그는 의무병으로 복무합니다. 의무병은 병무청에서 지원하여 가거나 훈련소에서 주특기를 분류 받아 후반기 교육을 받아 배치되는데, 박동혁 병장은 해군 의무병으로 지원하여 입대하였습니다.

 

처음 그가 복무한 배는 공교롭게도 1999년 제1연평해전에도 참전했다가 2010년 3월 26일 피격으로 침몰한 천안함이었습니다. 그러다가 2002년 4월 20일에 참수리 357호에 의무병으로 부임하였는데, 당시 계급은 상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 6월 29일, 북한 경비정이 NLL을 넘어 남하하면서 제2연평해전이 발발합니다. 박동혁 병장은 의무병인 만큼 전투 임무가 아닌 다른 장병의 구호에 힘썼습니다. 국제법상으론 의무병은 공격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데요. 실제 전장에서는 전투하는 병력은 자신의 몸을 엄폐하고 사격을 하지만, 의무병은 전우를 돕기 위해 노출되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총탄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부상당한 전우들을 보살피던 박동혁 병장은 적탄에 피격당하고 맙니다. 당시 박동혁 병장은 온몸에 파편 100여 개가 박히는 상처를 입었으나, 전투 종료 시까지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병원으로 후송됩니다.

 

 

 

2002년 9월 17일, 해군은 전사자를 제외한 제2연평해전 유공자에 대해 포상을 진행하였는데 박동혁 병장(당시 상병)은 참수리 357호의 부장이었던 이희완 대위(당시 중위)와 함께 충무무공훈장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3일 후인 9월 20일, 84일간의 병상 사투 끝에 숨지고 말았습니다.

 

그 후 그는 병장으로 일계급 특진을 추서 받습니다. 제2연평해전 전사자 6명 중 3급 훈장인 충무무공훈장을 받은 사람은 정장이었던 윤영하 소령과 박동혁 병장, 두 명이었고 나머지 네 명은 4급 훈장인 화랑무공훈장을 추서 받았습니다. 윤영하 소령은 참수리 357호의 지휘자이자 최상급자이지만, 박동혁 병장은 그보다 상급자였던 다른 전사자와 달리 윤 소령과 같은 등급의 충무무공훈장을 받은 것인데요. 훈장 등급은 계급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세운 공훈에 따라 달라집니다. 즉, 해군은 박동혁 병장이 부상을 당하면서도 참수리 357호 부상병을 구호한 공로를 지휘자인 정장 故 윤영하 소령, 그리고 정장 전사 후 해전을 지휘를 한 이희완 대위가 세운 공로에 필적한다고 판단하여 충무무공훈장을 수여한 것입니다.


이후 박동혁 병장은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고, 국군 군의학교에 흉상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2010년 8월에는 제2연평해전 전사자의 이름이 차례로 명명된 윤영하급 유도탄 고속함의 6번 함인 박동혁 함이 진수되어, 다른 전사자의 이름이 붙은 고속함들과 함께 서해를 지키고 있습니다.

 

제2연평해전이나 천안함 피격사건 등에서 우리 장병의 희생은 모두 슬픈 일이지만, 특히 박동혁 병장은 전우를 살리기 위하여 애쓰다가 전사하였다는 점에서 더욱 가슴 아픕니다. 그런 만큼 그의 희생정신은 잊혀지지 않고 길이 기억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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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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